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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소개

수박 병동 / 김분홍 ​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17|조회수14 목록 댓글 0
수박 병동


김분홍



수박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수박에는 트랙이 있다
검은 트랙이 수박을 끌고 굴러다닌다

203호가 침대 위에서 굴러다닌다
503호는 침대에 묶여 구르지 못한다
엄마 이야기다
평생 수박밭에서 수박만 딴
엄마의 삶은 눕고 나서야 수평이 되었다 엄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링거 줄에 매달려 익어가는 저 수박은 누구의 머리통일까?

엄마는 줄기에서 수박을 잘 땄다
수박은 제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굴러다녔다
그래서 엄마는 수박이 깨지지 않도록 짚 위에 올려놓곤 했다
그렇게 올려놓은
짚 위의 수박이 불안하다
집을 나와서야 대접을 받는다며
좋아하던 엄마

간병인은 껍질까지 붉어진 수박을 깨뜨리지 않고 간병할 수 있을까

검푸른 트랙은
당도 과숙이다
눈길만 스쳐도 금이 갔다

담도 크지
담도에 붙어 엄마를 파먹는 종양
엄마의 담도에서 당도가 역류한다

과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수박 같은 엄마 이야기가 503호에서 익어간다



_시집 『가족이라는 기후』 (상상인, 2025)


_김분홍 시인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20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가족이라는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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