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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평론

현실을 직시하는 자의 예리한 눈과 예민한 귀(이광 시조론)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13|조회수52 목록 댓글 0

현실을 직시하는 자의 예리한 눈과 예민한 귀

이승하

 

이광 시조시인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저에게 연락을 주시어 다섯 번째로 내는 시조집의 해설을 부탁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사실 ‘시조’ 장르에 맺힌 한이 있습니다.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투고했는데 최종심에서 차점자로 떨어졌습니다. 그해에 중앙일보에 시조가 실리기도 했으므로 계속 썼더라면 시조로 등단해 시조집도 몇 권 냈을 겁니다. 1984년에 중앙일보에 시가 당선되고 그해 매일신문에 소설이 최종심에 오르자 시와 소설 쓰기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조와는 멀어졌지만 2015년과 2020년에 시조 평론만 쓴 문학평론집을 냈으니 관심의 불씨를 계속 키우고 있었던 셈입니다.

두 번째 평론집에 부산에서 나오는 문학인길벗 모임의 무크지에 실린 선생님의 시조 「문 닫는 거리」에 대해 언급했었지요.

 

딸아이 좋아하는 양념치킨 시키려고

모처럼 해본 전화 그게 또 결번이네

재개발 철거지 부근 상갓집 같은 상가

 

장애 판정 받는 이후 보상금 털어넣어

권리금 주고 얻은 학교 앞 문방구는

학생 수 부쩍 줄더니 내놓아도 안 나가고

 

골목길 문짝마다 바람만 삐걱댈 뿐

막바지 세든 사람 새 쫓듯 몰아낸 집

죗값은 달게 받겠다 벽에 새긴 주홍 글씨

—「문 닫는 거리」 전문

도시 한쪽이 재개발이 되면 그 동네 사람들의 부익부빈익빈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치킨집이 망한 것은 남의 얘기지만 가운데 수(首)는 화자 자신의 얘기입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확실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화자는 노동자로서 장애 판정을 받고 보상금이 나왔으니 산업재해를 입은 것이 아닐까요? 보상금을 털어넣어 문방구점을 사 가게 문을 열었는데 이게 그만 악수를 놓은 것입니다. 학생 수가 줄어 문방구점이 영 안 되고 내놓아도 나가지 않습니다. 골목길 문짝들이 바람에 삐걱대는 재개발 예정지역의 을씨년스런 풍경이 너무나 잘 그려진 시조입니다. 이런 사실주의적인 시조는 좀처럼 보기 힘든데 부산에서 나오는 무크지에 실려 있는 걸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약력을 찾아보니 선생님은 대학 국문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 50줄에 막 접어든 2007년에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한 것이었습니다. 2022년, 네 번째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를 냈을 때 부산국제신문의 책 칼럼니스트 박현주 기자와 인터뷰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런 얘기를 하셨지요.

 

8년 만에 회사를 나와 사업을 몇 년간 하다가 IMF 영향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막노동 일을 하면서 마루 시공을 배웠어요. 기능이 있었던 터라 후에 노후주택 재건사업현장에서 일도 했습니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낡은 집에서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들과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겪는 시련은 별 것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삶이라는 큰 운명의 흐름이 무언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몸으로 일하는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서 순수함, 성실성을 보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는데, 그 경험이 시조를 쓰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이광 선생님 시조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책상머리에서 쓸지라도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의 현장에 가 있었고, 그곳에서 시의 소재를 많이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현대시가 자기 고백 유의 음풍농월과 횡설수설을 일삼을 때 선생님께서는 인간과의 유대, 사회의식, 실천하는 삶, 현장의 목소리 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고 있었습니다. 2023년 《열린시학》 봄호에서 돈 타령을 봤는데, 이번 시조집에도 실려 있습니다.

 

1

돈이면 다 통한단 그딴 말 곧이들어

머리맡 책도 덮고 가슴에 둔 붓도 꺾고

하늘을 우러러보던 눈길마저 거두었다

 

한때는 정의롭게 잔을 높이 들었건만

시대의 호명 앞에 못 들은 척 외면하고

오로지 돈 돈 돈 하며 동동거린 날 좀 보소

 

부지런 떨었지만 둘러보니 긴 한숨만

세상이 베푼 것은 벼랑 같은 생의 단면

손에 쥔 부도난 어음 조각조각 찢던 그날

 

공사장 한구석에 삽질하던 내가 있네

빚더미에 몰린 구렁 견디니까 물러가고

뒤늦게 고개를 들어 두 눈 가득 담은 하늘

 

2

허욕에 얽매인 몸 꼴도 보기 싫었으리

내가 미워 떠난 이후 꿈에서나 접한 소식

젊은 날 풋풋했던 모습이 어디 숨어 지냈는가

 

이제 그만 돌아오게 말동무 되어주게

스스로 북돋우고 기꺼이 꿈을 좇던

정열의 로맨티스트여 부활하라, 내 안에

—「젊은 날의 나에게」 전문

 

이 시조를 해설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조도 이처럼 현실을 다루어야 한다. 이 땅에서 씌어지는 시조의 80〜90%가 자연을 다루고 있는데 시조시인의 80〜90%가 도시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도시가 공간적 배경이 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다. 시조가 음풍농월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독자들이 외면할 것이다.”라고요. 요즈음 시조 전문 문예지가 매 계절 열 종은 족히 나오고 있는데 각박한 현실 상황을 다룬 작품은 잘 안 보이고 아직도 한가롭게 계절 타령을 하고 유년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작품이 태반입니다. 이처럼 시조는 현실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광 선생님은 자본주의하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을 추적했습니다. 이상을 버리고 현실에 충실히 적응해 살겠다고 “오로지 돈 돈 돈 하며 동동거린” 나날이었으면 한 재산 모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손에 쥔 부도난 어음 조각조각 찢던 그날”이었으니 말짱 도루묵이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결국 공사장 한구석에서 삽질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IMF 때 화이트칼라가 블루칼라가 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요. 그래서 화자는 다시금 이상을 추구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몸은 늙었고 마음은 지쳤습니다. “스스로 북돋우고 기꺼이 꿈을 좇던/ 정열의 로맨티스트여 부활하라, 내 안에” 하고 부르짖어 보지만 이것은 한낱 소망일 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귀와 연관된 작품을 여러 편 싣는다. 그동안 보기 바빠 듣기에 소홀했음을 돌이킨다. 정성을 쏟으려면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시인은 시각적 이미지에 집중하는데 선생님은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혼화, 즉 공감각적 이미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잘 뚫린

귀가 있어

주변 사정 다 듣는다

 

꿰매야 될 일이 있고

시쳐야 할 때가 있다

 

가난한 삶을 받들어

실을 꿰던

그 손길

—「바늘」 전문

 

바늘귀는 바늘의 위쪽에 뚫린 실을 꿰는 구멍을 가리키지요. 귀가 밝아 주변 이야기를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데 듣고도 모른 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시조의 첫 번째 수는 귀를, 두 번째 수는 바늘을, 세 번째 수는 바늘귀를 다루고 있습니다. 針孔, 針線 같은 한자어를 거의 쓰지 않은 시대가 되었는데 바늘과 바늘귀, 귀의 밝음을 교묘하게 연결시킨 이 시조를 읽고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애초에 열기 위해 달아둔 문 아니던가

걸쇠나 자물쇠로 틀어막고 있는 동안

문설주 틈에 갇힌 채 긴 침묵 감내한 귀

 

꾹 다문 문을 향해 바람이 거세진다

삐걱대는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듣다가 한 몸이 되어 제 울음 내뱉는 귀

—「돌쩌귀」 전문

 

돌쩌귀는 문짝을 닫고 여닫기 위한 쇠붙이로, 암수 두 개의 물건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이 시조에서 “긴 침묵 감내한 귀”와 “제 울음 내뱉는 귀”의 귀는 ‘ear’이 아니라 돌쩌귀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냥 ‘귀’로 했습니다. 귀[耳]의 의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 시조도 귀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리 와 저긴 아냐 한쪽으로 쏠려가고

성난 말 날뛸 때면 그 자리 휘돌았지

헛소문 쫓아 구르다 멎지 못한 내리막길

 

돌아보면 바퀴 자국 풀이 자라 덮여 있고

설운 소식 싣고 가다 또 한 짐 싣는 수레

어느덧 바람의 지청구 잠재울 줄 안다네

—「귓바퀴」 전문

 

이 시조도 귓바퀴라는 신체의 한쪽보다는 삶의 궤적, 혹은 인생행로를 염두에 두고 쓴 것입니다. 화자가 자기 인생을 생각해 보니 헛소문 쫓아 구르다 멎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황급히 걸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 제2수에서는 후회막급인 세월과 남은 생이나마 잘 가꿔가자는 다짐을 하는 것인데, 요컨대 바퀴를 잘 굴려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화자는 불혹과 지천명을 지나 이순에 이르렀고, 이순도 지나 고희를 향해 다가가는 인생의 구름[轉]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조도 있네요.

 

매사를 가늠하던 눈은 잠시 쉬게 하고

그대를 듣기 위해 문을 열고 기다린다

 

비로소 와 닿는 기척

가면 벗고 내민 얼굴

—「귀를 기울이다」 전문

 

늙으면 말을 줄이고 지갑을 자주 열라는 말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눈을 잠시 쉬게 하고 상대방의 말, 즉 목소리를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비로소 와 닿는 기척/ 가면 벗고 내민 얼굴”이니 제대로 소통이 되더라는 것이지요. 저도 앞으로는 잘난 체 떠들어대는 것은 자제하고 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수없이 부서지며

득음을 이룬 파도

 

바람의 세찬 변주

너름새로 화답한다

 

절창에 꼼짝도 않고

흠뻑 젖는 갯바위

—「귀명창」 전문

 

파도 소리, 바람 소리를 듣는 동안 귀명창이 된 바위가 있었군요. 갯바위처럼 귀를 열어두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선생님께서 세상을 향해 포용력을 갖게 되었음을 이 시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관조할 힘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요. 경험의 양을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익장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의 존재 이유를 논한 시조가 있군요.

 

나그네 생을 읊던 뻐꾸기도 떠나가고

한여름 더욱 달군 매미 소리 멈춘 요즘

지상은 노래를 잃고 밤을 맞아 적막하다

 

그 적막 한 귀퉁이 톱질하는 귀뚜라미

내던져 깨진 아픔 사금파리 반짝이듯

별들도 어둠 속에서 글썽이며 울고 있다

 

소리꾼 구음 같은 바람결이 푸는 속내

먼길을 오는 내내 저토록 흐느꼈나

막막한 무연고 설움 살붙인 양 거둔다

 

유리창 저 불빛은 소리죽여 우는 건가

두 눈에 고막 있어 돌아보며 듣는 사람

깊은 밤 세상의 기척 옮겨적는 시간이다

—「시인의 시간」 전문

뻐꾸기, 매미, 귀뚜라미는 모두 소리로 일가를 이룬 생명체입니다. 사람 중에는 소리꾼이 내는 口吟 혹은 口音이 제대로 내는 소리입니다. 시인은 입으로 말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음유시인이 많았지요. 그리고 상갓집에서 남을 대신해 우는 존재가 왕조 시대에는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곡비’ 같은 존재가 시인입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외로움과 그리움을 대신해서 노래하면서 울어주는 존재가 시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고서 쓴 시조가 「시인의 시간」 아닐까요. 아래 시조는 위정자들을 향한 강력한 비판의 어조를 띠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투명은 눈을 속여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소리마저 막아둔 채 훤하게 감춘 위험

조망을 살리는 동안 새들이 죽어간다

 

살의는 없었다고 외면하는 저 무표정

그 아래 숨탄것들 날개 꺾여 싸늘하다

석양은 고개 숙이고 땅을 덮는 어두움

 

소리 없는 부딪힘에 사람도 쓰러진다

나는 새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진 이들

저들만 서로 통하는 방음벽을 치고 산다

—「방음벽」 전문

 

“나는 새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진 이들”이 방음벽을 치고서 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례가 얼마나 많았던가요. “살의는 없었다고 외면하는 저 무표정”들을 보십시오. “그 아래 숨탄것들 날개 꺾여 싸늘하다”를 보니 부마사태가 떠오릅니다. 부산미대사관방화사건도. 시인이 부산사람이니 다 봤을 수도 있고, 그때 현장에 없었을지라도 많은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2026년부터는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승만의 해외 망명, 박정희의 암살,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의 투옥, 노무현의 자살, 김대중과 김영삼 아들의 투옥, 그리고 윤석렬의 재판……. 영광보다는 치욕의 정치사를 보여주었는데 선생님의 날카로운 정치의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토하게 합니다.

 

참보다 거짓 앞에 솔깃하게 열리는 귀

뒤따르던 그림자가 몸을 불려 앞장서고

밤새껏 돌아볼 줄 몰라 새날은 아직 멀다

—「밤은 변할 생각이 없다」 제3수

 

직접 누군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입에 올려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한국 현대사는 사실 피로 얼룩져 있었고, 이광 선생님은 그것을 이런 모순을 과감히 후려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지요. 밤이 가면 아침이 오는데 말입니다. 아래 시조는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평택 빵공장 여공 사망 사건을 다룬 게 아닌지요? 그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가장 노릇을 해왔다고 하지요.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는 기계에 몸이 끼었는데 배합통은 전신이 빠질 만큼 깊지 않았지만 몸이 기계에 끼인 탓에 상반신이 빨려 들어가서 그만…….

 

하루 또 하루가 힘 부친 길이었네

밤새운 야간근무 축 처진 새벽 시간

기계는 돌아야 하고 멈추어야 했던 꿈

 

생과 사 시소 위에 혼자 남아 기울던 몸

기다리는 엄마 곁을 너는 영영 갈 수 없네

 

아침에 끼니 삼던 빵

손이 가지 않는 날

—「붙이지 못한 제목」 전문

 

왜 제목을 ‘붙이지 못한 제목’이라고 했을까요? 유구무언?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사연이어서? 이 안타까운 사연을 많은 사람이 접했을 텐데, 시로 쓸 생각을 한 사람은 오직 이광 선생님 한 분이 아니었을까요. 아침에 빵도 먹을 수 없었고.

자, 이제 시조집의 제목이 된 시를 살펴볼까 합니다. 예순이면 이순[耳順]이니 귀가 순해지는 나이, 즉 세상의 이치를 저절로 알아듣게 되는 때를 이르는 것이겠지요.

 

마음 비우든지 마음 잘 달래든지

졸음처럼 밀려오던 허무는 잠재우고

조금씩 깨우치거나 뉘우치며 사는 거네

 

둥지에 깃든 새는 쉬이 울지 않는다네

주저앉은 자리에서 민들레 꽃피우고

자드락 등 굽은 소나무 길눈을 밝혀주네

 

살아온 날이 깔려 살아갈 길을 여네

돌아와 다시 서도 되돌릴 길은 없네

생이란 왕복의 여정

표는 오직 편도 한 장

—「예순 마을을 지나며」 전문

https://youtu.be/BpEvA-GmD-c?list=RDBpEvA-GmD-c

 

이 시조는 문성희가 곡을 붙이고 바리톤 양진원이 불러 유명해진 것으로 아는데, 시종 의미심장합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을 비우거나 잘 달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노욕이나 노탐이 더욱 심해집니다. 도량은 좁아져 타협하지 않은 이기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허무를 잠재우고, 조금씩 깨우치고 뉘우치면서 살자고 합니다. 새, 민들레, 소나무도 제 몫을 다하고 있는데 예순 마을을 지나는 인간이 욕심 덩어리가 되는 거지요. 생은 오직 편도 한 장뿐이라는 결구가 폐부를 찌릅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를 죽인 것인데 우리 인간은 그저 더 가지려고만 애를 쓰고 있지요. 「예순 마을의 어느 날」은 조바심내지 말고 여유를 갖자는 것이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지요.

선생님의 시조에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시인이 형상화되거나 그의 시가 인용되는 것으로 보아 어떤 시인을 선호하는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인물에 주목했습니다. 부산 동래 출신의 박차정은 일제강점기 때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아닙니까.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 등을 역임했고, 근우회, 의열단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었지요. 동래여고의 전신인 일신여학교의 교지인 《일신》 제2집에 발표한 「철야」라는 소설은 본인의 애국심을 여실히 표현하여 호평을 받았지요. 1939년 중국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이때의 후유증으로 1944년 35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광복을 못 보고 죽은 그녀의 원통한 넋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프로야구 초창기에 롯데의 투수 최동원을 형상화한 「함 해보입시더」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부산 야구의 전설인 최동원 선수, 저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야구선수 중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부산 사나이 최동원입니다. 그다음이 박찬호고요.

수록된 모든 시조 중에 제가 가장 가슴 아파하며 읽은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습니다.

 

퀭한 눈 빠진 젖니 헝클어진 머리카락

난민촌 여섯 살 소녀 다친 동생 들쳐업고

맨발로 병원을 찾아 한 시간을 더 걸었다

 

피난 중 헤어진 아빠 하루빨리 보고 싶은

그 꿈이 포격으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가자의 사진 한 장에 두 손 모은 아침나절

 

전쟁을 끝낸다며 계속 잇는 전쟁통에

손녀 또래 아이들이 십자가 지고 간다

저 먼 곳 딴 세상이란 거리감이 사라진 날

—「멀리서 온 아픔」 전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어쩌면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 지방은 세계 전쟁의 화약고라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곳에 사는 아이들이 줄기차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죠. 여섯 살 소녀가 맨발을 한 채로 많이 다친 동생을 들쳐업고 병원을 찾아 1시간 넘게 헤매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과 사별이 매일 일어나는 곳, 사망자와 부상자가 군인보다 민간인이 훨씬 많은 곳이 바로 가자지구입니다.

시조집의 제5부에서는 사설시조(사실은 중장만 사설조로 썼기에 ‘엇시조’가 맞지만)를 10수 모았군요. 거의 전부 서사성이 강조된, 이야기조의 시조입니다. 이들 시조는 대개 유머가 있습니다. 혹은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혹시 풀과 옥시풀의 혼동이 재미있는 「풀에 대한 썩 좋지 않은 기억」이나 독감 백신 예방접종을 받으러 갔다가 경험한 황당한 일을 다룬 「뭐지, 이 기분은」은 실감 나는 서사가 있는 시조였습니다. ㆍ

「강씨 어록」은 강씨와 철근공 두혁 사이의 인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몸으로 때우고 사는 이들이 우정은 전우애와 다를 바 없군요. 「저 하늘」은 너무 일찍 세상을 버린 동생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저를 먹먹하게 했습니다. 「밥」은 가난과 허기의 역사 같습니다. 「어떤 빈자리」는 광안리 해변도로 편의점 있는 건물 앞에서 달고나를 팔던 할아버지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상한 이유로 장사를 못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생을 수거하다」는 폐지 줍는 노인의 팍팍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 엇시조의 특성은 진한 부산 사투리로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경북 김천이 고향인데, 경북의 내륙지방보다 경남의 해안지방 사투리가 더 진하고 투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김천사람하고 부산사람이 만나서 말다툼을 하면 초장에 김천사람이 KO패를 하겠습니다. 「빈털터리의 꿈」이나 「오가는 배」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부산사람 시인의 엇시조인데 제가 예시하면서 살펴보고 싶은 것은 ‘바라지’ 연구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우리말 중 하나입니다

 

대개 명사 뒤에 붙어 돌봐준다는 뜻이 있죠 차마 말은 못하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척 보고 알아서 해주는 게 바라지죠 또 바람벽에 난 작은 창을 말하기도 합니다 남향집도 해거름엔 어두워지기 마련인데 바라지창이 석양빛을 방안으로 불러들이지요 뒤에서 표 안 나게 집안을 보살피던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어렵던 시절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저에게 바라지가 되어준 이들입니다 사업을 벌였을 때 선뜻 돈을 빌려준 친구, 부도 맞고 다 털어먹자 빚을 탕감해 주기도 했죠 막일로 혹사시켜 망가진 몸 추스르고 망설이는 걸음으로 일거리 찾았을 때 잘 왔다며 손잡아준 선배도 있었지요 돌이켜보면 한 사람을 구해준 바라지였습니다 누군가 내미는 손 저도 잡고 싶습니다 조그만 힘이라도 되어줄지 모르니까요

 

바라지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한 말입니다

—「바라지」 전문

 

바라지의 사전적 의미 중 ‘일을 돌봐주는 일’은 ‘해산바라지’ 때 쓰고, ‘음식이나 옷을 대주는 일’은 ‘옥바라지’나 ‘자식바라지’ 때 쓰는 것이지요. ‘바람벽의 위쪽에 낸 작은 창’을 바라지라고도 합니다. 비슷한 말로 ‘도우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누구나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먼 이웃, 가까운 이웃의 도움을 받아 살가게 마련인데 우리는 그것을 망각할 때가 맞습니다. 받은 은혜를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내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친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어려웠을 때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나를 도와준 친구는 평생의 은인이 되는 거지요. 이런 미담이 지금은 많이 사라져버린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광 선생님의 이번 시조집을 죽 읽어보면서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미덕인 상부상조나 상호부조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하더라도 정을 나누며 살았던 산동네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아파트와 빌딩 사무실에서 살아가는 개인주의자들이라 인간성이 고갈되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부산 사나이인 이광 시조시인이 이제 다섯 번째 시집을 냈는데 다음 제6시조집에서는 부산의 이곳저곳을, 부산사람들의 이모저모를,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더욱 심도 있게 다루면 좋겠습니다. 최동원이 남긴 말 ‘마, 함 해보입시더’를 내심 외치면서 한 편 한 편 써나가면 멋진 제6시조집이 몇 년 뒤에는 또 탄생할 것입니다. 이번에 내는 제5시조집의 면면을 좀 더 세심히 살펴보지 못해 송구합니다. 제가 못한 것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아무튼 부산에 가면 자갈치시장의 회를 사주시겠지요? 돼지국밥이나 대구탕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롯데자이언츠는 언제 우승 함 해보노? 1984년과 1992년에 우승해보고 30년 넘게 우승 못해보고 있는데 너무한 거 아이가?

[출처] 현실을 직시하는 자의 예리한 눈과 예민한 귀(이광 시조론)|작성자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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