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지는 장사꾼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를 잃는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버려둔 채 잃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뒤 쫒아 다니지 않겠느냐?” (루가복음 15,4)
장사(사업)란 최소한의 노력이나 자금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기에 만일 99라는 숫자를 얻으려고 한다면 때로는 100이라는 숫자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만일 어느 장사꾼이 1이라는 숫자를 얻으려고 99라는 숫자를 외면한다면 정신이 돈 장사꾼이다. 정치도 일종의 장사이기 때문에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제의 동지도 희생시키고 만다.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사꾼의 논리이자 세상의 논리이다.
그런데 위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의 논리는 어떤가? 만일 백 마리 양을 갖고 있다가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그 길을 잃은 한 마리를 위해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를 뒤에 두고 먼 길을 찾아 나선다고 하시지 않는가?
“바보처럼 길도 제대로 못 찾는 그까짓 거 한 마리쯤이야. 또 제 고집만 부리고 속도 지긋지긋하게 썩히던 그 녀석 고생 좀 해봐라.” 하시지 않고, “어디서 얼마나 길을 잃고 고생을 할까!” 하고 찾아 나선다고 하시지 않는가! 잘못하다간 아흔아홉 마리 모두가 사나운 맹수에게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예수님은 그런 밑지는 장사, 어리석은 모험을 하실까 하는 것이 무리들의 의문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다. “의사가 병자에게 필요하듯 예수님도 의롭다고 자부하는 자가 아니라 삶의 길을 잃은 자, 즉 죄인에게 필요하다.” 라는 것이다. 하기야 건강한 사람은 의사를 별로 필요로 하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병자(죄인)라고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의사(예수님)는 필요하다. 설령 병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병자(죄인)인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은 별로 죄가 없다고 해서 회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이 될뿐더러 연결 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밑지는 장사를 하신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하는 자와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는 너그러우면서도 다른 이의 잘못에 대하여는 인색하여, 자신은 언제나 모범적이고 잘하는 것 같고 남들은 언제나 잘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은 교만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은 스스로 예수님을 자신에게서 멀리 쫓아 버리는 행동이다.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지 않을 때 신앙은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내가 나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지 않는 한 예수님은 나와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스스로 뉘우치는 죄인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