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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시집(시 모음)

[[시집 수록작]]<은빛 선율이 머무는 간이역>-이정현

작성자이정현|작성시간26.06.06|조회수11 목록 댓글 0

<은빛 선율이 머무는 간이역>

햇살이 겹겹이 쌓인 오후의 플랫폼 위로
바람의 지문(指紋)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기다림은 어느덧 마른 꽃잎처럼 바스라져도
철길은 여전히 먼 바다의 윤슬을 닮아 눈부십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연록의 풍경들은
우리가 미처 다 읽지 못한 연서(戀書)의 구절들,
덜컹이는 리듬에 마음을 포개어두면
지나온 시간은 은은한 향기가 되어 흩어집니다.

역(驛)은 만남보다 머무름이 아름다운 곳임을,
떠나가는 뒷모습조차 하나의 풍경이 되는
오래된 영화의 갈색 필름처럼
우리는 이곳에서 각자의 계절을 갈아입습니다.

매끄러운 궤도를 따라 흐르는 이 고요한 질주는
단순히 어딘가로 향하는 걸음이 아니라,
잊고 지낸 내 안의 서정(抒情)을 찾아가는
길고도 다정한 문장입니다.

부드러운 금속의 온기가 손끝을 스칠 때
비로소 깨닫는 작은 평화들-
이제 철길은 그리움의 통로가 되어
당신의 가장 따뜻한 저녁 곁으로 나를 데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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