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드는 한마디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윤재윤 님/ 변호사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대부분이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독일은 물론 세계 곳곳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세워졌고. 나 또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해 그 참상을 목격 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역사가가 존재하고 심지어 재판까지 제기했다. 그것도 영국 런던에서, 영국의 역사 저술가인 데이비드 어빙은 1996년에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가 책에서 "어빙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것은 근거 없이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 이유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이지만, 모든 것을 증거로 판단하는 재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어빙은 '일부 유대인들이 수용자 캠프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스실은 없었고, 히틀러는 이런 문제를 전혀 몰랐다' 라고 주장했다 가스실은 폴란드가 관광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영국 법률상 립스타트는 '가스실의 존재'와 '히틀러의 연관성'을 명확히 증명해야 명예 훼손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어빙은 역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 관한 책을 여러권 저술한 재야 사학자였다. 또한 남몰래 유대인을 혐오하고 히틀러를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소송이 자기 주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전쟁 관련 자료가 많고 언변도 유창해 능력을 과시할 자신감이 충분했다.
립스타트는 정반대 입장에 놓였다. 어빙의 왜곡 사실을 일일이 대응하면 그가 더 주목받고, 이를 무시하면 거짓이 퍼질 수 있었다.어빙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립스타트를 위한 재판 비용을 모았고. 의식 있는 변호사들도 합류했다. 예상과 달리 변호사들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를 법정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다. 어빙이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실수를 유도하고, 2차 가해를 일으킬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대신 역사학 전공자를 모아 어빙의 저서와 강연 녹취록을 분석했다 그 내용을 독일의 원본 문서와 일일이 대조하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2000년 초에 열린 재판은 처음부터 팽팽했다. 어빙은 변호사 없이 변론 했는데 건축 전문가인 증인을 몰아붙여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건축 도면에서 "가스관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다."라는 증언을 받아냈다. 언론은 이 증언을 '가스관이 없다!'라는 내용으로 기사 첫 면에 올려서 사실인 양 보도했다 그러자 시민들 사이에서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라는 의문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법정에 자료가 제시되면서 어빙은 점차 궁지에 몰렸다.
그가 책을 쓴 방식은 교묘했다 히틀러에게 불리한 사실은 일부 누락하거나 단어를 바꿨고, 어떤 자료는 앞뒤 맥락을 잘라서 히틀러에게 유리하도록 꾸몄다. 그가 수백 개의 자료를 왜곡 인용하며 히틀러에게 이롭도록 조작한 사실이 명백해졌다.
마침내 재판부는 "원고는 고의로 역사적 증거를 왜곡했으며 편견에 사로잡힌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이유로 어빙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1세기를 시작하는 해어 벌어진 이 재판은 홀로코스트 문제를 넘어 초정보 시대의 진실 찾기를 상징하는 판결이 됐다.'사실이 어떻게 공격받으며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가.'를 보여 준 것이다. 허위 정보는 사실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오류를 확대하고 맥락을 삭제한 채 유리한 것만 인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정치.이념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제멋대로 조작하는 것이다 교묘한 알고리즘 기법까지 더해 왜곡 정도가 심해지며 더욱이 무서운 사회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빙과 같은 거짓말쟁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시간이 들더라도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는 가능한 데까지 검증해 봐야 한다. 2025년 영국 의회는 이 판결의 25주년을 맞아 경의를 표하며 결의했다. 오늘날 허위 정보 홍수 시대에 진실을 지키는 상징으로 기리는 취지에서였다.
어빙은 재판 뒤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200만 파운드가 넘는 재판 비용을 부담하느라 파산하고 역사학계에서도 퇴출당했다. 그는 극우 나치주의자를 상대로 강연과 나치 유적지 관광업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나치 찬양사를 처벌하는 오스트리아에 강연차 입국했다가 체포돼 1년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힌 적도 있다. 결국 그는 역사 자료를 교묘히 조작해 허워 사실을 만든 선례만 남긴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는 왜, 무엇을 위해 역사 연구에 자기의 삶을 바친 것일까?
*2016년에 <나는 부정한다> 라는 제목으로 이 재판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 졌다. 법정에서 한 말과 의복까지 똑같이 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