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시간의 정원으로
직선 도로와 네모난 빌딩이 반듯하게 늘어선 도심 한편에 천연기념물센터의 문이 말없이 서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익숙한 직선 대신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먼저 손짓한다. 그 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서두르던 발걸음은 저절로 느릿해지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어깨도 어느덧 스르르 내려앉는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 집 뒷산 오솔길처럼 넉넉한 이 길은 우리를 도심의 시간이 아닌 자연의 시간 속으로 조용히 데려간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와지붕을 얹은 고즈넉한 정자가 나타난다. 6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그 주변은 서늘하다. 짙어진 녹음이 처마 아래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붉은빛과 흰빛의 꽃들이 계절의 절정을 조용히 알린다. 나무 마루에 앉으면 처마 끝을 넘어온 바람이 등줄기의 열기를 부드럽게 식혀주고,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온다. 연못으로 고개를 돌리면 수면 위로 하나둘 고개를 내미는 연잎과 볕 좋은 돌 위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 남생이가 눈에 들어온다. 서두르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평온한 풍경 앞에서 저절로 발걸음이 멈춘다.
그리고 길의 끝에서 마침내 이 정원의 가장 고결한 주인공과 마주하게 된다. 세월이 빚어낸 백옥의 나무, 백송(白松, Pinus bungeana)이다. 초록빛 정원 한가운데서 홀로 희고 고요하게 서 있는 이 나무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품격이 깊어진다. 조각조각 벗겨진 수피가 6월의 강렬한 햇살을 머금고 백옥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는 모습은 화려하다기보다 단아하고, 눈부시다기보다 기품이 있다.
해설을 하다 보면 관람객이 이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묻곤 한다. “이게 정말 살아 있는 나무껍질인가요?” 그럴 때면 이 나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만들어낸 흰빛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백송의 수피는 해마다 조금씩 벗겨지며 새 결을 드러내는데,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특유의 흰빛과 무늬가 완성된다. 어린 시절에는 여느 소나무처럼 푸른빛을 띠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서 비로소 제 색을 드러낸다. 또한 일반적인 소나무가 두 개의 잎을 이루는 것과 달리 세 개의 잎이 한묶음으로 자라는 ‘3엽 소나무’여서 식물학적으로도 또렷이 구분된다.
군자의 기상을 품은 흰 나무
백송은 아주 오래전 이 땅에 전해져 뿌리를 내린 소나무다. 예부터 주로 궁궐이나 사찰, 서원 같은 공간에 심어져 귀하게 여겨졌다. 먼 길을 떠났던 사신들이 이 나무의 기품에 반해 귀한 씨앗과 묘목을 품에 안고 돌아와 정성껏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환경이 달라 이 땅에 적응시키기가 쉽지 않았기에 온전히 뿌리내리기까지는 지극한 정성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날까지 소중하게 이어지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백송의 흰 수피에서 군자의 풍모를 보았다. 때 묻지 않은 흰빛은 맑은 정신을, 세월과 함께 깊어지는 색감은 오랜 수양 끝에 드러나는 덕을 닮았다고 여겼다. 이 나무는 단순한 관상수를 넘어 백송을 닮고자 하는 선비들의 마음을 담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현재 국내에는 서울 조계사, 고양 송포, 예산 용궁리 등지에 자라는 몇몇 개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을 만큼 그 수가 많지 않은 소중한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센터 정원에는 백송 외에도 다양한 천연기념물 나무가 저마다의 속도로 자신만의 계절을 지켜내고 있다. 전국 각 자생지에서 이어져 온 혈통을 바탕으로 길러진 후계목들이어서,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자연유산의 생명력을 직접 만날 수 있다.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나무와 눈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속도도 느려진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천천히 와도 괜찮다고. 오래 기다릴수록, 오래 견딜수록 더 깊고 고결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백송은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글, 사진 이주현(자연유산정책과 자연유산해설사) 출처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