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시 외 1편
이승훈
마리골드 피자마자 연애는 시작했다
벌새처럼 기교부리니 영정통*이 빛났다
춤사위 그대 앞에서 해 가는 줄 모른다
화려한 날들은 애벌레로 압축되고
눈알 문(眼紋) 위장술 내가 먼저 놀랐다
막 내린 깊은 고랑을 낮은 언어로 기어간다
오색 빛 못 그린 원죄 영어(囹圄)의 몸으로
번데기 속 혼령은 먹먹한 껍질 뒤집을까.
탈고(脫稿) 날 다시 그리는데 세상 밖은 추운 겨울
*영정통: 익산역 앞 거리 이름
영춘화 피던 날
자긋자긋 매달린 내 삶의 고드름
새벽길에 정화수 떠 놓고 빌고 빌더니
맹추위 치근대던 아침 잠깐잠깐 고개 들어
햇살 달라고 몸을 틀어 보채더니
기침도 안 했는데 단장하고 나와서
영등날 오기도 전에 편지 한 장 전한다
궁상맞은 시편 속은 누가 볼까 두려워
비꽃* 속 숨어도 보고 하늘빛 온기로 스미자
떠났던 기억은 새롭고 젖은 몸이 몰래 나선다
*비꽃: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성기게 떨어지는 빗방울
이승훈 시인
이승훈 시인
1960년 군산 출생. 2022년 《시조시학》 여름호 등단. 시집 『그대 있는 곳까지』 외 2, 칼럼집 2권 등. 마한문학상, 전북문학상 수상, 익산문협 이사
[출처] [신작특집] <박각시><영춘화 피던 날> - 이승훈 ♣ 웹진 《문예마루》 제9호(2026. 7)|작성자 문예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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