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작성자根熙 김창호|작성시간12.07.22|조회수1,007 목록 댓글 0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에 실린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입니다. 


월하정인(月下情人)이란 “달빛 아래 두 연인”이란 제목인데 특이한 달이 뜬 밤늦은 달밤에

인적이 드문 담장 아래서 청춘 남녀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림의 중심에 있는 담장의 햔켠에 작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月沈沈夜三更       달은 기울어 밤깊은 삼경인데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지


그림은 책자처럼 접을 수 있는 화첩에 그려져 있는 좌우 양면의 구도로 되어 있습니다.

좌측은 사대부 대갓집 중 안채로서 집안에서 가장 은밀한 부위임을 표현하고 있고 이어진

담장이 있으며 그 윗쪽으로 나무가 있는듯한 거무스럼한 형태가 있으며 그 바로위에

달이 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초승달과 그믐달이 아닌 아주 특이한 모습의

초승달 형태입니다.


우측의 화면을 보면 접어지는 화첩의 면을 따라서 담장의 각도가 거의 직각으로 꺽여서

왼편의 기와집과는 은폐의 효과가 있고 그 담장 옆에는 두사람의 청춘 남녀가 무언가

깊은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선 시제에서 달은 기울어 삼경(三更)이라고 하였는데 과거 조선시대에는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누고 그 셋째 부분을 삼경(三更)이라고 하였는 바 삼경은 현재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가장 한밤중 임을 표현할 때

삼경(三更)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전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이태형 교수가 신윤복의 월하정인 그림속의 달은 개기월식

현상이며 이런 현상의 근거를 바탕으로 신윤복의 생애와 승정원 일기에 의한 달 관측기록

등을 참고하여 신윤복 생애에서 두번 일어난 개시월식 중 두번째 월식으로서 그 시기는

신윤복이 35세이던 정조 18년인 1793년 8월 21일 밤 11시 50분경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충남대 이태형교수의 과학적 근거로 따진 이 그림의 시간대는 거의 정확한 시기라고 제

개인적으로도 인정하고 싶습니다.


통행금지가 있어 인적이 드문 야삼경(밤 12시경)의 시각....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이 담장밖으로 나와 왠 남정네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여인의

모습으로 보아 이 여인의 거처는 왼쪽에 보이는 기와집이고 이 기와집은 제법 권세있는

사대부집안으로서 이 여인은 아마도 이집의 며느리로 보아집니다.


이 여인이 둘러쓰고 있는 쓰개머리를 가만히 보면 턱을 괴고 있는 여인의 오른손으로 부터

머리 전체를 둘러싼 쓰개머리의 주름을 보면 그 주름수가 29개로서 아마도이 여인의 현재

나이가 29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은 각이진 담장 모서리에서 호롱불을 든 남정네와 아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시 개기월식이 있었던 달은 현재의 8월은 당시 7월로서 한여름이고 보름달이 형성되어

있다가 시간이 12시 가까이 이름에 따라 월식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날의 아주 밝은 달밤과는 달리 이날은 달이 떠 있어도 상대적으로 어두운 날이었고

이로 인해 인적은 드물었으며 또한 과거부터 개기월식 등 이러한 천문현상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감을 일으키게 하는 동기가 되었는데,이 그림에서 남여의 만남에 개기월식

현상이 그려져 있는 것은 여인의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작가의 표현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런 분위기속에 어찌되었건 여인은 저 기왓잡을 빠져나와 용케도 정인을 만났으며 정인은

여인에게 저 감옥같은 집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남쪽으로가서 함께 살자고 말을 건네고 있고,

여인은 내심 그런 마음도 없지 않지만 현실을 좌시할 수 없기에 그리할 수 없다며 이제는

자기 자신을 잊어달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내심으로는 엄청난 고통에 휩싸인 표정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내용은 남자의 왼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와 오른손에 들고 있는 호롱불로

볼때 이는 새살림을 의미하고 두 사람의 신발의 모습과 방향에서 가자는 사람과 만류하는

사람의 분위기가 아주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신발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녀의 오른발과 왼쪽발의 신발방향이 각각 같은

방향입니다.

이는 결국 한쪽의 마음은 도망쳐 멀리 떠나고 싶지만 또 다른 한쪽의 마음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얽혀있다고 느껴집니다.


여인의 내면세계를 좀 더 들추어본다면....

 

달빛에 비추어진 기와집의 색깔과 담장의 색깔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고 여인이 이미 기와집을

나와 있으니 자신을 기다리는 남자와 야반도주의 생각이 절반은 있음이 느껴지고 그런 흔적은

여인이 입고있는 쓰개치마의 옷고름이 3개 안쪽 치마의 옷고름가 3개로 대비되어 있고 여인이

턱을 괴고 있는 오른팔의 저고리 주름이 5개이고 그 오른쪽 어깨쪽의 쓰개치마의 주름이

5개인 것으로 보아 여인의 생각은 있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가 반반이고 남자의 나이는 35세로

보아지며 또한 이 남자를 만나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고 나왔자만,

결국 이 남자의 언행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믿음이 약하고 현실에서 이 남자의

개인 미래가 희망이 있으므로 장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잊어달라고 하는 내용이 읽혀지는 대단히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그러므로 시제에서 "두사람의 마음은 두사람이 안다"는 것은 이런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서로가 알고 있기에 각자의 인생으로 돌아가고 그 길이 서로가 최선이기에 각자 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그런 뜻으로 느껴지는 그림으로서 역시나 이 그림도

신윤복의 그림 특징의 하나로서 여인의 마음을 아주 정밀하면서도 정확하고 그리고 뚜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오랜만에 아름다운 그림을 독화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갔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남녀간

사랑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여운을 풍성히 던져주는 명작입니다.

 

따라서 이 그림에 제목을 붙여 본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 하고 싶습니다.

 

                                                                                                                                

 

신윤복 ‘월하정인’ 달은 초승달 아닌 1793년 8월 21일 ‘부분월식’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이 1793년 8월 21일(정조 18년)에 일어났던 부분 월식을 배경으로 그려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태형 천문우주기획 대표는 1일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달은 부분 월식처럼 볼록한 면이 위쪽(점선 원)으로 향해 있다”며 “보통 초승달이라면 달의 오른쪽 부분이 환하게 빛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신윤복이 활동했던 시기에 서울에서 관측된 월식은 1793년 8월 21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월식은 매년 있기 때문에 단정 짓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아랫쪽은 이 대표가 만든 부분 월식 상상도/ . 이태형 천문우주기획대표 제공

 

                                                                                                                                          

 

신윤복 그림 ‘월하정인’ 속 데이트 시각은?

Libetarian | 2011-12-12 01:48 | 조회 145 | 출처: 이태형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 (주)천문우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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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3대 풍속화가로 알려진 신윤복은 그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작품들의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일부 작품에 기록된 간기(刊記)를 통해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될 정도였다. 필자는 천문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수록된 ‘월하정인(月下情人)’ 속 달의 모양을 분석해 그 그림이 그려진 정확한 일자를 알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국내외 어느 작가의 그림 속에도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모양의 달이 그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월하정인에 그려진 달은 초승달이 잘못 그려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 신윤복은 왜 저런 모양의 달을 그렸을까? 만약 신윤복이 그림 속의 달을 실제로 보고 그렸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과연 저런 모양의 달이 보일 수 있을까?

● 월하정인에 대한 분석…단서는 ‘달’

일상적으로 밤에는 달의 볼록한 면이 위를 향할 수 없다. 이는 달의 볼록한 면 쪽에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밤에는 태양이 없어서 달의 볼록한 면이 지평선보다 아래를 향한다. 따라서 그림 속의 달 모양은 월식이 일어날 경우에만 볼 수 있다. 월식은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상에 놓여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달의 전부가 가려지는 현상을 개기월식, 일부가 가려지는 현상을 부분월식이라 한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그림 속에 쓰인 글에는 그림을 그린 시간대가 야 3경으로 나온다. 이것은 자시(子時)로 밤 12시를 전후한 시간이다. 월식이 일어나는 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로, 자시 무렵에는 달이 가장 높이 뜬다. 처마 근처에 달이 보이는 것은 보름달의 남중고도가 낮다는 것이다. 즉 여름을 말한다. 보름달은 태양의 반대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남중고도가 높고 여름에는 낮다.

여름철 한밤중에 일어나는 개기월식은 지평선과 작은 각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달의 왼쪽부터 가려져서 오른쪽으로 진행된다. 즉, 달의 볼록한 면이 지평선과 약간의 각도를 가지고 옆으로 놓이게 되며 그림처럼 달의 윗부분만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것은 개기월식이 아닌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아랫부분만 가리고 지나가는 부분월식의 그림이다.

신윤복이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간 일어난 월식 중 서울에서 관측 가능한 부분월식을 조사해 봤다. 그 결과 1784년 8월 30일(정조 8년, 신윤복 26세)와 1793년 8월 21일(정조 17년, 신윤복 35세) 두 번에 걸쳐 그림과 같은 부분월식이 있었다.

월식이 일어나더라도 기상 현상 등의 이유로 실제로는 관측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따라서 승정원일기 등 당시 월식을 기록한 문서들을 통해 실제로 서울 하늘에서 이 월식이 있었는지를 조사했다. 당시 일식과 월식은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천문현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거의 빠짐없이 기록이 남아 있다.

문서를 통해 알게 된 결과, 1784년에는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지역에 3일 연속 비가 내려 월식을 관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1793년 8월 21일(음 7.15)에는 오후까지 비가 오다 그쳐서 월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승정원일기 [원전] 제1719책’에는 ‘7월 병오(15)일 밤 2경에서 4경까지 월식(月食)이 있었다’고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1793년 8월 21일 밤 서울에는 부분월식이 있었다. 사진 제공 : 이태형 교수

● 신윤복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른 ‘달’들

신윤복은 풍경이나 사람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그린 ‘야금모행(夜禁冒行)’에는 겨울철 새벽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피곤한 표정으로 기방을 나서는 양반이 표현돼 있다. 이 그림에는 그믐달이 등장한다. 그믐달로 추정해 볼 때 야금모행을 그린 시간은 대략 새벽 3~4시 경이다.

이외에도 ‘월야밀회(月夜密會)’와 ‘정변야화(井邊夜話)’에는 보름달이 낮게 그려져 있다. 보름달의 위치만으로 볼 때는 보름달이 낮게 뜬 저녁이나 새벽쯤의 상황이다. 이 그림들을 통해 신윤복이 사실과 무관하게 달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월하정인에 나타난 것처럼 위로 볼록한 달은 일상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모양의 달이기 때문에 임의로 그런 달을 그렸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신윤복의 야금모행(夜禁冒行), 월야밀회(月夜密會), 정변야화(井邊夜話).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이상의 상황을 토대로 1793년 8월 21일(음력 7월 15일, 신윤복 35세, 정조 17년) 자정 무렵을 월하정인의 제작 시기로 보고 보다 자세히 분석해 봤다.

달의 고도 - 달의 고도가 낮게 그려져 있어서 여름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달의 고도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달 뒤에 지평선 등 특별히 비교 대상이 될 만한 배경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한 결과 1793년 8월 21일 자정 무렵 달의 고도는 약 40도로 북극성의 고도와 비슷한 정도였다. 물론 달과 함께 그려진 처마와 담벼락의 고도는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관측자가 앉아 있었다고 보면 40도 정도의 고도에 위치하는 달은 충분히 그림처럼 보일 수 있다. 처마의 고도가 서 있는 사람에게는 낮아 보이겠지만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보는 화공이 건너편 담벼락 아래 낮은 자세로 몰래 숨어서 이 광경을 스케치 했다고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각도다.

청금상련.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주인공들의 복장 - 신윤복이 그린 ‘청금상련(廳琴賞蓮)’은 연꽃이 피어 있는 것으로 보아 7~8월 한낮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에 나오는 남녀의 복장과 월하정인에 나오는 남녀의 복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월하정인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밤이라 장옷을 하나 더 걸쳤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에 남자는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었다. 물론 계절에 따라 겹두루마기(봄, 가을), 홑두루마기(여름), 솜두루마기(겨울)로 바뀐다. 여자도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가 기본이었고 그 위에 입는 당의가 계절에 따라 겹당의(봄, 가을)나 홑당의(여름)로 바뀐다. 따라서 월하정인 그림 속 주인공들의 복장으로 보아 이 그림이 1793년 8월 21일에 그려졌을 것이라는 추론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만남의 시간 - 그림 속에 쓰인 월침침야삼경(月沈沈夜三更)은 말 그대로 ‘달도 침침한 밤 3경’이라는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야삼경(夜三更)은 자시(子時)로 당시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시간이다. 이 야심한 시간에 과연 두 남녀가 은밀히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하지만 이 시대의 역사를 연구한 자료를 찾아보면 당시에 늦은 밤에 밀회를 즐기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월하정인에 나타난 부분월식의 시간과 그림 속 글에 나타난 시간으로 두 남녀의 만남 시간이 자정 무렵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추론할 수 있는 일이다.¹⁾

이 그림의 천문학적 분석은 신윤복이 당시에 정확한 상황을 보고 그렸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는 사물을 사실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시대였고 신윤복이 그린 다른 그림 속 달들도 모두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때문에 월하정인도 실제 상황을 묘사했을 것이라 추론하고 천문학적으로 분석해봤다. 앞으로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천문학적 현상을 토대로 제작 연대가 불분명한 작품들의 제작 연대를 추정하는 일이 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천문학은 시대를 재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1) 참고자료 : 「판소리와 풍속화 그 닮은 예술 세계」(효형출판, 김현주 저) 본문 中 - ‘연인들의 야밤 밀회가 성행한 시대에 이러한 소재와 정서를 담은 춘의도들이 그려졌을 것이다.’

 

                                                                                                                                  

신윤복 선생님은 남자에요~!!

 

조선후기의 화가로서 바람의 화원에 나오는 김홍도 선생님과 함께 당대 최고의 화가로 불리셨죠..
 
추가적으로 신윤복의 작품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양반과 기녀/ 남녀의 애정표현의 풍속화를 주로 그린 조선 시대 대표화가로 대표되는 신윤복의 작품들은
섬세한 선표현과 그 당시 문란하다는 이유로 잘 사용되지 않았던 화려한 색을 주로 사용하여 선정적이면서 은근한 노골적 표현이 돋보이는데요.
 
그림 속에서는 성적인 남녀의 표현이 전부가 아니라 권력의 부조리나 윤리관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답니다. 대표작인 〈미인도〉<단오도> 을 봐도 그가 표현하는 작품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데요
 


 

 

 미인도
 조선시대의 미인상은 오늘날의 미인상과는 많이 다르죠?!
 얼굴에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와있고 작은 입술에 가는 눈매를 가진
 단아한 여인이 섬세하게 그려져있는데
 단조로운 그림이지만 노리개를 만지는 손이며,살짝 고개를 숙인 얼굴이며,
 여성스러워 보이는 한복의 매무새까지, 신윤복의 뛰어난 묘사력을
 대표해주는 작품이 될만합니다
 
 신윤복의 연인이였던 기생을 그렸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어제 방송 1회에서 초반에 이그림이 잠깐 나오더군요 .. )


 

 

기다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뒤로 하고 있는 손에는 스님의 옷과 모자가 들려있는데,
그로봐서는 스님을 기다리고 있는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신윤복의 그림은 배경의 물체 하나 하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주의깊게 살펴봐야하는데
드리어진 버드나무가 고개 돌린 여인의 애타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어제 1회에서 '외유사생'(도화서 밖에서 그리는 그림) 중 그려서 문제가 되고있죠..)



청금상련
벼슬 높은 양반들과 기생들의 모습입니다.
가야금을 연주하고 듣는 이들과 남녀가 연애를 즐기고 있는 남자등을 그린 작품,
남녀를 바라보며 한심하다고 느끼는 듯한 표정의 남자는 신윤복 자기 자신의 생각을 투영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윤복의 작품에서 배경 물체들의 의미가 매우 중요한데 담넘어 들어온 나뭇가지가 남녀의 모습을
훔쳐보고 싶어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계변가화 - 신윤복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과 그 옆을 지나는 젊은 사내의 아슬아슬한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청루소일 - 신윤복

방 안에 여유로운 양반이 앉아있고 마루에는 생황을 든 여인이 있으며

전모를 쓴 기생이 마당을 들어서고 있는 적막한 오후 한 때의 기방 풍경을 그렸습니다.


 

주유청강 - 신윤복

산 대신 강으로 나간 소풍이라 할 수 있겠다.

수염이 긴 늙은 선비는 점잖게 뒷짐을 지고 있는데 비해,

젊은 선비는 기생의 마음을 끌기위해 뭔가 속삭이고 있습니다.


 

단오풍정 - 신윤복

신윤복의 그림 중 가장 빼어난 수작 중 하나.

단오를 맞아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주사거배 -신윤복

이 그림의 술집은 선술집입니다.

왜 선술집인가? 선술집이란 이름은 지금도 드물게 쓰이고 있습니다. 대개 부담없이 '쌈직한 술집'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은 드물니다.

선술집은 주당들이 모두 서서 술을 마시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선술집에서는 백 잔을 마셔도 꼭 서서 마시고 앉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앉아서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술꾼 패거리가"점잖은 여러 손님이 서서 마시는데, 버르장 머리없이 주저 앉았담.

그 발칙한 놈을 집어내라"고 하면서 시비를 걸었고, 이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도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곽쟁웅 - 신윤복

기방 문 앞에서 대판 벌어진 싸움 모습입니다.

장죽을 문 기생은 구경을 하고 붉은 옷을 입은 별감이 싸움을 말리고 있습니다.


 

야금모행 - 신윤복

늦은 겨울 밤 기생이 동침을 원하는 양반을 따라 어디론가 가는 모습.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다 그렇고 그랬나보다. ^^ ^^

붉은 옷을 입은 별감이 양반과 기생의 성매매를 중개하고 있습니다.


 

연소답청 - 신윤복

'연소답청'이란 젊은 선비들이 푸른 새싹을 밟는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양반들의 유한놀이 문화인

들놀이를 말합니다.젊고 늙은 양반들이 종과 기생을 앞세워 풍취 좋은 산천을 찾아 즐기고

돌아오는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그렸습니다.


 

상춘야흥 - 신윤복

진달래 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봄날, 양반가의 후원에서 벌어진 연회의 흥취를 그렸습니다.

음악에 흠뻑 취한 주빈의 표정이 이 날의 연회가 아주 성공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정변야화 - 신윤복

어스름 봄밤에 우물가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것으로 물을 길러 온 두 여인이 춘홍이 오른 듯 보름달 아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돌담 뒤에서 음흉한 양반이 두 여인을 몰래 훔쳐보고 있습니다.


 

월야밀회 - 신윤복

인적이 끊어진 골목길 보름달이 비치는 담 그늘 아래에서 한 남자가 여인을 위압적으로 감싸안고 있습니다.

담모퉁이에 비켜서서 조마조마하게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은 그림속의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무녀신무 - 신윤복

조선 말기에 유행했던 민간의 굿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무녀와 여인들이 마당에 옹기종기 앉아있고 담 너머에서 한 사내가 여인들을 훔쳐보고 있습니다.


 

삼추가연 - 신윤복

어린 기생의 '머리를 얹어주는' 초야권을 사고 파는 장면.

뚜쟁이라 할 수 있는 늙은 할미가 기생과 초야권을 사는 사내의 중간에서 중개를 하고 있습니다.


 

쌍검대무 - 신윤복

국보 135호.

넓은 마당 한 가운데서 쌍검을 들고 춤을 추는 두 검녀의 아슬아슬한 대결을

정방향 구도와 인물들의 회전 운동으로 그려 정중동의 운동감을 세련되게 표현했습니다.


 

이부탐춘 - 신윤복

이부는 과부를 뜻하니 소복을 입은 여인이 마당에서 짝짓기 하는 개와 참새를 보고 웃음을 머금고

몸종이 나무라듯 그 허벅지를 꼬집는 장면입니다.

해학적이면서도 여필종부를 강요하는 남존여비사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월하정인 - 신윤복

달빛 아래에서 두 남녀가 안타까운 정을 나누는 장면을 숨막힐 듯 섬세한 필치로 묘사했습니다.

안타까운 두 사람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기방무사 - 신윤복

기생이 외출했다가 돌아오고 있는데 그 사이 왠 사내와 와 몸종이 방안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왼쪽 나무잎이 무성한걸 보니 계절은 더운 여름. 날이 더우니 기생도 전모를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한여름에 이불을 덮고 있을까?방안의 두 남녀는 이상한 짓(?)을 하다가

갑자기 주인기생이 찾아오자 누비이불을 덮은 것은 아닐까? 알수없는 일이다. ^^::


 

전모를 쓴 여인 - 신윤복

배경도 없는 단순한 화폭 위에 가늘고 뚜렷한 선묘로 그려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조심스럽고 세심한 묘사를 통해 숨막히는 듯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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