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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론

사랑에 관한 정서의 촉수와 언어적 모티브 / 권성훈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19|조회수37 목록 댓글 0
사랑에 관한 정서의 촉수와 언어적 모티브를 찾아서
 
권성훈
 
 
 
사랑은 다양한 정서의 촉수를 가지며, 시인으로부터 다기한 언어적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것은 도구와 언어를 사용하는 전 인류의 공통적 관심사이며 행복을 재단하는 보편적 척도이기도 하다. 가령 사랑을 통해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이별하는 존재다. 또한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을 완성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사랑’이라는 ‘불멸의 명사’로 새겨놓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잉태되는 이와 같은 사랑에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는 시의식을 가진 시인은 얼마나 있을까? 사랑으로 촉발되는 여러 가지 성질을 시적 테마로 선택하고 거기에서 발생되는 사유를 언어형식으로 통제하고 기록하는 시인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예컨대 김초혜(1943~)와 문정희(1947~) 시인은 자신의 정념을 사랑에 배려하고 ‘언어의 사유체’로 몰두해 온 시인이다.
“시는 어떤 의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시어야 한다”라고 언표한 김초혜의 시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언어의 숨결’을 날카롭게 포석하듯 직관적으로 시어의 긴장감과 언어적 환기성을 통해 사랑을 새겨 놓는다고 하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다”라고 선언한 문정희 시는 감각적인 시선으로 관능적인 세계를 응시하며, 낭만성을 주체로 한 인간 존재 정신을 사랑으로 융해하고 있다.
1943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초혜 시인은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 1964년 󰡔현대문학󰡕에 「사월」, 「길」, 「문 앞에서」로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대표 시집 󰡔떠돌이 별󰡕(1984), 󰡔어머니󰡕(1985), 󰡔사랑굿 1󰡕(1985), 󰡔사랑굿 2󰡕(1986), 󰡔떠돌이별의 노래󰡕(1989), 󰡔사랑굿 1, 2, 3󰡕(1992), 󰡔그리운 집󰡕(1998), 󰡔고요에 기대어󰡕(2006), 󰡔사람이 그리워서󰡕(2008) 등을 간행하였으며, 수필집 󰡔생의 빛 한줄기 찾으려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사랑하며󰡕 등으로 1984년 한국문학상, 1985년 한국시인협회상, 1996년 현대문학상, 2008년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했다.
1947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한 문정희 시인은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 진명여고 재학 중 첫 시집 󰡔꽃숨󰡕(1965)을 발간했다. 그 후 1969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불면」과 「하늘」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대표 시집 󰡔문정희 시집 󰡕(1973),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어 주세요󰡕(1990), 󰡔남자를 위하여󰡕(1996), 󰡔오라, 거짓 사랑아󰡕(2001),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2003), 󰡔나는 문이다󰡕(2007), 󰡔찔레󰡕(2008) 등으로 1975년 현대문학상, 2004년 정지용문학상, 2013년 육사시문학상, 2015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김초혜와 문정희는 각자 자신의 시세계를 서정성과 낭만성으로 구축하면서 사랑을 구체적인 언어로 현현하고 있는바, 인간 존재의 총체성을 사랑으로 드러낸다. 그녀들의 시세계에서 불시착되고 있는 언어의 내구성을 보면 사랑에 대한 ‘근원의 층위’를 목격하게 된다. 또한 그녀들이 사랑을 통해 접근하려고 서성이는 시의식에서 구원의 메시지가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녀들이 보여주는 서정의식과 낭만의식의 심층에는 사랑이 존재하는 바, 그것을 구원으로 믿는 듯하다. 사랑에 관계하는 그녀들의 체험은 시적 연료로서 작용하며 ‘시적 발사체’로 유효하게 쓰인다. 김초혜는 “그곳이 어디든/무심한 곳으로/나는 가고 싶네” (「사랑굿 7」) 그녀는 아무런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무심無心의 시공에서 구원을 바라보며 “혼자서 무어라/지껄인대도/들어줄 이 없는/적막에 쌓여” 스스로 고독한 ‘서정의 성’을 만들며 그곳으로 가려고 한다.
문정희는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겨울 사랑」)라고, “머뭇거리지”도 “서성대지”도 말고 온전하게 자신을 녹여 구원으로 향해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로 이루어진 ‘동화된 세계’를 만들며 그곳으로 가려고 한다.


2


그대가
그림 속의 불에
손을 데었다 하면
나는 금세
3도 화상을 입었다
 
마음의 마음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화상을 입는다
 
김초혜마음의 화상」 전문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를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오늘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들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문정희러브호텔」 전문


마음이란 복잡한 심상으로서 타자와 관계 맺고 있다. 이 대상은 신체를 가진 물질이며 그 안에 영혼, 곧 마음이 기거한다. 살아있음은 육신 안에 있는 마음으로 육신에 속한 타자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몸을 가진 경우에만 이 세계 안에 머물러 있으며 현존재로서 완전한 현실성을 부여하게 된다. 김초혜의 마음은 “손을 데었다 하면/나는 금세/3도 화상을 입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등장한다. 즉 마음이 몸이 되고, 몸이 마음이 되는 바, 몸과 마음이 일원화된다. 그녀의 “마음의 마음은/몇 번이고 몇 번이고/화상을 입는다”라고 ‘마음의 마음’은 ‘몸 안의 몸’이며, 그것은 타자에 의한 외상을 의미하며 “괴롬에/깊이 머물면/성내는 마음/견뎌지고/무엇이나 빛이 되리” (사랑굿 2) 상처 입은 마음이 오래되면 몸으로 성을 낸다는 것 또한 마음과 몸이 이원화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을 견뎌야 만이 ‘빛’이라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정희의 마음은 모순된 자아의 세계를 표상하는 것으로써 ‘러브호텔’ ‘교회’ ‘시인’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 “내 몸 안에 러브호텔”과 “내 몸 안에 교회”와 “내 몸 안에 시인”은 조각난 자아로서 분리된 세계관이면서 자신을 구원하게 해주는 매개체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교회와 시인들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는 가운데 욕망을 발견하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의 마음은 여러 개의 조각들로 파편화되어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라는 역설적 언술 속에서 그녀가 기다리는 구원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3


나만 흐르고
너는 흐르지 않아도
나는 흘러서
네가 있는 곳으로 간다
 
흐르다 만나지는
아무 데서나
빛을 키워 되 얻는
너의 모습
 
생각이 어지러우면
너를 놓아버리고
생각이 자면
네게 가까이 가
몇 개의 바다를
가슴에 포갠다
 
김초혜사랑굿 38」 전문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
민중시인 K는 유럽을 돌며
분수와 조각과 성벽 앞에서
귀족에게 착취당한 노동을 생각하며
피 끓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는데
 
고백건대
나는 유럽을 돌며
내내 사랑만을 생각했어
목숨의 아름다움과 허무
시간 속의 모든 사랑의 가변에
목이 메었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지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와 성벽을 바라보며
오래 그 속에 빠지고만 싶었지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
곤돌라를 젓는 사내에게 홀딱 빠져
밤새도록 그를 조각 속에 가두려고
몸을 떨었다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
유적에 숨이 막혔어
그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었어
 
문정희나는 나쁜 시인」 전문


그녀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대상은 고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변모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랑을 선택하여 그것에 집착하는 사랑과 움직이는 사랑이 그녀들의 시에서 제각기 드러나며 대조적으로 현시된다. “나만 흐르고/너는 흐르지 않아도/나는 흘러서/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김초혜의 사랑은 고정되어 있으며 절박한 사랑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빛을 키워 되얻는/너의 모습”은 구원의 형상이면서 날마다 삶의 의미를 되찾는 사랑의 에너지가 된다. 그녀의 사랑은 ‘물의 여행’ 같이 “죽어도 딴 마음/가질 줄 모르는” (사랑굿 40) 것으로 시종일관 “나를 잃지 않으면/너를 붙잡아둘 수 있는” ‘물’의 움직임으로 “너를 잠기게 할 수 있고/네 속에 들 수 있는” 시공간에 머문다.
문정희의 사랑의 대상은 김초혜와 달리 진화되거나, 변증된다.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라고 커밍아웃하며 “나는 유럽을 돌며/내내 사랑만을 생각했어” 자신의 문제를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정직한 인식으로서의 드러냄이며, 현실의 결핍과 부재로부터 자신을 발견하는 언어로서 자아를 재구성함으로 드디어 자기비판으로부터 해방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내부에서 외부로 열려있는‘세계의 여행’에서 “곤돌라를 젓는 사내에게 홀딱 빠져/밤새도록 그를 조각 속에 가두려고/몸을 떨었”던 것과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유적에 숨이 막혔어/그 아름다움 속에/죽고 싶었”던 소유의 욕망을 밝힘으로써 자아성찰과 자아비판에서 자아정화로 나간다. 그렇지만 그녀의 자아성찰로서의 본질적 사랑에 대한 고백은 “사랑은 자주 불법 위에 터를 닦고” (「사랑 신고」)있으며, “위반과 비밀 위에 터를 닦지만/사랑을 신고할 서류는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 진정한 고통, 진정한 희망은/어떤 서류에도 기록되지 않는” 역설적인 장치로서 자기비판의 영역을 넘어서 자아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상정된다.


4


먼저 핀 꽃도
나중 핀 꽃도
모두 다 지는 꽃이라
 
그대가 어제 피운 꽃 한 송이
오늘은 내게 와서 지고 있다
 
김초혜편지」 전문
 
지난해 흙 속에 묻어둔
까아만 그 꽃씨는 어디로 가 버렸는가
 
그 자리에 씨앗 대신
꽃 한 송이 피어나
 
진종일
자릉자릉
종을 울린다
 
문정희꽃 한 송이」 전문


꽃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조화를 지닌 존재로서 사랑의 표상에 충족되는 시인의 언어적 미감으로 사용해 왔다. 은유화 된 꽃은 형형색색의 다양한 색채와 질감 그리고 그 형태가 지니는 조형미와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으로서 사랑을 형상화한다. 꽃이 인간에게 내린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화사하게 웃는 꽃에서 신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행복한 미소를 터트린다. 우울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꽃을 선물 받거나 꽃밭을 거닐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그 때문일까. 경사스러운 날들 뿐만 아니라 불행한 일을 당한 자리에도 꽃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꽃은 신의 모습을 닮았다면 분명히 신은 꽃의 모습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신이 모든 인간을 한꺼번에 은총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형상을 한, 꽃을 통해 같은 시기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축복해 주는 것이 가능해진다.
김초혜는 이러한 꽃을 “먼저 핀 꽃도/나중 핀 꽃도/모두 다 지는 꽃”이라는 자연의 생태적 질서를 통해 인생의 생성과 소멸을 보여준다. 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질감을 “꽃 한 송이”로 드러낸다. 이에 꽃은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로 읽기면서 “내게 와서 지고 있”는 사랑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사랑의 저장고가 된다. 그녀 안에 들어서 “영혼을/맑게 하고/그대만이/벗길 수 있는/이 옷은/타지도/낡지도 않고/나를 태운다” (「사랑굿 93」) 그 꽃은 그녀를 태우고 있는 사랑이며, 그 사랑은 그녀에게서 타고 있지만 소멸되지 않는 ‘화염의 옷’이 된다.
문정희가 보여주는 꽃은 순환과 재생의 의미로 지각된다. “지난해 흙 속에 묻어둔/까아만 그 꽃씨”는 사랑의 열매가 생산한 물질이다. 이른바 꽃씨같이 또 다시 그녀의 시공간에서 사랑을 발효시키며 “그 자리에 씨앗 대신/꽃 한 송이 피어나”게 한다. 그렇게 그녀의 “사랑하던 그 사람”은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찔래」) “오늘은 그 아픔조차/예쁘고 뾰족한 가시로/꽃 속에 매달고” 깊어지고 있다. 그녀의 꽃씨를 통해 발아된 낭만성은 “슬퍼하지 말고/꿈결처럼/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와 같이 넉넉한 마음으로 더 많은 씨앗을 생산하듯 풍성한 사랑에의 결실을 기대한다.


5


시인에게 가을은 또 다른 서정과 낭만의 이름으로 불린다. 누군가에는 결실로, 혹은 패배로, 또 누군가에는 안정으로, 또는 불안으로 와서 기록된다. 그녀들이 보여주는 가을은 어떠한 풍경으로 현현되는가. 김초혜의 서정성과 문정희의 낭만성은 가을에 이르러 어떠한 사랑을 부르겠는가. 결국 가을은 모든 것이 떠나가는 동시에 그동안의 시간이 계절이라는 한 공간에 집약되어 떠나감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김초혜는 「사랑굿 117」에서 “가을빛 속에/가득한/그대 목소리/설움으로/엉기어/멀어져 가네//괴로움도/기쁨도/그리움만 자라게 해/아픔 마음/세상에/들키고 말았어라//모든 걸/또 감추고/눈감고서도/그대를/벗지 못해/아득하여라” 그녀에게 가을은 사랑의 목소리가 설움으로 엉키어 괴로움과 기쁨도 그리움이 되어 멀어져가지만 그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을.
문정희는 「가을 노트」에서 “나의 가을은/조금만 건드려도/우수수 몸을 떨었다//못 다한 말/못 다한 노래/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중략) 사랑한다는 것은/조용히 물이 드는 것/아무에게도 말 못하고/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녀에게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몸서리치며 지고 있는 사랑이지만 정작 못 다한 말과 노래를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못하고, 앙상한 뼈로 남아 홀로 흔들리는 슬픈 심층을 보여준다.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김초혜가을의 시」 전문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어
 
천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을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오래도록 못 잊을
사람 하나 살고 있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아서
 
맑고 투명한 햇살에
그리움을 말린다
 
문정희유리창을 닦으며」 전문


우리는 소멸된 사랑을 소유할 수 없지만 소진되지 않는 기억으로 남길 수 있다. 이렇게 억압된 사랑은 기억이 투과하며 대상을 그려내는 그림자다. 실체로부터 연원하는 그림자의 출현은 상상계에서 절실히 보고 싶어 하는 마음 또한 실재했던 대상이 그려내는 음영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하는데, 그리움을 통과한 그림자는 ‘있는 대상’의 형태가 클수록 많은 ‘그리움의 면적’을 차지한다. 사랑이 휘발된 ‘내면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없는 대상’의 공백이 클수록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사라진 대상의 미련과 후회. 그리고 미안함과 죄책감과 비례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남긴 그림자를 김초혜는 ‘묵은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자신을 흔들고, 자신의‘허둥대던 세월’에 관여한다고 믿는다. 헤어짐을 통해 우리는 “안 보이던/내가 보이” 듯 보이던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은 더 많이 외로워진다는 말이다. 그녀의 사랑의 끝에는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무상이” 존재하는 바, 이것은 지워지지 않는 ‘서정의 장력’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그리운 날, 문정희는 ‘창을 닦는’데 그 창에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다. 이 창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경험하게 한 환희다. 아직도 그녀에게 사랑은 잊혀지지 않는 바,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그 사랑은 자신이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림자조차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서 잊지 못할 그녀의 가슴에서 거주한다. “맑고 투명한 햇살에/그리움을 말”리는 그녀의 사랑은 ‘낭만의 환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그녀들이 기록하는 사랑은 희극을 비극으로, 비극을 희극으로 생성하면서 ‘서정과 낭만의 언어’가 교차하는 ‘연금술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권성훈
2002년 문학과 의식》 시부문, 2013년 작가세계》 평론부문 신인상에 당선시집 󰡔유씨 목공소󰡕 외 2권과 평론집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정신분석 시인의 얼굴󰡕󰡔현대시 미학 산책󰡕󰡔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와 편저 󰡔이렇게 읽었다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등이 있음젊은 작가상열린시학상한국예술작가상인산시조평론상 수상.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상현재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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