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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소개

망각은 없다/진은영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21|조회수13 목록 댓글 0
망각은 없다


진은영


세상에서 나를 제일 증오하던 이가 죽었다
그는 다시 태어나 내 몸이 되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이가 죽어
그는 강이 되었다

그는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부드러운 머리결이
모든 계절에 과일과 별의 향기를 뿌리며 네 개의 강으로 지나갔다

어린 시절 읽었던 천일야화 속에서 어느 왕국의 사람들은
모두 물고기가 되었다
그들은 물을 따라 허락 없이 흘러 다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강을 제일 증오하던 왕이 있었다
그는 죽었다
태어나 정치가가 되었다

세상에서 강을 제일 증오하던 왕이 있었다
나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
그를 정치가로 만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

거기는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꿀, 나의 담즙, 나의 거기

어린 시절 천일야화 속에서 어느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물고기가 되었다 강은 죽었다가

곧 태어나 내 몸이 되어 올 것이다
신비한 질병과 미지의 악취를 릴레이 주자의 날쌘 팔다리처럼 달고서

어떤 시절에 어느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물고기였다 한때 그들은 제 생각을 따라
텅 빈 광장으로 물처럼 흘러갔다


_시집 『훔쳐가는 노래』 (창비, 2012)


_진은영 시인
2000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김달진문학상 젊은 시인상, 천상병 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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