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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큰자리

[호소]"더 무서운 것은 단 한가지 인류가 그것을 잊는 것이다"

작성자지리산호랭이|작성시간01.07.04|조회수33 목록 댓글 0
전쟁 자체보다 더 악한것은, 피해자.생존자.유가족들에 대한 우리들의 외면과 망각입니다.
어느 누구에게 어디에서 언제든 일어날수 있는,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비극..
세계곳곳에서 국가와 민족, 이념과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힘없는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
이보다 더 무서운것은, 그 사실들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은폐하며 증인들에게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는 반통일 수구세력들입니다.
옛일이 아닙니다. 역사가 아닙니다.
죽은지 반백년 후에도, 남에서는 "빨갱이", 북에서는 "인민의 적"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바로 우리 모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을지도 모르는 3백만명의 민간인 희생자들..
전쟁후에도 소위 "국가의 안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반백년동안 수없이 실종되고 희생되고 고문당한 원혼들..
이 수많은 분들의 억울한 죽음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입니까!!
수입된 이데올로기들 사이의 싸움? 외세? 아니면 몇몇 독재자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을까요?
바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읍니다. 지금까지 사실을 외면하고 침묵해왔으며, 권력에 의해 기록되는 왜곡된 역사만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글은 한겨레에서 퍼옴


기억의 부활/현기영


한국전쟁 51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6월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 국제전범재판'은 당시 미군이 한국 민간인에 대해 저지른 대량학살 행위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했다고 한다(<한겨레> 6월25일치).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민간 법정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정치적 상징성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서 미국은 어떠한 공개적 비판·비난도 허용하지 않는 초월적 존재,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정당한 비판이 불온한 반미로 몰리고, 반미는 곧 용공이오, 패가망신을 뜻했던 어두운 세월을 지내온 우리에게 그 법정의 심판은 참으로 상쾌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당시 참전국 대표들, 각국 엔지오 대표들이 함께 참여한 그 국제법정을 우리 남북 민간인들이 주도하여 조직해냈다는 점도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법정의 클라크 수석검사(존슨 대통령 재직 때 법무부장관)는 당시 3천만명의 한국 인구 중에 10%인 3백만명 가까운 민간인(양민)이 학살당했다고 언명했는데, 그 엄청난 수효가 미군의 직접 범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남한 군·경의 작전을 통한 간접 범죄까지 포함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남한의 국가폭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대량학살행위에도 미국의 원죄가 있으니, 모든 군작전권이 미군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의 국가폭력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수는 최소 60만명에서 최대 1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국전쟁은 피카소의 `코리아의 학살'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의 잔혹한 이미지가 두드러진 야만의 전쟁이 되고 말았다.

최소 60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들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는 가해 집단과 그에 동조하는 기득권 세력의 전유물이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회 지하 서고에서 당시 잔혹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증언청취록이 발견되었다. 4·19혁명 직후 민주화의 분위기 속에서 국회가 10년만에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규명한다고 증언청취 작업을 벌이다가 주위의 압력에 못 이겨 단 10일만에 중단하고 말았는데, 그 때 시작하다 만 증언채취록이 지하실에 처박힌 채 40년 동안 썩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마저 조병옥을 대통령 후보로 낼 정도로 그 핵심에 가해 세력이 존재했음을 반증한다. 그리하여 최소 60만명의 원혼들은 역사의 자리에서 쫓겨나, 저승에도 안착 못한 채 지금까지 허공 중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역대 파시스트 권력들은 공포정치를 통하여 그 비참한 과거에 대한 사회의 기억을 말살하려는 `망각의 정치'를 집요하게 구사해 왔다. 그리하여,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간의 내통이 철저히 봉쇄 당하고 말았으니, 살아남은 자 역시 살아있되 기억이 타살 당한 죽은 자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맺힌 통한을 생각해 보자.

이제 역사의 그 엄청난 공백을 메우어야 할 때가 왔다. 죽음 같은 망각의 세월에서 벗어나, 기억의 재생·과거의 복권을 위한 사회운동을 펼쳐야 할 때다. 살아남은 자의 고립 분산되고 주눅든 기억들을 증언을 통해 활발히 되살리고, 그것들을 모아 사회의 집단 기억으로 구성하여, 가해 세력에 의해 왜곡 편집되어진 과거(역사)를 수정·재해석하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홀로코스트로 악명을 떨친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단 한가지 인류가 그것을 잊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거니와, 불행한 과거를 망각하는 자는 개인이든 사회든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저주받게 마련이다.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이 죽음 같은 망각을 분쇄해야 하겠다. 이제 국회는 40년 전 시작하다만 증언채취의 재개와 함께 진상 조사 활동을 펼치고, 보수언론도 더 이상 그 죽은 자들을 외면하지 말고 옳게 인정해주기 바란다.

현기영/소설가·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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