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 출처: 박철 시집 『영진 설비 돈 갖다 주기
_박철 시인
1987년 《창작과 비평》시 등단. 1997년 《현대문학》 소설가 등단.
시직≪김포행 막차≫,≪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영진설비 돈 갖다주기≫,≪험준한 사랑≫,≪사랑을 쓰다》《대지의 있는 힘》등
제16회 이육사문학상, 제18회노작문학상, 제12회 백석 문학상, 제11회 천상병 시상 수상, 단국문학상, 제6회 박인환상 수상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