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3(元宗三) 13년 7월~12월
가을 7월 갑자. 왜선(倭船)이 금주(金州)에 도착하자 경상도안무사(慶尙道按撫使) 조자일(曹子一)이 일본(日本)과 교통한 일이 발각되어 원(元)으로부터 문책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몰래 그 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홍차구(洪茶丘)가 이 소식을 듣고 조자일(曹子一)을 국문하고 원 황제에게 급히 보고하였다.
기묘. 대장군(大將軍) 김백균(金伯鈞)을 원(元)으로 파견하여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원(元)이 시위친군(侍衛親軍) 천호(千戶) 왕잠(王岑)을 파견하여 홍차구(洪茶丘)와 함께 탐라(耽羅)를 공격하여 취할 전략을 의논하게 하였다. 홍차구(洪茶丘)가 표문(表文)으로 아뢰기를, “김통정(金通精)의 일당이 개경(王京)에 많이 있으니 그들을 시켜 회유하고, 회유하여도 따르지 않으면 그때 가서 공격하여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건의하자 황제가 이를 따랐다. 홍차구(洪茶丘)가 김통정(金通精)의 조카 낭장(郎將) 김찬(金贊)과 이소(李邵), 적장(賊將) 오인절(吳仁節)의 일족 오환(吳桓)·오문(吳文)·오백(吳伯) 등 5인을 시켜 가서 회유하게 하였으나 김통정(金通精) 등은 따르지 않았으며, 김찬(金贊)은 억류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였다.
임신. 삼별초(三別抄)가 전라도(全羅道)에서 공납하는 쌀 800석을 약탈하였다.
정유. 의주부사(義州副使) 김효거(金孝巨) 등 22인이 원(元)에서 돌아왔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강화도(江華島)에서〉 육지로 나왔기 때문에 황제가 모두 석방한 것이다.
신축. 왕이 본궐(本闕)에서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었다.
경술. 대부주부(大府注簿) 강위찬(姜渭贊)과 문습규(文習圭) 등이 대부(大府)가 텅텅 비자 물품을 징발하는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여 머리를 깎고 〈승려(僧)로 변장하여〉 도망갔다.
9월 갑자. 달로화적(達魯花赤, 다루가치) 이익(李益)과 마강(馬絳)에게 잔치를 열었다.
병인. 이익(李益)이 선원사(禪源社)를 유람한다는 핑계로 강화(江華)로 들어가서 우리나라의 허실을 염탐하였다.
무진. 중도안찰사(中道按察使)가 보고하기를, 삼별초(三別抄)가 고란도(孤瀾島)에 침입하여 전함(戰艦) 6척을 불사르고 배를 만드는 장인을 죽였으며 조선관(造船官) 홍주부사(洪州副使) 이행검(李行儉) 및 결성(結城)과 남포(藍浦)의 감무(監務)를 잡아갔다고 하였다.
기사. 왕이 왕륜사(王輪寺)에 행차하였다.
근장장교(近仗將校)를 중도(中道)에 파견하여 삼별초(三別抄)의 동태를 살피게 하였다.
경진. 김황(金滉) 등을 급제시켰다.
겨울 10월 계사.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홍문계(洪文系)가 사직하였으므로, 변윤(邊胤)을 대신 임명하였다.
갑오. 왕이 제상궁(堤上宮)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백좌도량(百座道場)을 열었다.
을미. 지진(地震)이 일어났다.
기해. 홍차구(洪茶丘)가 조자일(曹子一)을 죽였다.
경술. 왕이 제상궁(堤上宮)에 행차하여 금경도량(金經道場)을 열었다.
신해. 도둑이 전목고(典牧庫)의 은(銀) 18근을 훔쳐갔다.
11월 기사. 삼별초(三別抄)가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에 침입하여 부사(府使) 공유(孔愉)와 그 아내(妻)를 잡아갔다.
다자대왕(多者大王)의 사신이 왔다.
을해. 왕이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고 백은(白銀)과 모시포[苧布]를 주었다.
삼별초(三別抄)가 또 합포(合浦)에 침입하여 전함(戰艦) 20척을 불사르고 몽고(蒙古)의 봉화군졸[烽卒] 4인을 잡아갔다.
무인. 중서사인(中書舍人) 권단(權㫜)을 원(元)에 파견하여 신년을 하례하였다.
삼별초(三別抄)가 거제현(巨濟縣)에 침입하여 전함(戰艦) 3척을 불사르고 현령(縣令)을 붙잡아갔다. 적선(賊船)이 또 영흥도(靈興島)에 와서 정박한 채 부근 지역을 횡행하자, 왕이 원수(元帥) 흔도(忻都, 힌두)에게 기병 50명을 청하여 궁궐을 숙위(宿衛)하게 하였다.
12월 임진. 원(元)이 이추(李樞)와 몽고인(蒙古人) 2인을 파견하여 궁실(宮室) 건축에 쓸 재목(材木)을 요구하였다.
갑오. 왕이 내전(內殿)에서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었다.
을미. 원(元)이 제주(濟州)를 토벌하려고 〈고려(高麗)의〉 왕에게 조서(詔書)를 보내 군사 6,000명과 선원[水手] 3,000명을 선발하라고 하였다.
기해. 초군별감(抄軍別監)을 각 도(道)에 파견하였다.
경자. 홍차구(洪茶丘)가 남도(南道)에서 돌아와 이내 원(元)으로 가자, 왕이 위로하여 보냈다.
신축.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송송례(宋松禮)와 상장군(上將軍) 서유(徐裕)에게 명하여 군사를 검열하게 하였다.
정미. 세자(世子) 왕심(王諶)이 원(元)으로 갔다.
경술. 송송례(宋松禮)를 충청도지휘사(忠淸道指揮使)로 삼았다.
원(元)이 다시 조양필(趙良弼)을 파견하여 일본(日本)으로 가서 귀부(歸附)할 것을 설득하게 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