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수리 현장 중점 공개]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정비 현장
백두대간이 품은 가야의 자리
남원 하면 많은 사람에게 광한루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운봉고원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시간이 잠들어 있다.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산세를 동서로 가르는 분수령 너머, 산이 빚어낸 너른 분지 한가운데에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자리한다. 이곳은 5~6세기 가야의 서북부 경계를 지키던 운봉고원 세력의 지배층 묘역으로,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고분군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동쪽으로 팔량치를 넘으면 함양이, 서쪽으로 여원치를 내려서면 남원이 펼쳐지는 자리. 함양 쪽에서 신라가 넘어오는 길목과 임실·장수 쪽에서 백제가 들어오는 길목을 한꺼번에 지켜본 요충지였던 셈이다. 이 작은 분지의 길목을 장악하는 일이 가야 세력의 영역 확장에 중요한 의미였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능선 위에 올라선 가야인의 시선이 어디로 향했을지 떠올려 보게 됐다.
흥미로운 점도 있다. 같은 시기 백제 사람들은 주로 산의 남쪽 사면에, 신라는 평지에 무덤을 조성했는데, 가야 사람들은 능선의 정상부에 큰 무덤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니 능선 위에 둥글게 솟은 40여 기 남짓의 고분은 사람의 손이 빚어낸 또 하나의 산봉우리라 할 수 있다. 능선이 매끈하게 이어지다가 한 번씩 우뚝 부풀어 오르는 자리는 모두 천년도 더 이전에 누군가가 흙을 쌓아 올린 흔적이다. 그 봉우리들이 산속 깊은 곳이 아니라 마을 바로 뒷자락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살림집과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흙 한 켜, 돌 한 매에 담긴 의미
흙 한 켜, 돌 한 매의 뜻은 현장을 따라가며 조금씩 와닿았다. 능선 북쪽에 자리한 20호분과 24호분은 오랜 세월 이어진 개간과 도굴, 민묘 조성으로 봉분의 형태가 깎이고 흩어진 자리였다. 수리는 허물어진 곳 위에 새 흙을 덮어 옛 모양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1,500년 전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봉분을 쌓았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 축조 원리를 따라 잃어버린 윤곽을 다시 세워가는 작업이었다.
현장에서는 점토질 흙과 사질토를 번갈아 사용해 약 10cm 안팎의 두께로 얇게 깔고 다진 뒤 다시 한 켜씩 쌓아 올리는 판축 공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성질이 다른 두 흙이 서로 맞물려야 비가 와도 쉽게 흘러내리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봉분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눈앞에서는 단순히 흙을 다지는 작업처럼 보였던 공정이 사실은 고분과 그 주변 지형 구조까지 함께 읽어내며 이뤄지는 정비 과정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24호분의 개석(뚜껑돌) 이야기였다. 석곽 위를 덮고 있던 큰 돌 열네 매를 발굴조사자가 한 매 한 매 실측해 도면을 그리고 이름표를 붙여두면, 시공자는 석곽 내부를 다시 쌓아 올린 뒤 그 순서대로 본래 자리에 그대로 얹는다고 했다. 1,50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부재를 함부로 새것으로 바꾸지 않고, 하나하나 신중히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왔다.
흙 한 켜, 돌 한 매를 다시 쌓는 일은 단지 무너진 봉분의 모양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흔적을 존중하고, 그 안에 쌓인 시간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현장을 따라 걷고 설명을 듣는 사이 국가유산 수리가 왜 ‘새롭게 만드는 일’보다 ‘지켜가며 되살리는 일’에 가까운지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고, 흩어진 시간을 다시 쌓아 올린다는 말도 그제야 또렷하게 와 닿았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보수정비 현장의 핵심 공정]
1. 판축지정(版築地整)
판축은 흙을 여러 층으로 나누어 얇게 쌓고 다져 구조체를 만드는 전통 토목기술이다. 이번 공사에서는 점토질 흙과 사질토를 교대로 사용해 약 10cm 간격으로 층층이 다지며 봉분을 복원하였다. 이는 단순 성토보다 침하와 유실을 줄이고, 원래 고분이 지녔던 축조 원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구획성토, 토제, 토괴 등 당시 축조기법을 현대 정비에 반영한 셈이다.
2. 배수와 안전성 확보
고분은 흙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인 만큼 비와 바람에 취약하다. 따라서 봉분의 경사는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조정하고, 층다짐을 충분히 해 내부 침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이는 외형 복원보다 더 중요한 ‘오래 유지되는 복원’을 위한 기술적 판단이다. 또한 24호분 발굴 시 확인된 봉분 둘레의 주구(周溝, 둘레도랑)도 함께 고려되었다. 주구는 단순한 배수시설이 아니라 고분의 경계와 위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구성 요소다. 이번 정비는 고분 자체뿐 아니라 주변 공간 구조까지 함께 읽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6 국가유산 수리 현장 중점 공개]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 수리 과정에 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고, 현장 체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2026년 전국 주요 국가유산 수리 현장 15개소를 선정해 올해 12월까지 일반에 공개한다.
자료 국가유산청 수리기술과 정리 편집실 사진 김성재 출처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