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3(元宗三) 14년 7월~12월
가을 7월 을미. 시중(侍中) 김방경(金方慶)이 황제의 부름을 받고 원(元)으로 가니, 황제가 금으로 만든 말안장[金鞍]과 무늬 있는 의복[綵服], 금과 은을 하사하였다.
경자. 원(元)에 상장군(上將軍) 김신(金侁)을 파견하여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8월 갑자. 부달로화적(副達魯花赤, 부다루가치) 초천익(焦天翼)이 임기가 차서 돌아가게 되자, 제상궁(堤上宮)에서 왕을 대접하였다.
병자. 왕이 현성사(賢聖寺)에 행차하였다.
정축. 원(元)이 별고(別庫)의 전조(田租)를 거두어 군량에 충당하라고 명령하자, 왕이 각 도(道)에 사신을 파견하여 전조를 거두었다.
9월 신사. 초천익(焦天翼)이 원(元)으로 돌아가게 되자, 왕이 영빈관(迎賓館)에서 전송하였다.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장길(張佶)이 죽었다.
겨울 10월 계축. 원(元)에 별장(別將) 김일(金鎰)을 파견하여 세자(世子)의 여비에 쓸 반전은(盤纏銀) 250근을 가지고 가게 하였다.
태백성(太白星,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
기미. 정현좌(鄭賢佐) 등을 급제시켰다.
갑자. 왕이 내전(內殿)에서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었다.
신미. 왕이 교지(敎旨)를 전하여 말하기를,
“지난번 탐라(耽羅)를 토벌할 때에 경별초(京別抄)와 외별초(外別抄) 중에서 도망간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그들을 징벌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일찍이 죄상의 경중에 따라 은(銀)을 징수하고 그들의 전정(田丁)을 회수하였다. 지금 나라에 많은 어려움이 있고 천문(天文)에도 재변(災變)이 자주 나타나므로 덕을 닦아 재이(災異)를 물리치려고 하는데, 이미 징수한 백은(白銀) 외에 회수한 전정(田丁)은 모두 돌려주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무인. 유천우(兪千遇)를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삼았다.
11월 을묘. 초하루 원(元)의 중서성(中書省)이 달로화적(達魯花赤, 다루가치)에게 공문을 보내 우정(于琔)을 죽이게 하였다.
갑신. 왕이 내전(內殿)에서 십일요(十一曜)에 초제(醮祭)를 지냈다.
기해. 원(元)에 소부소감(小府少監) 이의손(李義孫)과 낭장(郎將) 여문취(呂文就)를 파견하여 신년을 하례하였다.
12월 임자. 왕이 내전(內殿)에서 삼청(三淸)에 초제(醮祭)를 지냈다.
을묘. 왕이 내전(內殿)에서 금경도량(金經道場)을 열었다.
경신. 왕이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지금 병량(兵糧)에 속한 토지는 원래 여러 궁(宮)과 사원(寺院)에 속하였던 것 및 양반(兩班)·군인(軍人)·한인(閑人)들의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世傳]이었으나 권신(權臣)이 빼앗은 것이다. 기사년(己巳年, 1269)에 변정도감(辨正都監)이 조사하여 판별하였으나 끝까지 철저하지 못하여서 간혹 주인이 아닌 자에게 준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원망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병량도감(兵粮都監)은 두 건의 문안(文案)을 상세히 조사하여 공정하게 판결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신유. 원(元)이 범(虎) 사냥꾼 9명을 파견하여 개(犬) 100마리를 끌고 왔는데, 여러 개(犬)가 범(虎)을 쫓았으나 개(犬)는 많이 죽었으나 범(虎)은 결국 잡지 못하자 말하기를, “고려(高麗)의 범(虎)은 개(犬)로는 잡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갑자. 각 도(道)에 사신을 파견하여 원(元)의 사신과 함께 병량(兵糧)을 검사하게 하였다.
을축. 나라에 변고가 많으므로 이듬해의 연등회(燃燈會)를 중지시켰다.
계유. 달로화적(達魯花赤, 다루가치)이 중서성(中書省)의 첩문(牒文)에 따라 동계(東界)와 경상도(慶尙道)에 가서 신루지(蜃樓脂)를 구하였는데, 신루지(蜃樓脂)는 고래 기름[경어유, 鯨魚油]이다.
병자. 새로 달로화적(達魯花赤, 다루가치)이 오자, 왕이 선의문(宣義門) 밖까지 나가서 맞이하였다.
정축. 내전(內殿)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