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주체철학의 부정,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존재에 대한 무한 긍정과 진정한 자유를 위한 민주정치 역설(현대성에 영향)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15조회수36 목록 댓글 0| 근대철학은 주체와 진리를 중심으로 존재론과 인식론의 측면에서 윤리학을 펼쳤다. 신에서 벗어난 근대인들이 그 만한 윤리적 근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성격을 엄 격하게 규정해야 했다. 그리하여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고, 윤리학을 주체 중심화시켰다. 그러한 윤리학이 주체철학의 부산물로 여겨지는 등 철학에서 도외시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제에 의해 인식되는 객체들은 주체에 의해 포섭되고 지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근대철학의 경향을 거부하고, 실체와 양태가 하나라는 일원론적 관점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 됨의 근원이 '신(또는 자연)'이라는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는 주체철학의 부정인 동시에, 윤리학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존재에 대한 무한 긍정과 진정한 자유를 위한 민주정치를 역설한다.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은 윤리학의 필연적 귀결이었을까. (요약) ㅇ신과 자연 만물의 관계에 있어서의 신을, 자연과 독립된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자연과 합쳐지는 '내재적 immanent' 원인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내재적 원인으로서, 끊임없이 양태들을 낳는 실체를 스피노자는 '능산적 자연(생산하는 자연)'으로 이해한다. 이 실체가 무한히 변용되어 나타나는 수많은 양태들, 즉 세상의 모든 자연 만물들은 '소산적 자연(생산된 자연)'이다. ㅇ 개체는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본질에 고유한 "활동 역량"(Potentia)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활동 역량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conatur)'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력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코나투스(Conatus)다. 코나투스가 인간의 정신에만 관계될 때, 그것은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신체 모두에 관계될 때, 그것은 '욕구'가 된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욕구는 인간의 본질이다. ㅇ 정신의 활동 역량이 감소될 때, 코나투스는 더 낮은 상태의 완전성으로 이행하며 스피노자는 이를 슬픔(tristitia)이라 부른다. 반대로 정신의 활동 역량이 증가할 때, 코나투스는 더 높은 상태의 완전성으로 이행하며 스피노자는 그것을 기쁨(laetitia)이라 부른다. ㅇ 코나투스의 증감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 상태를, 스피노자는 정서(affectus)라고 부른다 ㅇ 결국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은, 정서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덕과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욕망을 가진 인간들'이다. (본문) 1. 개요 철학자들의 왕. 신학으로부터 철학을 구출해 낸 철학의 그리스도 (질 들뢰즈) 그대는 스피노자주의자거나 아예 철학자가 아니다. (헤겔) 네덜란드의 유대인 철학자. 데카르트와 홉스의 영향을 받은 대륙의 합리론자로서, 정신과 물질은 하나의 동일한 실체라는 '평행론'을 주장했다. 2. 생애 스피노자의 조상은 포르투갈 유대 세파르딤 혈통으로서 유럽의 종교개혁기에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포르투갈을 떠나 그나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을 한 집안이었다. 뒤늦은 정착에도 아버지의 사업은 성공하여 네덜란드 유대인 사회 내에서 꽤 자리를 잡았었다. 그후 아버지는 일찍 사망하게 되지만, 젊은 스피노자는 아버지 사업의 후계자로 인식되고 있었고 학문적으로도 뛰어나 랍비가 될 재목으로도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을 부정하고 유대교 교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24세에 파문을 당해 유대교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되었다. "그는 낮에도 저주받고 밤에도 저주받을 것이다. 잠잘 때도 저주받고 일어날 때도 저주받을 것이다.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인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항상 그의 죄에 노여워하실 것이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를 덮쳐 그의 이름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1656년 7월 27일, 스피노자가 유대교회의 종교의식에 따라 파문되었을 때, 파문 문서 내용 중에서... 이러한 파문과 함께 유대교 사회는 유대인이 그와 교제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였다. 스피노자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려는 한 광신자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스피노자는 살아남았다. 이후 스피노자는 잠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렌즈 깎는 기술을 배운 뒤 부터는 하숙집 다락방에서 은거하면서 렌즈갈이를 직업 삼아 소박한 생활을 보냈다. 당시 렌즈는 막 꽃피던 근대과학 초창기의 인기 품목이었던 현미경이나 망원경에 쓰이는 핵심 부품이었다. 때문에 스피노자에게 렌즈 가공은 생계 유지 수단인 동시에, 광학(光學)에 대한 그의 과학적 관심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스피노자는 하위헌스 원리로 유명한 천문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등과도 교류를 나누기도 했다. 유대인 사회와는 단절이 되었고 가족도 그와 연을 끊었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삶은 아니라서, 여러 친한 친구들이 있었고 스피노자 연구 모임이 있을 정도로 사상적인 팬들도 있었다. 생계도 렌즈 가공만으로 유지된 건 아니고 친구와 지지자들이 연금 형식으로 보낸 돈도 많은 보탬이 되었기에, 풍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에 시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렌즈 가공을 하고 남는 시간엔 책을 읽거나 철학을 연구했고 친구들이나 다른 질문자들과 서신을 주고 받는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또한 하숙집 주인 가족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고 온화한 철학자로서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다만 그의 철학은 상대적으로 관용적이었던 네덜란드에서조차 위험했기 때문에 그의 책이 떳떳하게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신학정치론』은 익명으로 출간되었으나 큰 논란을 일으켰고 그의 대표 저서인 『에티카』는 출간을 시도하다 포기하여 사후에 출판되었다. 생전에 그의 이름으로 출간한 책은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가 유일하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데카르트 철학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 책을 저술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는 이 책을 통해 데카르트 전문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고, 독일 팔츠 선제후국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로 초빙을 받기도 하였으나, 한달 정도 고민하다가 거절한다. 이 때 쓴 사양하는 편지도 유명하다.[1] 그는 4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사망했다. 이를 두고 렌즈를 가공하면서 생기는 유리가루를 많이 마셨던 것이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아버지와 형도 폐질환으로 사망한 것을 토대로 가족력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말년에 그는 자주 아팠기에 스스로의 죽음을 예상했는지, 재산을 정리해 놓았다고 한다.[2] '죽음 앞에서의 공포는 필연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다'는 그의 철학을 스스로 증명하기라도 하듯, 죽는 날 당일에도 평소처럼 닭고기 수프를 맛있게 먹고 친구인 의사와 하숙집 주인과 잡담을 나누기도 하다가, 저녁 때 보니 죽어 있었다고 한다. 3. 사상 3.1. 실체와 신 스피노자는 기존의 스콜라철학의 개념들과 데카르트 철학, 그리고 근대의 기하학적 방법을 십분 활용하여 철학의 첫번째 원리인 '실체'를 정의한다. 실체는 자신 안에 있고 자신에 의해 인식되는 것, 즉 자신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서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양태는 실체의 변용(변화한 모습)으로,[3] 다른 것 안에 있고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되는 것, 즉 자신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서 다른 것의 개념이 필요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웃음은 얼굴을 필요로 하므로 양태이다. 얼굴의 변화한 모습이 바로 웃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굴이 실체인가? 그렇지 않다. 얼굴은 몸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얼굴 역시 양태이다. 그렇다면 몸이 실체인가? 그렇지 않다. 몸은 또다시 자신의 존재를 위해 다른 여러 것들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최초의 근본적인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4] 그것이 바로 '실체'이다. 이 실체는 '자기가 자기 존재의 원인' (Causa Sui)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5] 스피노자는 기존 스콜라철학자들이 논의한 바와 같이, 이 유일한 실체가 영원하고 무한하다는 점에서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6] 즉, 유일한 실체는 신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 실체의 무한한 변용으로부터 무한한 양태들이 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실체는 양태들과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실체가 독립적인 것이라면, 실체는 (그것으로부터 독립된) 양태와 상호작용을 할 때 모순이 생길 것이다.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다른 개념에 의존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개념에 의존하다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실체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가 독립되어 있다'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모순이다.[7] 이는 마치 '둥근 사각형'을 말하는 것과 같아서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세계관처럼, 독립된 존재로서 인간세상에 개입하는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을 믿는 것은 단지 '미신'에 불과하다고 스피노자는 주장한다.[8] 따라서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 만물의 관계에 있어서의 신을, 자연과 독립된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자연과 합쳐지는 '내재적 immanent' 원인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내재적 원인으로서, 끊임없이 양태들을 낳는 실체를 스피노자는 '능산적 자연(생산하는 자연)'으로 이해한다. 이 실체가 무한히 변용되어 나타나는 수많은 양태들, 즉 세상의 모든 자연 만물들은 '소산적 자연(생산된 자연)'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본다면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이라는 구분은 임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소산적 자연인 양태 또한 그 자신의 내재적인 힘에 의해서 끊임없이 또 다른 양태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즉, 실체는 자연 만물이라는 수만가지의 다양한 양태들로 표현되면서도, 그들 양태 각각 모두는 다른 양태들을 산출할 수 있는 내재적 원인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체인 신과 (그 신의 양태인) 자연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신은 자연 만물을 산출하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 산출된 결과이므로, "신은 곧 자연" (Deus sive Natura)이다.[9] 데카르트는 실체를 '신, 정신, 물질'이라고 정의했지만,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실체는 오직 '신' 하나뿐이며, '정신과 물질'은 그러한 신에서 산출된 양태의 '속성'이다. 즉, 서로 다르게 보이는 이 '정신'과 '물질(신체)'이라는 속성들은, 사실 하나의 실체를 가리키는 것일 따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밧줄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 이에 대해 '이 밧줄의 길이는 10미터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이 밧줄의 무게는 10킬로그램이다'라고 말한다. 이때 우리는 두 사람이 동일한 밧줄에 대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0] 즉, 두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말하든, 그들은 동일한 밧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피노자가 인간의 '사유(정신)'와 '연장(물질)'을 말할 때, 그것은 동일한 존재(실체)에 대해, 각자 자신의 속성에 해당되는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 속성은 하나의 동일한 질서와 연결에 따라, 서로를 각각에 대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관념의 질서와 연결은 사물의 질서와 연결과 동일하다"고 말한다.[11] 이렇게 정신이 움직이면 똑같은 질서에 의해 물질인 신체도 움직인 것이라고 보는 스피노자의 실체 이해를 평행론이라고 일컫는다.[12] 정신에 기반한 '이성'과 신체(물질)에 기반한 '욕망' 역시, 같은 질서에 의해 똑같이 움직이므로, 스피노자 철학에 있어서 이성적인 것은 욕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3.2. 역량과 코나투스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모든 것의 최초 원인을 찾아가는 일이라면, 반대로 모든 것은 이 실체라는 최초 원인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모든 개체는 이러한 인과적 질서의 무한한 연쇄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로서 스피노자 사상을 특징짓는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모든 개체는 인과관계에 의해서 필연적이라는 것. 따라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 스콜라 철학자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생각한다. 만약 인과적 자연법칙이 인간에게만 예외적이라서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지닌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국가 속의 국가'(Imperium in Imperio)처럼 한 국가 안에서 상반된 두 개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혼란만 가져오기에, 자연의 법칙은 인간과 인간 외의 것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스피노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처럼 유한한 모든 개체들이 단지 신의 필연적 변용일 뿐이라면, 인간들이 느끼는 자유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오로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만 존재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신만이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오직 신만이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인간 존재가 어느 정도까지는 부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것은, (우리의 필연적인 활동 역랑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자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13] 이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관계가 비록 인과의 필연성에 의해 한계지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에서 '무엇을 지켜낼 것'인지의 자유[14]는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개체 내부에 그러한 역량이 없다면 개체는 곧 분리되어 없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따라서 개체는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본질에 고유한 "활동 역량"(Potentia)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활동 역량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conatur)'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력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코나투스(Conatus)다.[15] 코나투스가 인간의 정신에만 관계될 때, 그것은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신체 모두에 관계될 때, 그것은 '욕구'가 된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욕구는 인간의 본질이다. 스피노자는 물체에 있어서의 이 역량을 '운동과 정지'의 관계로 이해함으로써 개체의 발생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물체(연장)에는 운동과 정지 외에 다른 변용이 없다. 모든 물체는 '운동과 정지의 일정한 비율'일 뿐이다." 즉 모든 개별 물체의 발생과 변화를 설명하는 내적 원리는 '운동'에 달려 있으며, 자연 만물은 그 자체 내에 제각기 특정한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유지하려는 역동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16]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도출된다. 여러 물체들이 합성되어 만들어지는 복합물체는 그 운동과 정지의 메커니즘이 좀더 복잡하다. 각 부분들이 서로에게 자신의 운동을 전달하는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운동하면서도 그들의 합인 전체는 그 개체가 가지는 고유의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유지할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물체들이 서로 통일된 하나의 개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7] 각 부분은 전체 개체의 본성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고, 어떤 때는 느리게, 어떤 때는 빠르게 움직이며, 그리하여 자신의 운동을 다른 부분에 더 빠르게 또는 느리게 전달한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생물)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특정 부분을 빠르게 움직이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것과 같다. 즉, 복합물체가 물체로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것의 부분들이 서로 상호작용함으로서 '운동과 정지의 비율'의 이러한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의 통일된 개체가 다른 통일된 개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을 포함하는 더 큰 개체의 부분이 되어 계속해서 이렇게 무한히 확장해 나간다면, 우리는 자연 전체가 하나의 개체(유기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부분들은 무한한 방식으로 변화하지만 전체로서의 개체에는 아무런 변화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3.3. 인식과 정서 인간의 신체 역시 서로 인과관계를 가진 무수히 다른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체들의 이합집산에 따라 인간을 이루는 개체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거나 상실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무수히 많은 '개체'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앞선 '평행론'을 적용시키면,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질서와 연결은 고스란히 인간의 '정신'를 구성하는 질서와 연결에 적용된다. 정신과 신체는 한 실체의 두 가지 표현 방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은 서로 다른 여러 '관념'의 '집합'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 서로 다른 관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이러한 관념들의 인과관계 질서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할 것이고,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우리가 '적합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적합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은, 우리 인식의 대부분이 원인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부분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라고 스피노자는 지적한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스피노자는 우리 신체에 가해진 외적 자극의 관념을 '이미지 image'라고 정의한다.[18] 외부 자극은 신체에 '흔적'을 새기는데, 이러한 흔적들에 대한 관념이 바로 이미지인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것과 함께 형성한 다른 이미지와 관념의 연쇄로 이어지면서 일종의 '기억'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 자극이 주어지는 우연적인 순서대로, 그리고 그 이미지와 동시에 발생한 다른 이미지도 함께 새겨지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가 신체에 새겨지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군인은 모래밭의 말 발자국을 보고 곧장 말, 기사, 전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농부는 말 발자국을 보고 쟁기와 밭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각자가 사물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연결하도록 습관화된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각자가 외부 사물로부터 제각기 다른 부분을 받아들여 부분적으로 사유를 구성했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므로, 스피노자는 이러한 인식을 '부적합한 인식'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외부의 자극에 따른 이미지는 나의 활동 역량인 '코나투스'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킨다. 코나투스는 질병, 상해, 쇠약 내지 유사한 요인들에 의해 감소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운동, 영양공급, 교육 내지 수많은 긍정적 영향에 의해 증가될 수 있다. 물론, 감정적인 요인도 여기에 포함된다. 여기서 정신의 활동 역량이 감소될 때, 코나투스는 더 낮은 상태의 완전성으로 이행하며 스피노자는 이를 슬픔(tristitia)이라 부른다. 반대로 정신의 활동 역량이 증가할 때, 코나투스는 더 높은 상태의 완전성으로 이행하며 스피노자는 그것을 기쁨(laetitia)이라 부른다. 즉, 우리는 자신의 역량이 증가하면 기쁨을 느끼는 반면, 역량이 감소하면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은 기쁨을 추구하며 슬픔은 멀리하게 된다. 이렇게 코나투스의 증감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 상태를, 스피노자는 정서(affectus)라고 부른다.[19] 우리 신체는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들을 때면 매우 편안하고 충족된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우리는 강도를 만나면 잔뜩 겁을 먹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신체가 외부와 마주하는 방식에 따라 기쁨, 슬픔, 욕망, 분노, 공포, 불안, 연민, 증오, 후회, 질투 등등의 수없이 많은 '정서'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에게 수없이 많은 정서들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코나투스의 증감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에 따라 '욕망', '기쁨' 및 '슬픔'의 세 가지 기본 정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수많은 정서들을 '욕망', '기쁨', '슬픔'의 세 가지 기본 정서로 분석함으로써, 그가 윤리학에서 코나투스에 따른 정서 분석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3.4. 적합한 인식과 공통 개념 그렇다면 인간은 수많은 마주침에서 자신의 코나투스를 증대시켜줄 수 있는 '기쁨'의 정서만 찾으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서는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간에,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외적인 마주침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수동적인 정념(passion[20])에 불과하다. 우연적이고 외적인 마주침에서 생겨나는 '정념'에 따를 경우, 서로가 대립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분쟁과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정념에 의해서는 동일한 사람조차 변하기 쉽고, 심지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보더라도 해로운 것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판단을 결정짓는 것은 자신의 이성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마주치게 된 다른 외적 원인들이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으며, 외적으로 야기된 정서의 공세에 맞서 자신을 내세울 모종의 활동 역량(코나투스)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매우 빈번하게 정서를 야기하는 외부 영향은 종종 우리의 능동적인 역량보다 더 강하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느낌, 정서 혹은 행동들을 제어하지 못한다. 정념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기에 스피노자는 이러한 상태를 예속이라 정의한다. 예속을 극복하는 길은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태도로 우리 자신의 '활동 역량'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확장시키려는 데에 있다.[21] 그리고 그 활동 역량의 확장은 자신의 능력으로 설명되는 관념을 갖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즐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전거 타기를 배워야 된다. 즉, 자신이 실제로 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실천적 관념을 직접 소유함으로써, 자신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여러 적합한 시도들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경우에 그가 자전거와 부딪쳤던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자전거는 단지 기분상하게 하는 물건일 따름이어서 우리의 활동 역량을 증대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설명되는 관념을 갖기 위해서는 '적합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정념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그 감정과 상황의 원인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그 사물의 존재 자체의 원인을 정확하게 그리고 적합하게 인식할 때,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상당히 누그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적인 상황에 대해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모든 사건을 원인과 결과에 따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사물들을 그 자체로 인식할 것이며 그것들에 대해 정서적으로 덜 동요하게 될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적합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가? 그것은 외적 자극에 의해 우연하게 파악되는 이미지의 인식[22]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코나투스에 관한 것이므로, 사물의 '내적 원인'에 대한 인식이어야 한다. 게다가 우리의 코나투스가 증가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반대되는 힘이 아니라 우리와 공통의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는 곧 많은 사물을 동시에 명료하고 뚜렷하게 관찰하여 사물의 '내적 원인'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공통적인 것에 대한 관념을 공통 개념이라 부른다.[23][24]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능동적인 역량인 '이성적인 인식'을 통해서 이러한 내적 원인의 공통 개념을 찾을 수 있다.[25] 3.5. 사회와 행복 스피노자는 윤리에 관하여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선이거나 악인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고 악일 수 있으며, 또 양자와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고, 슬픈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또한 신은 선한 자나 악한 자에게 동일하게 해를 비추며, 불의한 자나 의로운 자에게나 동일하게 비를 내려준다.[26] 그러므로 선악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서 주관적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어떤 것이 우리의 활동 역량(코나투스)을 증가시키면, 우리는 기쁨을 경험하고 그것을 '선'이라고 하면서 그것에 의해 더욱 변용되기를 원할 것이다. 반대로 어떤 것이 우리의 활동 역량을 감소시킨다면, 우리는 슬픔을 경험하고 그것을 '악'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원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은 이러한 선악의 윤리를 바탕으로 더 큰 역량, 활동성, 기쁨 및 자유을 위해 나아가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스피노자의 이러한 주장은 매우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들 사이에 분쟁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스피노자는 인간 본성상 '일치하는' 방식으로 관계맺는 것과,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는' 방식으로 관계맺는 것을 구분함으로써 사회를 정의한다. 우리가 공통적인 부분을 가지고 어떤 것의 본성을 우리와 일치한다면 그것은 본성상 우리와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과 일치하는 한,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선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관계에 있어서 그만큼의 역량이 증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사물이 본성상 우리와 공통적인 것이 많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러나 정념의 지배를 받는 한, 인간 존재는 어떤 것을 본성상 일치시킬 수 없다. 정념은 우리 자신의 본성보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수많은 사물들의 자극을 더 많이 반영하므로, 우리는 그 사물들의 자극이 우리의 본성이라 착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념이라는 정서에 의해 갈라지는 한, 사람들은 각기 처한 정념의 상황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서로 대립하게 된다. 반대로 이성의 지도에 따라 유덕하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본성상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성의 지도를 따른다면, 그들은 실로 자신들의 인간 본성에 좋은 것을 추구할 것이고, 결국 그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 개념'과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일치하는 것이 많을수록 그것은 우리에게 더욱더 유익해질 것이므로, '이성의 지도로 살아가는 다른 인간 존재'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한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타인과의 협동과 유대를 통해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획득한다. 즉, 그는 이성의 힘에 의해 능동성을 띠게 되는 코나투스(욕망)를 논의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개인의 활동 역량의 확장과 증대를 위한 사회의 구성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 마음맞는 두 사람의 역량이 합치면 더 큰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협력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에게 매우 유익하다. 사람들은 사회를 조직함으로써 위험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유지하는 데 더 안정적인 조건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힘만으로 해낼 수 없었던 많은 새로운 일들이 가능해진다. 결국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은, 정서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덕과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욕망을 가진 인간들'의 사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자유와 활동 역량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자신들의 내적인 역량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스스로를 좀더 유능하고 풍요롭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동시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우애로 결합하고자 하며, 호의와 친절을 베풂으로써 서로의 기쁨을 증대시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서로 일치하고 협력함으로써 자신들을 좀더 유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덕'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치의 역량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홀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협력하여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더욱 자유롭다.[27] 4. 논쟁 4.1. 스피노자의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를 배제하는가? 절대적 필연을 인정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어떻게 윤리를 말할 수 있는가는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다. 결정론에서는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마땅히 따라야 할 윤리'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즉,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선택할 자유도 없다면 윤리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스피노자의 생각은 '인간이 선택은 할 수 있지만, 사건은 이미 상황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비행기 사고에서 우리는 살기위해 안전벨트를 매거나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거나 몸을 굽혀 머리를 보호하거나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는 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력을 거스르고 맨몸으로 하늘을 걸어다니거나 한손으로 비행기를 멈춰 세우는 등은 할 수 없다. 모든 사건은 원인에 따른 상황에 종속된다. 그 상황이라는 한계 속에서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선택의 결과마저도 자신의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선택 이후에도 인간 행위의 결과들 역시 상황들에, 즉 그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고 그 자신이 온전하게 인식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그러한 상황들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 인간의 바람에 달려 있지 않다.[28] 이와 같은 논리로 인간이 그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치더라도, 우리가 윤리적 행동을 '굳이'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성을 통해 필연성의 원인을 이해하는 선택만이, 우리의 코나투스를 '능동적'으로 증대시켜주기 때문이다. 즉, 그 선택은 상황을 바꾸진 못하지만, 그 선택은 코나투스의 증대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그래서 '이성의 계명들'(dictamina rationis)이 필요하다.[29] 5. 영향과 평가 스피노자의 저서들은 교황청에 의해 전부 금서로 지정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체제 전복적이라고 간주되었고, 스피노자의 견해를 반박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긍정적인 방향에서 그의 사상에 감히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동시대의 저술가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스피노자의 사상을 존경했으며 그의 생전에도 그의 저서에 대해 함께 논의했던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그의 『유고집』 출간을 준비했던 친구들이었다. 대개는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당국의 감시를 피해, 그들은 스피노자 사후 몇 년간 스피노자주의의 씨앗을 계속해서 확산시켜 나갔다. 대부분은 『신학정치론』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계시 종교와 기존 종교 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논의에 근거로 제시되었다. 『에티카』에서의 논증은, 내재적 신, 결정론적 세계 및 자연주의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어 자유사상가 집단 사이에 수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물론 주류가 아니었지만, 스피노자의 사상은 17세기 후반 근본적 사유의 은밀한 흐름에 자양분을 공급했다. 어쨌든 스피노자의 사상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고, '스피노자주의'는 체제 전복적 무신론을 가리키는 비난의 용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피노자의 사상은 유럽 전역에 퍼져서 '급진적 계몽 운동'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30] 은밀하지만 널리 확산된 이 운동은 계시 종교와 교회 권위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정치권력, 시민 평등 및 심지어 성 역할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사유의 자유를 고취시켰다. 조나단 이스라엘(Jonathan Israel)은 이러한 '급진적 계몽운동'을 더 친숙하고 고귀한 프랑스 계몽 운동의 발전에 있어서, 그리고 근대성 자체의 지적 토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기초 자료를 상세하게 독해할 경우, 적어도 내가 보기에,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스피노자와 스피노자주의가 사실은 모든 곳에서, 즉 네델란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및 스칸디나비아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유럽 급진적 계몽 운동의 지적 중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그 당시는 물론이고 그 시대에 대한 역사가들의 설명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더욱이 이 집단의 사람들의 저서에서 『에티카』나 『신학정치론』의 고유한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스피노자라는 이름과 관련있는 두 명의 다른 철학자들, 즉 라이프니츠와 베일에 관한 한, 상황은 전혀 다르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보다 어린 동시대 사람으로, 광학에 관해 스피노자자와 서신을 교환했다. 그는 1672년에 파리에 살면서 스피노자의 친한 친구가 되었고, 스피노자의 신망을 얻었으며 아직 출간되지 않은 『에티카』 일부의 원고 사본을 가지고 있던 치른하우스라는 이름의 동료로부터 스피노자의 사상을 더 상세히 배우고자 했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가 죽고 유고집이 출간되자마자 그 복사본을 곧바로 읽었다. 그는 이 사상이 위험할 것으로 생각되는 사상들의 혼합물이라고 한 친구에게 말하기도 했다. 라이프니츠는 결코 스피노자주의자가 아니었지만, 형이상학적 숙고를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스피노자의 급진적 사상에 상당히 가깝게 다가섰다. 예를 들어, 베더코프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를 보면, 라이프니츠는 완벽한 필연론을 수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훗날 그는 그의 이러한 견해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창조에 대한 그의 설명은 위험하게도 그러한 결론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했다. 말년에, 기독교의 독단적 교의와 기독교의 미스테리를 철학적 비판의 공격으로부터 구하는 자신의 과업에 점차 헌신하게 되면서, 그는 오히려 스피노자와 그의 학설에 대한 초기의 열정적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그럼에도,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켰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이 악명 높은 급진적 사상과 지나치게 가깝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에티카』의 입장에서 종종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로테르담에서 살았던 피에르 베일은 17세기 후반 가장 독자층이 넓었던 저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저서는 여전히, 심지어 오늘날 까지도 논의되고 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를 바로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흥미롭지만 난해한 방식으로 그가 저술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 대한 베일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첫째로, 1697년 『역사적 비평적 사전』을 출간하였으며, 거기에는 스피노자의 삶과 사상에 관한 매우 긴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그 항목은 스피노자의 역설적 사상을 반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주로 『에티카』를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수많은 독자들에게 스피노자의 체계를 더 잘 알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스피노자의 영향에 관한 이야기에서 베일이 역할을 맡았던 두 번째 방식은 그가 사전에서 뿐만아니라 그의 초기 저작에서도 제시했던 전기적 설명에서 유래한다. 스피노자는 무신론자로, 확실히, 그러나 '유덕한 무신론자'로 묘사되었다. 무신론자가 공동체에서 관용될 수 있는지에 관해 그 당시에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했던 가정은, 무신론자는 벌을 두려워하거나 사후 보상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서약을 위반하고 거짓 증언을 하면서 공공의 평화와 질서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일은 도덕적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간 무신론자의 예로 스피노자를 들고 있다. 이로 인해 스피노자는 호의적인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무신론자이면서도 덕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예로서, 무신론을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그의 삶이 근거로 제시되고 인용되었다. 18세기 초, 『신학정치론』은 에티카보다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신학정치론』은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및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도처에서 수많은 반박이 제기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에티카』는 라틴어와 네델란드어로만 존재했으며, 비록 원어로 된 『유고집』을 유럽 전역의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에티카』의 내용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지식을 2차 자료, 특히 베일의 『역사적 비평적 사전』에서 얻었다. 보통 이신론자로 확인되는 영국의 몇몇 자유사상가들은 『에티카』의 학설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이들 중의 한 사람인 존 톨랜드는, 『에티카』에서 옹호된 것과 같은, 신과 자연 전체를 동일시하는 학설을 지칭하기 위해 1705년에 '범신론'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비록 '스피노자주의'처럼 거부의 용어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무신론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용어였지만, 이후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적 사상을 약칭하는 방식이 되었다. 『에티카』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스피노자 사상의 생명력 유지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또 다른 사상가에는 앙리 꽁트 드 부렝빌리에가 있다. 그는 『신학정치론』과 『에티카』를 연구함으로써 스피노자주의로 전향했다. 그는 비록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에티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기까지 했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 레기(Regis)의 비판에 맞서 스피노자의 체계를 옹호하는 글을 썼으며 훗날 「형이상학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그 에세이에서 그는 『에티카』의 학설을 매우 간략하게 요약해서 제시하고 있다. 이 에세이는 원고 형태로 돌아다녔지만, 부렝빌리에 사후 9년 째 되던 해인 1731년에, 스피노자를 비판하는 글을 함께 덧붙여 『베네딕트 스피노자의 오류에 대한 반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저서는 프랑스어권 유럽 전역에 스피노자의 사상을 확산시키고 알리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볼테르는 훗날 『반박』에서 부렝빌리에가 '독을 주입하고는 해독제 주입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사상은 프랑스 계몽운동의 자유사상을 신봉하는 철학자들에게 점차적으로, 그러나 끊임없이 침투되어 그들에게 영향력을 과시했다. 스피노자주의와 프랑스 유물론자 라 메트리의 사상 내지 백과전서파 디드로 사이의 중요한 개념적 유사점 외에도, 우리는 루소의 『에밀』에 있는 사부아르 신부의 고백 속에서 스피노자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스피노자 사상은 또한 유럽 전역에서 그리고 심지어 미국에서 발생하는 여러 정치적 논의 속에서 언급되었다. 비록 로크가 미국 독립혁명을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인 주요 원천이긴 하지만, 토마스 제퍼슨의 개인 도서관에는 스피노자의 저작들 ㅡ 『신학정치론』과 『유고집』 ㅡ 이 소장되어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 스피노자의 사상은 크리스찬 볼프의 철학을 둘러 싼 논란의 맥락에서 상당히 자주 논의되었다. 볼프는 할레 대학 교수로, 그의 적대자들에게는 의심을 살만한 정도로 스피노자주의와 유사한 것처럼 보였던 체계적인 형이상학적 견해를 발전시켰다. 그는 1723년 왕의 명령으로 지위를 박탈당하고 추방되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옹호했다. 그의 사상은 사실 스피노자보다 라이프니츠에 더 가까웠지만, 논란에 의미가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볼프에 대한 비난은 스피노자의 견해에 주목하게 했고 원문에 대한 더 진지한 연구를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볼프의 추방을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 성서의 텍스트로부터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것에 대한 모든 언급을 제거할 목적으로 세심하게 만들어진 『베르트하임 바이블』이 요한 로렌츠 슈미트에 의해서 저술되었다. 볼프는 사적으로 슈미트를 지지했으며, 따라서 『베르트하임 바이블』은 볼프 철학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의혹이 만연해 있었다. 적대자들은 이러한 독해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과 그것의 자연주의적 성서 비판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에게서 기대될 수 있는 종류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예상은 맞았고, 슈미트는 1744년 『에티카』의 독일어 번역본을 출간했다. 이 슈미트 번역본의 출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66년 앞서 『유고집』 원본과 동시에 출간된 네덜란드어본 이래 유럽 언어로 처음으로 번역되어 유일하게 출간된 『에티카』 번역본이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에티카』 독일어 번역본은 수 세대에 걸쳐 독일의 철학자들에게 스피노자 체계를 소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고트홀드 에프라임 레싱은 시인, 극작가 비평가 및 독일 계몽주의 시대에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종교적 관용과 사상의 자유 지지자였던 그는 이러한 주제들로 대중적이고 시대에 어울리는 고전적인 희곡을 썼다. 그 또한 볼프 철학을 포용하면서 전통적 신앙을 고수했던 모제스 멘델스존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레싱 사후, 철학자이며 서로 아는 친구인 야코비는 멘델스존에게 레싱과 가졌던 대화에 대해 말해주었다. 레싱이 스피노자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그에게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멘델스존은 자신의 친구 레싱이 스피노자식 범신론이라는 오명으로 기억되는 것을 원치않았고 그 둘 사이에 논쟁이 펼쳐졌다. 멘델스존은 스피노자주의가 아니었고 전통적인 종교를 옹호했지만, 종교에서 이성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한에서 스피노자를 지지했다. 하지만 야코비는 이성은 스피노자의 신 이외의 어떠한 신으로도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없으며, 그리고 이러한 철학자의 신은 전혀 진정한 의미의 신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의 필사의 도약'으로 이성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범신론 논쟁으로 불리는 것으로, 사상계는 도처에서 격렬한 찬반 논의가 벌어졌으며, 이를 통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스피노자의 사상의 철저한 검토와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가장 열정적인 스피노자 지지자들 중에는 그 당시 가장 중요한 독일 작가인 괴테가 있다. 잘 알려진 몇몇 구절에서 그는 스피노자의 유고집을 읽었을 때의 갑자기 밀려들었던 숭고한 느낌을 표현하기도 했다. "스피노자의 고요함은 전방위적인 나의 노력에 대비되어 부각되었다. 이를테면 그의 수학적 방법은 관찰과 묘사의 나의 시적 방식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도덕적 주제에 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그의 형식적 처리방식이 바로 나로 하여금 열정을 가지고 그에게서 배우게 했던 것이며 그를 더욱더 칭송하게 만든 것이다." 괴테에게 영향을 받았던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몇몇 구성원들은 스피노자 철학의 여러 가지 측면을 받아들였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람은 초기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일 것이다. 그는 스피노자를 무신론자로 간주했던 기성 세대의 견해를 뒤집어 버렸다. 반대로 노발리스는 스피노자가 "신에 취한 사나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칸트 이후의 독일 관념론자들에게 스피노자는 큰 영향을 끼쳤다. 헤겔과 셸링은 모두 스피노자에 대해서 대단히 긍정적으로 서술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헤겔은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헤겔은 스피노자의 입장을 필연적 출발점으로서는 받아들였지만, 결국 수용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의 관점에서, 그는 스피노자의 실체가 자기-의식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이러한 재평가는 주목할만 하다. 한때는 그의 사상이 반박의 목적으로만 언급될 수 있었지만, 그는 이제 근대의 가장 중요하고 훌륭한 철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재평가는 주로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대륙을 가로질러 영국으로도 확산되었다. 영어권 나라들에 스피노자를 새롭게 소개한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는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였다. 콜리지 덕분에 스피노자 사상은 낭만파의 워즈워스와 그 밖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스피노자에 첫 번째로 열광했던 사람들이 시인들이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예를 들면, 콜리지도 워즈워스도 스피노자 철학 체계의 각론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신과 자연의 동일시에 의해 영감을 받았고, 기하학적 설명에 강한 흥미를 느꼈으며 스피노자의 단순하고 유덕하고 지적으로 풍부한 삶에 감동을 받았다. 또한 니체가 『에티카』를 처음 접했을 때, "그는 선구자, 진정한 선구자!"라고 선언한 것도 유명하다. 니체는 친구 오버베크에게 흥분된 상태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짧은 편지를 썼다. 프로이트도 스피노자 독해를 진행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베르그송은 스피노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철학자에게 두 명의 철학자가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다." 비슷한 시기에 버트런드 러셀도 스피노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적인 면에서 그보다 뛰어난 철학자들은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그를 따라갈 철학자는 없다." [원문][32] 현대에 들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60년대 후반 마르시알 게루를 필두로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스피노자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질 들뢰즈와 A. 마스롱, 그리고 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안토니오 네그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스피노자 철학은 더 이상 데카르트 철학의 계승이거나 헤겔의 전 단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데카르트 이후 '코기토' 중심의 근대 철학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비근대적' 사유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알튀세르나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스피노자야말로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유물론자다. "그는 신에서 시작했지만, 실제로 그는 무신론자였다. 그는 마치 자기가 자신의 적인 양 거기(적의 사령부)에 자리잡았고, 따라서 그들의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혐의를 받지 않으면서, 마치 점령군의 대포를 점령군 자신을 향해 돌려놓는 것처럼 적의 이론적 요새를 완전히 놀려놓는 방식으로 재배치하였다."[33] 이들에게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삶을 왜곡시키고 파괴하는 모든 초월적 가치와 도덕에 반대하는 '내재성의 철학'(들뢰즈)으로, 그리고 대중 자신의 지성과 능력으로부터 자유의 공간을 확장해나가는 '구성의 정치학'(네그리)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6. 저서 스피노자의 주저인 『에티카(Ethica)』은 '기하학적 질서로 증명된, 그리고 5부로 구성된'이라는 부제가 드러내듯, 정의와 공리들로부터 철학적 정리를 연역해낸다는 기하학적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정해진 역량 내에서 최대한의 적극적인 활동, 그것은 바로 '이성'으로 자신과 사물의 관계 속에서의 '공통감각'을 찾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지복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던 스피노자를 생각한다면, 이성적 방법론에 해당하는 기하학을 윤리에 도입하는 그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에티카』는 국내에도 번역본이 여럿 있다. 하지만 에티카부터 바로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우니 입문서를 먼저 읽고나서 시도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하학적 구조로 작성한 공리와 정의에 관한 기초와 실체와 변양에 대한 개념, 그리고 스콜라 철학에서 자주 보이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의 개념에 대한 기초적인 철학 지식 등의 기본 개념을 충실히 이해한 다음에 에티카를 읽는다면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쉽게 읽는 방법으로는 스피노자가 서술한 모든 정의와 공리들을 암기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각각의 증명들을 보면서 선행적으로 서술된 공리 및 정의들을 참조 및 이해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8. 어록 나는 인간의 행동들에 관해 조롱하거나, 슬퍼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오직 이해하고자 하였다. [35] 희망 없는 두려움도 없고, 두려움 없는 희망도 없다. [36] 나는 기성 종교의 방해자가 되지 않고서 철학을 가르칠 방법을 알지 못한다. [37] 바울이 베드로에 대해 하는 말은, 베드로보다는 바울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38] 훌륭한 모든 것은 이루기 어렵고, 그만큼 귀하다. [39]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활동은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해함은 곧 자유로워짐이기 때문이다. [40] 9. 여담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유독 우리나라에는 알려져 있지만, 근거는 없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사실 델피 신전에 쓰여져 있던 말이고,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그의 전기작가가 한 말이지만, 어쨌든 해당 인물을 대표하는 너무도 유명한 명언으로 각인된 덕분에, 사실이야 어쨌든 그냥 그 사람이 한 말로 치고 넘어가듯이, 스피노자의 저 명언도 그냥 스피노자가 한 말로 치고 넘어가는 분위기. 단, 이는 한국 한정이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마르틴 루터가 한 말로 알고 있다. 물론 마르틴 루터가 처음 한 말도 아니라는 것이 함정. 누가 말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덧붙여 저 말은 대개 '그래도 난 굴하지 않아!'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저 말의 철학적인 진짜 의미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내일 지구는 반드시 멸망하니 의미가 없다. 그러니 필연을 받아들이고 오늘은 오늘 할 일을 하면 된다." 나의 정해진 운명을 미리 알게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41]. 비록 스피노자가 발언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모든 것은 필연이라는 그의 철학관을 잘 나타내 주는 명언이다. 그러니까 고증 타령은 의미 없다는 말 같은 네덜란드인인 렘브란트와 같은 동네에 비슷한 시기에 살았는데 한번도 서로 만난 기록은 없다. 젊었을 적 칼침을 맞은 적이 있다. 스피노자는 파면당한 이후에도 신학과 관련해서 발칙한(?) 이론들을 익명으로 발표하면서 교인들에게 어그로가 끌렸는데[42], 참지 못한 어떤 광신자가 스피노자를 찾아가서 칼을 휘둘렀다. 익명으로 발표하긴 했는데 당시 워낙 스피노자의 이론이 눈에 띄는지라 공공연하게 스피노자가 썼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스피노자는 방어를 잘 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칼을 맞으면서 옷이 심하게 찢어졌는데 스피노자는 "모든 인간이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그 찢어진 옷을 보관했다고 한다. 그의 이론에 흥미를 느낀 저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가 몰래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평생 은거하다시피 살면서 철학을 탐구했지만 여기저기서 오는 편지는 잘 받고 답장을 해주었던 모양. 그의 철학 세계를 알 수 있는 문헌 중에 논쟁을 주고받았던 편지도 상당수 있다. 17세기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책자 《세명의 사기꾼》[43]의 지은이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자는 이슬람교인 및 기독교인, 유대인 등 여러 사람이 쓰고 수정하고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어판은 성귀수가 번역하였고 지은이를 스피노자의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표기했다. 에티카 [모든 고귀한 일은 무릇 어렵고도 드물다] 들뢰즈는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칭했다. 실제로 스피노자가 자신의 생과 글을 통해 보여 준 윤리적 영웅성은 예수의 m.terms.naver.com 에티카 Ethica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저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해설자 최영주(서강대학교 프랑스문화과 강사) 1. 모든 고귀한 일은 무릇 어렵고도 드물다 들뢰즈는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칭했다. 실제로 스피노자가 자신의 생과 글을 통해 보여 준 윤리적 영웅성은 예수의 그것과 비교될 만큼 깊고 강력한 내공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스피노자가 자신의 대표 저서를 '윤리학'이란 뜻의 『에티카(Ehtica)』로 명명한 것은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스피노자는 특이한 철학자이다. 고독과 반항이란 예술가들에게 적합한 용어일지도 모르지만, 끊임없이 현실적 유토피아를 추구했던 이 철학자의 삶에서 우리는 같은 예술적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무관심과 탄압 속에서 스피노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 철학자들이 아닌 괴테, 하이네, 바이런 등의 예술가였다는 점에서도 그의 철학이 예술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는 것은 확인된다. 그는 원하기만 했다면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나 공식 지식인으로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낮에도 밤에도 저주를 받아라"는 말과 함께 유대인 사회에서 추방된 후, 기독교 사회에 동참하는 것조차도 거부한 채,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주관과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용기와 담력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죽기 전 『에티카』의 출판을 놓고 "진리는 주인이 없다"는 말과 함께 책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을 것을 부탁한 겸손함과 자기 비움은 어떤 신념에 근거한 것인가?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렵고도 드물다"는 『에티카』의 마지막 문장은 스피노자의 특별한 사상과 인생을 요약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오랫동안 저주받고 배척당한 그의 이론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0년 후 현실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정착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틈바구니를 아웃사이더만의 독창적인 통찰로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고독이 지향한 것은 진실이었다. 당대의 시공에서는 거의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스피노자의 철학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현실적인 힘을 발휘함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진실이 지닌 그 무한한 파장력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2.비웃거나 탄식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오로지 이해하기를 왜 스피노자의 철학은 그토록 많은 배척을 받았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로 우리는 그의 비판적 자유정신을 들 수 있다. 많은 서구 철학이 권력 체계의 중심부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수행한 데 반해,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다. 스피노자는 평생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권력자들에 대한 반항을 그치지 않았다. 『신학·정치 논고』에서 그는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에티카』는 이러한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에 도달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하여 씌어진 책이다. 스피노자의 자유는 일반적으로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유의지와 성격을 달리한다. 실존주의자들과 이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의지란 인간의 이성적 측면만을 중시하는 데 반해, 스피노자의 자유는 인간의 이성과 신체적·운명적 한계를 모두 통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스피노자는 자유가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과 이해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라서, 인간을 기준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기질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과 두려움에서 불멸에 대한 기대와 종교적 신념이 발생한다. 이러한 인간중심적 사고를 비판하고 주체의 환상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는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 탈근대적인 사상가들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한 성서의 하느님'에는 많은 모순이 있으며, 신은 결코 인격신일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이 지닌 현대성 역시 의미가 깊다. 노발리스는 스피노자를 "신에 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에티카』의 첫 장을 여는 신이란 과연 무엇을 지칭하는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란 기독교의 신도 알라의 신도 아닌 범신론적 신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이 세상을 창조한 초월적 존재라면, 스피노자에게 신은 무한하고 영원한 세상 그 자체이며, 따라서 '신'이란 말 대신 '세상'이나 '우주'를 대입해도 논지가 성립된다. 신에 대한 명상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 스피노자는 이어 전 우주적 차원에서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에티카』 제5장에서 자신이 불멸의 존재이기를 바라는 환상과 자만을 버리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명석·판명하게 인식할수록 인간은 신을 더욱더 사랑하게 된다"고 밝힌다. 요컨대 슬픔, 기쁨, 욕망 등의 감정이 자연, 우주의 질서에 따른 것임을 인지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일종의 운명애를 지니게 될 때, 인간은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 가령 질투와 분노, 탐욕 등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해한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한에서만 증오하고 분노하며, 모든 슬픔과 과오는 결국 무지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신의 본성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타자가 나에게 행하는 여러 악행들이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필연적인 체계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 이를 깨닫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멸, 비난, 증오의 태도는 사라지게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으로 피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했다면, 어떻게 그를 비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는가? 자연 변천에 대한 숙명적인 앎을 보유하고 슬픔과 다른 정념들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우리는 어떤 일이 닥쳐도 평온함을 유지하게 되며, 더 나아가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3. 자유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숙고가 아니라 삶에 대한 숙고이다 서구의 철학 전통은 죽음과 불안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현세를 부정하는 기독교적 철학을 비롯하여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가령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으로 점지된 존재로 규정하면서 죽음을 망각하는 것은 무지와 경박함이라고 보았으며,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권태와 욕구 불만 사이에서 방황하는 허무한 존재로 인식했다. 이에 반해 스피노자는 인간을 예속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신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죽음이 아닌 삶으로부터 인생을 관망할 것을 권장한다. 이와 같은 초인적 열망을 인간적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그가 제시한 지복에 대한 가능성은 사실 많은 철학자들의 반박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헤겔은 스피노자가 유한 세계의 부정성을 무시했다고 비판했으며, 아도르노와 코제브는 그의 철학이 허무맹랑하다고 말했다. 바로 이 점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존재론을 넘어 신비주의의 영역으로 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죽음과 불안, 슬픔과 이별이 실존적 인간조건이라면 어떻게 인간은 행복할 수 있는가? 생존 경쟁과 가식으로 운명지어진 인간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미친 자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죽음의 두려움을 외면하고자 하는 여러 노력들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했다는 주장은 삶의 현실과 모순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죽음과 관련된 생각은 실존적이고 구체적인 우리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며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문화를 구축하는 원동력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우리는 각자 안에 커다른 죽음을 지니고 있다. ··· 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기에 충분할 만큼 늙었다"고 말했다. 즉, 아무리 죽음에 대한 생각을 피하려 해도 우리는 존재론적 원리에 따라 이를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주장이 너무 당위적 성격을 띠기에 오히려 죽음을 직시하라는 하이데거의 분석이 스피노자의 지혜보다 현실적으로 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의 유일한 관심사는 바로 죽음이 아닌가? 돈, 권력, 미, 사랑 등도 그것들이 죽음으로 향한 유한한 시간성의 존재인 인간의 생명을 좀더 연장해 준다는 점에 있어 의미를 지닐 뿐이다. 장켈레비츠는 『죽음』이라는 그의 유명한 저서에서 죽음에 대한 현자들의 외면과 조소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아무리 대단한 현자와 철학자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에 냉정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이성의 힘을 강조하지만 죽음의 두려움과 욕망의 힘은 일반적으로 이성의 힘을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무조건 무시했는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그가 삶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실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물론 우리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삶에 대한 명상만을 할 수도, 하이데거의 말처럼 죽음에 대한 명상만을 할 수도 없다. 우리는 현실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성향이라면 그러한 자연적 본성에서 탈피하도록 노력하는 것에 인간의 위대성이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주장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모든 아름다운 것은 귀하고 힘들다"고 한 『에티카』의 마지막 문장은 죽음에 대한 현자들의 도전을 설명한다고도 볼 수 있다. 즉, 많은 철학자들이 삶의 부정적인 힘과 그 역량을 무시했다고 비난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스피노자 윤리학의 강렬함이 발견된다. 『에티카』는 순수한 긍정에 상응하는 진정한 기쁨의 철학이며, 여기서 그리는 철인은 살아 있음에 전율과 기쁨을 느끼는 적극적 존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무지나 낭만적 광기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유한한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철학자들이 그 사실을 탄식하며 그로부터의 도피를 갈구하는 인간적인 철학을 제시했다면, 그는 이 사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죽음에 도전장을 내밀며 "우리는 어떻게 긍정적으로 될 수 있는가?" 하는 영웅적인 화두를 던진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외부적 요건에 의해 스스로가 파괴되는 것을 방치하고 정념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다. 그리고 이 사실은, 왜 인간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나쁜 것을 선택하는지, 왜 정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지, 왜 비극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지를 설명해 준다. 인간은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학, 증오, 파괴에서 느끼는 쾌감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자유 상태가 요구하는 위험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 노예 상태를 자발적으로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티카』는 이러한 본성적 수동성에도 불구하고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보다 강하므로 "증오는 사랑과 어진 마음으로 물리쳐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이성의 힘으로 파토스적 예속에서 에토스적 자유로 나아갈 것을 독려한다. 모든 슬픈 수동들은 어떤 경우에라도, 사회적으로 유용할지라도 나쁘며 폭정을 내포한다는 스피노자의 주장을 발전시킨다면, 사랑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사랑은 외적 원인에 대한 앎을 동반한 기쁨이며, 증오란 외적 원인에 대한 앎을 동반한 슬픔이다. 즉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너로 인해 내가 더 완벽해진다", "너는 나를 기쁘게 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만 "행복한 사랑은 없다"는 아라공의 유명한 시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설과 소설은 사랑의 비극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스피노자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과 소유욕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불행하다. 그렇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타자가 다른 이성을 사랑한다거나 내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에서 슬픔을 느낀다면 그 사랑은 결국 자기애나 자기 연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을 소유와 이기적 정념이 아닌 자유와 행복의 가능성으로 파악한 스피노자의 사랑론은 소외와 고독의 문제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4. 개별적인 사물들을 더 많이 파악할수록 신을 더 많이 인식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존재론적 폭력과 전쟁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긍정과 기쁨이다. 기쁨이란 "인간이 덜 완벽한 상태에서 더 완벽한 상태로 발전되어 가는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며 슬픔은 이와 반대되는 정서이다. 기쁨 자체가 선이라는 이러한 주장 역시 희생을 동반한 고통을 윤리적으로 우수한 감정으로 생각하는 서구의 도덕주의와 기독교 전통에서 매우 낯선 것임이 분명하다. 기독교 전통이 희생과 겸양의 미덕을 강조했다면,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활동 능력에 대하여 생각하는 데서 생겨나는 기쁨"인 자기만족이 진정한 최고선이라는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또한 선과 악은 사회 규범적 가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단순한 도덕적 순종을 넘어서는 보다 적극적인 개인적 윤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전체와 보편성에 우선권을 두었던 여느 철학자들과 달리 그가 개인의 특수성을 강력하게 옹호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윤리학의 중심에는 살아있는 구체적 존재가 있다. 스피노자에 있어 개별적인 인간은 전체에 종속되어야 할 보잘것없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신의 일부분이며 무한한 실체를 부분적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에티카』는 개별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요, 부분은 전체를 통해서 전체는 부분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신적 필연성의 관점에서 고찰할 경우 인간을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성을 보유하므로 어떤 것도 경멸을 받아서는 안 되며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철학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스피노자의 유명한 문구,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는 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영원성을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이 신비주의적 성향의 문장에서 우리는 스피노자의 절대적 낙관론은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자아로부터의 탈퇴에 근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가 신에 대한 지성적인 사랑을 통해 전체 속에 용해된다면 나는 이 전체처럼 파괴될 수 없는 것이 되며 영원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기적이고 정념에 의한 존재론적인 자아를 부정한다. 더 나아가 죽음과 삶의 경계선마저 부정한다. 영원성과 불멸성은 구분되어야 한다. 불멸은 인간의 신격화에 대한 열망이다. 즉,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불멸이 죽음의 극복이라면, 스피노자의 영원성이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대한 부정이다. 영원은 죽음 후의 천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삶 그 자체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인간의 정의는 실체가 아닌 양태와 관계를 통해 가능하며 양태적 신성을 보유한 개체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 모든 개인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가치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인류가 지닌 최선을 구현할 수 있다. 『에티카』 안에서 특수자는 주인공이 된다. 5.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 스피노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에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힘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른다. 코나투스는 쉽게 신체적, 권력적 욕구로 해석될 소산이 있으며, 실제로 스피노자는 자주 유물론자, 무신론자로 오해받았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스피노자는 유물론자, 관념론자의 구별을 넘어서는 현자의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그의 코나투스는 육체와 정신의 유기적 합일체로서 "본질에 의해서만 정의된 인간의 힘", 즉 '덕'과 일치한다. 『에티카』에 따르면, 덕의 기초는 인간의 기본적인 코나투스, 즉 자신을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이 노력을 통해 정신과 육체, 나와 타자는 상호 상승을 지향한다. 요컨대 서구의 철학이 인식을 통한 객체와 주체의 이원론적 구분과 타자의 지배를 추구했다면, 『에티카』는 심신 일원론의 이해와 실천을 통한 모두의 자유를 추구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함으로써만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언자라고도 불리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바로 이 점에서 완성된 형이상학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는 동양의 지혜 가운데 도가의 자연론, 불교의 불성론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다. 유대감을 상실한 서구의 이원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세계관이 거세게 비판되고 있는 지금 동양적 가치와 서양적 가치, 삶과 이론의 접목으로서의 『에티카』는 현대인이 앓고 있는 삶의 분열증을 치료해 주리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했던 스피노자의 일생을 두고 사람들은 그의 인생이 영혼의 렌즈를 가는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자서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에티카』는 얼음의 순수와 불꽃의 정열을 동시에 발산하는 역동적 눈빛이며 내적 혁명의 산 증거이다. 그 속에서 현실에 몸담은 자의 겸손함과 신적 세계의 원대함이 교차되며 꿈과 현실은 더 이상 모순되지 않는다. 6. 지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삶과 자유, 행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덕을 실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아니라 덕의 행위 그 자체라고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가 나의 행동 양태에 의해 결정되듯이,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행위 자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기독교적 천국이나 사회적 명예에 의해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정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주장에서 우리는 순수 윤리학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 의미란 곧 행복이다. 그리고 이는 비극적 운명을 점지받은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에 대한 영웅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냉소주의와 허무주의가 팽배한 21세기에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낯선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에티카』가 강조하듯이 부정적인 힘은 긍정적인 힘에 의해서만 종식될 수 있다. 어떤 시인은 "나는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나 자신을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에게 가는 길과 나에게 가는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보편적인 철학적 질문은 구체적 삶에 대한 의문과 놀라움에서 시작된다. 왜 내가 실망했는지, 불행한지, 슬픈지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에티카』는, 세상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용서함으로써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다른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철학이 삶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임을 일깨워준다. 7.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스피노자가 주장하듯이 자유는 필연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가? 자유를 염두에 두고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스피노자의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의 한 요소에 불과하며 전체에 의해서 결정된 자연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연성을 인지하는 것은 비관적 운명주의에 동의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필연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자유가 시작된다. 이성에 의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필연성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갈등과 슬픔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다. 소유와 정복이 아닌, 이해와 해방이 바로 절대적 자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필연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과연 이런 달관의 자세가 도인이 아닌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과, "필연성의 이해가 해방보다는 체념 그리고 책임감의 거부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2) 스피노자는 "이성에 따라 인도되는 인간은 오직 자기에게만 복종하는 고독 속에서 보다는 공통된 결정에 따라 생활하는 국가에서 훨씬 더 자유롭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반드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일까? 아니면 스피노자가 주장했듯 개인의 자유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일까?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자유를 억압한다는 사실을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배가 아니다. 그것은 공포에 의해서 인간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며, 인간을 국가가 세워진 것과 다른 것에 소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개인을 공포에서 해방시키려는 것이며, 개인을 안전하게 살게 하려는 것, 즉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생존하고 행동하는 자신의 자연권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피노자는 국가의 주권과 개인의 자유가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국가의 목적은 자유의 실현에 있으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거하려고 할 때 그 국가는 붕괴의 길로 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스피노자가 주장했듯이 개인의 자유와 국가라는 법적 공동체와의 이상적인 공존은 가능할까? 분명한 것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므로 자아실현과 행복은 공동체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 역시 개인주의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서로의 협력이 없었더라면 인간이라는 생물체는 이미 멸종했을 것이며 자유를 실현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공존은 필수적이면서도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하며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선 스피노자가 강조한 이성적 태도가 필요하다. 3) 신앙은 모두 미신인가? 스피노자는 "그들 자신의 사적인 일을 정해진 계획에 따라 해결할 수 있거나 그들에게 운명이 호의적이었다면 사람들은 결코 미신의 포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신앙을 선택함을 비판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미신이란 이성의 결핍, 신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착각이며 이것은 정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군중들을 예속하는 지배수단이 된다. 그러나 모든 종교적 믿음이 미신일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예언, 징조, 자연현상의 초자연적인 원인을 믿는 것을 미신으로 정의한다. 미신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초월적 힘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며 그 힘에 호소함으로써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미신이고 무엇이 진정한 신앙일까? 신을 믿는 것과 산타클로스나 유령을 믿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와 같은 전통 깊은 종교도 자기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는 미신이라고 배타시하기도 했으며, 같은 종교 내에서도 그 종교 교리에 내포되지 않은 것은 미신으로 평가해왔다. 미신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믿음은 인간의 허약함을 증명하는 무지의 결과일 뿐일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동물이다. 동물 중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유한성과 실존적 허약성을 인식하며 동시에 초월성, 성스러움과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주장했듯이 이성적 깨달음만으로 신앙의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죽음보다 삶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가 추구해야 할 당위적 목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서구철학은 기독교 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썼으며 그 둘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종교적 믿음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추천할 만한 텍스트 『에티카』 B.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서광사,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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