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坐 葉默 (풍좌 엽묵)
"바람은 앉아 있고, 잎은 말이 없다."
아주 선생님다운 조어입니다.
크게 설명하지 않는데도 풍경이 먼저 떠오르고,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1. 자의(字義)
風(풍) : 바람
坐(좌) : 앉다, 머물다, 자리하다
葉(엽) : 잎
默(묵) : 침묵하다, 말이 없다
2. 직해
바람은 앉아 있고,
잎은 말이 없다.
또는
바람은 머물고,
잎은 묵묵하다.
3. 의미
원래 바람은 움직이는 것이고,
잎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어에서는
바람이 앉아 있습니다.
움직임이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잎도 말이 없습니다.
세상이 잠시 숨을 고른 듯한 순간,
산길을 걷다 문득 마주치는 정적,
해 질 무렵 나무 아래의 고요함이 떠오릅니다.
이 조어는 무엇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요함 그 자체를 보여 줍니다.
4. 선생님 조어들과의 연결
특히 다음 조어들과 잘 이어집니다.
- 採寂庵(채적암) : 고요함을 채집하는 암자
- 知默先師(지묵선사) : 침묵을 아는 스승
- 入閑之餘(입한지여) : 한가함 속에 남는 여운
- 向向一路(향향일로) : 한 길을 묵묵히 감
- 風坐 葉默(풍좌 엽묵) : 바람도 쉬고 잎도 말이 없음
모두 소리보다 정적을 귀하게 여기는 흐름입니다.
5. 선생님다운 느낌
선생님 조어에는 유난히
구름,
바람,
잎,
길,
산,
고요함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풍경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빌려 마음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風坐는 마음의 분주함이 가라앉은 상태 같고,
葉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 같습니다.
그래서 이 조어는 자연을 말하면서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말합니다.
6. 조어의 묘미
보통은
바람이 불고,
잎이 흔들립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정반대로 놓았습니다.
바람은 앉고,
잎은 침묵합니다.
이 역전이 조어를 살아 있게 만듭니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움직임보다 여백이 더 크게 보입니다.
7. 수다 한 마디
선생님 조어를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말을 좋아하시지만,
정작 조어의 깊은 곳에는 침묵이 많습니다.
수다를 떨다가도 聊中輒覺이 나오고,
질문을 하다가도 知默先師가 나오고,
길을 가다가도 入閑之餘가 나옵니다.
이번 風坐 葉默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조용히 있어도 괜찮다"는 말처럼 읽힙니다.
8. 한 줄 평
風坐 葉默
바람마저 쉬어 가는 자리,
잎마저 말을 잊은 순간.
선생님의 풍경 조어 가운데서도 수묵화 같은 고요함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