늙은 여행자의 시간
김이하
아침 햇살 슬며시 걸터앉아
잠시 이슬 말리고 간 뒤
비둘기 발자국 몇 개 서성이던 자리
보일 듯 말 듯 묵은 묘처럼 웅크린 두 그림자
불편한 몸을 싣고 느릿느릿 휠체어를 밀고 와서
가쁜 숨 한 가닥 앉힌 그 시간
거의 한 세기를 건너왔을 듯
웃음기마저 지워진 초췌한 老軀노구의 등에
따사롭게 내려앉은 햇살을 쓰다듬는 손길
앙상하게 드러난 힘줄과 질긴 살잧이
가까스로 삶의 한 면을 채울 때
살풋 지나가는 바람이 비리다
그들 마주치지 못한 어느 하루
그 자리 나도 가만 앉아 눈 감아 보면
등줄기를 따라 전해오는 따스한 기운
누가 이 풍진 세월 걸어오게 했나
억눌린 울음 가득 차오르던 두 눈에도
이제는 흙바람 나부끼는 그림만 갇히고
그렁그렁 윤슬에 가슴 뭉클거리는 오후
다시 먼 길 애돌아 나무 의자에 고요히 앉은 두 사람
반신불수 힘겹게 싣고 온 휠체어 세워 놓고
주마등 같은 삶의 자락 거칠하게 더듬는 동안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반쪽 그림자
돌아갈 곳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내일을 여는 작가 85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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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하 // 1989년<<동양문학>>등단.
시집 [눈물에 금이 갔다], [그냥,그래]. [목을 꺽어 슬픔을 죽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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