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들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야고보 아저씨추천 0조회 1226.06.10 21:0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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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정치가들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어제와 같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발하시고, 그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사명을 주시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특히 오늘 복음을 대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집과 마땅하지 않은 집에 관한 말씀입니다. 가끔 복음을 읽거나 묵상하면서 아주 가슴 뜨끔한 말씀입니다. 나는 과연 평화의 인사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자문을 해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평화의 인사를 하며, 집에 와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그 평화의 인사를 받으면 그 평화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인사하는 사람들의 평화는 화합과 화목입니다. 논어의 자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子曰 ;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지만, 소인은 서로 같은 듯 무리지어 다니지만 어울리지 못한다. ‘군자는 서로 다른듯하지만 어울리고, 소인은 서로 같은듯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 하지 않지만, 소인은 부화뇌동만 할 뿐 화합하지는 못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군자는 남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소인은 이익을 쫓으므로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끼리는 함께 행동(行動)하지만 남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레가 한번 쳤다 하면 천지 만물은 이에 호응하듯이 연달아 덜컥 거립니다. 이것처럼 자신의 줏대와 기준을 망각한 채 이해관계(利害關係)에 따라서 혹은 무조건 남의 주장에 따르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군자의 '화(和)'와 소인의 '동(同)'을 공자는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화'(和)는 각자가 지닌 자기만의 특성을 다른 이와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동'(同)은 각자가 갖고 있는 특성을 지닌 채 다른 이와 융합하지 않고 '같은 척 꾸미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사람이 살아감에 도리에 맞게 서로 화합하고, 도리에 맞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부화뇌동(附和雷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의 이익이나 기호가 같을 동안에 만 어울릴 뿐이고, 이해가 달라질 경우 언제든지 부화뇌동(附和雷同) 한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평화의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고, 소인은 평화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복음에서는 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각 개인에서부터 집, 사회, 교회, 단체, 국가까지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에서도 서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평화의 인사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고, 사람들과 하느님의 축복이 머물 것입니다. 또한 그 축복으로 더욱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사랑은 화목을 바탕으로 합니다. 가정의 화목은 서로 다른 성격과 서로 다른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사랑으로 융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고집만 주장한다면 가정의 평화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평화를 누리기에 합당한지 생각합니다. 우리의 정치가들과 정당들은 정말 군자다운지, 아니면 소인 같은지 생각해 봅니다. 나라의 꼴이 이지경이면 하느님의 축복이 따를 리 없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치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삶이 당리당략을 위해서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화합해서 화이부동을 이루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부화뇌동으로 정치할 것인지 정말 암담하기도 합니다. 정치가들이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려서 군자다운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만큼 성숙된 정치문화가 뿌리를 내릴 때도 되었습니다. 국가에 이로운 일이라면 또한 올바른 일이라면 바르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개인의 사정을 두고 정치를 하면 안됩니다. 국가를 우선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 또 국익을 생각해서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할 때 당리당략을 버려야 합니다. 아주 소인배들이 하는 짓거리를 하면서 정치가들이라고 나서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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