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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손 떼고 떠나는 강태형 대표

작성자김수엽|작성시간25.11.21|조회수47 목록 댓글 0

[안도현의 사람]'문학동네' 손 떼고 떠나는 강태형 대표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경향신문   2015. 11. 18. 20:46

 

 

신춘문예라는 제도는 문학청년들에게 꿈의 과녁이다해마다 11월이면 펜 하나 달랑 들고 세계를 접수하는 꿈에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나도 그랬다. 1981년 12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신문사에서 당선 통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길에서 같은 대학 문학서클 선배를 만났다.

 

아직 연락받았다는 사람 없어요?” 선배가 무덤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이미 당선소감까지 써서 벽에 턱 붙여 놓은 터였다그 선배와 내가 주축이 되어 만든 서클에서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에이스였다나는 스무 살이었지만 한 해 전에 지방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한 이력이 있는 터라 의기양양해 있었다그날도 우리는 습관처럼 술을 마셨다.

 

상금 받아서 외상 술값을 갚아야 하는데.” 그 선배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자.”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는 벌써 당선되었다는 전보를 받아 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것이다그 선배가 198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시「겨울새」)하게 되는 강태형(본명 강병선)이었다선배는 복학생이었지만 에이스에 대한 예의로 끝내 입을 다물었고그날 술값을 냈을 것이다.

 

강태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북 김제에서 한우 40여마리를 기르다가 무작정 상경했다. 1985년 봄부터 한국작가회의의 모태가 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편집간사를 맡았다그 무렵 시인 채광석김정환 같은 선배들의 말에 자주 귀를 기울였는데돈벌이하고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나는 김제의 이름난 음식점집 아들 강태형이 마포의 허름한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맛있다면서 퍼먹던 모습을 몇 번 짠한 마음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강태형은 1987년부터 금성출판사 한국문학부에서 잠깐 일했고실천문학사 편집부장을 맡아 본격적인 출판편집자의 길로 들어섰다소설가 이문구 선생과 송기원이 편집자로서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책을 깊게 읽고작가들을 만나 책에 대해 대화하고책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채워진 삶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때 깨달았던 거지.”

 

내친김에 사직공원 건너편에 조그마한 출판사 사무실을 내고 푸른숲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나도 주머니를 털어 설립 자금을 마련하는 데 보탰고몇 권의 책을 같이 기획해서 만들기도 했다책을 만드는 편집자라고 해서 강태형의 체형이 약골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그의 외모는 기골이 장대한 무사에 가깝다어깨는 넓고 주먹도 세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하월곡동 산동네에서 살았는데그때 동네 형이 복서였어그분이 동네 아이들을 불러다가 글러브를 끼고 싸우게 했는데내가 소질이 있다면서 자기가 다니는 동대문 중산체육관에 데려갔지.”

 

그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초까지 복서의 꿈을 키웠다홍수환이 남아공까지 날아가서 챔피언을 먹던 시절이었다하지만 그의 몸에 찾아든 폐결핵이 글러브를 벗게 만들었다젊은 시절에 때때로 술자리 끝에 분을 참지 못하고 정의의 주먹을 날리는 것을 본 적도 있다상대방은 강태형 앞에 괜히 깝죽대다가 낭패를 당했다.

 

강태형은 1993년 12월 서울 명륜동의 작은 건물에서 출판사 문학동네를 시작했다한국문학을 제대로 응원하고 싶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출판사와 작가가 알음알음으로 책을 출간하던 풍토가 지배적이었다문학동네는 달랐다작가와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선인세를 지급하는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신간을 소개하기 위해 공격적인 신문광고도 마다하지 않았다매출의 15%를 광고료로 사용했다곧이어 계간지 문학동네를 창간했고이를 통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세상에 알렸다.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국도서 번역본들의 상업적인 성공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대표적이다. <람세스>가 한창 지가를 올리던 무렵 강태형은 퇴근 후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출판사 근처에 방을 얻어 1차 번역원고를 교열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다이렇게 해서 출판편집자로서의 감각이 쌓여갔다최근 몇 년 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문학동네에서 거의 다 출간한 작품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96년에 나는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출간했다초판 3000부가 일주일 만에 팔리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그러다가 한 달에 1만부씩을 찍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 책은 머지않아 100만부 판매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한다특별한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강태형의 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어른을 위한 동화를 써보라고 옆구리를 찌른 것도원고를 몇 차례 같이 읽으며 조언을 해준 것도 그였다.

 

강태형은 출판편집자로서 치밀하지만자상하지 않다나는 그가 직원들을 앞에 놓고 면박을 주는 일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출간된 책에서 오자가 발견될 때는 말할 것도 없고디자이너가 가지고 온 표지 시안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는 불호령이 떨어졌다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책 만드는 일은 어떤 일보다도 성실해야 해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은 20만 자 이상의 숲을 통과하는 일이야집중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적당히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그런 내 기질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 측면이 있다는 건 알아.”

 

그럼에도 문학동네가 출판계에서는 이직률이 매우 낮은 편이고퇴사했다가 다시 돌아온 직원도 많다그사이에 문학동네는 창비’ ‘문지와 함께 한국문학 출판계의 3’로 성장했다그러다 보니 문학권력이라는 비판도 얹혀졌다.

 

22년 동안 문학동네의 성장을 이끌었던카리스마 넘치는 출판사 대표 강태형은 최근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았다한 발 물러나면서 선임편집자라는 직함을 달았지만이국땅에서 쓸쓸히 고독과 맞서보겠다고 한다며칠 후에 그는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하얗게 센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돋보기 너머 교정지를 응시하는 늙은 편집자의 꿈은 내려놓지 못했습니다그 꿈 하나만 들고 조용히 늙어갈 것입니다.” 문학동네 블로그에 그가 독자들에게 쓴 이임 인사의 한 대목이다전화를 걸어 소회를 물었다.

 

어딘가에서 굉장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설렘이 어느 순간부터 내 가슴에서 사라졌는데요즘 그게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야지금 혼자 떠나지만내일이 빤하지 않은 생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축복이야설레는 일이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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