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한 연가에서 털털한 사설까지의 스펙트럼
—한분옥論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시조의 역사를 생각해본다. “청산의 눈 녹인 바람 건듯 불어 간 데 없다”로 시작하는 시조는 우탁(1263~1343)이 쓴 것이고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로 시작하는 시조는 이조년(1269~1343)이 쓴 것이다. 두 사람의 생몰연대로 보건대 시조는 13세기 말쯤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21세기이니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땅에서 생겨나 명멸해간 많은 시가 형식 중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시조밖에 없다. 시의 어느 형식이 파괴되지 않고 7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을 넘어 경악할 일이다. 시조의 면면한 생명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시조는 3장 6구의 기본 틀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닫힌 구조, 혹은 갇힌 형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자유시를 쓰는 시인들은 형식상의 제약이 있다면서 시조를 비판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리고 시조의 역사가 오래다는 이유로 고리타분하다거나 지나친 전통 추수追隨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시조는 견고한 형식이기 때문에 쓰기가 사실 쉽지 않다. 형식은 견고하게 짜여 있지만 내용이나 주제, 그리고 그려내는 세계는 결코 작지 않다. 닫힌 형식에 열려 있는 세계라고 할까, 이런 시조의 매력을 십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쓰고 있는 시인이 있으니 한분옥이다.
시인의 출생지는 경남 김해로서, 김해의 진영중학교와 진주여고를 졸업했다. 부산교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시인의 삶의 터전이 바뀐다. 1999년 12월 울산문인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시인으로서 울산의 시조를 지켜왔다고 할까, 울산의 시조시단을 지켜왔다고 할까, 출생지와는 상관없이 울산이 낳은 시인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당신은 ‘울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반구대 암각화? 방짜유기? 천전리 각석? 봄섬? 간절곶? 이와 같이 제2의 고향이 된 울산의 이곳저곳과 이모저모를 노래한 일련의 시조가 있다. (인용할 때, 각행이 떨어져 있는 경우도 이 평문에서는 다 붙임.)
까마득한 돌 속에서 비명소리 달려온다
돌도끼 날을 벼린 선사의 갈기를 잡고
장엄한 생사의 초침이 내 이마에 꽂힌다
―「반구대 암각화」전문
주지하다시피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 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 걸쳐 수백 년 동안 큰 바위에 그린 고래사냥 관련 그림이다. 단단한 돌연모를 사용해 쪼기, 갈기, 긋기 수법으로 제작했는데 시인은 제작 과정을 첫 번째 수 “까마득한 돌 속에서 비명소리 달려온다”와, 두 번째 수 “돌도끼 날을 벼린 선사의 갈기를 잡고”로 표현하였다. 그림에 잘 나타나 있지만, 작은 배 몇 척으로 고래를 잡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수렵행위였다. 하지만 이 일대의 주민들은 긴 세월 동안 고래를 잡으며 삶을 꾸려갔다. 그래서 “장엄한 생사의 초침이 내 이마에 꽂힌다”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날것의 욕망 끝에 부러진 칼날 끝에
울부짖는 피를 달래 잠재우는 여인 있다
아직도 수직인 바위, 손바닥엔 손금 있다
그날도 오늘처럼 숨 막히는 밤의 허리
온몸에 칼금 긋는 자홍빛 뒤척임에
자정도 물러서 버린 봄날이 있었던가
이제나 저제나 정 붙인 인연살이
제 몸을 퉁소 삼아 울어도 보고 싶다
애끓는 몸말에까지 그 지문이 남아 있다
―「여인의 시간」전문
이 작품은 부제가 ‘반구대 암각화’이다. 전자와 달리 반구대에 암각화를 그리는 과정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수많은 여인의 숙명적 삶에 대한 고찰이라고 할까, 운명론에 대해 서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암각화처럼 손바닥에 그려져 있는 것, 바로 운명이다. 그런데 그 손금이 말해주는 운명대로만 생이 전개될 턱이 없다. “이제나 저제나 정 붙인 인연살이”라는 시행을 보니 과거에는 많은 여성의 삶이 남성에 의해 좌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 몸을 퉁소 삼아 울어도 보고 싶다”는 것은 ‘여인의 시간’이 정한의 세월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울부짖는 피를 달래 잠재우는 여인”, “숨 막히는 밤의 허리”, “자홍빛 뒤척임”, “애끓는 몸말에까지 그 지문이 남아 있다”는 것 등을 보면 이 시조가 상당히 에로틱함을 알 수 있다. 영혼의 세계가 아니라 육체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무대는 실제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생존 현장이다. 화판이 거대한 바위요 붓이 돌인데 반구대 암각화는 몸이 몸과 만나 이룩한 거대한 예술세계다. 즉 수백, 수천 년 동안의 남녀관계, 아니, 남녀상열지사가 이 시조의 테마가 된다. 시인의 용감함, 혹은 대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 이제 울산 이야기는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이 시처럼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또 다른 시를 보자.
용포 대례복 벗고 그냥 저 궐문 밖
빛바랜 치마섶이리, 그대 앞에 꺾은 무릎
그제사 뜨겁게 운다 해도 하늘을 벤다 해도
기름을 부으리니, 타 붙는 그대 몸에
치닫는 오름 끝에 금팔찌를 벗어놓고
통곡을 땅에 묻고도 살을 지져 울지니
―「화인火印」전문
부제가 ‘선덕의 말’이니 이 작품은 선덕여왕에 대한 지귀의 그리움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신라의 청년 지귀가 선덕여왕을 어디선가 보고는 상사병에 걸려 다 죽게 되었다. 이 소문이 여왕의 귀에 들어갔을 때 여왕은 어떻게 했는가. 연중 정해진 날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영묘사라는 절이 있었다.
‘정말 나로 인해 그 청년이 죽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내 한 번 직접 만나서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고, 그 소문이 정말이라면 잘 타일러 봐야지. 앞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나 때문에 괴로워해서야 되겠는가. 좋은 처자 만나 혼인하라고 권해야겠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그 청년의 집에 갈 수는 없지. 그럼 이 나라 온 백성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입방아를 찧을 테니까.’
지혜로운 여왕은 묘안을 짜냈다. 은밀히 지귀의 집으로 신하를 보내 거동할 수 있을 정도면 영묘사로 오라고 초대를 한 것이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이 말을 들은 지귀는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반신반의하면서도 밥을 몇 숟갈 들고 기운을 차렸다.
지귀가 영묘사에 다다랐을 때 마침 여왕은 불공을 드리는 중이었다. 절간 탑 밑에 서서 여왕을 기다리는 지귀. 따사로운 봄볕이 기운이 하나도 없는 지귀의 몸에 내리쬐었다. 머나먼 길을 걸어온 지귀는 탑에 기대어 섰다 앉았고, 끝내는 땅에 드러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여왕이 불공을 다 드리고 절 마당에 내려서서 본 것은 탑 앞에 누워서 코를 골고 있는 지귀였다. 다가가 흔들어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도 다 운명이거니. 여왕은 지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목에 차고 있던 금팔찌를 가슴에 얹어주고는 궁궐로 가는 가마에 몸을 실었다. 어둑어둑할 때가 되어서야 깨어난 지귀는 가슴에 놓인 금팔찌를 보고는 스스로 심화가 일어 화르르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시조의 둘째 수 종장이 “통곡을 땅에 묻고도 살을 지져 울지니”는 시인이 상상해본 여왕의 심정이다. 나를 너무 사랑해 가슴에 불이 일어나 죽었구나! 선덕여왕도 인간인데 왜 지귀에 대한 어떤 감정이 없었겠는가. 다만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을 뿐.
벽화 속 여인들의 늘어뜨린 머리채여
마릴린 먼로의 머리맡 향수병이여
훅 끼친 살냄새, 머릿냄새, 느닷없는 이 비향妃香
―「봄비」전문
과학적인 용어로 페로몬이라고 하던가. 남성이 여성의 피부와 머리카락 등에서 느끼는 냄새가 성적인 자극을 주는 것으로 안다. 이 시조의 화자는 벽화 속 여인의 늘어뜨린 머리채를 보고는 환상에 사로잡히는데, 살과 머리의 색깔과 모양, 감촉과 소리가 아닌 냄새에 반응한다. 그리고 실제로 맡은 것은 봄비 냄새, 혹은 봄비가 내릴 때 땅에서 훅 끼치는 냄새였다. 또 다른 봄노래를 들어보자.
몸 엮어 마음 여는, 마음 엮어 몸을 여는
짓찧은 사금파리 살갗을 후벼 파는
그 봄에 그 죗값 받아 귀양이라도 살까보다
―「봄, 천형天刑」후반부
산천초목이 눈을 뜨는 봄이 오면 인간도 마음이 들뜨게 된다. 몸도 근질근질, 산행이라도 하고 싶다. 봄-천형-죗값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몸 엮어 마음 여는, 마음 엮어 몸을 여는” 행위도 인간의 본성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땅에는 뛰어난 시조를 남긴 황진이, 신사임당, 계랑, 청취당 등 여성시인들이 있었는데 이들 시조의 특징은 다소곳함이 아니라 당당함이었다. 유교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규방가사 내지는 시조였다.
어디서 봤더라 싶어 곰곰이 생각한다
다정한 저 목소리 누구더라 싶은 저녁
손톱 밑 흙 때를 긁던, 참말 같고 거짓말 같은
―「소쩍새 우는 저녁」전문
화자는 농투성이인데 여기서 성별은 구분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이 소쩍새 우는 저녁에 마주쳤다. 목소리는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얼굴은 모르겠다. 그렇다고 다가가서 말을 건넬 수는 없다. “손톱 밑 흙 때를 긁던”으로 보아 둘은 어릴 때 헤어진 소꿉친구가 아닐까. 살아 있었구나, 이렇게 살아서 널 보다니. 하지만 말을 건넬 수는 없는 소쩍새 우는 밤이다. “암키와 수키와는 서로 이를 맞물고/ 붉힌 낯 모르면 몰라라 쫓겨 가는 그믐달”(「임이네」)이나, “몸 먼저 알아채는가 살 냄새 훅! 닿는다”(「비」), 그리고 “떫은 맛 가시기엔 귀밑 볼만 저리 붉고”(「입춤」) 등도 독자의 얼굴을 충분히 붉게 물들게 할 수 있는 농염한 표현이다. 하지만 시편 전부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지는 않는다.
구멍 구멍을 죄다 파고 들어가는
미꾸라지 통 속으로 여인네를 밀어 넣었다
말끝에 뱃속이 우글우글 지새도록 들끓었다
성큼 기어가는 내 열 살 적 지네 한 마리
발등을, 종아리를 쉼 없이 타고 올라
이 아침 치마 끝에 치떠는, 수천수만 지네밭
―「고문」전문
지네한테 물려본 열 살 때의 일은 화자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그때 경험을 고문당하는 자의 고통으로 확장한 시조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경찰이 미꾸라지 통 속으로 여성을 밀어 넣는 식의 끔찍한 고문을 했었다. 미꾸라지는 구멍마다 죄다 파고 들어가는 속성이 있다. 시인은 그 시절에 독립운동가들을 그런 식으로 고문한 것을 알고는 치를 떤다.
이제는 한분옥 시인이 개발한 시조의 형식적 특징을 짚어보도록 하자.
벼루에 먹을 갈 듯 감추어둔 어둠을
운다고 울어지더냐 말 다 할 수 있더냐
이 적막 생솔로 타는 밤을
네가 왜 우느냐
설령 어느 비탈에 사랑 두고 왔대도
나처럼은 말거라 울음 울지 말거라
질러 온 짧은 봄 허리
물러서지 말거라
―「운다고 울어지더냐」전문
첫 번째 수에서는 화자가 독자에게 두 번 묻는다. 우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할 말을 못해 우는 거라면, 그 울음이 대체 무엇이냐고. 울음으로 말을 삼킬 거면 울지 말라고. 두 번째 수에 가서는 권유한다. “나처럼은” 울지 말라고. 금방 가는 봄의 허리를 붙잡고 물러서지 말라고. “할 수 있더냐” “왜 우느냐” 같은 설의법과 “울지 말거라” “물러서지 말거라” 같은 명령법이 이 시의 가락을 살리고 있다.
쑥 밀어 올린 꽃대, 휘청 어지러워라
저것 봐 언저리도 못된 풀씨 풀잎 열고
숨소리 하얗게 뱉으며 먼 봄 밖에 서 있지
봄이면 봄이어라 봄 끝은 또 어디인가
헛헛한 속일망정 닫힌 꽃 마주 들고
괜찮다, 응달도 괜찮다, 꽃대라면 꽃대지
―「홀아비꽃대」전문
두 번째 수의 종장에서 반복구문이 연이어 나온다. 우리말의 특성을 잘 살린 이런 반복법은 김소월의 「왕십리」 같은 시가 보여준 바 있는데 한분옥 시조의 한 특성이기도 하다. 다음 작품에서는 3번을 반복한다.
모르면 모를까 몰라 들찔레 핀 봄밤을
언약의 가시 울을 맨발로 타고 넘던
겹치마 찢어진 앞섶 감춘다면 모를까
눈감아 더 또렷한 옥죄는 기억 끝에
찔레 순 씹던 날의 그믐달 그 말고는
모르면 모를까 몰라 잊는다고 잊을까
―「들찔레 핀 봄밤을」전문
이 시조는 소재나 주제에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표현이 절묘하다. “모르면 모를까 몰라 잊는다고 잊을까” 같은 행은 한분옥 시인이 아니면 고안해내기 어려운 언어 발명품이다. 이런 시조는 또 어떤가. 3수로 되었는데 첫 번째 수의 초장은 “어쩌자고 그냥 그런 꽃이 되자 했던가요”로 시작하는데 세 번째 수는 다음과 같다.
떠날 즈음해서는 하 그리 치근대더니
어제 오늘 아니라도 하제면 고대 지고 말
그런 꽃, 그냥 그런 꽃, 그런 꽃이 되자고요
―「그냥 그런 꽃」끝부분
수미쌍관인 것 같지만 시인은 “그런 꽃을”을 반복어구로 비틀어 “그런 꽃, 그냥 그런 꽃, 그런 꽃이 되자고요” 하고 마무리 짓는다. 엇시조와 사설시조는 어떤가. 두 편은 공교롭게도 대단히 현대적인 언어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 하루같이 그날이 그날 같아
무단히 악에 받쳐 시퍼렇게 날이 서는, 쐐기 톱날 맞물리듯 밑도 끝도 없는, 질긴 막창 씹는 입에 누군들 못 씹으랴 마개를 뽑아버린 역류성 식도염에 컬컬한 목 덥히다 막무가내 치미는 욕지기를 삼키다가 제풀에 스러져서 쇠 울음 우는 막창 골목
잔술에 취기가 돌아 내가 나를 달래는,
―「막창 골목」전문
어물전 과일전에 또 난전의 푸성귀를 단돈 몇 푼에 덜렁 한 보따리 받아드니 이게 웬 횡재인가 떨이마당 기웃대다 오랜만에 눅은 맘이 뿌듯했것다
장삿속이 또 그렇지 않던가 맛보긴 맛보기대로 중치긴 중치기대로 등급 매겨 골라내면 끝물만 남는 거지 설익고 혹 달린 놈에 멍들고 상천 난 놈, 껍질 벗겨진 채 시들고 속 곪은 놈에 쭈그렁바가지가 다 된 놈, 누군들 빛깔 좋고 모양 좋은 떡 먹기 좋은 줄 왜 모를까
말문이 턱 막혀서 참, 딸린 입이 좀 많아야지
―「떨이인생」전문
중장이 긴 「막창 골목」은 엇시조요 초장과 중장이 긴 「떨이인생」은 사설시조다. 두 편 다 서민적이요 구체적이다. 그리고 판소리처럼 사설적辭說的이라서 주저리주저리 말이 좀 길어진다. 그래서 재미있다. 앞의 시는 울산광역시 중구 남외동에 있는 막창 음식 특화 거리인 ‘병영막창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95년 막창집이 처음 생긴 것을 계기로 120m 남짓한 골목에 13개의 점포가 생겨나면서 병영의 명물 거리가 되었는데 2010년 울산광역시 중구청은 병영 막창 식당의 브랜드화를 위해 음식 특화 거리로 지정하였다.
「막창 골목」은 막창을 씹듯이 누군가를 씹는 이 땅의 서민을 형상화한 시조다. 상사를 씹는지 대통령을 씹는지 모르겠지만 “씹다가 제풀에 스러져서 쇠 울음 우는 막창 골목”이다. 화자는 술을 잘 못하는지 “잔술에 취기가 돌아 내가 나를 달래는” 신세다. 「떨이인생」은 철시 무렵에 떨이로 파는 것들의 품목을 떠올려보고 있다. 떨이 상품은 대체로 신선도는 떨어지지만 값이 싸고 양이 많다. “끝물만 남는 거지 설익고 혹 달린 놈에 멍들고 상처 난 놈, 껍질 벗겨진 채 시들고 속 곪은 놈에 쭈그렁바가지가 다 된 놈”은 혹 장삼이사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두 편 외에 「빗살무늬」 같은 것도 시조의 뉘앙스가 텁텁하고 분위기가 털털하다.
한분옥의 시조는 대체로 고졸한 맛이 있다. 어휘 구사나 시풍에서 세상살이의 연륜이 묻어난다. 위에 인용한 엇시조와 사설시조는 또 다른 멋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달관으로 끝나지 않아서 한분옥의 시조는 체험에서 얻은 진정성, 소시민의 생활 현장을 놓치지 않는 현장성을 갖고 있다. 얼쑤! 장단을 치고 박자를 맞추고 싶어진다. 먹여 살릴 입이 줄줄이 있어도, 그 입을 거두는 일을 고달파하지 않는 ‘어른’의 모습이 저런 시조에 잘 살아 있다. 시인이 흥을 돋우면 ‘떨이인생’인들 별 것이랴.
한분옥 시인이 이번에 제5회 조운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1987년에 등단한 이후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시조의 길을 꾸준히 걸어오면서 이룩한 시세계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여기에 자족하지 말고 “피 삭은 화염 밖에 벌거벗은 몸뚱이”인 방짜유기처럼 연륜이 더해갈수록 빛이 나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바다도 산천도 들끓어 출렁이는 첫울음”(「간절곶」) 같은 시조를 계속 터뜨려줄 것을 또한 기대하는 바이다.
[출처] 고졸한 연가에서 털털한 사설까지의 스펙트럼—한분옥論|작성자 이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