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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저울 - 서상민

작성자양동림|작성시간24.02.26|조회수18 목록 댓글 0

저울

 

서상민

 

시도 때도 없이 아내는 저울에 올라선다

힘을 주어 홀쭉하게 아랫배를 집어넣어 보지만

저울은 섣부른 기대를 용서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저울에 올라서기를 망설인다

깊게 호흡을 뱉고 저울에 올라서지만

저울은 호흡의 무게를 모른다

 

잔뜩 밥을 먹고 아들이 저울에 올라선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눈치다

 

아무도 없는 밤이면 나는

저울에 올라서서

형광등에 비친 그림자의 무게가

저울 위에서 잠시 깜박인다

어젯밤 뱉어버린

자책의 말들은 얼마만큼의 무게인가

 

반성이 무서운 나를

반성을 모르는 저울이 주눅들게 한다

저울의 눈치를 봐야하는

가난한 나는 더욱 뚱뚱해진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묻는데

저울은 숫자판을 내보인다

 

숫자가 나의 문장이 된다

나의 문장이 무릎을 꿇는다

 

눈 떠서 감을 때까지 나를 폭식하는

이 잔혹한 무게를 언제 내다 버리나

 

시인도에 시인선 174 서상민시집 [검은 모자에서 꺼낸 흰 나비처럼]

 

서상민 : 경기 김포 출, 2018년 <문예바다>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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