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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중류비 전경







민중 양청천서



류성룡 찬

야은 길재선생 묘소


논어 제 9편 子罕 (자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三軍可奪帥也어니와 匹夫는 不可奪志也니라. (삼군가탈수야 필부 불가탈지야) 삼군에서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한 사나이로부터 그 지조는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야은 길재 선생이 그런 분이시다.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경북 구미시 오태동 산1번지에 소재
지주중류라 함은 중국 황하 중류의 지주라는 바위가 마치 돌기둥처럼 생겨서 혼탁한 물 가운데 있으면서도흔들리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야은 길재(吉再 1353∼1419)를 은유한 것이다.
백이숙제의 무덤앞에 지주중류 네 글자를 조선 선조 20년(1587)에 인동현감 유운룡이 중류비의 정면 砥柱中流 네 글짜는 한간 정구선생으로 하여금 중국의 지주비묵본을 얻어와 오태동 라월봉에 선생의 절의와 학덕을 기린 지주중류비를 세웠다.
비 정면에는 중국 명필 양청천(楊晴川)의 글씨인 '砥柱中流'란 4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배면에는 예조판서 류성룡(柳成龍)이 찬(撰)한 지주중류의 뜻과 그것이 후학들에게 주는 교훈을 적은 「야은선생 지주비 음기」가 음각되어 있다. 원래의 비석은 홍수로 매몰되고 정조 4년(1780)에 다시 밀양의 해석을 운반해 와서 세운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백이숙제(伯夷叔齊)
백이와 숙제는 중국 은(殷)나라의 처사(處士)로 백이는 숙제의 형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려는 것을 이들이 말려도 안 들으므로,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았다고 한다.
야은 길재 1353(공민왕 2)∼1419(세종 1)
금오산 산줄기 용머리산의 끝 부분에 있는 오태동 마을 뒤편에는 야은 선생 묘가 조성돼 있다. 본관은 해평. 호는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 고려말 조선초 학자. 해평 길씨(吉氏)로서 중정대부 지금주사 원진(元進)의 아들로 1353에 고아 봉한리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어머니를 이별하고 시냇가에 놀다가 우연히 가재를 한마리 잡아서 노래하되, "가재야 가재야 너도 어미를 잃었느냐? 나 또한 어미를 잃었노라. 하며 놓아 주고 눈물을 흘리니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애처로움을 보고 눈물 흘리게 하였다고 한다. 이웃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 소식을 외조부 김희적(金希迪)에게 전하니, 외조부 내외가 함께 슬피울고 고을 사람이 모두 기특히 여기었다고 한다. 나이11세에 비로소 냉산 도리사에서 글을 읽고 쓰고 시 짓는 법을 차츰 이해하였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양촌 권근 등 여러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의 진리를 배웠다. 1374년에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 생원(生員)시험에 합격.1389년에 문하주서(門下注書)가 제수되었고 1390년 봄에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예측한 나머지 노모를 받든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목은(牧隱)선생을 찾아가 그 뜻을 전하니 목은이 시를 지어 주었다. 그 글귀에 "벼슬은 뜬 것이니 서두르지 말게 저기 저 날아가는 기러기 보게"라 하였다. 세종 1년(1419)인 향년 67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경북 구미시 오태1동. 금오산줄기 용머리산의 끝 부분에 있는 오태동 마을 뒤편에 있다. 영조(英祖) 4년(1728) 시호(諡號)를 충절(忠節)이라 하였으며, 선산 금오서원, 칠곡 오산서원, 금산 성곡서원, 계룡산 동학사에 향사하고 고려말 포은, 목은과 함께 3신(三臣), 3은(三隱)이라하며 조선 유학의 종사(宗師)이다.
(음기)
풍산(豊山) 유후(柳侯) 운룡(雲龍)이 인동현(仁同縣)의 원이 된지 삼 년에 길자(吉子)의 무덤을 크게 닦고 왼편에 높은 지대를 택했는데 앞으로 낙동강을 굽어 보고 뒤로 오봉(烏峯)을 기대고 벌판이 툭 트이고 백사장이 아득하여 돌아 볼수록 뜻에 맞기로 방위를 잡아 일을 시켜 서원(書院)을 짓고 그 뒤에다 집을 지어 선생을 제사하려 하니 감사(監司) 이공(李公) 산보(山甫) 및 선산부사 류사문(柳斯文) 덕수(德粹)가 이 거사를 찬성함과 동시에 모든 것을 보살펴 모자라는 것을 도와주므로 역사가 쉽게 취서(就緖)되어 수일이 못가 낙성식(落成式)을 올렸다.
일이 이에 이르매 다시 앞에다 석비를 세우고 중원(中原)사람 양청천(楊晴川)의 글씨「砥柱中流」사대자(四大字)를 새겨 공사가 끝나니 유후(柳侯)는 그 아우 성룡(成龍)에게 내 장차 이것으로서 선생의 절개를 표하여 후세에 교훈되게 하려 하노니 그대는 그 음기(陰記)를 지으라 하므로 성룡은 감히 사양치 못하고 삼가 지주(砥柱)의 의(義)를 물었더니 후(侯)는 사독(四瀆)의 가운데 하수(河水)가 가장 크나니 그것이 바야흐로 천하에 횡류(橫流)하고 범일(泛溢)할 적엔 곤륜(崑崙)을 휩쓸고 여량(呂梁)을 박차고 용문(龍門)을 뛰넘고 이락(伊洛)을 삼기고 양송(梁宋)의 들판으로 내쳐 솟구치고 부딪치매 해와 별이 어둑하고 언덕과 골짜기 위치가 바뀌며 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 가 없이 횡행하니 숭산(崇山)과 절안(絶岸)이 다 싸인 바 되어 감히 고대(高大)로 자처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만물(萬物)이 모두 다 휩쓸리고 만다. 여기에 돌이 있으니 우뚝히 홀로 솟고 탁이(卓爾)하게 빼어나 분박충격(噴薄衝擊)의 즈음을 당하여 역절붕궤(逆折崩潰)하는 그 형세를 대항하되 사석(沙石)으로써 뭉겨도 그의 굳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홍파(洪波)로써 부어도 그의 높음을 감추지 못하며 우뚝하고 참암하여 만고를 지나도 하루 같으니 그 이름은「砥柱」라 한다.
대개 물(物)이 진실로 그러할진데 사람 역시 이와 같다. 내 일찍이 옛날 충열(忠烈)의 선비가 유속(流俗)에 시립(侍立)하여 변치 않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이와 같은 류(類)이다. 이를테면 나라가 패상(敗喪)하고 시조(市朝)가 변천하여 맑은물 구정물이 함께 흐르고 훈초(薰草)와 유초(艸猶草)가 질이 섞이고 앞에는 작록(爵祿)의 꾀임이 있고 뒤에는 도거(刀鉅)의 위협이 잠재하니 인심은 구토(苟兎)로 행(幸)을 삼고 세도(世道)는 간진(干進)을 귀히 여겨 올라가는 자는 줄을 놓아 높은 데 붙고 떨어지는 자는 초야(草野)에 허덕이며 흘러가는 한 세상에 능히 자발(自拔)하는 자가 없다. 여기에 개사(介士)가 있으니 굳굳이 서서 자분(自奮)하고 죽도록 도를 닦아 능히 한 몸둥이로 우주강상(宇宙綱常)의 중대함을 맡되 부귀에도 음탐치 않고 빈천해도 옮기지 않고 위무(威武)에도 굴하지 아니하여 의열(義烈)이 당대(當代)에 드러나고 풍성(風聲)은 후세에 표(表)가 된다. 이를 들어 저와 비유한다면 그 누가 그렇지 않다 하리오.
길선생 같은 분은 고려의 계세(季世)에 벼슬하다가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알고 운림(雲林)에 고도(高蹈)하였다. 성인이 작흥(作興)하매 미처 만물(萬物)의 정상(情狀)이 나타나고 일월이 새로 빛나고 산천도 모양을 고치게 되니 지난 날 왕씨(王氏)의 문(門)에서 음식(飮食)하고 포유(咆유)하던 자들이 달려들어 뒤질까 저어하는데 선생은 「이성(二姓)을 섬기지 않는다.」의(義)로써 바른 낯빛에 아름다운 말을 남기고 형문(衡門)에 병적(屛跡)하여 죽어도 나아가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으니 그 뜻이 이만 열열함이 아니다. 무릇 천하의 대란을 거스리고 천하의 대절(大節)을 세우고 천하 사람의 능히 하지 못할 바를 행하여 오산(烏山)의 일구(一區)로 하여금 홀로 왕씨의 갑자(甲子)를 수십년(數十年) 오랜 세월에 머물게 하였으니 어허 ! 그야 말로 참다운 「砥柱」가 아니겠는가 ? 나는 이 의(義)에서 취했노라.
성룡은 가로되 『 선생의 절개도 높고 형님의 취하신 비유도 그렇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교(敎)를 삼으려 하시는 것은 무슨 생각이십니까?』후(侯)는 찬탄하여 천하의 물이 반드시 먼저 자수(自守)가 있는 연후에 능히 상대를 이길 수 있으니 저「砥柱」란 것이 오직 높고 굳다. 그러므로 당초에 홍수(洪水)를 기약하지 아니하였건만 홍수가 능히 움직이지 못했다. 이와 같이 지사(志士) 인인(仁人)도 오직 먼저 자기 마음 속에서 취사(取捨)의 명분을 살피어 확호불발(確乎不拔)하기 때문에 부귀, 빈천, 위무가 능히 흔들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로서 학자를 풍려(風勵)하고자 한다.
성룡은『근사합니다. 원컨데 이에서 나아가 그 설명을 끝맺어 주소서.』
후는『사람의 욕망이 생(生)보다 더한 게 없고 싫음이 죽음보다 더한 게 없고 애모(愛慕)하여 반드시 얻고자 하는 것은 부귀보다 더 한 게 없으니 진실로 그 정을 방임하고억제하는 방법이 없다면 무릇 죽음을 피하고 삶을 따르고 부귀를 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을 못하리오.』여기서 적륜(賊倫), 패리(悖理)하는 관습과 유군후친(遺君後親)하는 풍속이 충색(充塞)하고 미만(彌漫)하여 강물이 터지고 바다가 무너짐과 같아 삼강(三綱)이 침륜(沈淪)되고 구법(九法)이 문란하며 인류가 금수(禽獸)로 화하므로 성인(聖人)이 근심하는 뜻을 두어 사람에게 먼저 그 본심을 세움으로써 가르쳤나니 본심은 무엇인가. 부자(父子)에게 인(仁)과 군신(君臣)에게 의(義)는 하늘의 명(命)이요 만물의 법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