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팽나무의 독백
그래, 말도 말아. 1593년 음력 유월 스물 아흐레 동이 틀 무렵,
이미 성은 반쯤 거덜이 나 있었고, 매캐한 죽음의 냄새로 짓눌려 있었지. 폭우로 동문이 무너지고,
왜놈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견고하기 그지없던 북문도, 점심 무렵 결국 뚫리고 말았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참살하라〝 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독이 오른 왜놈들은 그야말로 악귀였지. 성벽이 헐리고 촉석루 불타고, 성 안에는 피바다!
그야말로 지옥도였지.
여름날 저녁 내 발치에서
모깃불 피워놓고
열무김치에 보리밥을 욱여넣던
덕구 아재네도
보름달 뜬 밤 내 등 뒤에 숨어
사랑을 속삭이던 갓난이도
남편에게 얻어터져
신발도 못 신고 내달리던
진주댁도
그리고 항상 내 다리에다
오줌을 갈기던 백구까지
모조리 참살되어 어죽이 되었지
참 질기고 더러운 것이
목숨이라고
이웃들의 시취에 구역질하며
사백 년이나 살아남아
이렇게 자네에게 넋두리를 하이...
〞어디 그게 할아버지의 죄냐고
나는 말없이 노거수를 끌어안았다
*시작노트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을 꼽는다.
그러나 진주는 일본과 명나라의 화친조약이 결렬된 후, 회담의 우선권을
쥐려는 일본에 의해 2차 침략을 당해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1차 침략은, 김시민 장군 휘하 3천팔백여 병력으로 2만의 일본군을 막아낼 수 있었으나,
2차 침공은 일본의 주력군 10만여 명이 몰려왔음으로 애초에 승산이 없었다.
국가도 포기한 성에는, 지휘체계도 불분명한 관군과 의병 합쳐 6천명에다,
피난온 민간인 2만4천명의 오합지졸이 수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성이 견고하다 하더라도
중과부적으로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1주일을 버틴 성은, 결국 목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전투에서 진주성은 평지처럼 거세당했고, 살려고 들어갔던 민간인까지 몰살을 당했다.
2026년 늦봄에 관광 겸 답사를 갔을 때, 새롭게 보수된 성 중앙에는 몇 그루의 노거수가 서 있었다.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비통하게 증언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전쟁을 한다.
---아무리 명분 있는 전쟁이라도, 나쁜 평화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강낭콩보다 푸른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울음이, 들리는 듯하였다.
1차 전쟁--1592년 10월5일-10월10
2차 전쟁--1593년 7월19일-7월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