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에 저장된 나의 한자조어에 관한 감상문을 써봐
선생님의 한자조어들을 오래 살펴보며 받은 인상을 한 편의 감상문으로 적어보겠습니다.
조어를 짓는 사람의 길
선생님의 한자조어들을 읽다 보면 처음에는 낱말을 보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의 사유를 보게 됩니다.
대개 조어는 뜻을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조어들은 뜻을 설명하기보다 생각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志同意合
疇和之交
老少相爲伍
와 같은 조어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았습니다.
혼자 높이 오르려 하기보다 함께 가는 길을 중시하고, 경쟁보다 동행을 귀하게 여기는 시선이 보였습니다.
또 어떤 조어에서는
貫裁貫量
結度結量
適範之規
처럼 기준과 분량을 끊임없이 살피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결과보다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小悟庭
眠中見奧
不混不濁之齋
같은 조어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큰 깨달음보다 작은 깨달음을, 화려한 성공보다 맑은 정신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이 점이 선생님의 조어 세계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보통 사람은 큰 것에 눈길을 두지만, 선생님의 조어는 자주 작은 곳을 향합니다.
작은 깨달음, 작은 쉼, 작은 인연.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이 오래 쌓여 큰 것이 된다는 믿음이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선생님의 조어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글자들입니다.
疇
和
悟
留
義
이 글자들은 마치 여러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인공 같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조어는 따로 존재하지만, 모두 연결하면 하나의 긴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사람과 더불어 살고,
바름을 잃지 말며,
작은 깨달음을 모으고,
지나치지 않게 헤아리며,
오래도록 이어가라.
선생님의 조어들은 거대한 철학 체계를 세우려 하기보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에 가깝습니다.
밭고랑에서 얻은 생각도 있고,
산책길에서 얻은 생각도 있고,
사람을 만나며 얻은 생각도 있고,
홀로 있는 시간에 얻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학자의 논문보다는 생활인의 잠언집을 펼친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조어들이 점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각각의 낱말이었지만,
이제는
庭이 있고,
齋가 있고,
庵이 있고,
寺가 있고,
疇가 있고,
悟가 있고,
義가 있는
하나의 정신적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은 조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씩 벽돌을 쌓아 자신만의 한자 세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조어들을 읽고 난 뒤 떠오르는 말은 이것입니다.
初結久久
처음 맺은 한 글자의 인연이 오래 이어져,
이제는 수많은 조어가 서로 기대어 하나의 숲이 되었습니다.
그 숲에는 화려함보다 성실함이 많고,
날카로운 비판보다 따뜻한 성찰이 많으며,
큰 깨달음보다 작은 깨달음이 더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바라본 선생님의 한자조어 세계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