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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질문해도 될까요(6)- 꽃을 두고 오기 / 김소연

작성자이정은|작성시간24.02.13|조회수14 목록 댓글 1

< 꽃을 두고 오기 >

 

 

  마지막 숙소에 도착합니다

  여행 가방을 열어 아껴 온 햇반을 끊는 물에 담급니다

  아껴온 도시락김을 식탁 위에 꺼냅니다

  젖은 신발과 양말을 라디에이터에 걸쳐 둡니다

 

  잠들 생각이 없었는데 잠이 들었습니다 창턱에 앉아서 창 바깥의 이웃집을 바라보던 자세 그대로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밤새 다투던 이웃집 커플에게도 아침이 찾아왔겠지요 그들이 어떻게 화해하는지 그 끝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함박눈이 밤새 내려 이 집과 저 집 사이를 하얗게 가두고 말았군요 

 

  담장 바깥 렌터카는 눈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문을 열면 어느정도 또 문을 닫으면 어느정도

  눈은 후두둑 떨어지고

  와이퍼가 또 반원으로 된 시야를 만들고

  그렇게 출발하면 됩니다

 

  당신은 잘 돼야 해요 당신이 잘 돼야 해요

  누군가의 응원이 미행하듯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압니다

  고마우나 달갑지 않은, 달지만 뱉고 싶은, 소중하되 떨치고 싶은

 

  그런 인사말 같은 것들이

  나를 추월해서 앞서가버릴 때까지

  속도를 늦춥니다

 

우산을 쓰는 것도 힘이 들어 눈보라를 다 맞고 도착한 어젯밤에는 외투를 벗고 목도리를 풀고 장갑과 속옷을 빨아두고 뜨거운 욕조 물에 몸을 담가보았습니다 손이 둥둥 떠오를 때에 반지마저 벗었을 때에 수증기처럼 천장에 둥둥 떠올라보았습니다 욕실 천장을 열고

 

  더 멀이까지 가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이 꽃다발을 

  두고 오기

 

  꽃다발을 꽃다발 옆에 비스듬이 기대어 둡니다

  이렇게 오래 걸려 찾아왔는데

  콧물이 코끝에서 얼고 있는데

 

  그런 곳에도

  매일 아침 출근하는 가이드가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묘비를 찾아온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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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촉진 하는 밤>, 문학과 지성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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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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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양동림 작성시간 24.02.13 질문이 오늘 와 있네요. 즐거운 아침입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는데 , 묘지 까지 운전하고 가느라 고생 했겠네요
    그래도 방을 얻어 자면서 까지 가야하는 멀리 있는 묘지는 누구의 묘일까요?
    그래도 당신보다 앞서 꽃다발을 놓고 간 이는 또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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