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자
야고보 아저씨추천 0조회 1126.06.22 19:4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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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 2026년 6월 23일 화요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자. 우리가 흔히 화가 나서 욕할 때 개를 들먹이면 아주 심한 욕이 됩니다. 사실 개는 귀여운 애완동물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람보다도 오히려 개를 더 사랑하는 듯 한 요즘입니다. 그러나 개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천방지축입니다. 미국에서 만든 영화 “개 같은 내 인생”(My life as a dog.)이라는 영화는 개처럼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엉망진창으로 살았다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개들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말라는 말씀은 거룩함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에 거룩함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나 장난감으로 성체를 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왜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하느냐고 다그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무도 거룩함의 본성 안에 우리 자신을 억지로 참여시킬 수 없는 것이고 돼지에게 진주를 주면 돼지는 먹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단단해서 무른 음식을 달라고 할 것이고 진주는 더러운 돼지 똥 속에 처박아 둘 것입니다. 진주조개는 진주를 키우고 자신에게 상처를 내며 들어온 날카로운 물건들을 감싸서 아픔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사실 그런 이물질이 조개의 몸에 들어오면 진주조개가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는데 하나는 ‘라카’라는 치료제를 서서히 몸에서 분비해서 상처를 치료하며 그 이물질을 감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라카’라는 분비물을 분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라카’를 분비한 진주조개는 고통과 어려움을 모두 조개를 키우는데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이 보배인줄 모르고 오직 상처와 고통을 이기려는 노력뿐입니다. 진주조개의 두 번째 선택은 자신의 몸에 들어온 날카로운 이물질을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그 상처가 곪고, 썩어서 결국 진주조개도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을 썩게 하고 악취를 풍깁니다. 그냥 방치한다면 그렇게 된답니다. 진주조개의 선택을 두 가지이지만 하나는 생명을 보배롭게 키우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죽이는 길입니다. 돼지는 진주의 그 가치를 모르고 개도 거룩함의 가치를 모릅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소용없게 됩니다. 아무리 진실을 알아듣는다고 하여도 자신들에게 소용을 느끼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형편없고,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개돼지만도 못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 것이 우리를 두렵고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쉬운 길, 편한 길을 버리고 좁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하느님의 길을 따라가도록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길은 인생의 율법의 황금률(黃金律)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사실 남이 내게 바라는 것은 나와 엄청나게 다릅니다. 그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누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누가 긴 터널과 같이 되어있는 길을 따라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은 탈출을 위해서 아주 비좁은 탈출구를 뚫고 이어서 하수구의 더러운 물을 따라 1.5km나 간 다음에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 천국은 우리가 힘든 길을 따라서 가는 길로 설명되고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고, 하느님의 집은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말입니다.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에서 ‘사람은 생득적으로 순선(純善)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에 정욕(情慾)이나 환경에 의하여 악행을 자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본성에 대하여 맹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물은 진실로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지만, 위와 아래의 구분도 없겠는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하지 않음이 없고 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음이 없다. 이제 물을 쳐서 튀어 오르게 하면 이마보다 높이 넘어가게 할 수도 있고, 물을 역류시키면 산 위로도 올라가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외부의 힘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선하지 않은 짓을 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 성질은 물의 경우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한 길을 걷도록 하느님께서는 안배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느님의 길을 가도록 안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욕심과 기타 많은 사정으로 넓고 편안하고 좋은 길을 따라서 살고자 합니다. 욕심으로 그 모든 것을 전부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멸망으로 이끄는 길을 겁도 없이 안심하고 들어서는 것이며, 다른 사람도 그 길로 가자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유혹을 떨쳐버리고 오직 진리의 길로 좁고 비좁아도 언제나 겸손하게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나봅니다. 주님께서도 그 길을 원하고 계시니 우리도 정성을 다하여 그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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