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적 위를 올라선 정오>
해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고도로 쏟아진다 하나
어떤 생(生) 위에는 늘 비스듬한 그림자가 먼저 당도한다.
세상은 보행의 각도와 음성의 고저(高低)를 자로 재어
정상이라는 둥근 궤적 밖으로 이름들을 밀어내곤 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보살핌’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세련된 격리였으며, ‘다름’이라는 낙인으로 새겨진 정적이었다.
그러나 보라, 여기 꺾인 적 없는 의지가 발 딛고 선 땅을.
누군가 나의 걸음걸이를 위태로운 비틀거림이라 읽을 때
나는 나만의 박자로 대지 위에 굳건한 마침표를 찍는다.
하루가 가고 삶의 궤적은 시리운 주름살의 나이테가 된다.
우리 모두 불완전함의 후보인 숙명을 이었으니
구태여 다름을 나눌 자격과 긍지는 더욱 무엇이랴.
휠체어 바퀴가 굴러가며 남기는 두 줄의 선형(線形)은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내어가는 당당한 서사이며,
어눌하게 들릴지 모를 나의 문장들은
침묵의 심연을 뚫고 솟아오른 가장 치열한 삶의 파동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연민을 먹고 자라는 화초가 아니다.
시혜(施惠)라는 좁은 화분 속에 갇혀 사계절을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거친 풍파 속에서도 제 뿌리의 힘으로 꽃을 피워내는
야생의 뿌리굵은 상록과도 닮아 있다.
도움의 손길은 고맙되, 그 손길이 나의 사지를 대신할 순 없으며
격려의 눈빛은 따스하되, 그 눈빛이 나의 시야를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세상이 정해둔 ‘온전함’의 규격(規格)을 허문다.
아슬파랗던 그 장벽을 흩트리듯이 내딛는다.
단지 잃어버림은 극복해야 할 천형(天刑)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하나의 조각일 뿐.
내가 휠체어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그대가 서서 바라보는 하늘은 결국 같은 높이의 푸름이며,
우리가 꿈꾸는 내일은 서로의 속도를 비난하지 않는
너른 광장 위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샛별은 호올로 더욱 찬연히 빛나듯,
편견의 밤을 건너온 나의 주체적인 삶은
이제 누군가를 비추는 빛이 되어 새벽땅 위를 서성인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다스리는 자는 곧 제 인생의 주인인 법.
나는 오늘 나의 다름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세상이 그어놓은 붉었던 경계선을 지우며,
나만의 가장 눈부신 정오(正午)를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