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믿음의 표적을 보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과 아픔을
당할 때마다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셔서
흩틀어진 가정에 참된 변화를 주시고
은혜의 기쁨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성경 말씀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설교문: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설교의 배경은 가버나움에서 헤롯왕의 신하가 병에 걸려 죽게 된 아들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고 자식의 병을 낫게 한 표적 사건입니다.
두 번째 표적을 통하여 예기치도 못한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우리가 가야 할 삶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명백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표적을 행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고 죽음도 비켜가게 하시며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가 무엇을 먼저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두 번째로 표적을 다시 행하십니다. 첫 번째 표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사건이었고 두 번째 표적은 죽어가는 신하의 아들을 살리는 사건입니다. 43절에서 거기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거기는 바로 수가성으로 예수께서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한 곳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틀밖에 머물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함을 한탄하시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장남으로, 아버지 요셉의 뒤를 이은 마을의 목수로 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선지자로 등장하신 것입니다. 동네사람들이 이 사실을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절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으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실을 어떻게 받아드리겠느냐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증언은 유월절 명절 기간 동안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은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중심지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차리고 먼저 영접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성전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저 빈정되기만 했습니다. 그나마 그들 가운데에 예수님을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던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도 성령의 새롭게 태어나게 하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사마리아인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는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 제사하기 위해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다달았을 때 갈릴리 사람들이 유월절 잔치때에 행하신 기적을 보았기에 그 분을 극진히 영접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 다시 오시게 되었을때에 로마군인 100명을 거닐고 있는 백부장인 헤롯왕의 신하가 가버나움으로 부터 급히 달려와서 예수님을 애타게 찾았던 것입니다. 그 신하가 거주하고 있는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를 끼고 약 30km 떨어진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공생활과 밀접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어느 곳보다도 많은 표적과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불러 손수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나훔의 동네라는 뜻을 가진 가버나움에 크파르나훔이라는 팻말이 달린 문이 있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서면 잘 가꾸어진 정원에 커다란 사도 베드로의 성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 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성베드로 기념성당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나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버나움에서 달려온 신하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으니 자기와 함께 가버나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아들의 병을 고쳐 줄 것을 예수님께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요구를 즉시 바로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아마도 그 신하의 믿음의 정도를 파악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닐까요! 그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어떠한 기적을 바라고 그것이 일어난 후에야 예수님을 믿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려는 모습을 가진 표적주의 신앙을 은근히 지적하시면서 그 신하에게도 믿음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시고자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는 그 당시에 막강한 힘을 가진 백부장의 부탁도 48절에서의 말씀처럼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고 하시면서 바로 들어주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7-29절을 보시면, 제자 도마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고백하는 믿음을 그 신하가 갖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와같은 예수님의 깊은 뜻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9절에서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시라고 애걸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진 그 신하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렸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병든 아들을 고쳐 줄 것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줄기차게 매달렸던 것입니다. 아마 우리도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아이를 살리려고 주님의 발이라도 붙잡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그렇게 애타게 매달릴 수 밖에 없을 것 갔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 신하는 비록 자신이 멀리 풍문에 들려온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게 한 표적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엄청난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에 주여라고 부르짓으면서 매달렸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 매달리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집안에 임하여 자신의 아들의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것이 아닐까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토록 자식의 목숨을 애절하게 구하고자 하는 애비의 응답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신하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셔서 그러한 믿음을 심으신 것이 아닐까요? 그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신하가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신하로 하여금 예수님께 복종하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셨던 것 같습니다. 빈정되고 있는 유대인들도 느끼도록.... 아멘!
그렇게 질책조로 강한 비판하신데도 불구하고 그 신하는 예수님께 간청하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신하의 간절함과 확고한 믿음을 느끼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기적이 즉시 나타나지 않더라도 어떠한 어려움이나 닥쳐온 고난을 해결해 주십사하는 간절함과 그 기대에 대한 강렬한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모든 진리와 총명함으로 우리들을 인도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고 또한 그 믿음을 통해서 항상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꽉 붙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그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 말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는 참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신하는 순종하는 자세로 그 말씀을 믿고 되돌아갔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신하가 믿었던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었지, 표적과 기사 따위는 보지도 확인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48절을 이제서야 그 신하는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50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네 아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지 않고 지금 병에서 회복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굳이 가버나움에 내려 갈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말씀을 하시자 마자 그 시각에 가버나움에 있는 그의 아들이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그 신하는 바로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아도 예수님께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확고하게 믿었고, 그 분께 가서 자신의 소원을 모두 아뢰면, 그 분의 응답이 있을 것임을 확실하게 믿었던 것이 아닐까요?
마태복음 8장 13절을 보면,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즉시 그의 하인이 나았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무조건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을 신뢰하는 그의 참 믿음을 알아 보시고 예수께서는 하인의 병을 바로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 9-10절에서도 백부장의 진정한 믿음의 고백에 예수께서 매우 놀라시면서 이스라엘 중에도 이러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한 마디에 백부장의 하인은 기적적으로 병 고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왕의 신하의 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는 믿음이 바로 참 믿음인 것입니다.
그 신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내려 가는 길이 얼마나 멀리 느껴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헐레벌떡 달려 내려갔을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 집에 있어야 할 종들이 허겁 지겁 올라온 것을 멀리서 보았던 것입니다. 그 종들을 보자 마자 왕의 신하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나 하면서 가슴이 덜꺽 내려 앉았던 것입니다. 다행히 종들이 숨을 헐떡이며 주인님! 아드님이 살아났습니다라고 외치면서 알렸던 것입니다. 그 신하는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아들이 언제부터 낫기 시작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다고 종들이 대답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시각에 아들의 병이 나았다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종들이 그 신하를 맞이하려고 달려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친 표적으로 온 집안 모두가 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의 계기로 모두가 구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두 번째 놀라운 표적이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다시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가족들이 다 믿게 된 것은 그 신하의 삶 전체와 모든 소유를 그리스도께 헌신할 수 있는 참 신앙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 번째 표적을 출발점으로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복음의 문이 더욱 더 활짝 열리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은 그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지만 그 표적이 예수님을 향한 어떠한 믿음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 이번 설교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포인트입니다. 이러한 표적을 행하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이심을 갈릴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명백하게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표적 사건을 통해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예기치 못하게 닥쳐오는 고난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음까지도 비켜가게 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고하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끝맺음의 기도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한 죄로
영적인 삶으로 살아가지 못했음을 고백하오니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저지른 모든 죄를 씻어 주시옵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로 모든 죄악을 온전히 태워 주시고
거룩하신 주님만을 따라가는
거룩한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