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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태공(姜太公)과 그의 어록(語錄)..

작성자연수원|작성시간10.12.29|조회수214 목록 댓글 0
 

강태공(姜太公, ? - ?, 태공망, 본명 강상)


태공망(太公望)의 속칭.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 병략가이다. 본래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이다. 자는 아(牙)이고, 동해인이다. 그는 학문이 매우 깊었다.


그의 조상이 우(禹)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운 공로가 있어, 우(虞)와 하(夏)시대에 여(呂, 지금의 하남성 남양 서쪽) 땅에 봉해졌다. 그래서 ‘여씨’가 되었다. 주나라 문왕이 상보(尙父)라는 존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한 무왕의 아버지 문왕이 오래도록 기다리며 바라던(望) 사람이라 하여 태공망 또는 강태공(姜太公)이라고도 부른다. 그밖에도 呂望(여망)이나 呂牙(여아)라는 호칭이 쓰인다."(<육도>중에서.) 강태공은 중국 고대 은대와 주대사이에 살았던 인물이다.

 

주의 문왕은 차가운 얼음 위에 버려졌던 ‘후직’의 후손이다. ‘후직’의 어머니 ‘강원(姜嫄)’은 교외에서 노닐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서 ‘후직’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문왕은 키가 훤칠하고 피부가 유난히 검었으며,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약간 근시였던 것 같다. 이렇게 당당한 그의 외적인 풍채에는 어딘가 지식인의 우울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에게 어느 날, 꿈속에서 천제가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영호진(令狐津)의 나루터에 있는데 천제의 뒤에는 수염과 눈썹이 하얀 노인이 서있었다. 천제는 문왕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창아 너에게 훌륭한 스승이자 보필해줄 만한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주겠노라, 그의 이름은 망(望)이니라"


참으로 기이한 꿈이었다. 이 위대한 현인이 자기의 나라 어디엔가 살고 있다고 들은 듯하였다. 그러나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희창’은 시종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사냥을 다니며 마음속으로 늘 갈구하였다. 어느 날 또 사냥을 가게 되어 ‘태사 편’을 시켜서 점을 치게 하였다. 점괘를 보더니 ‘편(編)’은 노래하듯 읊조리는 것이었다.


田于渭陽  - 위수’가에 사냥을 나가시면

將大得焉  - 풍성한 수확이 있을 것이라네.

飛龍非리(*리=璃..좌변 蟲) -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며

非虎非熊  -  호랑이도 아니고 곰도 아닐진대,

兆得公侯  -  어진 현인을 만나게 될 조짐이니

天遺汝師  -  이는 하늘이 내려 주신 훌륭한 스승이라네.


문왕은 한없이 기뻐 ‘편’이 알려준 곳에 대대적인 인마를 거느리고 위수가로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낚시를 하던 노인을 발견하고 한참을 근시인 눈으로 살핀 그는 꿈속에서 알려준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현인으로 직감한 왕은 말하길......


<“선친이신 태공께서 자주 나타나 얼마 있지 않아 반드시 성인이 나타나실 것이며 그로 인하여 주나라가 흥성케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그 성인이 아니신지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를 수레로 모셔서 칭하길 태공망「太公望」이라 불렀고 국사로 봉하였다.


周文王的得呂尚的輔佐後,更為積德行善,招徠士人,講究信譽,和悅百姓,在諸侯中聲望更高。並向外征討。首先征討了西方的犬戎,密須(甘肅寧台)和黎國等。


周文王問呂太公如何才能得天下 ? 呂太公回答說﹕「王者之國,使人民富裕。霸者之國,使士人富裕。僅存之國,使大夫富裕。無道之國,國庫富裕,這叫做上溢而下漏。」文王說﹕「你說得太好了。」馬上打開倉庫,拿出錢糧賑濟窮人。周國的事業日益興盛,勢力更加擴張,天下的土地已是三分有其二了。


주문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천하를 어떠하면 얻을 수 있겠는가?

태공 답하길...


王者之國,使人民富裕。-  왕자의 나라는 일반 백성들이 부유합니다.

霸者之國,使士人富裕。-  패자의 나라는 관리들만 부유합니다.

僅存之國,使大夫富裕。-  겨우 존재하는 나라는 사대부만 부유합니다.

無道之國,國庫富裕,  -  무도한 나라는 국고만 부유합니다.

這叫做上溢而下漏。    -  자고로 위가 새면 아래도 새는 법입니다.

 

後文王逝世,武王繼位,以呂尚為師(尊稱為師尚父),周公旦為輔,畢公等為主要助手,繼續文王的事業,在呂尚的輔佐下在盟津會諸侯,商討紂王,在牧野和紂王的軍隊會戰,太公帶頭挑戰,紂王大敗,紂王自焚而死,商朝滅亡。周武王建立周王朝。


주 문왕이 서거 후 아들인 무왕이 계승하였다. 국사로는 여상(상부라고도 불리 킴)이, 주 공단, 필공 등이 보조하게 되었다. 맹진(상나라 수도 근방에 강나루 물길이 험하여 부쳐진 이름)에서 문왕은 여망에 보좌를 받아 무사히 건너게 되었다. 상나라에 주왕을 토벌하려 나섰다. 목야전투에서 주왕과 일대 회전을 벌여 태공에 지휘아래 주왕(紂王)은 대패를 하였다. 주왕은 스스로 자기 몸을 불살라 죽고 결국에 상나라는 멸망하였다. 이로써 주 무왕이 주왕조(周王朝)를 건립하게 되었다.


강태공은 염제 신농씨의 후손이다. 여상(呂尙) 또는 자아(子牙)라 하며 염제신농 씨와의 연대 차이는 2천7년으로 중국 강소성(江蘇省) 동해 바닷가에서 은(殷)나라 폭군 주왕(紂王)을 정치에 신물이 나서 각처로 은둔생활을 하는 기간에 바늘도 없는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고 사색의 세월로 어진 임금이 나타날 때만을 기다렸다.


姜太公의 나이 72세 되던 해 주(周)나라 무왕(武王)을 만나 폭군 주(紂)왕을 쳐서 멸망시키고 통일 중국을 성취시키니 주(周)나라 武王이 개국공신으로 산동성(山東省)에 봉군하고 나라 이름을 ‘제(濟)나라’라 하였으며 太公으로부터 20대 강공(康公)까지 왕위를 계승 하였다.


태공은 사마(司馬)씨 부인에게 장가를 들어 3남1녀를 1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매년 음력 8월3일을 강태공천추제사일(姜太公千秋祭祀日)로 정하고 성대하게 제사를 모시고 있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가에서 처음 만나 스승으로 삼았으며, 뒤에 무왕을 도와 은을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여 그 공으로 제(齊)나라에 봉함을 받아 그 시조가 되었다.


동해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위수(웨이수이강)에서 낚시질하다 문왕을 만났 다는 등 그의 전기가 대부분 전설적이지만 전국시대부터 한나라 시대에는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로서 그의 재주가 회자되기도 했다.


병서(兵書) [육도(六韜)](6권)은 그의 저서라 전해짐


문도(文韜)·무도(武韜)·호도(虎韜)·용도(龍韜)·표도(豹 韜)·견도(犬韜)...

 '도(韜)'의 뜻은 '화살을 넣는 주머니', 혹은 '수습해서 갈무리한다.' 는 뜻이다.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듯이 이미 저지른 일은 어쩔 수   없다.” ... “복 수 불 반 분 (覆水不返盆)”...


강태공은 젊어서 장가를 들었는데 생계를 돌보지 않고 공부만 했다.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학문에 정진하였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내는 품팔이를 해서 글공부만 하는 무능한 강태공을 먹여 살렸다. 강태공이 여든 살 가까이 된 어느 날 아내는 일을 나가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비가 올 것 같으니 혹시 비가 오면 저기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가 젖지 않도록 들여놓으시구려.”라고 했다. 강태공은 방 안에서 글을 읽으면서 건성으로 “그러마고”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대낮에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갔다. 저녁 때 아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는 다 떠내려갔고 강태공은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방 안에서 글만 읽고 있지 않은가? 부아가 치민 아내는 그 길로 이혼을 선언하고 방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강태공은 그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허,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80이 되면 운이 트이는데 그걸 못 참고 떠나가다니”라고. 혼자 된 강태공은 위수(渭水)의 강가로 집을 옮겨 반계(蟠溪)라는 곳에서 매일 낚시를 한다고 앉아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주 문왕’을 만나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개국하고  그 공으로 강태공은 높은 벼슬을 얻었고, 제나라의 제후까지 되었다. 이 무렵 막노동꾼과 재혼해서 어렵게 살고 있던 전처는 강태공을 찾아가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 합쳐지기를 간청했다 한다.


강태공은 아무 말 없이 그릇에 물을 떠가지고 나오더니 그 물을 바닥에 쏟아 부었다. 그러고 나서 부인에게 그 물을 그릇에 주워 담으라고 말했다. 부인은 어이없어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강태공이 말했다.


"한번 쏟아진 물은 도로 담을 수 없는 법이오. 한번 헤어졌으면 다시 같이 살수 없는 것이오."


覆(엎을 복) 水(물 수) 不(아니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또 다른 일화가 있다.


태공망 후세에 태어난 공자(孔子)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 바로 태공망이라고 한다. 이유는 <태공망은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서 입으로 학문을 논하고, 성실하지 않으면서 덕을 베푸는 것처럼 행세함으로써 변설(弁舌)로 백성들을 현혹케 하는  자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무용지물을 설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라고 하며 공자가 존경하던 주공 단(주공 단)과 대립한 일등에 의해 화가 난 공자는 철저하게 태공망을 역사의 무대에서 왜소화시키거나 그가 등장하는 기록들은 무엇이든 축소하거나 무시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공자에 나라인 노나라는 내부적으로 ‘맹, 숙, 계씨’의 삼환의 난(亂)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제나라’에 ‘노나라’ 군주가 가서 암살되기도 하고, 노나라의 영토를 수시로 찔러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자는 이러한 제나라를 대해 좋게 바라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제나라에 최초로 봉해진 ‘태공망’ 또한 좋게 보길 만무했을 것이다.


더욱 그를 싫어 한 이유는 공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물이 주공이 바로 태공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립 위치에 있던 태공망을 좋게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 태공망 어록 ...


1. 관리로서 공평하고 결백하며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참된 관리가

   아니다.

 

2. 군자는 자기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기뻐하고, 소인은 눈앞에 일이 이루

   어지는 것을 기뻐한다.

 

3. 남에 참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아야 한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한다.

 

4. 못난 사내는 아내를 두려워하고, 현숙한 부인은 남편을 공경한다.

 

5. 선(善)을 보기에는 목마르듯이 하고, 악(惡)을 보기엔 눈먼 사람처럼

   하라.

 

6. 부지런한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이다.

 

7. 네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면 자식 또한 네게 효도를 할 것이고, 네가 그

   렇지 못한 다면 아들에게 효도를 바라지도 마라. 

 

8. 남을 저울질 할 때 먼저 내가 그 저울에 달릴 것을 조심하라, 남을 상하

   게 하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상한다.

 

9.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여 남을 천하게 생각 말고, 스스로 크다하여 남에    

    작음을 비웃지 말며, 용맹만 믿고 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10. 선한 일을 탐내고 악한 일은 즐기지 마라.

 

11. 해와 달이 아무리 밝아도 엎어놓은 항아리 밑은 비추지 못하고, 칼날이

    아무리 날카롭다 하여도 죄 없는 사람을 베지 못하며, 뜻밖에 불운도

    조심하는 사람에게는 불운은 그 발 앞에도 못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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