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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적 작품 하이데거 『언어로의 도상』(해제)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23|조회수7 목록 댓글 0

시(Gedicht)와 시적 작품(Dichtung)은 구별된다. 시인의 그때마다의 시작적() 말 행위가 구체화된 것이 시적 작품이라면, 시는 시적 작품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이며 집합적인 원천이다. 시적 작품이 개별적인 것이라면, 시는 개별적 시적 작품들을 가능하게 하는 전체에 해당한다. 시와 시적 작품의 관계는 앞서 언급한 시와 시작적() 말 행위의 관계와 동일하다. 다만 시와 시적 작품의 관계에서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시작적() 말 행위가 구체화되어 언어로 표현된 것이 시적 작품이라면 시는 그러한 언어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면서 스스로는 언어화되지 않는 감추어진 전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감추어진 전체로서의 시가 모든 개별적인 시적 작품들을 관통한다. 또한 개별적인 것들을 모두 모은다고 해서 전체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는, 우리가 앞서 언급한 장소에 해당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개별적 시적 작품들은 시로부터 흘러나오며 시를 향해 합류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와 시적 작품의 관계를 감추어진 원천과 파도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감추어진 원천으로부터 파도가 일렁인다. 시는 시적 언어의 일렁임이 비롯되는 감추어진 근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미학은 시적 언어에만 매달려 있기에 시적 언어의 일렁임을 리듬으로 파악할 뿐 그러한 일렁임이 비롯되는 감추어진 원천을 사유하지 못하고 있다. 즉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미학에게는 시의 장소가 은폐되어 있다.

한 시인의 시는 말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개별적인 시적 작품 어느 것도 혹은 개별적인 시적 작품들 모두도 시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적 작품은 시라는 전체에 입각해 말하고 있고 또 항상 이 시라는 전체를 말하고 있다. 시의 장소에서 파도가 일렁이는데, 이 파도가 시작적 말 행위로서의 말 행위를 그때마다 움직인다[길을 열어준다]. 그렇지만 파도는 시의 장소를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파도의 일렁임은 말의 모든 움직임을 항상 더 은폐되어 있는 근원에로 역류하게끔 한다. 시의 장소는, 움직이게 하는[길을 열어주는] 파도의 원천으로서, 형이상학적-미학적 표상활동에게는 우선 리듬(Rhythmus)으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것의 은폐된 본질을 간직한다.(33-34,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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