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서귀포문학작품 전국공모전 / 이경옥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19|조회수34 목록 댓글 0

희구[希求] / 이경옥

 

물영아리*를 걸으며

너는 자꾸 물항아리라고 말했어

 

덜꿩나무 붉은 열매

가넷 반지처럼 검지에 올리며

네가 찰박거리는 물장구 소리로

옛날을 데려오고

 

살면서 까끌거리는 날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목덜미를 뒤집어

머리카락 찾아내는 일 많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잔잔하다고 말했지

수망리에서 정말 다 괜찮아졌다니까

 

마치 커다란 싱잉볼 안에 들어온 것 같았어

물영아리 잣성을 따라 걷다보면

물과 영아리가 너이고 나였으면 좋겠는데

신령한 산에 접두어로 앉은 게

나일까 너일까

 

영아리 물영아리 자꾸만 입속에서 굴리다 보면

단물 마신 것처럼 입안에 단내가 퍼지고

신령한 산엔 물, 물 곁에 신령한 산

 

그래, 아무렴 어떠리

예순에도 우린 제주 삼다수를 마실거고

삼나무숲을 좋아할거야

 

그럼 그럼 일흔에도 여기 물영아리 오름에서

조금은 새는 발음으로 물항아리라고 말하렴

 

너는 물항아리에서 나는 물영아리에서

물방울 몇 개를 골라 저글링을 하자꾸나

 

백발 산신령께서 물방울을 엮어

우리의 목에 걸어 줄 때까지

 

* 물영아리(水靈山)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화구호를 가진 오름이다. 영아리는 신 령스런 산이란 뜻이다. 앞에 ‘물’이란 접두어가 붙은 것은 분화구에 물이 고인 습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제9회 서귀포문학작품 공모전 당선작 모음집

2025년 서귀포문학작품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을 PDF로 변환해서 올립니다. 참고 바랍니다. 제9회 서귀포문학작품공모전수상작모음집.pdf8.61MB 

cafe.daum.net

 

 

 

[당선소감]

 

서귀포의 바람은 언제나 시의 첫 행처럼 다가옵니다. 그 바람 속에는 파도의 숨결과 오름의 그림자, 귤꽃 향기와 돌담의 오래 된 숨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물영아리오름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의 웃음을 시로 옮기려 애쓴 시간이 이렇게 ‘서귀포 문학상’으로 귀결되어 기쁩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나’를 찾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맞벌이로 정신없는 마흔 살을 살아내고 소진된 몸과 마음이 마구 흔들렸습니다. 흔들리는 순간에 ‘시’가 내게로 왔습니다.

 

어제 속으로 흩어진 얼굴들, 다정했던 시간, 그리움과 침묵의 자리를 메우려는 마음을 옮겨 적으며 잃었던 생기를 찾았습니다. 때로는 그 마음이 너무 투명하고, 또 너무 어두워 단어 하나 적는 일이 두려웠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주도의 비 자림과 바다가 생각났습니다. 섬에 대한 동경, 제주도는 뭍에 사 는 이들에겐 동경의 땅입니다.

 

가끔 짬을 내 제주도 올레길을 발바닥 물집이 잡히도록 걷기도했습니다. 걷다 보면 화산석 돌담 옆에 “누구신디 맛허게 먹어 사.”라는 갈겨 쓴 글씨와 함께 담겨 있는 귤 상자에 마음이 흥건 히 차올랐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 다시 살아내는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당선 소식을 받고 한동안 멍했습니다. 너무 바라던 일인데 믿기지 않아 기쁨의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시를 읽고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상은 제게 “계속 써도 된다.”라는 토닥임입니다.

 

시를 통해 조금 더 깊이 듣고, 조금 더 낮은 자리를 바라보며 시 가 삶이 되는, 삶이 시가 되는 길로 걸어가겠습니다.

 

‘시’를 쓰는 일은 혼자만의 시간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걸 깊이 새기겠습니다.

 

서쪽 바닷길로 돌아오는 배들이 정박하는 곳, 서귀포라는 땅이 내게 준 맑은 울림을 오래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축하 인사에 며칠을 구름 위에서 걸어 다녔습니다. 두 분의 존 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부모님, 묵묵히 응원해 준 남편과 딸들, 물 영아리 축제에 초대해 준 김선화 시인님, 여행에 동행해 준 친구 미숙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축하를 아끼지 않고 넘치 게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제9회 서귀포 문학작품 전국공모 시 부문에는 총 605편의 시편들이 응모를 해 성황을 이뤘다. 이러한 활기는 전통적인 장르인 시에 대한 관심을 증빙한 것이라고 하겠다. 평이한 수준의 작품도 없지는 않았지만, 시 편마다 개성적인 음성이 가득 실려 있었다. 특히 서귀포 지역 천혜의 자연환경과 생활, 풍습 등을 다룬 작품들이 많아 서귀포에 관한 문학적 재발견이라 평가할 만했다.

 

심사위원들은 수일한 작품이라고 판단한 시편을 각각 추천했고, 토론과 고심 끝에 시 ‘희구(希求)’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에 합의했다. 이 시는 물영아리를 찾아간 경험을 아주 서정적인 어조로 노래한다. 시적 화자는 ‘너’와 함께 물영아리에 가는데 ‘너’는 물영아리를 물항아리라 고 발음한다. ‘너’가 물항아리라고 이름하는 이 시적 모티프는 시종 시 전반에 걸쳐 작용한다. 물영아리든 물항아리든 어떤 잔잔하게 물이 괸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고, 그 괴어 있는 공간은 싱잉볼이라는 악기의 원형적(圓形的)인 공명에 빗대어 연결되고, 시적 화자와 ‘너’와의오랜 인연과 정감의 교류로 이어지고, 결국 물과 산을 함께 품고 있는 물 영아리의 지리적 특성에 귀결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사유와 느 낌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이 시를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된 연유에는 함께 응모한 작품들을 함께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제주도 일원의 전통 무속 의례인 굿의 장대한 서사를 풀어낸 시 ‘제주 큰굿’에서 보여주는 시적 역량에도 두터운 신뢰를 갖게 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서귀포를 노래한 신작시의 탄생을 우리가 고대하는 까닭은 한 편의 시가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사유를 통해 그 시적 대상을, 서귀포를 빼어나 게 재해석한다는 점에 있다. 서귀포 문학작품 전국공모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고, 더 많은 분들의 응모가 있기를 바란다. 수상하신 분께는 축하의 인사를, 응모하신 모든 분들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심사위원 : 김원욱, 문태준

[출처] 제9회 서귀포문학작품 전국공모전 / 이경옥|작성자 ksujin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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