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생명체들을 잘 돌보지 않으면
―배우식 소론
이승하
배우식 시인은 얼굴을 봐도 글을 봐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40대 같기도 하고 50대 같기도 하다. 등단한 해가 2003년이니 이제 22년이 되었다. 글만 봐서는 22세 청년 같기도 하다. 그는 지금 시와 시조와 문학평론 세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는 2003년 《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해 2005년에 도서출판 고요아침을 통해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을 펴냈다. 시집이 나오자마자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거의 전면을 차지하다시피 하며 대서특필되었다. 이유인즉 뇌종양 환자로 그 당시 로봇 수술을 받고 살아난 이후에 시집을 낸 기적 같은 일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조장래 기자가 쓴 당시의 경향신문 기사를 보자.
그는 3년 전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뇌종양 환자였던 그의 나머지 삶은 냉혹한 수치로 환산되었다. 의사가 일러준 생존확률은 15%. “수술 후 살아남는다 해도 눈과 귀가 멀고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선고는 덤이었다. 수술은 기적처럼 행해졌다. 긴 마취에서 깨어난 그의 첫마디는 “새를 주세요”였다. “자유를 갈망하는 무의식적인 말이었어요. 그때 눈을 떠보니 세상이 환했습니다. 그 후로 더욱 절실하게 저처럼 몸이 캄캄한 사람에게 등불을 켜주고 싶었어요. 시를 통해서요.” 그는 시로써, 시에 대한 맹렬한 의지로써 자신의 운명을 거듭 쳐냈다. ‘등불 시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대로 그의 시들은 온통 ‘희망’을 점멸하는 등대가 되었다.
조선일보의 김광일 기자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기사를 쓴다.
1996년에 왼쪽 눈을 잃고, 다른 한쪽 눈마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다. 첫 증세는 1993년에 시작됐고, 그때 의사는 ‘황반변성’으로 잘못 진단했다. 2001년 탁구공 크기의 종양을 찾아낸 다른 의사는 “종양을 제거해도 뇌를 절개할 때 생기는 손상으로 눈 멀고 귀 멀고 냄새도 못 맡는다”는 식물인간 선고를 먼저 내렸다. “슬펐다기보다는 허망했습니다. 차라리 웃음이 나오더군요.” 눈이 침침해질 때부터 배우식은 시에 매달렸다.
2000년에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들어갔다. “시가 나를 살리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방향 감각을 잃었고, 계단에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온몸은 피멍투성이였다. 대학원 강의에서 돌려 읽을 리포트를 프린트해놓고, 앞을 못 봐 챙길 수가 없었다. 아내 박영자 씨가 대신 리포트를 들고 가 학생들에게 읽었다. 이번 시집에 지도교수 이승하 시인은 그의 아내에게 주는 발문을 썼다. “발표를 끝낸 그대에게 저와 수강생 모두가 큰 박수를 쳐 드렸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135쪽)
그런데 이 두 기자가 놓친 것이 있었다. 그가 대우건설에 입사해 고위 간부로 고속승진한 토목기술자란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ㆍ시리아 등 중동국가에서 굵직한 건설사업을 수주, 한국 경제 발전의 일익을 담당한 인물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눈이 멀게 되면서 회사를 박차고 나와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해 생의 마지막 불꽃을 시를 위해 불태우고자 결심했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 「북어」가 더텍스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이어 금성출판사의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림으로써 이 땅의 청소년 가운데 ‘배우식’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를 계속해서 썼더라면 아마도 시집을 최소한 5권은 냈을 테고, 중견시인으로서 입지를 튼튼히 구축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생에 큰 전환점이 온다. 시조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만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이 땅의 자유시가 지나치게 산문화, 장형화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 시인은 이에 대해 경기일보 송상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량이 크게 늘어난 산문시는 어쩌면 단편소설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시조의 경우 핵심은 결국 ‘함축성’에 있다. 불필요한 표현을 소거한 뒤 남는 단어와 표현들이 얼마나 함축해내는가에 시조의 성패가 달려 있는데, 형식과 소재가 다변화될지라도 이것만큼은 끌고 가는 게 맞다.”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에서 월 장원을 한 것이 2006년 11월 2일이었다. 「감꽃 아버지」가 신문에 실렸고 심사위원 김재영ㆍ정수자 시조시인이 “발상도 좋지만 긴장이 더 요청되는 정형 안에 소리말, 모양말도 잘 앉혔다.”라는 격찬을 들었다. 이에 용기를 낸 배우식은 몇 년 동안 시조를 열심히 쓴다. 등단의 기회가 온다.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인삼반가사유상」이 당선된 것이다. 이근배 시인이 심사위원이었다. 이때부터 시조 쓰기에 매진하여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천년의시작, 2014), 『연꽃 우체통』(고요아침, 2016), 『이렇게 환한 날에』(고요아침, 2021), 『낙타』(시선사, 2023) 등을 펴낸다.
한편 비평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식 평론가의 활동 양상을 살펴보자. 2013년 문학세계사에서 나온 『한국 대표시집 50권』의 편저자 중 한 사람인 배우식은 이육사ㆍ김종삼ㆍ황지우론을 쓴다. 「설악 조오현 선시조 연구」로 2018년에 중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논문은 조오현의 시조를 연구하여 받은 국내 최초의 박사논문이다. 2021년에 계간 《시와 세계》에서 「禪에서 禪으로 이행하는 빛과 소리」로 시조 평론에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평론가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하여 《정형시학》에 ‘현대시조문학 사료’를 연재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이근배ㆍ김제현ㆍ윤금초ㆍ조오현ㆍ정완영ㆍ이상범ㆍ송선영ㆍ장지성ㆍ박시교ㆍ이우걸론을 썼다. 앞으로 몇 회 계속할지 모르겠다. 지금 시조 시단에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배우식 평론가의 이 연재물이다. 매호 100매 가까이 되는 글을 쓰고 있는데 부디 건강을 잃지 말고 연재가 잘 끝나기를 축원한다. 이제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감나무 속으로 아버지가 들어갔다
그해 봄 문득 들리는 발자국 자박 소리,
눈 씻고 뒤돌아보면 환한 눈빛 감꽃이었다
아득히 그리운 길 한 바퀴 돌 때마다
출렁출렁 차오르는 아버지 저 살냄새
그 바다 오르내리며 만남을 꿈꾸었다
눈 감아도 눈 속으로 파고드는 울 아버지
감나무 안다는 듯 말랑말랑 붉어지고
나에게 속살을 살짝, 드러내 보여주었다
감나무 문밖으로 홍시가 걸어 나왔다
늦가을 간절한 듯 붉게 붉게 익은 얼굴,
달려가 바라다보면 환한 눈빛 아버지였다
―「감꽃 아버지」전문
시조 작품 중 처음 활자화된 작품이다. 중앙일보 지상에서 어떤 평가를 얻었는지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이 시조는 감나무의 생명성과 아버지의 생이 교직되면서 진행되는데, 화자의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마지막 네 번째 수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취한 얼굴을 홍시에 빗댄다. “늦가을 간절한 듯 붉게 붉게 익은 얼굴,/ 달려가 바라다보면 환한 눈빛 아버지”였으니, 술에 취해 비틀대며 오는 아버지는 그야말로 ‘감꽃 아버지’였다. “출렁출렁 차오르는 아버지 저 살냄새”도 그렇고, “눈 감아도 눈 속으로 파고드는 울 아버지”도 그렇고,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해마다 감은 다시 열려 붉게 익는데 아버지는 먼 세상으로 가셨다. 감꽃이 떨어질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나는 화자의 마음이 독자를 울린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자.
1
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꽃대 하나,
인삼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 들린다
그 끝을 무심히 따라가면 투명 창이 보인다
2
한 사내가 꽃대 하나 밀어올려 보낸 뒤
땅속에서 환하게 반가부좌 가만 튼다
창문 안 들여다보는 내 눈에도 삼꽃 핀다
무아경, 흙탕물이 쏟아져도 잔잔하다
깊고 깊은 선정 삼매 고요히 빠져 있는
저 사내, 인삼반가사유상 얼굴이 환희 맑다
3
홀연히 진박새가 날아들어 묵언 문다
산 너머로 날아간 뒤 떠오르는 보름달
그 사내 침묵 사유 만발하여 나도 활짝, 환하다
―「인삼반가사유상」전문
인삼의 모양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닮았다. 땅에서 최소 10년은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인삼이 도를 통한 양, 다리를 꼬고 앉은 모양이 반가사유상과 닮은 것이다. 첫째 수는 인삼의 모양새를 그리고 있는데 공감각적인 표현이 절묘하다. 2번에 가서는 시인의 불교적 사유가 만개하는데, 인삼도 아니고 반가사유상도 아닌 사내를 등장시킨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모델이 된 신라 혹은 백제 때의 사내다. 3번에 이르면 시의 화자가 그 사내의 ‘침묵 사유’에 매료되어 활짝, 환해진다. 즉, 사내-반가사유상 모양의 인삼-내가 일체를 이룬다. 인삼이 사색에 잠긴 사람의 모양을 취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쓴 시조인데 인삼을 인삼반가사유상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신기하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모델이 되었던 어느 옛 시절의 미소 짓는 스님을 시의 문맥 안으로 모셔온 것도 신기하다. 이제 단시조를 한 편 보자.
바람 불면 한 잎의 시,
새 울어도 또 한 잎의 시
내 몸의 푸른 시구,
단풍 드는 늦은 가을
허공에 울음 터뜨리며
천 잎 파지 날린다
―「산 단풍」전문
지금까지 가을과 단풍을 노래한 시와 시조는 엄청나게 많았지만 “한 잎의 시”와 “천 잎 파지”로 쓴 시조는 처음 보았다. 시인의 이런 상상력은 “내 몸의 푸른 시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불어도 새가 울어도 나는 시조를 쓰고 싶은 생각에 내 몸에 단풍이 드는 것이고, 허공에 울음을 터뜨리며 천 잎 파지를 날리는 것이다. 나무가 된 시인, 멋지지 않은가. 시조집의 제목이 된 작품을 보자.
바깥소식 궁금해진 버들붕어 송사리가
연못 속 꽃봉오리 하나 둘씩 밀어 올린다
어느새 세상에 앉아
제 몸 여는 빨간 연꽃
일제히 물고기의 말들이 날아오른다
사람의 마을 향해 환하게 열려 있는
저 꽃은 빨간 우체통,
두근거리며 바라본다
편지를 배달하는 체관 물관 분주하고,
글 읽는 말간 눈의 물고기가 보인다
오늘도 연꽃 우체통에
편지 한 통 넣는다
―「연꽃 우체통」 전문
연꽃과 우체통이라는 이질적인 사물을 연결시켜 하나의 사물을 만들었다. 연못에 연꽃이 피어 있고 송사리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명체들이 모두 자기 나름대로 의사 표현을 한다. 그것을 시인은 ‘언어’로 간주한다. “일제히 물고기의 말들이 날아오른다”고 하니 눈을 크게 뜨게 된다. 뒤이어 “편지를 배달하는 체관 물관 분주하고”란 표현에 이어 “글 읽는 말간 눈의 물고기가 보인다”고 한다. 수술 후에 사지에서 지상으로 온 시인이기에 그런가, 어류나 식물의 ‘언어’를 읽어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화자는 오늘도 연꽃 우체통에 편지 한 통을 넣는 것이다.
배우식 시인은 한쪽 눈 실명에 이어 다른 쪽 눈까지 실명 위기에 처했었다. 눈 수술을 앞두고 원자력병원에 가서 진찰을 다시 받아보았는데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뇌종양이 커져 시신경을 눌러 생긴 결과이기에 뇌종양 제거 수술을 해야지 무슨 눈 수술이냐고 오진을 지적했다. 2002년에 국내 거의 최초로 로봇 수술로 광명을 되찾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생과 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다. 뇌척수가 콸콸 쏟아지고 뇌막이 터지는 위기의 순간을 넘기면서 배우식은 회복에 성공해 시를 썼고 시집을 냈다. 시인의 첫 시집에는 수술 후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시인이 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검은 혓바닥으로 달려드는 죽음! 지금도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수술이 어느 병원에서 행해지고 있으리라. 배우식 시인이 뭇 생명체의 소리를 알아듣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눈물겨운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1
누군가 던진 돌 하나,
나무 속에 박혀 있다
그 돌을 그러안고
통증을 견디는 서향
안에선 상처가 익는다,
향이 왈칵 쏟아진다
2
참았던 눈물 같은
꽃향기가 폭발한다
고백하듯 꽃은 피고,
향내가 천리 간다
사람도 저 서향 같아야
향기가 멀리 간다
―「잘 익은 상처는 향기롭다」 전문
이 시에서 서향은 西向이 아니라 瑞香이다. 서향은 팥꽃나뭇과의 상록 관목이다. 돌을 누가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그 나무에 박혀 있는 돌 때문에 통증을 견디는데, 안에서 상처가 익는다. 하지만 그 상처가 향기를 뿜어내게 한다. 꽃은 고백하듯이 피어나고, 향기가 천리를 간다. “사람도 저 (돌이 박힌) 서향 같아야/ 향기가 멀리 간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도 시인의 투병기를 알고 있기에 더욱더 뼈아프게 와 닿는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나니 위로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의식은 말짱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수술 전보다 더 심하게 엄습한다. 소생에 대한 희망을 갖기는커녕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사후 모습을 보기도 한다. 회복될 것인지 악화일로로 갈 것인지 모르겠는데 몸은 아프고……. 저승길은 누구나 혼자 가는 법이다. 시인이 직접 겪은 아픔과 절망이라 그런지 이 시도 내게는 투병기로 읽힌다.
허공 걸어, 걸어 들어간
한 사람의 굴참나무.
산새들 날아오자 심장이 고동친다.
한순간
설렘을 돌아
돋아나는
수천 날개.
내 손은 바람이 되어
저 나무 새 밀어 올린다.
파란, 파란 날갯짓 소리 공중에서 펄럭인다.
아버지…
소리쳐 부른다,
반짝! 빛나는
새, 파란.
―「새, 파란」 전문
형식적인 측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언뜻 보면 시조 같지 않은데 자세히 보면 시조다. 새가 파랗다니 파랑새인가? 이 시조에서도 굴참나무가 의인화되어 있다. 나무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나무가 된다. 새들이 날아오자 굴참나무의 심장이 고동친다. “파란, 파란 날갯짓 소리 공중에서 펄럭인다.”도 역시 너무나 멋진 공감각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종장에 이르러 이 시는 완전히 전환을 이룬다. “아버지…/ 소리쳐 부른다.”에 오면 시가 그만 난해해진다. 굴참나무-산새들-파란에 이어 왜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게 된 것일까? 홍시는 붉은색이어서 술에 취한 아버지의 얼굴을 연상케 했지만 이 경우는? 시인의 유년기 때의 추억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1. 어여 와!
배에 갇힌 딸의 비명 막 터진 그 아침에
애태워 속이 텅 빈 쪽배 같은 저 아버지
바다 위 홀로 떠다니며 절규한다, 어여 와!
2. 통곡
통곡의 비가 온다, 바다는 젖지 않는다
딸 잃은 아비만 젖어 팽목항 떠다닌다
비애의 울음이 타는 저 앞바다, 비(悲)가 온다
3. 노랑나비
열일곱 문득 꺾인 연약한 꽃봉오리
울음을 터뜨리며 꽃빛이 날아올라
내 꿈속 나비로 날아온다, 환시인 듯 노랗다
4. 용서
울며 떨며 기다리다 숨 막혀 떠난 딸아
용서란 말 쓰고 써서 가슴 뻥 뚫렸어도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큰 죄인인 이 아비를
―「바다는 젖지 않는다―세월호 참사 앞에서」전문
어찌 보면 이 시조는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세월호 참사 때 여고생 딸을 수학여행 간다기에 배웅해 주었다가 멀고 먼 곳으로 보낸 아버지의 참담한 심정을 다루고 있다. 그 아버지들과 동병상련하는 마음으로 이 시조를 쓴 것이니 애절하고 비통하다. 아이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럼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아버지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뭇 아버지들과 함께 울음을 터뜨린 시인의 사려 깊은 사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사적인 시조에는 힘이 실려 있다.
꽃 하나 필 때마다
그 소리 들리는지
고개를 높이 쳐들고
매애애梅愛愛
답하는 염소
어느새,
염소의 눈 속에도
매화꽃이
피어난다
―「매화꽃」 전문
이 시조는 단형시데 배우식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매화꽃과 염소의 어울림. 식물과 동물을 다 동궤에 놓고 바라보는 자세. 언어의 경제적 운용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천의무봉에 평사낙안이다. 「동백꽃 여자」에 대해서는 인터넷신문 <코리아아트뉴스>에서 다음과 같이 길게 평을 쓴 적이 있다.
동백꽃을 노래한 시와 시조가 워낙 많아서 인상적인 작품을 내놓기 어렵다. 내가 놀란 것은 첫번째 연의 중장과 종장이다. 나뭇잎이 놀빛을 잘게 부숴 삼킨다는 비유와 상징은 고차원적이라고 해야 할까 고도로 세련되었다고 할까. 게다가 이 시조는 동백꽃의 생명력을 예찬한 작품이 아니라 한 여성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제목부터 ‘동백꽃’이 아니라 ‘동백꽃 여자’이다.
동백꽃은 경칩쯤 되어야 피기 시작하는 다른 꽃과는 다르게 경칩이 되기 훨씬 전부터 핀다. 대략 11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2, 3월에 만발하는 편이다. 제일 첫 문장은 “겨울 동백 발목부터 노을이 빼곡하다”인데 겨울의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붉은색 꽃을 피워낸 동백꽃을 묘사하고 있기에 첫째 수의 초장부터 눈을 휘둥그레 뜨게 한다. 높바람은 된바람과 비슷한 뜻으로, 매섭게 부는 바람이다. 높바람 속 나뭇잎이 가만히 입 내밀고 있으니 자생력 혹은 인내력이 대단하다. 나뭇잎이 입만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발갛게 빛나는 놀빛 잘게 부숴 삼킨다”고 했으니 꽃의 특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대개의 꽃은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며 지는데 동백꽃은 질 때 꽃잎이 전부 붙은 채 한 송이씩 통째로 떨어진다.
눈이 내린 날 동백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요염함을 넘어 황홀경을 느끼게 된다. 청초함이 선정성을 느껴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문득 꽃눈 팽창되고 화들짝 꽃 피운다”를 보니 화자는 첫눈에 매료되는 어리석은 남자 같다. “인간의 얼굴 언뜻 비치는 붉은 동백꽃”이니 꽃이 붉은 립스틱을 칠한 유흥업소의 여성 같다. “내 발은 저 여자에게로 덩굴처럼 뻗어간다”가 결구인데 결국 이 어리석은 남자, 그녀에게 완전히 반하고 만다. 쯧쯧, 시조 속의 저 남자, 마누라한테 쫓겨나게 되었다. 이런 식의 해석이 견강부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특권이다. 배우식 시인의 금슬은 대학원에서도 유명했다. 앞을 거의 못 보게 된 남편을 위해 시인연구 보고서를 직접 써 대학원 수업시간에 들어와서 남편의 이름으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아아, 시인은 시 안에선 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동백꽃 같은 여성에 매료되고 말았다. 악성 뇌종양 제거 수술이 로봇수술로 진행되어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이승으로 돌아온 시인이기에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백꽃 여자에게 매료되어 상상의 날개를 펴보았다. 이런 연애는 나도 해보고 싶다.
배우식 시인은 이 땅 시조 시단의 큰 희망이다. 나는 그의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의 표4 글을 다음과 같이 썼다.
‘괴로움을 뛰어넘어 기쁨으로(Durch Leiden Freude)’ 나아간 베토벤처럼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직시하면서 그것을 시로 승화시킨 배우식 시인의 작품은 운율이 있고 떨림이 있다. 우리 시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고 있는 배우식 시인은 나의 제자이면서 스승이다.
[출처] 내가 이 생명체들을 잘 돌보지 않으면―배우식 소론|작성자 이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