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조시단의 도약을 바라면서
이승하
시조시인들 모임에 가면 ‘실패한 시조시인이어서 한이 좀 있습니다.’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한다. 대학 3학년 때 중앙일보에 「소록도」란 시조를 보냈더니 게재가 되었다.
녹동鹿洞 맑은 바닷물에
비춰 봐도 씻어 봐도
봄바람 다시 불면
더 깊은 가슴앓이
수척한 네 얼굴에도
분홍 벚꽃 피어나
부여잡고 울었지
너를 안고 잠이 들면
꿈속에도 향수鄕愁인가
뭍으로만 손 뻗치고
누군들 안 그리우랴
파도치는 한 생애여
가꿔 온 삶의 텃밭
소망이 물오르듯
풀잎처럼 일어서서
언젠가는 돌아가리
내 작은 이승의 터전
마련되는 날이 오면
지금 보니 참 엉성한 작품이다. 이근배 선생님께서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삶의 현장을 시인의 가슴으로 담아서 의지와 희망을 내뿜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작품에서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이 시의 좋은 점이다.”라는 과분한 선후평을 얹어 주셨지만 월 장원에 뽑히지 못했고 당연히 ‘중앙 시조백일장’과는 무관하였다. 그해 12월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도시의 해빙기」 외 몇 편의 시조를 투고했는데 최종심에서 당선작 「한강에서 만난 다섯 개의 바람」에 밀려 미역국을 먹었다. 1984년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단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시조 쓰기는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시조를 꾸준히 읽으면서 평론으로 응원을 했다. 그래서 23편의 평론을 모아 2015년에 『향일성의 시조시학』이라는 시조평론집을, 20편의 평론을 모아 2020년에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시조평론집을 냈다. 나의 시조 짝사랑의 역사는 이렇게 길다.
한국 시조시단이 요즈음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태극 시인이 1960년에 창간한 『시조문학』이 64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여러 시조잡지가 명멸해 갔는데 지금 시조시단에서는 올해 겨을호로 89호를 낸 『시조시학』, 67호를 낸 『시조21』, 41호를 낸 『정형시학』, 34호를 낸 『좋은 시조』가 4파전의 형국으로 할거하고 있다. 이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가히』가 제4집을 냈다. 시조시인에게 주는 문학상은 시만큼 많지는 않지만 1,000만원이 넘는 상이 10개는 되는 것 같다. 이런 외적인 성장은 시조시단에 활성화를 가져다준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조시단의 문을 두드리는 이는 아직도 대체로 50〜60대이다. 2023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가 10명인데 이 가운데 출생연도를 밝히지 않은 1명을 제외한 9명 중 7명이 1960년대생이고 1996년생이 1명, 2001년생이 1명이다.
올해 2024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도 10명인데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봤겠지만 당선자의 연령대가 아주 높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경남신문: 「사북」(장경미, 1970년생), 임성구ㆍ신상조 심사
경상일보: 「채렴을 읽다」(문윤정, ?), 유재영 심사
국제신문: 「휠체어의 반경」(조은정, 1969년생), 정용국ㆍ이광 심사
농민신문: 「이동평균선」(민진혜, 1980년생), 강현덕ㆍ이송희 심사
동아일보: 「동물성 바다」(고은산, 1967년생), 이근배ㆍ이우걸 심사
매일신문: 「무겁고 가벼운」(장인회, 1959년생), 박기섭 심사
부산일보: 「다마스커스 칼」(이혜숙, 1973년생), 이우걸 심사
서울신문: 「어시장을 펼치다」(강성재, 1961년생), 이근배ㆍ서연정 심사
조선일보: 「스마일 점퍼」(조우리, 1983년생), 정수자 심사
한라일보: 「민달팽이 길」(천윤우, 1960년생), 고정국ㆍ한희정 심사
1950년대생 1명, 1960년대생 4명, 1970년대생 2명, 1980년대생 2명이다. 60대 중반인 분이 한 명 등단했고 제일 젊은 시인이 40대 초반이다. 즉, 아직도 20〜30대 젊은 문청이 시조시단의 문을 노크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것 같다. 희한하게도 예순을 넘긴 1961년생이 2023년에 3명이나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시조21』 가을호로 등단한 2인과 『시조시학』 여름호로 등단한 3인도 출생연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대체로 40〜60대 시인이라는 느낌을 준다. 우리 시단에 젊은 피가 수혈되기를 바라는 것은 시조 시단이 세대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바람 때문이 아니다. 청년, 중년, 장년, 노년층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시조 시단은 장년과 노년층 중심이기에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202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을 살펴보고자 한다.
봄날 햇살 아래 눈물처럼 쏟은 말들,
천천히 번져가다 물비늘처럼 글썽인다.
희미한 표정만 남긴 채 수척해진 문장들.
수런대던 그때로 하염없이 돌아가서
두어 대 솟은 꽃순 차랑차랑 만난다면,
밝고도 환한 눈길로 글을 다시 쓰리라.
흰 빛깔 떨군 꽃이 하늘로 돌아간 후,
뜨락에 젖어 있던 별빛 같은 글자들이
눈부신 백련의 말씀으로 살아나던 그 순간.
—유진수, 「백련의 기억」 전문
심사위원 정수자 시인은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심사평을 썼다. 칭찬만 한 것이 아니라 적절히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명징한 이미지와 묘사의 정제가 오롯하다. 참신한 비유들은 ‘백련’이라는 낯익은 대상에도 단아한 새로움을 발생시킨다. “희미한 표정만 남긴 채 수척해진 문장들”에 아취와 생기를 부여하는 힘이다. 정형의 전제인 구(句)와 장(章)을 네 마디 율로 아우르는 정공법에 충실한 운용임에도 환한 생기와 여운을 일으킨다. ‘꽃순’에서 ‘차랑차랑’ 나아가는 노래의 감응으로 ‘백련’의 눈부심을 더 오붓이 열었다. 다만 너무 익은 서정의 느낌은 오늘의 감각으로 쇄신해가길, 바람을 덧붙인다.
백련은 백목련의 준말이다. 꽃의 피고 짐에 생명체의 신비와 우주의 섭리를 곁들여 묘사하는 것은 지금까지 수많은 시인이 해온 전통적인 기법이다. 심사위원은 “너무 익은 서정”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너무 낯익은, 아니 진부한 서정이다. 소재도 주제도 표현도 정공법을 지키고 있어서 동세대,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현대시조의 묘미를 전해줄 수 있을지, 공연히 걱정된다. 하지만 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시조 시단에 큰 시인으로 우뚝 설지도 모른다. 이제 나이 27세밖에 안 됐으니 말이다. 202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는 2001년생인데 당선작은 이런 작품이다.
푸른 비단 유리알 쌓아 올린 서늘함
그보다도 가벼이 차오르는 창공에
먹물이 가로지르고 또다시 퍼져간다
우짖는 새들은 여린 깃을 뽑아낸다
발톱이 달라붙고 날개가 물들어도
부리는 홀로 남은 채 울음을 쪼아먹는다
가지마다 걸린 것은 갇혀버린 울음소리
검고 푸른 공백마다 삶 하나가 들어 있다
껍질은 투명하기에 깨어질 수 없는가
바람은 한 점 없고 공기는 침묵한다
비명의 무게만이 잎이 되어 매달릴 때
가지는 몸을 떨었다 오지 않는 계절처럼
—백진주, 「잔가지를 잘라내자 지저귐이 자라났다」 전문
심사위원 이달균과 손증호 시인은 이 실험적인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우선 제목부터가 신선하다. 안정감은 다소 떨어지나 순간 포착의 시선이 좋고, 자신만의 시어로 구와 구를 견지하려는 자세에 믿음이 간다. 현대시조 창작에 있어 신선미는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미덕이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이 시조가 신선미가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만의 성채에 들어앉아 타인과의 소통을 무시하면 어떻게 하나, 이 또한 걱정된다. 이미지들이 현란하게 직조되어 있지만 그렇게 그린 그림이 추상화에 가깝기에 분명히 고개를 갸웃거리다 돌아서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다만 신세대적인 신선한 감수성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작년 모 문예지의 시조 등단작을 보자. 등단작 3편 중 하나다.
가얏고 열두 줄에 한 시름 풀어두고
아득한 하늘 소리 두 손 끝에 불러오면
고전의 서책을 나와 날아오른 학 한 마리
—「아, 우륵」 전문
우륵은 신라 시대의 음악가로 대가야국 가실왕의 뜻을 받들어 가야금을 만들었고, 이 악기의 연주곡으로 열두 곡을 지었다고 한다. 시인은 6세기 때의 인물을 소환하여 고색창연한 그림을 시의 화폭에다 그렸다. 작품 자체야 시조의 자수를 지켜가면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지만 인공지능과 쳇gpt의 시대인데 이런 시조가 과연 현대사회의 변화무쌍함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다른 이의 등단작을 보자.
장독대만 남겨두고
박새, 딱새 돌아간 뒤
장침을 내리꽂듯
떨리는 햇살 아래
성급한 모란 한 송이,
소리 없이 지고 있다
—「한낮」 전문
지금 이 시대에 장독대가 있는 몇 집이나 될까? 이 시조를 읽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알아차릴 독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원래 등단작이란 그 작품 자체의 우수성보다는 장차 시조시단에서 자신의 영토를 개척하고 확보하기를 바라기에 ‘新人’의 관을 씌워주는 것일 터이다. 다른 시조전문지 지면을 통해 등단한 또 한 명 신인의 작품을 보자.
1. 경포대
구정봉 베틀굴 속 여인들의 눈물인가
천년을 굽이치는 그 폭포수 가락 골라
물레에 달빛을 걸어 무명베 짜고 있다
2. 백운동 원림
옥판동 동박새가 물고 온 찻잎인가
한 잎 두 잎 떠가는 유상곡수 물길에서
또르르, 찻물 따르는 그 소리가 들린다
—「달의 기슭을 걷다」 전문
이 시조도 정통파 투수의 자세로 공을 던진다고 할까, 시조 작법을 제대로 배운 이의 작품이다. 짜임새도 완벽하다. 경포대 월출산에 있는 마애불 삼층석탑 근처에 있는 구정봉 베틀굴에 얽힌 설화가 잘 형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물레와 무명베가 환기하는 시간과 공간을 지금 이 시대의 독자들이 공감하기란 쉽지 않을 터이다. “천관녀의 눈썹에/ 흰 이슬이 내리자/ 연대봉 능선에/ 피어오른 하얀 연기/ 억새밭 휘돌아간다/ 다도해 흰 파도가”(「천관산」) 같은 시조도 함께 게재된 등단작이다. 신라 진평왕 때 화랑 김유신을 사모했던 기생이 천관녀 아닌가.
물론 당선자는 이런 고풍스런 시조만 쓰지는 않을 테지만 3장 6구라는 형식 자체를 답답해하는 독자들이 많은데 시조의 내용도 이처럼 회고지정에 푹 젖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들을 뽑아준 문예지와 심사위원에 불만이 있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 내용이 전통에 너무 집착하면 독자들이 시조를 떠나버린다. 시조야말로 일신우일신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중 제일 젊은 조우리 씨의 작품을 보자.
눈꺼풀 위로 쌓인 생애의 나지막이
그림자 당기면서 저 혼자 저무는 때
대머리 독수리처럼 감독만이 너머였다
녹말가루 풀어지듯 온몸을 치울 때까지
일 년에 쓰는 시가 몇 편이 되겠는가
평생을 바치는 것은 무엇쯤이 되던가
제 높이 확인하고 저려오는 가슴처럼
꽃봉오리 깊은 곳에 진심이 울었겠지
끝없이 닿는 중인데 그 끝 간 데 넘는 사람
죽었던 문장마저 혀끝으로 몰고 가서
흥건히 마른 허공 핥아 보던 나무의 피
돌이켜 떨어지는 순간 칸타빌레 붉디붉다
—「스마일 점퍼」 전문
한국 높이뛰기 국가대표 선수로서 많은 메달을 받은 우상혁 선수를 소재로 하여 쓴 작품이다. 우상혁 선수는 미소 띤 얼굴을 자주 보여주어 ‘스마일 점퍼’라는 별명을 얻었다. 높이뛰기 선수가 추구하는 높이만큼 시조의 깊이를 달성하고 싶은 의욕이 담겨 있는 수작이다. 그런데 “생애의 나지막” “녹말가루 풀어지듯” “평생을 바치는 것” “저려오는 가슴” “죽었던 문장마저” 등 기시감이 느껴지는 표현이 대다수이다. 전체적으로 노련하게 전개되지만 낡은 어법, 무딘 상상력이라 예년의 작품보다 낫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첫째 수 종장은 내용이 별개인데 이와 같이 연관 없이 쓰면 안 된다. 그리고 대머리독수리가 하나의 명사이므로 “대머리독수처럼”이라고 써야 맞다. 그럼 3-5-4-3이 아니라 8-4-4가 된다.
스마트폰 개발 속도를 보면 자고 나면 새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쓴 부분이 5%를 점하고 있는 소설이 이번에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시조가 ‘어즈버’ 수준이면 곤란하다. 그리고 지나친 실험정신은 시조로 볼 수 없는 사설시조와 엇시조를 양산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논하고 싶다.
드론 하나가 한 분대의 역할을 하는 현대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추녀 끝을 막연히 보고 있어선 안 된다. 이 글을 쓴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우리 시조 시단이 날로 발전하여 외국에서도 충분히 인정, 노벨문학상 최초의 국내 수상자가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땅의 시조시단에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처] 한국 시조시단이 도약하기를 바랍니다|작성자 이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