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강진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1934年, 신간회사건 이후 전남지역에서 최대 인원이 참여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호남지역 최대 독립운동사건이었던 '전남운동협의회사건' 관련 독립운동가 오홍탁선생의 후손입니다.
저는 최근 국가보훈부에 오홍탁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하여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남운동협의회사건 관련자로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으신 조순석선생(1912년생)과 이형모선생(1913년생)은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는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의하면 두분 모두 '전라남도 강진출신 독립운동가'로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조순석선생 ;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성남리 출신, 이형모선생 ;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출신).
그런데 1937年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가 발간한 『사상휘보』 제13호 134쪽에는 당시 광주보호관찰소의 관리.감시를 받던 요시찰 인물 명단중 조순석.이형모선생 두분의 출신지가 "해남군"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현재, 독립유공자 서훈업무를 관장하는 국가보훈부는 해당 기록을 중요한 근거로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확인하기 위하여 지난 1년여 동안 국가기록원, 해남군 등 여러 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순석.이형모선생 두분이 해남 출신이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여러 정황과 자료를 검토한 결과, 저는 『사상휘보』에 기재된 조순석.이형모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신 강진 출신 조순석.이형모선생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순석선생의 경우 풍양 조씨로 추정되는데, 당시 강진군에는 풍양 조씨 집성촌이 존재하였으나 해남 지역에서는 관련 흔적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같은 시기, 같은 생활권에서 동일한 한자 이름을 가진 인물이 각각 강진군과 해남군에 존재하였을 가능성 역시 매우 낮아 보였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추정이 아니라 자료에 의해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상식적 기준과 역사 연구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저는 『사상휘보』의 해당 기록이 오기(誤記) 또는 편집상의 착오였을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이러한 여러 의문점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ex> 국가보훈부, 국사편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서는 해당 기록에 대한 추가 검증 가능성보다는 일제강점기 당시 작성된 기록 자체를 사실로 전제하여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는 기록을 존중해야 하지만,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적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자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따라서 특정 문헌의 한 줄을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당시의 시대상황, 지역사 연구성과, 관련 인물들의 행적, 다양한 사료들을 함께 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정 기관이나 개인을 비판하기 위하여 이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강진군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두분의 출신지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관계가 보다 정확하게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혹시, 조순석 선생과 이형모 선생의 생애, 가계, 출신지, 독립운동 활동과 관련된 자료나 증언, 향토사 연구 성과를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작은 정보라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특정 개인이나 특정 가문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역사이며, 지역이 배출한 선열들을 올바르게 기억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진군과 군민 여러분, 그리고 향토사 연구자 여러분의 관심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역사는 누군가의 주장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남는 것입니다.
저는 단지 강진이 배출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가 사실 그대로 기록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2026年 6月 19日
오홍탁선생 후손 오병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