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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냉장고 - 김애리샤

작성자양동림|작성시간24.02.14|조회수15 목록 댓글 0

냉장고

 

김애리샤

 

사실 그녀는 따뜻해요

무엇이든 오래 지켜내기 위한 수를 쓰죠

밤낮없이 온 힘을 다해 엔진을 돌려요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운명이라 받아들이죠

심지어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불면증 환자처럼

웅웅웅 주문을 외워요

그녀는 당신을 위로하고 싶어해요 보세요

그녀를 열 때마다 아직까지 당신을 지탱하게 해 준

어머니 미소같은 은은한 빛을 보이자나요

 

지난 여름 이별하고 온 당신이

마시다 남긴 소주 반 병

네 번째 내민 이력서마저도 쓰레기가 된 날

쓰레기 같은 인생 자축하며 폭식하던

편의점표 오뎅 국물과 막걸리

한 때 코까지 처박고 파먹던 9급 공무원시험 기출문제집

기약 없이 시들어간 당신의 희망 첮던 날들을

싱싱하게 지켜주고 싶어해요 일종의 보호본능이죠

러시아에서 온 절단 동태 위로 아련한 향수병 같은 성애가 쌓였어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차가운 바닷속 어딘가를

꿈꾸듯 앓고 있는 것 같아요 희미하게

생태지와의 거리가 멀수록 추억들은 두껍게 쌓이죠

 

검은 비닐봉투 속에 갇혀버린 당신의 꿈은

몇도씨 쯤에서 폭설을 견디며 냉각되어지고 있는 걸까요

 

창작21 이천십팔년 제15권3호 042 가을호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노꼬메오름 외4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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