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명과족보읽기

효에서 도로 가는길 할아버지산소를 찾다가 만난 45~7대할아버지묘비

작성자연수원|작성시간20.10.19|조회수49 목록 댓글 0

[다음카페] 旌善全氏(石陵群派) 全濟雄 家 祖上 生存 年代 http://m.cafe.daum.net/jeodanglove/KCJ5/36?svc=cafeapp 여기클릭하면 연대기 볼수있습니다.

2009년에 작성해서 카페에 올린 정선전씨 석릉군파 전제웅가 조상 생존연대

선산에 할아버지산소를 찾다가 못찾고 대신 수백년전인 45~7대할아버지 성기 증흠 백린할아버지 묘비 만났다. 그날 안갔으면 결코 만날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가도 못찿았다. 어려서 특별한 계기로 아버지와 재종할아버지와 때로는 혼자가서 그곳 상철 윤택아저씨에게 여러차례 자세한 설명을 듵은터라 눈에 훤한 곳이었다. 갈때마다. 상철(민택) 윤택아저씨 아들인 두살위아래 동년배 형님과 동생을 만날 기대로 갔지만 둘은 학교에 갔기 때문에 한번도 만날수 없었다. 어느때는 학교에갈 나이에 벌초온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때는 삼촌들도 안 갔기 때문에 내가 유일한 아이였고 나는 어려서 벌초를 가장 많이한 사람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효자각은 갈때마다 무너져가고 있었고 효자각옆에는 한마지기 땅에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나중 도로 편입으로 현재가 되었다. 효자각은 관리자(주인)후손 전상철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직계인 우리가 그이유를 나중 효자각안에 비치된 기록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삼효려건립 대표자가 바로 석우锡祐 할아버지로 조부님 중부仲父 작은아버지로 조부님이 태어날때 한집에 산분으로 효자각건립에 일등공신으로 기록에 가장많이 등장 숙질간에 애듯한 정을 느끼게한다. 제겐작은 증조부로 재원(재학) 아버지요 상철 윤택아저씨 조부님이고 제일 형님 제해동냉 증조부시다. 효자각과선산이 석주(재광 홍택)锡周 할아버지 삼형제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문서로 확인된 것이다.

효를 도로 실천한 우리집안 최장수며느리
어려서 선산이 있는 동면석곡은 벌초하러 많이 갔기때문에 고향과 같은 곳이다. 상철 윤택아저씨 두아주머니를 이때 만난 친숙한 분들이다. 점심과 산에 갈땐 옥수수를 싸주고 하셨다. 큰아주머니를 마지막에 뵈었을때 아들이고 우리집안 항열에서 유일하게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인 제일이를 자주 만나고 친하게 지내라는 당부를 했다. 그뜻을 간직했지만 형편과방법이 달라만나지 못했다. 두분들은 정선전씨 2000년 역사에 동서간 우리집안 며느리중 가장 오래 90세를 살고 계신 분들이다. 족보에 최장수 선조로 기록된 37세 자건 子建 할아버지 87세보다 더오래 사신 분들로 효자집안 단명 기록을 끊은 분들로 정선전씨족보에 기록을 남길 분들이다. 두아저씨가 단명후 보상을 받은 것인데 나는 자신있게 이분들이야 말라 효자 가문을 이어온 공로자들이다.

조부님 산소 찾다가 만난 선대 할아버지들
꿈에 할아버지와 친족형님을 보고 무조건 선산을 다시 갔는데 충격적사건을 경험 선산이 옮겨졌다는 말과 할아버지산소로 지정 받은 정말 맞는지 사실 여부를 확인중에 있다. 20년전부터 시작한 효와도의길에서 15년전에 족보를 통해알고 기록한 성자 기자 할아버지를 만나게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고 어느 날부터 효자각 안에 비치된 고문서가 보이기 시작하는등 흥미 진진한 역사속에 몰라서 숨겨졌던 가계의 비밀을 알게 된것이다.

45세 할아버지 성자 기자묘비

숙종계유생 중흠 백린 할아버지 이름보임
우린 둘째고 첫째가 중익 백의 할아버지이름 엎에 있다.

길로가서 못찾아 이번엔 예전 갔던 물길을 건너 다른길을 가다고 성기 할아버지를 만났다.

추정하고간 그선산에 갔다가 찾지못했다 믿을수 없어 다시 가보려고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