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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몰락 너머, 쪽빛 바다

작성자전과웅|작성시간26.06.21|조회수21 목록 댓글 0

         몰락 너머, 쪽빛 바다
                                       차미영

통영의 쪽빛 바다를 말없이 바라본 적이 있다. 적막이 깃든 풍경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통영에서 태어나 그곳에 잠든 박경리의 초기작 <김약국의 딸들> (1962)은 이 항구 도시를 무대로. 구한말부터 1930년대까지 한 집안의 몰락과 딸들의 삶을 펼쳐 보인다. 첫 장에서 작가는 통영을 '조선의 나폴리'라 부르며, 그 바다를 '미지의 보고'이자 '흥망성쇠의 근원' 이라 했다. 통영의 바다가 단지 아름다운 배경을 넘어 풍요와 몰락, 동경과 불안을 품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 글은 김약국 집안에 이어진 불행의 흐름을 짚고, 다섯 딸 가운데 용숙, 용란, 용옥의 삶에 얽힌 돈과 . 욕망, 순종의 무게를 읽는다. 이어 용빈의 출발에 실린 혁명적 낭만의 뜻을 생각해 본다.

도깨비 집의 저주와 몰락 
김약국 집안의 불행은 김성수의 부모인 봉룡과 숙정의 비극에서 비롯된다. 봉룡은 숙정에게 연정을 품었던 사내를 죽이고, 숙정은 비상을 먹고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 뒤로 '비상 묵은 자손은 지리지 않는다', 곧 독약을 먹고 죽은 집안은 자손이 번성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저주처럼 떠돈다. 김성수가 어릴 적 봉룡과 숙정이 살던 집은 '도깨비 집'이라 불렸고, 어른들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 집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김성수는 오히려 그 집을 맴돈다. 도깨비 집 앞의 쪽빛 바다와 항구를 떠나던 돛배를 바라보며 어린 김성수는 부모를 잃은 빈자리 너머로 먼 세상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어른이 된 김성수는 큰아버지가 하던 관약국을 물려받고 김약국이라 불린다. 그러나 약국을 접고 어장 일에 뛰어들었다가 배를 잃고 빛까지 지면서 통영의 유지였던 김약국 집안은 빠르게 기울어 간다. 도깨비 집을 둘러 싼 속설은 이 집안의 몰락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현실에서 파국을 재촉한 것은 어장 경영의 실패였을 것이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의 불안과 궁핍까지 겹쳐 딸들의 사랑과 삶도 그 불행을 비켜 가지 못한다.


돈,욕망,순종 앞에 선 세 딸
맏이 용숙은 현실 감각이 뛰어나고 돈의 위력을 일찍 알아차린 인물이다. 청상과부가 된 뒤 유부남 의사와 관계를 맺고, 그 사이 태어난 아이를 죽였다는 혐의까지 뒤집어쓴다. 그런 수모를 겪고도 생대구를 가공해 돈을 벌어 제 살길을 마련한다. 어머니 한실댁이 용옥을 데리고 돈을 빌리러 왔을 때 마저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 매몰차고 이기적으로 보인다. 용숙은 흔히 말딸에게 기대하는 희생과 헌신과는 거리가 멀다. 인정보다 실속을, 체면보다 생계를 앞세우는 용숙에게 돈은 삶을 지탱하는 생존의 논리다. 마지막 장에서 용빈이 용혜를 데리고 서울로 떠나고, 용숙은 결국 실성한 용란을 떠 맡게 된다. 제 잇속만 챙기던 용숙에게도 혈육의 정은 남아 있다. 작가는 그 점에서 매정함과 연민이 교차하는 용숙의 내면을 응시한다.

 

한실댁이 세째 용란을 두고 "말괄량이지만 달나라 항아리 같이 어여쁘니" 라고 할 만큼, 용란은 자매들 가운데서도 눈에 띈다. 육감적인 매력을 지녔고 자기 욕망에도 솔직하다. 머슴 한돌과 뜨겁게 사랑하지만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용란은 집안에 떠밀려 아편쟁이이자 성 불구자인 연학과 혼인한다. 이 과정에서 용란의 욕망은 사랑이 아니라 금기와 억압의 대상으로 밀려난다 한실댁이 "죽으나 사나 매인 대로 살아야제"라고 하자. 용란은 "늙어 죽을 때까지 이리 살아야 한단 말입니꺼?" 하고 되받는다. 이 장면에는 혼인을 바라보는 두 세대의 차이가 또렷하다. 어머니에게 혼인은 숙명처럼 견더야 하는 삶이지만, 용란에게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이다. <번개치는 밤의 흉사> 에서 연학이 휘두른 도끼에 한실댁과 한돌이 참변을 당하자, 용란은 제정신을 잃고 만다. 이 파국을 용란 개인의 성정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자신의 사랑과 고통을 스스럼 없이 말할 수 없던 당대의 관습이 용란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았기 때문이 다. 용란의 비극은 사랑보다 신분과 체면이 앞서고, 여성에게 인내를 강요하던 가부장적 질서가 빚어낸 희생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용옥은 용숙처럼 영악하지 않고, 용란처럼 격정적이지도 않다. 그는 주어진 삶을 거스르기보다 묵묵히 감당한다. 집안일을 도맡고 남편을 기다리며, 교회에 기대어 구원을 바란다. 그러나 선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용옥에게도 가혹한 일은 잇따른다. 시아버지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놓이고,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마저 침몰한다. 인양된 배 안에서 아기와 함께 발견되는 용옥의 마지막은 참담하다. 모래 위로 떨어지는 십자가 하나는 믿음과 인내가 구원으로 이어지리라는 바람마저 헛되게 한다. 용옥의 죽음은 개인의 불운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다 순종과 희생을 여성에게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 삶의 존엄과 안전은 지켜주지 못한 시대적 모순이 용옥의 마지막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용숙은 돈이 삶을 좌우하는 현실을, 용란은 억눌린 욕망의 비극을, 용옥은 순종의 한계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이들의 삶 곳곳에 여성에게 지워진 책임과 희생이 얽혀 있다. 이들과 달리 둘째 용빈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용빈의 출발과 혁명적 낭만 거듭된 불행에도 용빈의 시선은 집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약국이 아들 처럼 여기며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할 만큼 그는 이지적이고 사려 깊다.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교편을 잡은 용빈은 집안의 비극을 그저 운명 탓으로 돌리기보다 제 힘으로 감당하려 한다. 그러나 홍섭의 배신 앞에서는 그런 용빈도 크계 흔들리고. 절망의 끝에 선 듯하다. 평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던 그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예배당을 찾는다. 그렇지만 그 슬픔이 깊어 신앙과 구원의 언어도 힘을 잃는다. 홍섭과 결별한 뒤 용빈은 강극을 만나 면서 집안의 몰락을 넘어 조선의 독립운동에 눈을 돌린다.

혁명은 로맨티시스트가 이룩하는 겁니다. (ᆢ) 로맨티시스트는 종국에 가서 패자가 됩니다. 그러나 로맨티시스트는 또 일어나죠. 어떤 세대의 가름길에서.
ㅡ<김약국의 딸들>다산책방, 475쪽

강극의 이 말은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혁명적 낭만의 역설을 서늘하게 전한다. 혁명은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꾸는 데서 비롯되는지 도 모른다. 일제 식민 치하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강극의 결연한 의지가 이 대목을 관통한다. 막내 용혜를 데리고 서울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용빈에게도 그런 로맨티시스트의 기질이 느껴진다. 용빈의 서울행은 몰락한 집안을 외면하고 물러서기보다, 남은 삶을 끌어안고 앞날로 나아가려는 결단에 가깝다. 마지막 장의 소제목이 <출발>인 점도 그래서 인상 깊다. 용숙,용란. 용옥의 삶이 상처와 파탄을 겪는 동안, 용빈은 배움과 사유를 바탕으로 절망에 주저앉지 않고 다음 삶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김약국의 딸들>은 일제 강점기의 궁핍과 근대화의 물결이 한꺼번에 밀려 오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무렵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오래된 관습과 운명관에 얽매여 있었지만, 한편으론 돈과 교육, 새로운 가치관이 넓은 질서를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박경리는 한 집안의 몰락을 그리면서도 그 비극을 저주로만 읽지 않는다. 딸들은 각자의 욕망과 선택을 안고 척박한 시대를 건넌다. 어떤 삶은 스러지고, 어떤 삶은 상처를 안은 채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

마지막 문장, "봄은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하다"에는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모두에게 아직 매서운 시간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 서려 있다. 통영의 쪽빛 바다는 몰락 너머로 푸르고 시린 빛을 드리우고, 스러진 목숨과 살아남은 시간, 막 길을 나서는 사람들까지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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