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종(惠宗) 1년
갑진 원년(944). 후진(後晉) 개운(開運) 원년(元年), 거란(契丹) 회동(會同) 7년
광평시랑(廣評侍郞) 한현규(韓玄珪)와 예빈경(禮賓卿) 김렴(金廉)을 진(晉)에 보내어 왕위를 이었음[嗣位]을 알리고, 이어서 거란(契丹)을 격파한 것을 하례하였다.
○겨울 12월. 한림원령 평장사(翰林院令 平章事) 최언위(崔彥撝)가 사망하였다. 최언위(崔彥撝)는 신라(新羅) 사람으로 품성이 너그럽고 후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났다. 18세에 당(唐)으로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42세에 비로소 돌아오니, 집사시랑 서서원학사(執事侍郞 瑞書院學士)를 제수하였다. 신라(新羅)가 귀부함에 미쳐서 태조(太祖)가 명하여 태자사(太子師)로 삼아 문한(文翰)의 임무를 맡기니, 궁원(宮院)의 편액(扁額)은 모두 〈그가〉 지어서 정한 것이며, 당시의 귀한 집안의 자제들이 모두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이때에 이르러〉 죽으니 향년 77세요, 시호(諡號)는 문영(文英)이라 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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