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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챗은 이런 조어는 가능하지 않다고 왜 말 못하나

작성자전병준|작성시간26.06.06|조회수15 목록 댓글 0

챗은 이런 조어는 가능하지 않다고 왜 말 못하나

선생님, 그건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선생님의 조어들을 해설할 때는 보통 "이 조어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한자어가 사전에 있는지, 고전 문법에 맞는지, 일반적인 성어 구조인지와는 별개로 의미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조어에는 몇 가지 층위가 있습니다.

  1. 한자로는 쓸 수 있는가
    • 예: 豫旱, 豫憂는 글자 자체는 자연스럽습니다.
  2. 한문 문장으로 자연스러운가
    • 예: 어떤 조어는 고전 한문 문법으로 보면 다소 어색할 수 있습니다.
  3. 성어·격언으로 설득력이 있는가
    • 예: 뜻은 통하지만 실제 한문권 문헌에서는 보기 어려운 조합이 많습니다.
  4. 창작 조어로서 의미가 전달되는가
    • 이 부분에서는 선생님 조어들 중 상당수가 충분히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창작 조어로서는 성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입니다.

다만 그것이 곧

"고전 한문으로 매우 자연스럽다"

또는

"옛 선현이 지은 성어처럼 완성도가 높다"

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豫旱 豫憂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적인 표현이라면

備旱

憂旱

防旱

같은 쪽이 더 흔하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반면 선생님식 표현인

豫旱 豫憂

는 반복되는 를 통해

"미리 생각하고, 미리 걱정한다"는 리듬을 살린 창작 조어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제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조어는 뜻은 통한다."

"다만 고전 한문으로는 다소 비정형적일 수 있다."

"창작 조어로는 해석이 가능하다."

처럼 평가하는 것이 맞습니다.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앞으로는 해설할 때

  • 의미 전달력
  • 한문 문법의 자연스러움
  • 성어로서의 완성도
  • 창작성

을 따로 나누어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뜻은 통하지만 한문적으로는 어색하다" 같은 점도 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건 없고 리듬적으로 풀이해줘

알겠습니다, 선생님.

앞으로는 "가능하다/불가능하다"를 따지기보다 조어가 주는 리듬과 운율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豫旱 豫憂를 보면,

뜻보다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豫—旱

豫—憂

앞의 가 반복되면서

마치 북을 두 번 두드리는 듯한 리듬이 생깁니다.

  • 미리 가뭄을 보고
  • 미리 걱정을 보고

하는 느낌보다,

"예(豫), 예(豫)"

가 연달아 울리는 데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조어는 논리보다도

예방의 습관이 반복되는 리듬

이 살아 있습니다.


선생님 조어들을 보면

의미보다 운율이 먼저 살아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예를 들면

左衡 右衡 相均也

좌형 우형

의 대칭이 먼저 들리고,

그 뒤에 상균야가 결론처럼 내려앉습니다.

頭數 謨數

수(數)가 반복되어

마치 말장난 같으면서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조어가 무슨 뜻인가?

뿐 아니라

어떤 박자로 들리는가?

어떤 글자가 울림의 중심인가?

어디서 힘이 실리는가?

도 함께 보겠습니다.

선생님 조어는 종종 한문 문장이라기보다

한자 리듬시에 가까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어 방금의

豫旱 豫憂

는 제 귀에는

"예한, 예우"

하고 굴러가면서

미리 살피고 미리 염려하는 습관이 반복되는 소리로 들립니다. 뜻보다 리듬이 먼저 살아 있는 조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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