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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늙은 여행자의 시간 - 김이하

작성자양동림|작성시간24.02.02|조회수15 목록 댓글 1

늙은 여행자의 시간

 

김이하

 

아침 햇살 슬며시 걸터앉아

잠시 이슬 말리고 간 뒤

비둘기 발자국 몇 개 서성이던 자리

보일 듯 말 듯 묵은 묘처럼 웅크린 두 그림자

불편한 몸을 싣고 느릿느릿 휠체어를 밀고 와서

가쁜 숨 한 가닥 앉힌 그 시간

 

거의 한 세기를 건너왔을 듯

웃음기마저 지워진 초췌한 老軀노구의 등에

따사롭게 내려앉은 햇살을 쓰다듬는 손길

앙상하게 드러난 힘줄과 질긴 살잧이

가까스로 삶의 한 면을 채울 때

살풋 지나가는 바람이 비리다

 

그들 마주치지 못한 어느 하루

그 자리 나도 가만 앉아 눈 감아 보면

등줄기를 따라 전해오는 따스한 기운

누가 이 풍진 세월 걸어오게 했나

억눌린 울음 가득 차오르던 두 눈에도

이제는 흙바람 나부끼는 그림만 갇히고

 

그렁그렁 윤슬에 가슴 뭉클거리는 오후

다시 먼 길 애돌아 나무 의자에 고요히 앉은 두 사람

반신불수 힘겹게 싣고 온 휠체어 세워 놓고

주마등 같은 삶의 자락 거칠하게 더듬는 동안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반쪽 그림자

돌아갈 곳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내일을 여는 작가 85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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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하 // 1989년<<동양문학>>등단.

시집 [눈물에 금이 갔다], [그냥,그래]. [목을 꺽어 슬픔을 죽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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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정은 작성시간 24.02.03 나 또한 늙은 여행자의 시간을 갖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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