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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사효(중국역사중 24명의 효자이야기)

작성자신망예|작성시간07.07.21|조회수920 목록 댓글 0
 

二十四孝 故事


○ 二十四孝 故事 解題


이 책은 元나라 郭居敬이 편찬한 책으로, 중국 고대의 대표적 효자 24인의 사례를 수록한 아동 교훈서이다. 이처럼 중국이 이십사효를 뽑아 효행의 대표적 사례로 삼았던 것은, 중국 사회를 효로 확립함으로서 그 당시의 봉건국가를 안락하고 태평하게 유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처음 목적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이 二十四孝의 이야기나 ≪二十四孝圖≫는 중국의 어린이를 위시하여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므로, 점점 효가 중시되어 정착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책으로, ≪三綱行實圖≫도를 편찬하였는데, 삼강행실도는 세종 14년(1432년), 집현전 부제학 설순(偰循)에게 왕명을 내려, 예로부터 전해오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록을 참고하여 군신, 부자, 부부의 삼강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의 행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이 책이 다시 成宗 12년(1481년)에 한글로 풀이한 ≪三綱行實圖≫로 출간되어 보급되었는데, 105인의 행적을 한 책으로 줄여서 발간하였다. 효자, 충신, 열녀 모두 각각 110인으로 정하였는데, 효자편의 경우 이중 88명이 중국의 효자, 효부의 행실 사례로 실려 있고, 충신, 열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사대사상이라기보다는 유교 문화권의 공통적인 윤리관에 바탕한 일체감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본 번역서는 1981년 3월, 대만의 광전출판사에서 출판한 《二十四孝故事》를 저본으로 하고, 청나라 구중용이 교정한 《校正今文孝經, 二十四孝考》-<附二十四孝圖前後說>을 참고하였다.



目        次


○ 二十四孝 故事 解題                                                       1

1.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키다(孝感動天효감동천)                                2

2. 직접 탕약을 맛보다(親嘗湯藥친상탕약)                                      2

3. 손가락을 깨무니 가슴에 통증을 느끼다(嚙指痛心교지통심)                    3

4. 홑옷을 입고도 어머니께 순종하다(單衣順母단의순모)                         4

5. 쌀을 메고 와 부모를 봉양하다(負米養親부미양친)                            4

6. 몸을 팔아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다(賣身葬父매신장부)                        5

7. 사슴의 젖으로 부모를 섬기다(鹿乳奉親녹유봉친)                             6

8. 날품을 팔아 어머니를 모시다(行傭供母행용공모)                             6

9. 귤을 품에 넣어 어머니께 드리다(懷橘遺親회귤유친)                          7

10. 시어머니께 젖먹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다(乳姑不怠유고불태)              8

11. 모기가 배부르게 피를 먹도록 내맡기다(恣蚊飽血자문포혈)                   8

12. 얼음 위에 누워 잉어를 구하다(臥冰求鯉와빙구리)                           9

13. 어머니를 위하여 아들을 묻다(爲母埋兒위모매아)                           10

14. 호랑이 목을 졸라 아버지를 구하다(搤虎救親액호구친)                      10

15. 관직을 버리고 어머니를 찾다(棄官尋母기관심모)                           11

16. 변을 맛보며 근심하다(嘗糞憂心상분우심)                                  12

17.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다(戱綵娛親희채오친)                  12

18. 오디를 주워 어머니를 봉양하다(拾椹供親습심공친)                         13

19. 베개를 부채질하고 이불을 따뜻하게 하다(扇枕溫衾선침온금)                14

20. 샘물이 솟아나고 잉어가 뛰어오르다(涌泉躍鯉용천약리)                     14

21. 천둥소리를 듣고 무덤에 가서 울다(聞雷泣墓문뢰읍묘)                      15

22. 나무를 조각하여 부모님으로 모시다(刻木事親각목사친)                     15

23. 대나무를 붙들고 통곡하니 죽순이 돋아나다(哭竹生筍곡죽생순)              16

24. 어머니의 변기를 씻다(滌親溺器척친익기)                                  16

  ※ 二十四孝圖說 原文


1.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키다(孝感動天효감동천)


상고 시대에 舜이라는 황제가 있었는데, 그는 매우 현명하고 어진 임금이었다. 그의 본성은 겸허하고 자애로웠으며 또한 부모님께 매우 효성스러워, 이웃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고수는 도리어 저속하고 전혀 예의염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모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재혼하여 계모를 맞이하였다. 이 계모의 마음씨는 매우 악독하고, 너무도 박정한 여자여서 늘 기회를 노려 순을 학대하였다.


계모는 아들을 낳아 象이라 불렀는데, 이 자는 더욱 더 오만하여 형을 공경하지 않았으며 늘 어머니의 힘만 믿고 그의 형을 업신여겼다. 순은 비록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모진 학대를 받으며 성장하였으나,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였다. 순이 아직 제위에 오르기 전, 역산 아래서 밭을 갈고 있을 때였다. 그의 효심에 온갖 짐승들까지도 감동하여, 코끼리가 긴 코로 순을 도와 밭을 갈았고, 하늘의 새들도 그들의 발톱으로 순을 도와 김을 매었다. 그리하여 순의 논밭은 해마다 풍년을 이루어 많은 양식을 비축하였다. 매번 흉년이 들면, 순은 곧 자기가 비축해 놓았던 양식을 굶주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으므로 전국의 백성들은 모두 그의 은덕에 감동하였다.


그때 당시의 황제였던 唐堯는 이렇게 위대한 순의 행적을 듣고 곧 9명의 남자를 보내 그를 시중들게 하고, 동시에 자기의 두 딸인 아황과 여영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후에 당요가 연로하자 자기 아들이 제위를 잇기에 불초함을 알고 곧 순에게 천하를 맡기니, 이에 순이 帝位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것은 모두 그의 孝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 직접 탕약을 맛보다(親嘗湯藥친상탕약)


서한 때에 매우 자애로운 황제가 있었는데 바로 漢文帝로서, 이름은 恒이었다. 그는 한나라 고조 유방의 셋째 아들이었다. 그가 황제로 등극하기 전에, 高祖는 그에게 代州 땅을 주어 다스리게 하였으므로 그를 代王이라 칭하였다. 문제는 서자 출신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부희(薄姬)라는 분이었다. 후에 그의 아들 문제가 황제로 등극하자 太后가 되었다.


문제는 효자로 그의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고, 줄곧 조금도 싫증을 낸 적이 없었다. 비록 그는 황제로 등극하여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여전히 방심하지 않고 모든 일마다 친히 어머니를 섬겼다.

불행히도 그의 어머니가 중병이 들어 삼 년 넘게 병상에 있었는데, 문제는 매우 걱정하면서 더 더욱 효성스럽게 간호하였다. 그는 낮에도 어머니를 정성으로 간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밤에도 깊은 잠을 자지 않고 매번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즉시 일어나 시중 들러 가곤 하였다. 또한 좀더 빨리 일어나 가볼 수 있도록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잠을 잤다.


문제는 어머니 병간호를 위하여 조금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았으니, 실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매번 탕약을 달인 후, 자신이 먼저 맛을 보지 않고는 어머니께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문제는 이와 같이 어머니께 효도하였으므로 그의 효심에 대한 소문은 곧 천하로 퍼지게 되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그의 효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또한 그의 효심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후에 사람들도 더욱 그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3. 손가락을 깨무니 가슴에 통증을 느끼다(嚙指痛心교지통심)


춘추시대에 인품과 덕성이 매우 훌륭한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曾이요 이름은 참(參)으로 자는 子輿(자여)이니, 공자의 제자였다.

비록 그의 집은 매우 가난하였으나 그는 언제나 모친을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으며 모친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와 같은 효심에 더욱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증참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갑자기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집에 없고 게다가 집에는 손님을 대접할 만한 것을 살 돈도 없어 마음이 매우 다급하였다. 그러나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아들이 집에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즉 어머니와 아들의 혈맥은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고 이빨로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상처를 내었다. 이때 증참은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느껴와,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땔감을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안에 들어서자 곧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어머니께 그가 가슴이 아팠던 이유를 여쭈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조금 전에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네가 돌아오질 않아, 할 수 없이 나의 손가락을 깨물면 네가 반드시 느끼는 바가 있어 빨리 집에 돌아와 손님을 대접할 방법을 상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고 하였다.


증참은 어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기 때문에, 이미 어머니와 서로 마음이 통하여 어머니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손가락을 깨물면, 아들이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니 이 얼마나 참된 효심인가!


4. 홑옷을 입고도 어머니께 순종하다(單衣順母단의순모)


춘추 시대에 성은 민(閔), 이름은 손(損), 자는 자건(子騫)인 사람인 사람이 있었는데, 공자의 제자였다. 그의 생모는 그가 어렸을 때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다시 부인을 맞이했다. 후에 손의 계모는 두 아들을 낳았다.


계모는 마음이 편협하고도 박정한 여자였다. 자신이 않은 두 아들만 편애하여 그들에게 입히는 옷은 모두 좋은 옷감에 따듯한 솜을 넣어 만들어 주었고, 손은 그녀의 친자식이 아니므로 그를 시기하여 언제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괴롭혔다. 또한 그에게는 별로 따뜻하지 않은 갈대꽃을 넣어 만든 옷을 입혔다.


계모는 민손의 아버지 앞에서는 손을 아주 사랑하는 척했고, 민손의 아버지가 나가면 그를 학대하였다. 어느   아버지는 손에게 수레를 끌게 하고 외출하였다. 손은 홑겹의 얇은 옷을 입었으므로 추위에 온몸을 떨다가 아차하는 사이에 수레의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민손이 이처럼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래서 수레에서 내려 민손의 옷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아들이 입고 있는 것은 갈대꽃을 넣어 만든 얇은 옷이 아닌가!


민손의 아버지는 매우 노하여 그의 부인을 불러 한 바탕 야단을 치고는 당장 쫓아내려 하였다. 민손은 이 광경을 보고 매우 상심하여 아버지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하였다.


“어머니가 계시면 아들 한 명이 추위에 떨면 되지만, 만약 어머니를 쫓아내시면 가엾은 세 아들은 모두 추위에 떨게 됩니다!”

계모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감동하여 이 때부터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고 민손을 지극히 사랑하기 시작하였다.


5. 쌀을 메고 와 부모를 봉양하다(負米養親부미양친)


춘추 시대에 인품과 덕성이 뛰어나고 또한 매우 효성스러운 사람이 있었다. 그의 성은 仲, 이름은 由, 자는 子路로 공자의 제자였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하여 쌀을 살 돈이 없어 매일매일 먹는 것은 명아주나 콩잎 같은 야채가 고작이었다. 자로는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주 백 여리나 떨어진 먼 곳에 나가 고된 일을 했고 품삯을 받아, 그곳에서 약간의 쌀을 사 집에 돌아왔다. 부모님은 야채죽 대신에 흰쌀밥을 보시고는 매우 기뻐하였다. 자로는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종종 먼 곳에 가서 일하고 쌀을 사 집에 돌아왔다.


훗날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고, 자로가 식견을 넓히기 위해 남쪽지방을 두루 돌아보던 중 초나라에 이르렀을 때였다. 초나라 왕은 평소 자로의 학문과 인격을 매우 흠모하고 공경하였으므로 그에게 관직을 맡아 주기를 청하였다. 관직에 오른 후, 그는 매우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었고, 출타할 때에는 그의 뒤를 따르는 수레가 백여 대나 되었다. 또한 비축해 둔 곡식은 만여 종이 되었고, 그가 앉는 곳엔 여러 겹의 양탄자가 깔렸고, 그가 식사를 할 때에는 음식을 담은 훌륭한 그릇이 즐비하게 놓여졌으며, 그 안의 음식들은 모두 산해진미였다.


당시 자로의 부귀는 극에 달했으나 그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항시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매번 연회석상에서도 즐거워하지 않았으며, 때때로 손님들에게 “이 몸이 오늘날 비록 부유하다 하나,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처럼 명아주나 콩잎 같은 나물을 먹고 백 리 밖의 먼 곳에서 쌀을 메고 와 부모님을 봉양할 때만 못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고 한탄하며 말하기도 하였다.


6. 몸을 팔아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다(賣身葬父매신장부)


漢나라 때 千乘이라는 곳에, 품성이 선량하고 매우 효성스러운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동(董), 이름은 영(永)이었다. 그는 집이 매우 가난하였고, 또한 그가 여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다. 그는 성장한 후에도 다른 사람의 집에서 일을 하여 근근히 살면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 후 아버지가 중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이 곤궁하여 아버지 시신마저 장례를 치를 수 없어, 여기저기에서 돈을 융통해 보려 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동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그 시신을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종으로 팔아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로 하였다.


동영은 장례를 무사히 마친 후, 곧 종노릇을 하기 위해 주인집으로 가던 길에 홰나무 아래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자신이 동영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길 원하였다. 동영은 그 여인과 부부가 될 것을 허락하고 함께 주인집으로 가서 일을 하였다. 주인은 그 여인이 베를 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만일 비단 삼백 필을 다 짠다면 몸값을 다 갚은 것으로 간주하여, 동영을 자유로이 해 주겠다.”


그녀는 매우 비범한 여인으로 겨우 한 달만에 약속한 비단을 모두 다 짰다. 주인은 비단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약속대로 동영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부부는 매우 기뻐하며 집으로 가는 도중에 또 다시 예전에 서로 만났었던 홰나무에 다다랐는데, 뜻밖에 그 여인은 갑자기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훗날 민간에 이 이야기가 전해졌는데, 사람들은 이 여인은 선녀, 즉 천상의 칠선녀 중의 한 명인데, 동영의 효성에 감동하였기 때문에 잠시 지상에 내려와 동영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7. 사슴의 젖으로 부모를 섬기다(鹿乳奉親녹유봉친)


周나라 때 성이 郯인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진 지 매우 오래되어서, 이미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그를 郯子(담자 곧 담선생님)라 불렀다.


담자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매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드시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구해 드렸다. 그의 부모는 이미 연로하고 게다가 눈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부모님이 갑자기 사슴 젖이 먹고 싶다고 하자, 그는 사슴 젖을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 담자는 사슴 젖을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사슴처럼 변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짐승 가죽을 파는 상점에서 사슴 가죽을 사서 몸에 걸치고 홀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사슴 무리 속에 뒤섞였다. 다행히 사슴 무리는 그가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고, 그는 생각대로 암사슴의 젖을 얻을 수 있었다.


담자가 사슴의 젖을 들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몇몇 사냥꾼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를 사슴이라 여긴 사냥꾼들은 활을 들어 쏘려 하자, 담자는 다급히 사슴 가죽을 벗고 일어서서 말하였다.


“저는 사람이지 사슴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눈병에 걸렸는데 사슴젖을 드시고 싶어하여, 사슴으로 변장하고 사슴무리 속에 들어가 사슴의 젖을 얻은 것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냥꾼들은 그의 말을 듣고, 곧 그가 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냥꾼들이 모두 감동하여 이 일을 널리 전했으며, 사방의 이웃들이 듣고 그의 효심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8. 날품을 팔아 어머니를 모시다(行傭供母행용공모)


東漢시대, 임치라는 곳에 성은 강(江), 이름은 혁(革)이라는 효자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둘이 남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그때 당시 온 나라가 혼란하여 곳곳에 도적들이 난동을 일으켜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는데, 강혁이 살고 있던 곳은 마침 도적 떼의 약탈이 가장 심한 곳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너무 연로하여, 도적 떼의 약탈로 충격을 받게 해서는 안 되었으므로,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그는 어머니를 등에 없고 외지로 피난을 가는 도중 시시때때로 도적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도적은 그가 가난하여 빼앗을 만한 물건이 없음을 알고 순순히 놓아주었으나, 어떤 도적들은 오히려 강혁을 붙잡아 그를 협박하여 도적이 될 것을 강요하였다. 강혁은 이러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자 결국 도적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애원하여 말하였다.


“불쌍한 저는 노모를 모시고 있으니 만일 제가 당신들과 같이 간다면 늙으신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도적은 그의 이와 같은 효심을 보고 자비로운 마음이 일어, 그들 모자를 놓아주어 길을 가게 하였다.


수많은 고난을 겪은 후 그들 모자는 하비라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이때 그는 가난이 극에 달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은 낡고 해져 맨몸이 드러났고, 신발은 너무 닳아 구멍이 나서 양쪽 발이 다 밖으로 드러났다. 그는 매일 고된 노동을 하여, 어렵게 모은 돈을 모두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사용하였다. 비록 그는 몸에 걸칠 옷과 신발이 없었어도 어머니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구비해 놓았다.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심을 듣고 모두 그를 존경하였다.


9. 귤을 품에 넣어 어머니께 드리다(懷橘遺親회귤유친)


동한 시대에 성은 육(陸), 이름은 적(績)이라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천성이 총명하고 게다가 부모님께 매우 효성스러웠다. 그가 여섯 살 때 어른들을 따라 구강 지방으로 놀러갔는데 그 곳에서 원술이라는 사람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당시 원술은 높은 관직에 있었고 매우 명망이 있는 인물이었다. 원술은 육적의 생김새가 귀여운 것을 보고 그의 하인을 시켜 육적에게 많은 귤을 주어 먹게 하였다.


육적은 매우 흥겹게 귤을 먹다가, 어른들이 잠시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슬그머니 귤 두 개를 집어 자신의 옷소매 속에 숨기었다. 연회가 끝나고 손님들이 작별 인사를 할 때가 되었다. 육적 또한 원술에게 하직인사를 하려고 막 손을 들어 읍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몰래 숨겨 놓았던 귤 두 개가 소매 속에서 나와 땅에 떨어졌다.


원술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육적아! 너는 손님으로서 어찌 주인의 귤을 몰래 숨기었느냐?” 육적은 곧 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답하였다. “저의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귤입니다. 그래서 두 개를 숨겨 집에 가지고 가 어머님이 드시도록 하려 했습니다.” 원술은 육적의 말을 듣고, 이처럼 어린아이가 이미 부모님께 효도하는 도리를 알고 있음에 매우 놀라, 여러 손님들 앞에서 육적을 칭찬하였다.


10. 시어머니께 젖먹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다(乳姑不怠유고불태)


唐나라 때, 최산남(崔山南)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최산남은 당대의 선비였다. 그에게는 증조모 장손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이미 연로하여 걸을 때에 비틀거려서 다른 사람이 부축해야만 했고, 게다가 이빨은 모두 빠져 있었다.


최산남의 조모인 당 부인은 매우 효성스러운 며느리로서 항상 시어머니 장손부인을 부축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매일 이른 아침 일어난 후에는, 장손 부인의 머리를 빗기고 세수를 시킨 다음엔 곧 방에 들어가 자신의 젖을 장손 부인에게 먹였다. 장손 부인은 며느리의 젖을 먹었기 때문에 비록 이러한 생활을 하며 몇 년이 지났어도 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손 부인이 갑자기 중병이 들었다. 그녀 스스로 자기의 수명이 다했음을 느끼고 임종 전에 집안의 자손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유언을 하였다.


“내 평생 며느리의 크나큰 은혜를 입었으나, 보답할 것이 없구나. 한 가지 바랄 것이 있다면 자손 대대로 우리 집 며느리들은 모두 저 며느리가 나를 받들었듯이 그녀를 공경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장손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집안 사람들은 당 부인의 효심에 감동하여 모두 그녀를 칭송하고 존경하였으며, 자손들의 며느리들 또한 그녀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11. 모기가 배부르게 피를 먹도록 내맡기다(恣蚊飽血자문포혈)


晉나라 때, 한 효자가 있었다. 그의 성은 吳이며 이름은 猛이었는데, 그의 나이는 겨우 8살이었으나, 부모님께 효도하는 도리를 알고 있었다. 게다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매우 세심하여 부모가 걱정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


오맹의 집은 매우 가난하여 매일 하루 세 끼를 겨우 풀칠하는 정도여서 여름날 밤에 잘 때도 모기장조차 칠 수 없었다.


겨울에는 모기가 없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매번 여름이 되면 수많은 모기떼들이 방안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물어 괴롭혔다. 오맹은 저녁때가 되면 웃옷을 벗어 피부를 드러내고 모기로 하여금 마음대로 피를 빨아먹게 하였다. 비록 그를 물어대는 모기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나 그는 손으로 한 마리의 모기도 쫓지 않았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모기가 무는데 어찌 쫓지 않는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어린 마음에는 이미 크고도 큰 효심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즉 부모님이 주무시는 침상에 모기장이 없어 결코 모기를 피할 수 없으니, 만일 자기의 몸을 모기가 물지 못하도록 한다면 모기들은 반드시 부모님의 몸으로 가서 피를 빨아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모기 밥이 됨으로써 부모님을 편히 주무시게 해 드렸다.


12. 얼음 위에 누워 잉어를 구하다(臥冰求鯉와빙구리)


晉나라 때 낭야라는 곳에, 천성이 선량하여 사람을 대함이 겸허 온화하며 역시 매우 효성스러운 이가 있었는데, 그의 성은 王, 이름은 祥이라 했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가 재혼하여 성이 朱氏부인을 맞이하였다.


이 계모는 마음이 편협하여, 자비롭고 인자한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시시때때로 왕상을 구박하기 일쑤였다. 계모는 그의 아버지 앞에서 늘 왕상의 험담을 하였는데, 험담이 잦아지자 아버지까지도 점점 계모의 말을 믿게 되어 왕상을 냉담하게 대하기 시작하였다. 왕상은 이렇듯 많은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조금이라도 부모를 원망하거나 한탄한 적이 없었으며, 여전히 정성을 다하여 부모님께 효도하였다.


어느 해, 왕상의 계모가 어쩌다가 신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의 계모는 한 가지 음식을 특히 좋아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신선한 생선이었다. 그러나 때는 겨울철이었으므로 날씨는 매우 춥고, 도처의 강이 모두 얼어 버렸으니 어떻게 신선한 생선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왕상은 얼어붙은 강가에 나가서도 적당한 방법을 강구할 수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웃옷을 벗어 알몸으로 얼어붙은 강 위에 누워 자기의 체온으로 꽁꽁 언 강을 녹이고자 하였다.


그러자 잠시 후 그의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갑자기 얼어붙은 강이 갈라지며 구멍이 나더니 잉어 두 마리가 뛰어 나왔다. 왕상은 너무나 기뻐서 살아 있는 잉어를 들고 돌아가 계모로 하여금 드시게 하였다. 그 잉어를 먹은 왕상의 계모는 몸이 점차 쾌유하고 아울러 마음도 착하게 되어, 왕상을 친아들 이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13. 어머니를 위하여 아들을 묻다(爲母埋兒위모매아)


한나라때 郭巨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 형편이 매우 가난하여, 곽거가 일하여 벌어온 돈으로 겨우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었다. 후에 곽거는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는 매우 활달하고도 귀여웠다. 아이가 세 살 되었을 때, 곽거의 어머니는 이 손자를 아주 귀여워하여 항상 당신이 드실 음식을 아껴서, 아이에게 나누어 먹였다. 곽거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곧  아내와 몰래 상의하였다.


“우리 집안이 이렇게 가난하여 어머니를 봉양할 식량조차 이미 바닥이 났는데, 지금 이 어린 자식까지 딸려 있어 어머니가 드실 것에서 반을 나누어야 하니 우리가 어찌 이 아이를 그냥 둘 수 있겠소? 이 아이를 땅에 묻으면 어머니가 드실 것을 나누지 않아도 되니, 어찌 나쁜 짓이라 할 수 있겠소?”


그의 아내는 사랑하는 아이를 이와 같이 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으나, 시어머니께 효도를 다하기 위해서는 어찌 할 수 없어 남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날 곽거는 아내와 집 뒤에 있는 큰 나무 밑으로 갔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 서글피 울고 있고 그는 괭이로 땅을 힘껏 파내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가! 땅을 겨우 석 자 깊이도 파내려 가지 못했는데, 갑자기 많은 황금이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황금이 묻혀 있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이 황금이 하늘이 효자에게 내리는 상금이다. 그러므로 관가에서는 가져갈 수 없으며, 백성 또한 가로채어 쓸 수 없다.”


즉 이 황금은 어머니를 위해 아들을 묻으려 했던 효자에게 내리는 상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부부는 황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더욱 노모에게 효도하였고, 또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14. 호랑이 목을 졸라 아버지를 구하다(搤虎救親액호구친)


晉나라 때 남향현에 매우 효성스러운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楊豊의 딸로서 香이라고 불렀으며,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어느 날 양향이 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벼를 베러 갔다. 도중에 갑자기 길가의숲 속에서 한 마리 호랑이가 튀어나와 아버지를 향해 사납게 달려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아버지를 입에 물었다. 이 때 양향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단지 눈을 빤히 뜨고 그 호랑이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향은 만일 이대로 망설이다가는 아버지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 위험천만의 상황에서 갑자기 자신은 돌보지 않고 번개같이 앞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작은 두 손으로 호랑이의 목을 꽉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목을 졸린 호랑이가 숨을 쉴 수 없게되자, 호랑이는 하는 수 없이 입에 물고 있던 아버지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양향은 다시 두 주먹으로 호랑이의 머리를 맹렬히 내려치니, 호랑이는 허둥지둥 숲 속으로 도망쳤다. 양향의 아버지는 그제서야 호랑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겨우 열 네 살 밖에 안된 소녀가 사나운 호랑이를 맨손으로 물리쳤다. 즉 양향의 극진한 효성이 한 사람에 잠재되어 있던 힘을 불러 일으켜, 더할 수 없는 신령한 힘을 발휘하게 한 것이다.


15. 관직을 버리고 어머니를 찾다(棄官尋母기관심모)


宋나라 때 한 효자가 있었는데, 성은 朱, 이름은 壽昌이라 하였고, 그의 어머니 劉氏는 어버지의 妾室이었다.


주수창이 일곱살 때, 본처가 항상 그의 어머니를 질투하고, 또한 아버지께 모함하였다. 주수창의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그의 어머니를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으므로, 그때부터 그들 모자는 헤어지게 되었다. 그는 비록 집에 남아서 부지런히 노력하며 훗날의 공명을 추구하였으나, 마음속에는 항상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였다.


神宗 황제가 제위에 있을 때, 주수창은 이미 고관의 지위에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는 어머니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관직까지 버리고,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섬서성으로 가서 어머니를 찾을 준비를 하였다. 집을 떠나기 전 그는 집안사람들에게,


“나는 지금 어머니를 찾아 떠나려 한다. 만일 내가 어머니를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였다.


주수창은 산 넘고 물 건너 여러 곳을 거치며 갖은 고생을 다 겪은 후, 결국 同州라는 곳에 이르러 어머니를 찾았는데, 그들 모자가 헤어진 지 오십 여 년이 흐른 뒤였으며, 이때 그의 어머니의 나이는 이미 칠십여 세나 되었다.


지극한 효자는 평생 부모를 흠모하는 것이니, 주수창이 어머니를 찾아 집을 나설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오십 세가 넘었으며, 슬하에는 많은 자손들이 있어도, 항상 어머니를 사모하였으니 이 얼마나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6. 변을 맛보며 근심하다(嘗糞憂心상분우심)

 

중국 남북조 시대, 南朝의 齊나라 新野지방에 품성이 온화하며 아주 효성스러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성은 유(庾)이며 이름은 검루(黔婁)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훗날 진사에 합격하였다.


그후 조정에서 그를 잔릉현 현관으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는데, 뜻밖에도 그가 부임한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 까닭 없이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뛰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갑작스레 마음이 불안하며 땀을 흘리는 것은 필시 불길한 징조로써, 집안에 무슨 사고가 일어났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관직을 반납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과연 그의 부친이 중병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병세를 보러 온 의사가


“만일 병세의 경중을 알려면 환장의 변을 맛보아야 합니다. 만일 변의 맛이 쓰면 그 병은 쉽게 고칠 수 있고, 변의 맛이 달면 고치기 어렵습니다.”고 하였다.


유검루는 의사의 말을 듣고 곧 아버지의 변을 맛보았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도 변의 맛이 달았으므로 그는 마음속으로 매우 상심하였다. 저녁이 되자 곧 향상을 놓고 향을 피워 제를 지냈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하늘의 북두칠성을 향해 빌며, 아버지의 생명을 소생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고 간구하였다. 그후 아버지의 병시중을 드는 검루의 지극한 효성이 하늘에 통했는지 서너 달만에 부친의 병은 완쾌되었고, 검루는 다시 지방의 태수로 부임해 갈 수 있었다.

화려한 부귀공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며, 더럽고 비천한 것은 인간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유검루는 아버지가 병이 나자 그의 관직까지 마다하였으니 이 또한 얼마나 참된 효심인가!


17.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다(戱綵娛親희채오친)


周나라 때에 성이 萊인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가 이미 연로하여 사라들은 그를 老萊子(늙은 래선생님)라 불렀다. 그는 본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였고, 종래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행동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부모님께 봉양하는 것은, 모두 가장 달고 맛있는 것과 가장 신선하며 연한 음식이었는데, 그 이유는 부모님의 이가 이미 다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노래자의 나이도 이미 칠십을 넘었지만 사람들에게 감히 자기 스스로가 늙었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아직 노부모가 생존해 있는데, 자신이 늙었다는 말을 하게 되면 부모의 연로하심을 더 드러내게 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노래자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늘 오색의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의 모양으로 분장하여 부모님의 곁에서 재롱을 부렸다. 부모님은 그의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또한 그는 종종 두 개의 물통을 메고 응접실로 들어온 후, 고의로 바닥에 물통을 모두 엎어 온 바닥을 물로 가득하게 만들고는, 곧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엉엉하고 울었는데, 이는 부모님이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활짝 웃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이미 늙었으나 스스로 감히 늙었다고 하지 아니하고 일부로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며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오직 천성이 효성스런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18. 오디를 주워 어머니를 봉양하다(拾椹供親습심공친)


漢나라 때, 성이 채(蔡), 이름은 순(順)이라는 효자가 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와 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채순이 그의 어머니를 섬김이 매우 효성스러워 이웃 사람들은 그를 아끼고 존경하였다.


그 당시 王莽이 서한 황실을 찬탈하자, 천하의 도적들이 모두 떼지어 일어나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다. 게다가 가뭄까지 겹쳐 양식이 바닥이 나자, 채순은 하는 수 없이 오디를 주워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채순이 오디를 주울 때는 반드시 바구니 두 개를 가져가, 잘 익은 까만 색의 오디를 주우면 한 쪽 바구니에 넣고, 덜 익은 붉은 오디를 주우면 다른 쪽 바구니에 넣었다. 어느 날 채순이 오디를 줍고 있을 때, 갑자기 赤眉賊(눈썹을 빨갛게 칠한 도적)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채순이 두 개의 바구니에 오디를 나누어 담은 것을 보고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물었다.


“여보게 젊은이! 이 오디들을 두 바구니에 나누어 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자 채순이 “까만 색의 열매는 맛이 달아 어머니께 드리려는 것이고, 붉은 색의 열매는 맛이 시기 때문에 제가 먹으려고, 두 개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습니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그가 가난하면서도 이와 같은 효심을 지니고 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서 말의 쌀과 한 짝의 소다리를 주면서 어머니께 효도하게 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선량하므로, 가엾은 효자를 보면 그 누가 동정하지 않겠는가? 설령 도적과 같이 흉악한 사람이라도 ‘효성’앞에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 베개를 부채질하고 이불을 따뜻하게 하다(扇枕溫衾선침온금)


漢나라 때 성이 黃, 이름을 香이라 하는 효자가 있었다. 그는 천성이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부모님께 매우 효도하여 자식 된 도리를 다하였다. 그가 아홉살 때 불행하게도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나 깨나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였으며, 틈나는 대로 산소에 달려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정이 이와 같이 절실한 것을 보고 모두 그를 효자라 칭찬하였다.


황향은 또한 아버지를 잘 봉양하여 집안에서의 힘든 일은 모두 스스로 맡아하였다. 특히 여름철에 날씨가 무더워 지면, 부채질로 아버지 침상 위의 베개와 돗자리를 시원하게 만들어 아버지가 편안히 주무시도록 하였고, 겨울철에는 자신의 몸으로 먼저 아버지의 이불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무실 때 춥지 않도록 하였다.


당시 江夏의 태수 유호(劉護)는 겨우 아홉 살 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이와 같이 부모께 효도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기특한 일이라 여겼다. 이에 태수는 황향의 효행을 조정에 상주하여 포상을 받도록 하였다.

황향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늘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며, 아울러 지극한 정성으로 그의 아버지를 모셨으니 이 또한 진정한 효심이 없고서는 아니 될 것이다.


20. 샘물이 솟아나고 잉어가 뛰어오르다(涌泉躍鯉용천약리)


漢나라 때, 성은 姜, 이름인 詩라는 효자가 있었다. 그는 부모를 봉양함에 세세한 것까지 지극 정성을 다하였다. 그에게는 龐氏 부인이 있었는데, 그 며느리 또한 시어머니 모시기를 남편보다 더 극진히 하였다.


강시의 어머니는 강물로 끓인 차를 좋아하였으므로, 방씨는 매일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멀리 있는 강가에 가서 강물을 떠가지고 돌아와, 시어머니께 차를 끓여 드렸다. 또한 강시의 어머니는 싱싱한 잉어회를 좋아하여서, 그들 부부는 매일 신선한 잉어로 회를 만들어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웃의 부인들을 초청해 잉어회를 대접하였다. 이는 어머니가 잉어회를 드시면서, 이웃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여, 더욱 즐겁게 해 드리고자 함이었다. 강시 부부는 십 수년을 하루같이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하였으며, 이로 인한 고생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의 효심에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어느 날 그들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갑자기 샘물이 솟아나, 강시가 맛을 보니 그 맛이 강물의 맛과 똑같았다. 게다가 샘물에서 매일 두 마리의 잉어가 튀어나와 강시부부는 이후로 먼 곳까지 가서 힘들게 강물을 떠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집 근처의 가까운 곳에서 물과 잉어를 얻어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하늘이 내린 상복이 아니겠는가!


21. 천둥소리를 듣고 무덤에 가서 울다(聞雷泣墓문뢰읍묘)


三國시대 魏나라에 왕부(王裒)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이름난 효자로 어머니를 극진한 효성으로 모셨다.


그의 어머니는 매우 담력이 약하여서 천둥소리를 듣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였다. 그래서 매번 천둥이 칠 때면 왕부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 곁에 있어, 어머니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모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왕부는 어머니의 시신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 묻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매우 후미진 산기슭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매우 적적해하고 무서워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비바람 불고 번개 치고 천둥소리가 진동하는 날이면, 왕부는 어머니 묘소 앞으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 아들 부가 여기 어머니 곁에 있으니 무서워하지 마세요!”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안위하였다.


그래도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정을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왕부는 아예 어머니 무덤 곁에 초가집을 짓고 조석으로 문안을 올렸다.


왕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와 같이 절실하였다. 비록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지 않아도, 생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어머니를 안위해 드렸으니, 어찌 후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지 않겠는가? 우리들은 이 세상에 부모가 생존해 계실 때, 부모를 더욱 사랑하고 섬겨야 할 것이다.


22. 나무를 조각하여 부모님으로 모시다(刻木事親각목사친)


漢나라 때 이름난 효자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정란(丁蘭)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부모가 모두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너무 일찍 여의었으므로, 부모께 효도를 다하지 못한 그는 항상 마음깊이 부모를 사모하며 그들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정란은 부모께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부모님의 형상을 나무에 조각하여 집안에 모시고, 아내와 함께 매일 조석으로 밥과 반찬 등 제례 음식을 바쳐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모시듯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봉양도 오랜 세월이 흐르자, 정란부인의 정성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하루는 정란이 외출한 사이에 그녀가 바늘을 가지고서 고의로 그 목각상의 손가락을 찌르자, 그 곳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정란이 돌아오자, 그 목각상의 양친은 정란을 보고 슬픈 표정을 짓더니 눈물을 흘렸다. 정란은 목각상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집에 없던 사이에 분명 어떤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잠시 후, 아내가 목각상에게 못된 짓을 한 연고를 알아낸 정란은 大怒하여 결국 아내를 그녀의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23. 대나무를 붙들고 통곡하니 죽순이 돋아나다(哭竹生筍곡죽생순)

 

三國시대 吳나라에 아주 극진한 효자가 있었는데, 그의 성은 孟이고, 이름은 宗, 자는 共武라 하였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생활을 하였으나, 어머니와 서로의지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맹종의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중병이 들어 위독한 상태에 이르렀다.


어느 날 어머니는 신선한 죽순으로 끓인 죽순탕이 먹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때가 눈발이 흩날리는 엄동설한이었으니 어디에 죽순이 있겠는가? 맹종은 대나무 숲으로 가서 머리를 써 이리저리 궁리하였으나, 죽순을 구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지금 죽순을 드시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그는 순간 너무 상심하여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대나무를 끌어안고 큰 소리로 목놓아 통곡하였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맹종의 절실한 효성에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대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나무의 뿌리 부분에서 파릇파릇한 죽순이 돋아났다. 맹종은 이 신선한 죽순을 보고 땅에 꿇어앉아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곧 이 싱싱한 죽순탕을 끓여 어머니께 드렸고 그의 어머니는 그 죽순탕을 먹고 난 후 건강을 회복하였다.


효자의 마음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그러니 효심은 하늘을 감동시키고 또한 영원히 전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부모가 있고, 또한 사람마다 모두 효심을 가지고 있으니,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정성을 기울여 부모를 살핀다면, 맹종과 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24. 어머니의 변기를 씻다(滌親溺器척친익기)


宋나라 때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黃, 이름은 庭堅, 호는 山谷이라 하였다. 그는 송대에 매우 출중한 시인으로 시를 잘 지었을 뿐 아니라 詞, 서예, 문장 등의 방면에서도 매우 유명하였다. 송나라 哲宗 연간에 그는 이미 太史(기록 담당 관리)라는 관직을 맡고 있었다.


황정견은 매우 효성스러워 부모를 정성으로 모셨다. 비록 그는 태사라는 높은 지위에 있어 부귀공명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어머니께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가 어머니를 봉양하는 일은 항상 자기 스스로 하였지 결코 집안의 하인을 불러 시키는 일이 없었다. 또한 그의 어머니가 깨끗함을 좋아하심으로 매일 저녁 어머니의 변기를 씻되, 계집종을 시키지 아니하고 반드시 스스로 하였다.


그가 이와 같이 직접 어머니의 수불을 드는 것은,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다른 사람과 나누어 분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록 높은 관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극진히 효도를 다 하였다.


효도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도리다. 부귀나 비천의 구분 없이 천자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성껏 효도해야 한다. 황정견은 이러한 도리를 분명히 깨닫고 자신이 직접 어머니의 변기를 씻었던 것이니, 이 또한 후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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