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영지회(絶纓之會)
초나라 장왕(莊王)이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와 여러 신하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저녁이 되어도 흥이 다하지 않자, 장왕은 불을 밝히고 사랑하는 허희(許姬)를 시켜 여러 대부들에게 술을 돌리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와 연회석을 밝히던 촛불이 일시에 꺼져 버렸다.
그 사이, 한 사람이 허희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허희는 깜짝 놀라 왼손으로는 소매를 잡아 뽑고 오른손으로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렸다. 갓끈이 끊어지자 그 사람은 크게 당황하여 허희의 손을 놓았다. 허희는 갓끈을 들고 서둘러 장왕 앞으로 달려가 조용히 고했다.
“마마, 한 사람이 무엄하게도 어두워진 것을 틈타 첩의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첩이 그자의 갓끈을 잡아당겨 끊어왔으니 빨리 불을 밝혀 그 무례한 자를 찾아주소서.”
그러나 장왕은 다음과 같이 명했다.
“경들은 모두 갓끈을 끊고 실컷 마시도록 하라. 갓끈이 끊어지지 않은 자는 마음껏 즐기지 않는 자이다.”
장왕은 백관들이 모두 갓끈을 끊은 후에야 불을 밝히게 했다.
결국, 허희의 손을 잡은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연희가 끝나 궁으로 돌아온 허희는 장왕에게 고했다.
“신첩은 남녀 간에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더구나 군신 간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왕께서 여러 신하들에게 술을 돌리라 시키신 것은 신하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엄하게도 신첩의 손을 끌어당긴 자가 있었나이다. 왕께서는 그런데도 그자를 색출하지 않으셨으니, 어찌 상하 관계가 유지되며 남녀의 예의가 바로 잡히겠습니까?”
“옛날에 군신이 술자리를 함께할 때는 술은 석 잔에 불과했으며, 낮에만 열고 밤에는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인이 모든 신하들에게 마음껏 즐기도록 명했고, 밤까지 불을 밝혀 즐기도록 했다.
술에 취한 뒤의 행태는 인간의 본성이다. 만약 그자를 찾아내 벌을 가했다면 그대에게도 아름다울 것이 없고, 국사(國士)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신하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할 것이며 과인이 명한 뜻에도 어긋나지 않겠는가.”
허희는 장왕의 넓은 도량에 탄복했다.
그 후 장왕이 진(晉)나라와 싸울 때였다.
장왕이 위급할 때마다 한 장군이 목숨을 내던지고 달려와 장왕을 구하곤 했다.
장왕은 의아하여 그 장군을 불렀다.
“과인이 덕이 없어 그동안 그대를 몰라보았는데 그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나서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장수가 엎드려 대답했다.
“저는 3년 전에 마땅히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연회가 있던 날 밤 술에 취해 그만 무례를 저질렀지만, 왕께서는 이를 감추시고 제게 벌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저의 간과 뇌를 땅에 들어내고, 목의 피를 땅에 뿌려서라도 그 은혜를 갚을 것을 소원해 왔습니다. 신이 바로 갓끈이 끊어졌던 바로 그놈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연회를 갓끈이 끊어진 모임이라는 의미로 절영지회(絶纓之會)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