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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평화의 의미를 재정의한 도시, 부산 우리나라 첫 근현대 세계유산을 향해 나아가다

작성자나정 최종돌|작성시간26.06.06|조회수1 목록 댓글 0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란

한국전쟁은 냉전 시기 동서 이념 대립이 실제 무력 충돌로 비화된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극화된 이념 대립과 정치적 균형을 좌우했던 세계사적 사건이자 전환점으로, 내전인 동시에 국제전이었다. 유엔헌장 제7장 ‘평화 파괴 및 침략 행위에 대한 집단적 군사·경제 제재 조치’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북한의 무력 침공에 대응하여 유엔 역사상 집단 안보체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최초의 사례였다. 이는 유엔군의 참전과 함께 대한민국 내에서의 국제 연대와 협력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낙동강 방어선 후방에 자리한 부산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생존 기반이자 전략적 후방으로 국가의 존립과 체제 수호, 사회 기능의 회복과 연속성 유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응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즉, 단순한 후퇴지가 아니라 20세기 전쟁 중 세계 유일의 국가 단위의 피란수도였다. 그 당시 부산은 정부의 이전, 대규모 피란민의 포용과 정착, 전쟁 사상자와 포로의 국제 기준에 따른 처리,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이 교차하며 작동한 전시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한 피란민 보호, 국제 외교, 사회 복구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인류 평화의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부산은 국가의 정통성과 기능을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지켜내려 했던 실천의 현장이자, 100만 명 이상의 피란민과 수만 명의 전쟁 사상자를 피아 구분 없이 품었던 포용의 공간이었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하 ‘피란수도 부산’)은 정부기관으로 경무대, 임시중앙청, 국립중앙관상대를, 임시 기반시설로는 부산항 제1부두, 영도다리, 복병산배수지를, 피란주거지로는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를, 군 관련 시설과 국제기구 활동시설로는 하야리아기지,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 유엔기념공원을 포함한다. 피란수도 부산을 구성하는 11개 구성요소는 전략적 입지, 긴급 활용성, 국제 연대 등 3가지 속성을 통해 정부 기능의 지속성 유지, 피란민의 생존 희망, 삶의 영위와 회복 그리고 국제사회의 전쟁 후유증 극복을 위한 지원 등을 구현한 피란수도 부산의 특성을 보여준다.

피란수도 부산의 전략적 입지

한국전쟁 때 부산은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천혜의 해안 방어선과 낙동강, 산악지형이 형성한 이중 방어선 그리고 근대적 항만 인프라를 보유한 대한민국의 최후 방벽이자 세계 평화의 전초기지였다. 부산항을 기반으로 유엔군이 운영한 병참과 해상·철도 물류 체계는 전선 유지를 위한 핵심축이 되었고, 영도의 대공포대와 도심을 둘러싼 산악지형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방어 체계로 탈바꿈시켰다.

 

이처럼 부산은 자연지형과 인공 인프라가 결합된 전략적 요충지이자 인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의지의 요새’로 기능했다. 그 결과, 부산은 단순한 임시적인 수도를 넘어 국제적 안보체제가 실질적으로 구현된 최초의 도시라는 세계사적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부산은 자유가 마지막으로 숨 쉬던 곳이자 다시 일어서기 위한 인류 공동체의 의지를 증명한 도시였다.

기존시설의 긴급 활용성

피란수도 부산은 전쟁 발발로 국가 체제의 붕괴 위기 상황에서 체제 유지와 생존의 논리가 작동하여 기존 시설을 긴급 활용함으로써 정부를 유지한 사례이다. 행정부, 국회, 사법부 등 중앙정부 기능이 모두 남하하였으며, 부산의 극장·학교·전기회사·행정시설 등은 즉시 국가기관으로 전환되어 전쟁을 지원하고 피란민을 수용, 구호하는 시설로 기능했다. 전시의 부산은 곧 국가 시스템이 재편되는 현장이었다.

 

소막사, 마구간, 반공호, 공동묘지까지 피란민의 거주지로 활용되었고, 도시의 빈 공간과 야산은 임시 주거지로 전용됐다. 이러한 공간 재편은 전시라는 긴급하고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기존 인프라를 유연하게 재활용함으로써 국가 기능의 신속한 이전과 재배치를 가능하게 했다.

 

부산은 국가의 존립과 체제 수호, 사회 기능의 회복과 연속성 유지를 실현한 실제적 대응의 공간이었다. 물리적 자원과 도시 인프라를 총동원하여 국가를 정치적 실체로 존속시킨 사례로, 그 과정에서 행정·군사·사회 시스템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었고, ‘도시의 기능적 회복력(urban resilience)’이 세계적으로 입증되었다.

전쟁 최전선에서의 국제연대

피란수도 부산은 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도시이자 동시에 평화의 가치를 실천한 인류사적 현장이었다. 유엔의 젊은 병사들이 부산을 통해 전선으로 향하였고, 세계 각국의 구호단체와 외교 사절이 집결하여 인도주의적 지원과 복구 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역사적 경험은 부산을 냉전의 최전선이자 인류 연대의 최전선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유엔군의 군사적 지원, 국제 구호기구의 조직적 활동, 피란민 공동체의 상생 노력, 전쟁고아 보호와 교육, 전몰자 추모 정신은 단순한 전시 경험을 넘어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남아 있다. 특히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의 이름으로 조성된 묘역으로, 자유와 평화를 위한 희생을 기리는 국제적 추모의 성지이자 냉전 이후에도 지속되는 평화를 추구하는 담론의 상징적 공간이다. 이처럼 부산은 전쟁의 상흔을 증오와 단절의 기억으로 남기지 않고, 인류애와 화해의 유산으로 승화한 도시이다. 냉전의 어둠 속에서도 국제 인도주의의 불빛을 밝힌 부산은 갈등과 폭력이 아니라 연대와 회복의 가능성을 증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부산은 유엔과 인류가 ‘평화’의 의미를 재정의한 장소이자 전쟁의 기억을 통해 평화를 교육하고 실천하는 살아있는 기억의 도시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현대 세계유산으로

피란수도 부산은 20세기 전쟁사 속에서 국가 기능 전체가 하나의 도시로 옮겨진 사례로, 유산 구성요소가 국가적·국제적 기능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체성을 갖춘다. 그 당시의 주요 시설과 공간들이 원래의 입지와 기능을 상당 부분 유지하며 남아 있고, 전쟁기 기억과 기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 물리적, 상징적 손상이 거의 없는 유산이다. 도시 경관의 측면에서도, 피란민들이 정착했던 산복도로 지역과 항만을 중심으로 여전히 존재하며, 전체 도시 차원의 맥락이 단절되지 않고 살아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인 온전함의 사례이다.

 

부산유엔위크, 턴 투워드 부산, 피란수도 야행 등 전쟁과 국제연대의 기억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문화적 행사가 정기적으로 이어지며, 유산의 무형적 진정성과 기억 또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유산의 물리적 보존을 넘어 기억과 실천의 공동체적 계승이 유산 속에 내재되었다는 점에서 온전함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피란수도 부산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고, 2025년 국가유산청 우선등재 목록에 선정되었으며, 2026년 현재 유네스코 예비평가 신청을 앞두고 있다. 근현대 도시유산의 특성상 유산 바깥 지역의 개발 위협이 있지만, 적극적인 보존·관리를 통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길 기대한다.

 

글 신상원(부산연구원 문화복지연구실 위촉연구원)  자료 부산연구원 출처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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