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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철학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작성자사랑|작성시간13.12.09|조회수56 목록 댓글 0



*** 좋은 입문서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전문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을 다루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를 거꾸로 하면 변변치 못한 입문서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겠지요. 초보자가 모두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전문가라면 누구나 말하는 것을 알기 쉽게 고쳐 써서 끝내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입문서와는 다르지요.) 

좋은 입문서는 먼저 첫머리에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에 대해 묻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는가?' 를 묻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요? 왜 이제까지 그것을 모른 채 지내왔을까요? 게을러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 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 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 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거짓말 같나요? 부모가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순간 갑자기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아이들은 부모가 '돌봐주기 모드'에서 '설교모드'로 바뀌는 순간을 확실히 알아 차리고 곧바로 귀를 닫습니다. 그게 선생님이거나 다른 어른 인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것을 모른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른 채로 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 라는 물음을 정확하게 인지하면, 우리가 '거기에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입문서는 전문서보다 근원적인 물음과 만날 기회를 많이 제공합니다. 입문서가 흥미로운 것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 물음 아래에 밑줄을 그어주기 때문입니다.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 


지적탐구는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늘 '나는 무엇을 아는가?' 가 아닌,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 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입문서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서비스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과 '일반적인 해답이 없는 물음'을 제시하고, 그것을 독자들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문제로 받아 들이게 함으로써 천천히 곱씹어 보고 음미하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편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상사적인 구분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포스트구조주의 시대'라고 불립니다.


'포스트' (post) 라는 말은 '... 이후' 를 뜻하는 라틴어 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구조주의 이후의 시대'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포스트 구조주의 라는 것은 '구조주의가 지배하던 또는 유효한 사고방식이던 시대가 끝이 났다' 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포스트 구조주의 시대는 구조주의의 사고방식이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 속에 아주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따로 구조주의자들의 책을 읽거나 이론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들의 방식이 '자명한 일'이 된 시대(그리고 성마른 사람들이 '구조주의의 종언'을 말하기 시작한 시대)를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상식이 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편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 라는 자각 자체가 구조주의가 안고 있는 중요한 단면입니다. 다시말해, 구조주의라는 '사상의 관습'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려고 할 때, 이를 위한 학술적인 근거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구조주의 밖에 없습니다. 구조주의적 견해를 이용하지 않고는 구조주의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출구 없는 무한 고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고리 속에 갇히는 것'이 바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마르크스 주의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주의적 견해를 내재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고 믿었던 시대가 얼마 전까지 존재했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구조주의 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구조주의의 성립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고리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구조주의 특유의 용어(시스템, 차이, 기호, 효과 등)를 말하는 것에 다들 질리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이 '구조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던 시대'의 종말입니다.



= 푸코,바르트,레비스트로스,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이경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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