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힌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나는너를모른다
나는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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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벽에다 오줌을 누고 누고 또 누고 누렇게 뜬 벽은
퀴퀴한 냄새가 따라다녔었다
초등학교 화장실도 남자용 소변기는 벽에다 오줌을 갈기면 밑에 수로응 통해
오물통으로 모여 나가는 구조였다
항상 화장실 맴새가 나던 그 화장실에 소위 일진이라 불리던 선배들이
항상 죽치고 있다가 구슬을 뺏거나 딱지를 뺏거나
약육강식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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