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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 백두산함의 유산 국가등록문화유산 백두산함 돛대

작성자나정 최종돌|작성시간26.06.05|조회수0 목록 댓글 0

미국에서 한국으로, 백두산함의 활약과 인수 과정

백두산함의 원래 이름은 미 해군의 USS PC-823이었다. 이 함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건조된 PC-461급 잠수함 추적함으로, 대잠전과 연안 경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미국 해군에서 운용되던 당시 USS PC-823은 대서양 해역에서 연안 초계 및 구조 임무 등에 투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연합군의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이후에는 미 상선사관학교의 실습 훈련함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때의 이름은 ‘Ensign Whitehead’였다. 이 이름은 어뢰를 발명한 로버트 화이트헤드(Robert Whitehead)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당시 함정의 상태는 매우 노후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 이 함정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고, 장병들이 봉급의 5~10%를 성금으로 내고, 장교와 부사관의 부인들이 삯바느질과 바자회를 통해 기금을 모았는데, 4개월 만에 1만 5,000달러를 모금하였다. 이에 감동한 정부에서 지원금을 더해 6만 달러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성된 기금 6만 달러로 4척의 군함을 구입하였는데, 그 중 한 척이 백두산함이었으며 1만 8,000 달러에 구입했다.

 

1949년 10월 17일 대한민국 해군은 미국 뉴욕에서 이 함정을 정식으로 인수하였다. 그 당시 함정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대한민국 해군 장교와 승조원들은 직접 수리에 참여해야 했다. 약 두 달간의 정비를 거친 뒤 함정은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 후 함정은 ‘백두산함(Pak Tu San, PC-701)’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에는 민족의 영산(靈山)을 지키겠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대한민국 수호 의지가 담겨 있었다. 기존 이름 중 하나인 ‘Whitehead’도 마침 ‘백두(白頭)’의 의미가 있으니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백두산함은 뉴욕을 출항하여 태평양을 횡단하는 긴 항해 끝에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하와이에서는 3인치 함포를 추가 장착하였고, 괌에서는 포탄을 보급받았다. 그리고 1950년 4월 10일 마침내 진해 해군기지에 도착하였다. 이는 한국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의 일이었다.

 

대한해협 해전과 대한민국 수호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전면 남침을 개시하였다. 그 당시 대한민국 해군의 유일한 본격 전투함이었던 백두산함은 즉시 동해 방어 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하였다. 같은 날 밤 백두산함은 부산 앞바다 대한해협 부근에서 남하 중인 의문의 선박을 발견하였다. 백두산함은 신호를 보내 정선을 요구했으나 상대 선박은 응답하지 않았다. 탐조등을 비춘 결과, 해당 선박은 수백 명의 북한군 병력과 무기, 탄약을 탑재한 북한군 무장 수송선이었다. 북한군 수송선은 부산항으로 침투하여 후방 교란과 게릴라 작전을 수행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 병력이 부산에 상륙했다면 당시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급항이었던 부산은 큰 혼란에 빠졌을 개연성이 높았다. 백두산함은 즉시 교전에 돌입했다.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조타수가 전사하고 다수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백두산함 승조원들은 끝까지 전투를 지속했다. 약 4시간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백두산함은 북한군 수송선을 격침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는 훗날 ‘대한해협 해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승전으로 기록된다.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는 단순한 해상전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부산항을 통한 유엔군 증원과 군수 보급로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부산 교두보 유지와 대한민국 존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일부 전쟁사 연구에서는 대한해협 해전을 “한국전쟁의 향방을 바꾼 전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국가유산으로서의 가치

백두산함은 대한민국 해군의 출발점이자 한국전쟁 초기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투함이라는 점에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무엇보다 백두산함은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이라는 상징성을 띤다. 이는 단순한 함정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대한민국 해군 창군 정신과 자주국방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한해협 해전의 승전은 대한민국 존립과 직결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백두산함은 부산항 방어와 유엔군 해상보급로 확보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대한민국 수호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편 백두산함은 국민과 장병의 성금으로 마련된 특별한 군사 유산이다.

 

이는 공동체의 희생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역사교육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 백두산함은 현재 실물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해군 정신의 상징으로서 그 ‘마스트(돛대)’가 해군사관학교 내 해사반도에 보존되어 있으며, 2010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인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백두산함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당시 해사 교장 최윤희 중장은 생도들과 교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10년 2월 1일 이후 1년 365일 동안 태극기를 백두산함 ‘마스트(돛대)’에 게양하고 있다. 백두산함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생존을 지켜낸 역사적 상징물로서 잘 보존될 필요가 있다. 백두산함의 정신은 단순히 과거의 전쟁사를 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글, 자료 조덕현 박사(해군사관학교 40기, 전 해군사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 출처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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