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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단

단종을 호송하고 와서 시조를 쓰다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6.06.13|조회수29 목록 댓글 0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개봉 20일 만에 621만 명이 보았으니 한 달 만에 700만은 간단히 돌파할 것 같다. 실존인물 엄흥도를 다루었는데 나는 단종 하면 왕방연이 생각난다. 그가 쓴 시조를 현대어로 고치면 다음과 같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 있다

저 물도 내 마음 같아 울며 밤길 가누나

 

왕방연(王邦衍)은 세조 때 금부도사로서 사육신 처형이 있은 뒤인 1457년(세조 3년) 어명을 받들어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되어 영월로 귀양 갈 때 단종을 호송하였다. 단종은 열두 살에 임금이 되었다가 삼촌의 손에 노산군으로 폐위되어 열일곱 나이에 처형당한 비운이 왕이다.

왕방연은 어명을 받고서 귀양지 청령포까지 노산군을 호송하긴 했지만 양심의 가책이 일어 이 시조를 썼다. 세조가 어린 조카를 보호하기 위해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말이 거짓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고, 안타깝고 송구한 마음에 시조를 썼으니, 일종의 고백록이다.

원래 시조 표기의 ‘여희옵고’는 ‘이별하고’, ‘안자이다’는 ‘앉았습니다’. ‘녜놋다’는 ‘가는구나’, 혹은 ‘흘러가는구나’라는 뜻이다. 왕방연은 궁궐로 돌아가는 길에 물가에 앉아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을 것이다. 그는 노산군을 ‘고운 님’이라고 애정과 연민을 담아서 부른다.

 

왕방연은 사약을 들고 다시 청령포를 찾아간다. 노산군은 금부도사가 사약을 들고 온 것을 알고는 스스로 목에 활줄을 매고는 하인에게 이 줄을 창밖으로 빼서 당기게 한다. 사약을 마시는 대신 이 방법을 택한 것은 타의에 대한 죽음이 아닌 자의에 의한 죽음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열일곱 살 노산군이 얼마나 가슴에 한이 맺혔으면 이 방법을 택했을까. 이긍익이 쓴 역사서 『연려실기술』에는 단종 처형의 날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발을 굴렀다. 금부도사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렸다.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도사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 하나가 항상 노산군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기니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노산군이 참혹한 방법으로 자살하자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동강東江에 몸을 던져 죽어 둥둥 뜬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다. 동반자살을 한 것이다. 세조의 행동에 대한 분노와 단종의 죽음에 대한 추도가 자살로 이어진 것이다. 이날 뇌우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맹렬한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가득 깔려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

하지만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16세에 “스스로 목매어 졸하였다”고 기록되어 자결로 서술된다. 『선조실록』에는 의금부 공사가 사약을 내렸다는 주장이 적혀 있다. 『숙종실록』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차마 말을 못 하자 모시던 자가 해하였다는 서술이 있다. 『연려실기술』에는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왔으나 말을 하지 못하자 단종이 활줄로 목을 졸라 자살했다는 전승이 전한다.

 

왕방연은 이 광경을 보고 바로 시를 쓰지는 못했다. 수양대군은 명분이야 어떻든지 간에 스스로 임금이 될 욕심에 조카를 협박하여 왕위를 찬탈하였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이들을 다 죽였고, 세조의 쿠데타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킨 이징옥과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육신의 경우 삼족을 다 함께 죽이고 여자들은 노비가 되게 하였다.

그렇게 피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세조는 13년 3개월 동안 왕위에 있었고 52세 때 죽었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었을까. 몇 십 명, 아니 몇 백 명이었을 것이다. 이승만의 대통령 재임 기간이 12년이었고, 박정희의 대통령 재임 기간이 16년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각각 5년이었다.

[출처] 단종을 호송하고 와서 시조를 쓰다|작성자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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