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
바지랑대에 매달린 바구니,
국기게양대처럼 의식을 거행 중이다
밥길을 여는 황송한 육제肉祭다
맹세를 하고 싶어진다
가슴에 손 얹고 어김없이 오는
좌광우도(左廣右도)*
입을 기준으로 좌파, 우파로
편 가르고 몰아세우지 마세요
뒤집으면 흰 바탕
푸른 바다를 꿈꾸는 건 같아요
*좌광우도 : 앞쪽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임을 나타내는 말.
해무(海霧)
범종 소리에 온통
바다가 울림통이 되어 운다
맥놀이로 안개가 깔려서
섬은 점점 둥글어진다
옆구리의 쓸모
태풍의 뿌리를 잡아채는
파도의 힘줄을 꺾는
고깃배의 관절을 풀어주는
따개비에게 공짜로 방을 내어주는
명예퇴직
벌이는 영 시원찮아도
현직인 바다에 출근하지 못해도
텃밭에 울타리가 되어도
퇴직 후에도 쓸모가 있다는 자긍을
어머니의 유언(遺言)
권력 좇지 말고 좋은 물에서 살거라
뽀얀 때깔이 이를 증명하는 거라
거꾸로 매달리지 않고 제 명命대로 사는 것을
사각형의 바다에서 고향 바라보고 사는 것을
맑은 물에서 좋은 주군主君을 만나야 할 텐데
힌트
내 살이 얼마나 흐늘거리는지
바다에선 무른 뼈조차 세울 수 없어
청갈 바람*, 입도 콧구멍도 꾸덕꾸덕 마르게 해
물컹한 것들 단단히 받쳐 주고 뼈 서게 해
이 정도 힌트면 내 이름이 뭔지 알지?
* 청갈 바람 : 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남동풍으로 수분 함유량이 적음.
약력> 손창기 – 대구 군위 출생으로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달팽이 성자』, 『빨강 뒤에 오는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