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고소양 麻姑搔痒 [삼 마/시어머니 고/긁을 파 / 가려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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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라는 손톱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 일이 뜻대로 됨[동]마고파양(麻姑爬痒)
[출전]『신선전(神仙傳)』 마고(麻姑)
[내용]: 한(韓)나라 환제(桓帝) 때 마고라는 선녀가 있었는데, 하루는 채경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마고의 손톱은 사람의 손톱과는 달리 그 모양이 마치 새 발톱처럼 생겼다. 채경은 마고의 손톱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만일 등이 가려우면 이 손톱으로 긁으면 좋겠다." 또 다른 선녀 방평(方坪)은 채경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내용을 알고, 사람들을 시켜 그를 끌어다 채찍질을 하도록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고는 선녀이다. 너는 어찌하여 마고의 손톱으로 등을 긁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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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부위침 磨斧爲針[갈 마/도끼 부/만들 위/바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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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 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유]愚公移山(우공이산)/面壁九年(면벽구년)/水滴穿石(수적천석)-물방울이 돌을 뚫는다/山溜穿石(산류천석)/적토성산(積土成山)/적수성연(積水成淵) **滴/溜--물방울 [동]철저성침[鐵杵成針(鍼)]. 마저작침[磨杵作針(鍼)]. [속]낙숫물이 댓돌 뚫는다
[출전]『唐書』 文藝(苑)傳.『方與勝覽(방여승람)』 [내용]: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자는 태백(太白), 701∼762]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백은 아버지의 임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수학(修學)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일설에는 쇠공이[鐵杵])를 갈고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磨斧作針]."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그 노파의 꾸준한 노력에 크게 감명을 받은 이백이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학문에 힘쓴 결과 학문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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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생각 馬生角 [말 마/날 생/뿔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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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뿔이 나다. 곧 세상에 결코 있을 수 없는 것 [동]오두백(烏頭白) [출전]『史記』 색은(索隱) [내용]: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태자로 단자(丹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처음 진(秦)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 무례한 대우에 분개하여 "우리 나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 그러자 진(秦)시황이 말했다. "그러지. 까마귀의 대가리가 희어지고(烏頭白), 말에 뿔이 나거든(馬生角) 돌려보내 주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단자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까마귀의 대가리가 금세 하얘지고, 말에도 뿔이 돋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진시황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연나라로 돌려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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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동풍 馬耳東風[말 마/귀 이/동녘 동/바람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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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귀에 봄바람이다. 남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거나 알아 듣지 못하는 것. 또는 어리석고 둔하여 남의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사리를 깨쳐 알지도 못한다.
[동]牛耳讀經(우이독경). 牛耳誦經(우이송경):쇠 귀에 경 읽기/對牛彈琴(대우탄금):소를 마주하고 거문고를 탄다. [속담] 쇠 귀에 경 읽기/말의 귀에 봄바람 부나마나 /너하고 말하느니 개하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다.
[출전]『李太白集』〈券十八〉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 [내용] : 왕거일(王去一)이 ‘쓸쓸한 밤 홀로 술을 마시며 회포에 잠긴다.〈寒夜獨酌有懷(한야독작유회)〉’라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읊은 시를, 이백이‘왕거일의 한야독작유회에 답한다.〈答王去一寒夜獨酌有懷(답왕십이한독작유회)〉’에“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들으면 모두 머리를 흔들 것이네. 마치 동풍이 말의 귀를 스치는 것 같이.(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라는 싯구로 답했다.
왕거일은 詩로 자기의 불우(不遇)를 이백에게 호소한 듯하다. 이백은 거기에 대해 달이 휘영청 밝고 추운 밤에 독작을 하고 있는 왕거일의 쓸쓸함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내용을 보면, 술을 마셔 만고의 쓸쓸함을 씻어버릴 것을 권하고 또 그대처럼 고결하고 뛰어난 인물은 지금 세상에서는 쓰이지 못함이 당연하다고 위로하며 다시 강개하는 말투로 자기의 당세 관(當世觀)을 엮어 간다.
지금 세상은 투계(鬪鷄)-당시 왕후 귀족 사이에서 즐겨 유행되었다.- 의 기술에 뛰어난 인간이 천자의 사랑을 얻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만적(蠻賊)의 침입을 막아 공을 세운 인간이 권력을 잡고 거드름을 피우는 세상이다. 물론 자네나 나는 그런 인간들의 흉내는낼 수 없다. 우리는 북쪽 창에 기대어 시를 읊거나 부(賦)를 짓는다. 그러나 그것이 만방에 미치는 걸작이라도 지금 세상에서는 한 잔의 물만한 가치도 없다. 아니 그뿐 아니라 세인들은 그것을 듣고 고개를 흔들며 동풍이 말의 귀를 스치는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는다.
이백은 비분하며 원래 중국은 무(武)보다 문(文)을 중시하는 나라로 文의 힘이 한 나라를 기울게도 하고, 반대로 흥하게도 한다고 읊었다. 더구나 이백처럼 스스로를 자부하는 바가 컸었던 시인에게는 그것이 강했다.생선 눈깔과도 같은 어리석은 자들이 명월이나 주옥과 같은 우리들을 비웃고 귀한 지위를 대신 차지하려고 한다. 옥석혼효(玉石混淆)하고 현우전도(賢愚轉倒)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들 시인에게는 경상(卿相)의 자리는 없다. 청년 시절부터 우리는 산야에 고답하는 것이 원이 아니었던가, 하고 격려하며 힘을 북돋고 시를 끝맺는다. 이백은 세인들이 시인의 말이나 걸작에 기울이는 관심도가 그 정도로 낮고 무관심하다고 비분(悲憤)하고 있는 것임.
[원문]昨夜吳中雪 子猷佳興發 萬里浮云卷碧山 靑天中道流孤月 孤月滄浪河漢淸 北斗錯落長庚明 懷余對酒夜霜白 玉床金井 嶸人生飄忽百年內 且須 暢萬古情 君不能狸膏金距學斗坐令鼻息吹虹霓 君不能學哥舒橫行靑海夜帶刀 西屠石堡取紫袍 吟詩作賦北里 萬言不直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 魚目亦笑我 請與明月同
[예문] ▷ 마이동풍으로 흘려듣다 ▷ 그에게는 나의 충고가 마이동풍이었다. ▷ 아닌 게 아니라 수차 그런 권고를 했는데 마이동풍이니 딱하지요.≪박경리, 토지≫ ▷ 정규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정부 규제가 대폭 완화돼야 한다고 주문할 뿐이다. 학계도 국가경쟁력 강화와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경제계와 같은 의견이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는 마이동풍이었다.<2006 중앙일보> ▷ 당 지도부는 “당 소속 의원들이 대선주자에게 기웃거리거나 눈치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줄서기를 공개경고하고 나섰으나 의원들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2006 국민일보> |
■ 마중지봉 麻中之蓬[삼 마/가운데 중/어조사 지/쑥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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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자연히 꼿꼿하게 자란다. 사람도 주위환경에 따라 선악이 다르게 될 수 있음.
[유]근주자적(近朱者赤)·근묵자흑(近墨者黑), 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출전]《순자(荀子)》〈권학(勸學)〉편
[내용]"서쪽 지방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은 사간(射干)이다. 줄기 길이는 네 치밖에 되지 않으나 높은 산 꼭대기에서 자라 백 길의 깊은 연못을 내려다 본다. 이는 나무줄기가 길어서가 아니라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쑥이 삼 밭에서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진다-(中略)- 이런 까닭에 군자는 거처를 정할 때 반드시 마을을 가리고(擇), 교유할 때는 반드시 곧은 선비와 어울린다. 이는 사악함과 치우침을 막아서 중정(中正)에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마중지봉은 윗글의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에서 취한 것이다. 앞의 "봉생마중"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쑥은 보통 곧게 자라지 않지만, 똑바로 자라는 삼과 함께 있으면 붙잡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삼을 닮아 가면서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찮은 쑥도 삼과 함께 있으면 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니, 사람도 어진 이와 함께 있으면 어질게 되고 악한 사람과 있으면 악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사람이 생활하는 데 환경이 중요함을 함축한 말이다. [원문]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참고]삼은 또한 밀식해서 심으면 곧장 하늘로 뻗으면서 자란다. 이런 사실은 옛날 유학자들의 많은 교훈거리로 되어 왔다. 친구,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의 '마중지봉(麻中之蓬)' 이란 말이 있다. 삼밭에 난 쑥이란 뜻이니까, 삼밭이 쑥대밭이 된 것이 아니냐고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잘 음미해야 할 말이다. 쑥은 무릎 정도로 자라는 것이 보통이지만 쑥이 삼밭에 났을 때에는 삼과 똑같이 자란다. 삼이 한자 자라면 쑥도 한자 자라고, 삼이 여섯자 자라면 쑥도 여섯자 자라난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쑥대와 삼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 즉, 마중지봉이란 말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주위의 감화를 받아 선량해 진다는 말이며, 여기에서 삼은 좋은 친구, 좋은 환경을 말하고 있다. |
■ 마혁과시 馬革寡尸 [말 마/가죽 혁 / 쌀 과 / 주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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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가죽으로 시체를 싼다. 전쟁터에 나가는 용장(勇將)의 각오
[출전]『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내용]후한(後漢) 광무제 때의 명장 마원이 교지(交趾)와 남부지방 일대를 평정하고 수도로 귀환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맞이했다. 그 중 지모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맹익이 판에 박은 듯한 인사말을 하자 마원은 맹익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날 노박덕(路搏德) 장군이 남월(南越)을 평정하여 큰공을 세우고도 작은 영토를 받는 데 불과 했는데 나는 큰공을 세우지도 못했는데도 공에 비해 상이 너무 커 이 영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두렵다. 지금 흉노와 오환(烏桓)이 북방을 위협하고 있으니 이들을 정벌해야 한다. 사나이는 마땅히 전장에서 죽어야 하고 말가죽으로 시체를 싸서 장사지낼 뿐이다 |
■ 막고야산 莫姑野山 [말 막/잠시 고/들 야/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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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 북해 속의 신선이 사는 산, 무위의 도를 갖춘 자유인이 사는 곳
[주]莫=邈 (멀 막/ 아득할 막) [출전]『장자』 추수 편
[내용]도를 터득한 현인 견오가 연숙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접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네만, 글쎄 그게 너무 터무니없고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았지 돌아올 줄을 모르더군. 나는 그 이야기가 은하수처럼 한없이 계속되는 것 같아 그만 오싹해졌네. 너무도 차이가 있어 상식에 어긋나네." 연숙이 물었다. "그 이야기란 어떤 건가?" 견오가 대답했다.
"막고야산에 신인이 살고 있지. 그 피부는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같이 부드러우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몰아 천지 밖에서 노닌다네. 그가 정신을 한데로 집중하면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병들지 않고 곡식도 잘 익는다는 거야. 이야기가 하도 허황되서 믿어지지가 않네."
연숙이 말했다. "그렇군. 장님에게는 색깔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고 귀머거리에겐 음악의 황홀한 가락이 안 들리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육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세. 지식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네. 그게 바로 지금의 자네를 말하네. 신인의 덕은 만물을 섞어 하나로 만들려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그가 천하를 다스릴 것을 바라고 있으나, 그가 무엇때문에 애써 수고하려 하겠나?. 이러한 신인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피해를 입는 일이 없고 홍수가 나서 하늘에 닿을 지경이 돼도 빠지는 일이 없으며, 큰 가뭄으로 금속과 암석이 녹아 흘러 대지나 산자락이 타도 뜨거운 줄 모르네. 신인은 그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와 겨로도 세상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요나 순을 만들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천하 따위를 위해 수고하려 하겠는가." 장자가 말하고 있는 막고야산은 바로 무위의 도를 갖춘 자유인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
■ 막역지우 莫逆之友 [말 막/거스를 역/어조사 지/벗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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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리는 일이 없는, 死生을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 [유]竹馬故友(죽마고우)/,斷金之交(단금지교) /.金蘭之交(금란지교)./芝蘭之交(지란지교)/.知己之友(지기지우)./知音(지음)./刎頸之交(문경지교)./水魚之交(수어지교)./膠漆之交(교칠지교)-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관포지교(管飽之交)-관중과 포숙아의 고사
[출전]『莊子』 [내용1]자사(子祀)와 자여(子輿)와 자리(子犁)와 자래(子來) 이렇게 네 사람은 서로 함께 말하기를, "누가 능히 無로써 머리를 삼으며, 삶으로써 등을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을까? 누가 사생존망(死生存亡)이 한 몸인 것을 알랴! 우리는 더불어 벗이 되자." 네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벗이 되었다.
子祀 子輿 子犁 子來 四人相與語曰 孰能以無爲者 以生爲背 以死爲尻 孰知死生存亡之一體者 吾與之友矣 四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내용2]자상호(子桑戶)와 맹자반(孟子反)과 자금장(子琴張)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더불어 말하 기를, "누가 능히 서로 더불어 함이 없는데 서로 더불어 하며, 서로 도움이 없는데 서로 도우랴. 능히 하늘에 올라가 안개와 놀며, 끝이 없음에 날아 올라가며, 서로 잊음을 삶으 로써 하고, 마침내 다하는 바가 없으랴"하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보고 웃으며, 서로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더불어 벗이 되었다.
[원문]子桑戶 孟子反 子琴張 三人相與語曰 孰能相與於無相與 相爲於無相爲. 孰能登天遊霧 撓撓 無極 相忘以生 無所終窮 三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友.
[예문] ▷ 그와는 어려서는 싸움도 많이 하였지만 뜻이 맞는 유일한 막역지우였다. ▷ 일 년에 한두 번 방학 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터이나, 이 두 청년은 입심 자랑이나 하듯이 주고받는 말끝마다 서 로 비꼬는 수작밖에 없건마는, 그래도 한 번도 정말 노해 본일은 없는 사이이다. 중학에서 졸업할 때까지 첫째, 둘째 를 겯고 틀던 수재이고, 비슷비슷한 가정사정에서 자라났 기 때문에 어린 우정일망정 어느덧 깊은 이해와 동정은 버 리려야 버릴 수 가 없는 것이었다.≪삼대≫
▷ *2003 수능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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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츰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고향--백석> | |
■ 만가 輓歌[수레 끌 만/노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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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혹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내용]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역食其)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해露歌) 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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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上朝露何易晞 부추 위의 이슬은 쉬이 마르도다. 露晞明朝更復落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人死一去何時歸 사람은 죽어 한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해로가]
蒿里誰家地 聚斂魂魄無賢愚 호리는 뉘집 터인고, 혼백 거둘 땐 현우가 없네. 鬼伯一何相催促 人命不得少王?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호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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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
[참고]만가는 우리나라 구전 민요의 하나로서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이다. 따라서 구비 전승으로서의 민중 문학인 동시에 민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가는 전통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며 어느 면에서는 기록문학에 비할 수 없는 절실한 생활 그 자체이기도 하다. 만가는 쉽게 '상여소리', '상부소리', '영결 소리'라고 하며 또 향도가, 향두가, 상두가(喪土歌), 상두가(常頭歌), 해로가라고도 한다. 향도가란 신라와 고려 시대의 향도라는 일종의 신앙 단체에서 연유된 것으로, 불교와 무속의 두 요소가 내포된 단체가 부르는 노래였다.
김유신 장군의 화랑도를 일명 용화향도라고 한 것을 보면 신라의 화랑이 불교와 고유 신앙의 요소를 내포한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 숫종 때는 승려와 일반인으로 구성된 만불회라는 신앙 단체가 있어서 그 모임에 든 사람을 만불향도라 했다. 그래서 향도란 요즘 단원이나 회원과 같은 말로, 죽은 사람들이 합창하는 상여노래를 향도가라 했다. 향도들이 상여를 운상하게 된 것은 맹인을 영천 영지에 극락시킨다는 신앙적 요소가 내포돼 있었다. 향도가 향두로 변음되어 향두가가 된 것이다. 상여의 낮은말로 상두(喪土)란 말이 있다. 여기서 '土'는 뿌리를 의미하는 뜻에서 '두'로 발음한다. 남의 것을 가지고 제 낯을 내는 사람을 비꼬는 속담으로 "상두술 낯내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처럼, 상여 소리를 '상두가'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상두가란 어휘가 생겼을 것이다. 해로가란 솔잎에 묻은 이슬에서 나온 말로 인생 무상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여기서 '솔'은 소나무의 솔이 아니라 달래과에 속하는 다년초 식용 식물부추를 의미하는 호남 지방의 방언이다. 간밤에 내린 이슬이 부춧잎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가 아침에 해가 뜨면 가장 먼저 떨어진다는 데서 허무한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한나라 때 생긴 말로 주로 귀족 사회에서 쓰였다. 그리고 만가를 호남 지방에서는 상부가, 제주도에서는 답산가라 일컫는다. 상부가란 옛날 향약의 상부 상조에서 나온 말이요, 갑산가란 상여를 메고 산으로 올라간다는 데서 그렇게 쓰인 것이다. 영어로 엘레지다. 즉 죽은 이를 위해서 애도와 비탄을 나타내는 노래나 시다. 이 'Elegy'는 그리스의 'elegos' 즉 갈대피리란 뜻으로서 당초에는 피리를 반주하는 만가의 일종을 지칭했으나 후에 심사나 명상 등을 싣는 데 적합한 시 형식을 지칭하게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고인에 대한 애도와 비탄의 감정을 나타내는 서정시를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가라 하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가사를 노래화한 것을 이른다. 만가에는 상여를 메고 묘지를 향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매장한 뒤에 흙을 다질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특히 후자는 '달구지'라고 따로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지만 봉분까지 환전히 다 끝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산하지'라는 허전한 노래가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해남군과 고흥군 일부지역에서만 간긴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래까지를 총칭하여 만가라 한다. < 한국만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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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창파 萬頃蒼波 [일만 만/이랑 경/푸르를 창/물결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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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이랑의 푸른 물결.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 [예문] ▷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1. 부딪치는 파도소리 단잠을 깨우니 들려오는 노(櫓)소리 처량도 하구나 2. 만경창파에 몸을 실리어 갈매기도 벗을 삼고 싸워만 가누나 3. 낙조청강(落照淸江)에 비츨 띄우고 술렁술렁 노저어라 달맞이 가잔다.≪뱃노래≫
▷ 위에 떠오르더니 북두와 견우성 중간으로 흘러가더라. 희뿌연 물안개 강을 넘고, 물에 비친 달빛은 하늘과 닿았네. 일엽편주 몸을 맡기고 만경창파를 건너네. 시야는 탁트여 호탕하기 그지없다,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을 가르는듯, 멈출 곳이 그 어드메뇨; 몸은 가볍게 한들한들-『적벽부,』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으응 아라리가 났네 (1)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2)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노를 저어라 (3) 만나니 반가우나 이별을 어이해 이별이 되랴거든 왜 만났던고 (4) 노다 가세 놀다나 가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 가세 (5) 치어다 보니 만학은 천봉 내려 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6) 님이 죽어서 극락을 가면 이내 몸도 따라가지 지장보살 (7)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갈 길을 내가 왜 왔던고 (8) 다려가오 날 다려가오 우리 님 뒤 따라서 나는 가네 ≪진도아리랑≫
▷ 요내 춘색(春色)은 다 지나가고 황국 단풍이 돌와왔구나. 천생만인은 필수기직이라. 각각 벌어 먹는 골시 달라. 우리는 구태여 선인이 되어 타고 다니는 것은 칠성판이오. 먹고 다니는 것은 사자밥이라. 입고 다니는 것은 매장포로다. 요내일신(一身)을 생각하면 불쌍하고 가련하지 않단 말이냐.
. 배를 타고 선창을 떠나 만경창파(萬頃蒼波)로 떠나려 갈 제 금년 신수 불행(不幸)하여 몹쓸 액풍 광풍 폭풍 만나 수로창파 대해중에 천리(千里) 만리(萬里)로 불려갈새 양쪽 돛대는 직근 부러져 세 동강에 나고 뱃머리는 빙빙 정신(精神)은 아득하여 삼혼(三魂)칠 백(七魄)이 흐터질 제 사십 명 동모를 수중에 넣고 명천(明天) 하느님 굽어 살피사 요내 여러 동모를 살려내소서.<배따라기>
▷ 이때의 심청이는, 세상사(世上事)를 하직(下直)하고, 공선(供船)에 몸을 싣고, 동서남북(東西南北) 지향(指向)없이, 만경창파(萬頃蒼波) 높이 떠서, 영원(永遠)히 돌아가는구나, 도판(渡板) 떼고 행선(行船)을 하는데..≪심청가≫ 中
▷ 참으로 내 재주를 들어보아라. 만경창파(萬頃蒼波) 깊은 물에 기엄둥실 사족을 바투 끼고 긴 목을 움치며 넓적이 엎드리면 둥글둥글 수박이오 편편납작 솥뚜껑이라. 나무 베는 목동이며 고기 잡는 어부들이 무엇인지 모를 터이니 장구하기는 태산이오 평안하기는 반석이라.≪별주부전≫ 中 |
■ 만고풍상 萬古風霜[일만 만/옛 고/바람 풍/서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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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고생. [유]간난신고[艱難辛苦]/팔년풍진[八年風塵] [예문] ▷ <풍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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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상 가래야 이 가래가 뉘가랜고 천생원댁 가래로세 금년부터는 만고풍상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날 가내모두 무고하고 소원성취 이룩된다 어 넝상 가래야 내고장 내마을에 대풍으로 이룩되어 잘사는 고장 세어보세 |
▷ <노들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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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 볼까 *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 가노라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번이나 지어 갔나 *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 가노라 노들강변 푸른물 네가 무심 망녕으로 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 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 이 세상 쌓인 한이나 두둥 싣고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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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 뒤뜰 한켠에는 600여년 동안 만고풍상을 겪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기념물 8호 백송(白松)이다. 중국 북부가 원산지인 백송은 베이징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지 않은 희귀수종이라고 한다.<2006 세계일보> |
■ 만구성비 萬口成碑[일만 만/입 구/이룰 성/비석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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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입이 비석을 만든다. 여러사람이 칭찬하는 것은 송덕비를 세우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이 칭찬하게 되면 결국 송덕비를 세움과 같이 명성이 알려진다.
▷ 주꾸미에게 공덕비를 세우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공덕비를 많은 사람의 말이 이루는 ‘만구성비(萬口成碑)’라고도 하지 않았는가.<2007.10 서울신문> |
■ 만사휴의 萬事休矣[일만 만/일 사/그칠 휴/어조사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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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끝났다,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 [유]능사필의(能事畢矣), 도로무공(徒勞無功)
[출전]『송사(宋史)』 형남고씨세가(荊南高氏世家) [내용]당나라가 망하고 송(宋:北宋, 960∼1127) 나라가 일어날 때까지 53년 동안에 중원에는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다섯 왕조가 일어났다가 쓰러지곤 했는데 이 시대를 오대[五代:후오대(後五代)의 준말]라 일컫는다.
또 다시 중원을 벗어난 각 지방에는 전촉(前蜀) 오(吳) 남한(南漢) 형남(荊南) 오월(吳越) 초(楚) 민( ) 남당(南唐) 후촉(後蜀) 북한(北漢)등 열 나라가 있었는데 역사가는 이를 오대 십국(五代十國)이라 일컫고 있다. 이들 열 나라 중에는 형남과 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왕인 고종회(高從誨)는 아들 고보욱(高保勖)을 분별없이 귀여워했다.
그래서 고보욱은 남이 아무리 노한 눈으로 쏘아보아도 싱글벙글 웃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다.'모든 일이 끝장났다[萬事休矣].'과연 고보욱은 왕위에 오르자 나라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사치와 방탕에 빠져 지냈고 오래지 않아 형남은 멸망하고 말았다.
[예문] ▷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건만 시험에 떨어져 만사휴의로 끝났다. ▷ 그들이 세워 두었던 계획은 만사휴의로 변해 버리고 두 사람은 차량 절도죄로 구속될 것이다.≪최인호, 지구인≫ |
■ 만수무강 萬壽無彊[일만 만/목숨 수/없을 무/굳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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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동안 목숨을 유지하여 끝이 없음,수명이 끝이 없기를 바라는 말임
[출전]『시경(詩經)』 [내용1]남산에는 뽕나무가 있고 북산에는 버드나무가 있다네 즐거운 군자여 국가의 영광이로다 즐거운 군자여 만수무강하리라(北山有楊 樂只君子 邦家之光, 樂只君子 萬壽無疆)《시경(詩經)》소아(小雅) 남산유대(南山有臺)
[내용2]"2월에는 얼음을 쪼개고, 3월에는 얼음창고에 넣고, 4월에는 이른 아침에 염소를 바치고, 부추로 제사를 지낸다. 9월에는 서리가 내리고, 10월에는 마당을 깨끗하게 하며, 두 단지의 술로 잔치를 베풀어 염소와 양을 잡아 대접하고 공회당에 올라가 쇠뿔잔의 술을 서로 권하며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십시오."
중국 농민들의 세시풍속과 농촌의 정경을 읊은 서사시이다.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인 주공(周公)은 성왕(成王)의 섭정(攝政)이 되었는데, 주왕조(周王朝)의 전설적 시조인 후직(后稷)과 공유(公劉)가 농업진흥정책을 펴온 내력을 시로 엮어 노래하게 하였다. 백성들의 안락한 생활과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려는 주공의 뜻이 담겨 있는 시이다. 《시경(詩經)》 〈빈풍〉의 '칠월' |
■ 만시지탄 晩時之歎 [늦을 만/때 시/어조사 지/탄식할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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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늦었음을 한탄한다. 기회를 잃고 지났음을 한탄함. [유]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망양보뢰亡羊補牢 , 후시지탄後時之嘆
[예문] ▷ 오래 길들인 생활의 터전을 내준 걸 후회했다. 후회해 봤자 만시지탄이었다.≪박완서, 오만과 몽상≫
▷ 그러나 얼마 안 되어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면 큰 닭이 한 번 쪼인 앙갚음으로 허들갑스리 연겊어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금 못 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순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꼬추장을 좀더 먹였드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 김유정(金裕貞), 《동백꽃》 中에서
▷ 고령화의 중대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갖가지 대응책도 마련 중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기초적인 노후 안전망인 국민연금의 재정 구조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LG경제연구원-성공을 꿈꾸는 한국인이 사는 법>
▷ 작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중에서 또 한 사람이 혐의를 벗었군.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암스트롱이 죽은 여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김남주-애거서크리스티전집>
▷ 장끼 거동 볼작시면 차위 밑에 엎디어서, “에라 이년 요란하다, 후환을 미리 알면 산에 갈 이 뉘 있으랴. 선미련 후실기라, 죽는 놈이 탈없이 죽으랴. 사람도 죽기를 맥으로 안다 하니 나도 죽지 않겠나 맥이나 짚어 보소.” <장끼전> |
■ 만신창이 滿身瘡痍[찰 만/몸 신/상처 창/상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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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상처투성이. 성한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또는 사물이 쓸 만한 데가 없을 정도로 결함이 많음.일이 아주 엉망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문] ▷ 10월 말에 기상관측 사상 최고의 강풍이 몰아치고 네 시간 만에 2백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강원 영동지역 다시 피해가 속출했고 또다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2006 뉴스보도>
▷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수해로 만신창이가 된 채 겨울을 맞아야 할 북녘 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망설여선 안 된다는 원칙도 분명히 밝혀둔다. <2006 한겨레21>
▷ 번역을 저술로 치지 않는 학문 구조, 쥐꼬리만한 번역료, 짧은 번역 일정, 나누어 번역하기 등 번역을 위한 출발선 자체가 이미 졸속이고 문제투성이다보니 결승점은 만신창이가 된다. 번역을 번역답지 못하게 하는 번역구조는 번역자들을 반역자로 내몬다<2006 조선일보>
▷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조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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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슭에서 산을 품는 흔들림 없는 나무가 되어 한적한 물가 가만가만 그늘 깊은 나무가 되어 천 년을 딱 한 사람만 기다리는 나무가 되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비바람에 엉키다가 처음처럼 기다리다 그 아픔에 혼절하고픈 꼭 한번 그러고 싶은 욕심 많은 나무가 되어 길가에서 만신창이로 온몸을 내 주어도 한 가지씩 썩어가도 따뜻한 눈물 되어 한 사람 가슴 적시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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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전지책 萬全之策[일만 만/온전할 전/몸 신/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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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지가 다 온전한 계책, 아주 안전하거나 완전한 계책.조금의 허술함도 없는 완전한 대책
[출전]『후한서(後漢書)』 유표전(劉表傳) [내용]후한 말기 魏(위)나라 曹操(조조)의 군대와 북방 최대의 軍閥(군벌)袁紹(원소)의 군대가 官渡(관도)라는 곳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이 때 원소의 군대는 10여만명이나 되는 데 반해 조조의 군대는 3만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수적으로는 조조의 군대가 열세에 있었지만 白馬(백마)의 싸움에서 원소의 명장 顔良(안량)과 文丑(문추)를 격파하여 죽게 하는 등 원소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병력의 수적인 면에서 워낙 뒤떨어졌기 때문에 조조는 한 때 도읍인 許昌(허창)으로 후퇴하려는 계획도 세워 보았다. 원소는 원소대로 병력 수에 있어서는 절대 우위에 있었지만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荊州(형주) 목사 劉表(유표)에게 도움을 청했다. 유표는 말로는 도와주겠다고 하고는 팔짱을 끼고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 유표의 측근인 하숭과 유선이 진언했다."우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으면 결국 양쪽 모두의 원한을 사게 됩니다. 지금 형세로 보아 조조는 원소의 군대를 격파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원소보다 조조편을 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대책(萬全之策)입니다." 그러나 유표는 이 말을 듣지 않고 망성이다가 마침내 관도의 싸움에서 승리한 조조에게 화를 당하고 만다.
[원문]曹操必破袁紹 後來功吾等矣 吾等留觀望 將受怨於兩便 故隨强操 賢且爲萬全之策矣
[예문] ▷ 장기주택대출은 경기나 금리변화에 흔들리던 가계신용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맘먹고 짓는 보약 같은 정책이다. 허술함이 전혀 없는 만전지책(萬全之策)이었으면.<2003 머니투데이> |
■ 망국지음 亡國之音[망할 망/나라 국/어조사 지/노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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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 음란하고 사치한 음악. 망한 나라의 음악. 애조(哀調)를 띤 음악. [동] 망국지성(亡國之聲). [유] 정위지음(鄭衛之音).
[출전]『韓非子』〈十過篇〉.『禮記』〈樂記〉
[내용1] 춘추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던 도중 복수[ 水:산동성(山東省) 내] 강변에 이르자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멋진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영공은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잠시 넋을 잃고 듣다가 수행중인 사연(師涓)이란 악사(樂師)에게 그 음악을 잘 기억해두라고 했다. 이윽고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 평공(平公)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들은 새로운 음악'이라고 자랑했다.
당시광(師曠)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는데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학이 춤을 추고 흰 구름이 몰려든다는 명인이었다. 위나라 영공이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입궐한 사광은 그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황급히 사연의 손을 잡고 연주를 중지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亡國之音]'이오."
이 말에 깜짝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그 내력을 말해 주었다. "그 옛날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는 사연(師延)이란 악사가 있었사옵니다. 당기 폭군 주왕은 사연이 만든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미(淫 :음란하고 사치함)한 음악에 도취하여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서 음일(淫佚)에 빠졌다가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나이다. 그러자 사연은 악기를 안고 복수에 투신 자살했는데, 그 후 복수에서는 누구나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국의 음악'이라고 무서워하며 그곳을 지날 땐 귀를 막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사옵니다."
[내용2]《예기(禮記)》〈악기(樂記)〉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복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망국지음'이다."
[원문]因復留宿.明日而習之, 遂去之晉.晉平公觴之於施夷之臺.酒 , 靈公起曰: "有新聲, 願請以示." 平公曰: "善."乃召師涓, 令坐師曠之旁, 援琴鼓之.未終, 師曠撫止之, 曰: "此亡國之聲, 不可遂也.<『韓非子』> "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禮記』> |
■ 망매해갈 望梅解渴 [바랄 망/ 매화나무 매/ 풀 해/ 목마를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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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실을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괴어 갈증이 풀린다는 말. [동]매림지갈 梅林止渴 [그칠 지/목마를 갈]
[출전]『世說新語』『삼국지연의』 [내용1]위(魏)나라의 조조(曹操) 군대가 행군을 하고 있었다. 때는 한여름이어서 무더운 날씨에 장병들은 몹시 지쳐 있었다. 게다다 갈증으로 목이 타는데 마실 물은 떨어진지 오래다. 그래도 참고 얼마를 더 행군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만큼 전군(全軍)이 지치고 목말라 했다. 일대의 지리에 밝은 부하에게 물어봐도 샘은 한참 더 가야 있다고 했다.
조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조가 누군인가. 지모(智謀)에 뛰어난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 아니던가. 선두에 섰던 조조는 문득 절묘한 계책을 생각해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힘을 내라. 조금만 더 참아라. 여기서 가까운 곳에 매화나무 숲이 있다. 거기엔 가지가 휘도록 매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고 한다. 거기 가서 우리 모두 갈증을 풀어보자."
매실이란 말을 듣자마자 모든 장병들의 입안은 침으로 흥건해졌다. 그 시디신 매실을 연상하고도 침이 나오지 않을 장사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기운을 되찾은 장병들은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진군을 할 수 있었다.≪世說新語≫
[내용2]유비가 허창에 있던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승상부로 오도록 하고는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금 전 후원의 매실이 파랗게 익은 것을 보고 작년 장수를 정벌하기 위해 행군했을 때 물이 떨어져 병사들이 고통을 겪던 일이 생각났소. 나는 그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햇소. '저 앞에는 광활한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들이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는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소.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물 있는 곳을 찾았소. 오늘 정원의 매실을 보니 그때의 일이 떠올라 그대와 함께 담소하며 술을 마시고 싶어 불렀소."
조조는 유비의 인물됨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통해 유비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삼국지연의≫ |
■ 망양보뢰 亡羊補牢 [잃을 망/양 양/기울 보/외양간 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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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한다. 이미 때가 늦었다.
[속담]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유]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晩時之嘆(만시지탄) [내용]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에 莊辛(장신)이라는 충신이 있었다.하루는 國王의 측근들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을 보다 못해 장차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楚 襄王(양왕)에게 간했다가 도리어 욕설만 잔뜩 듣고 말았다.『이 놈의 늙은이가 돌았나 보군! 고의로 험악한 말을 하여 민심을 혼란스럽게 하다니….』『王께서 계속 그 者들을 총애하신다면 아마도 그런 위기는 반드시 닥쳐오고야 말 것입니다.저는 趙(조)나라로 몸을 숨기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莊辛의 말은 적중했다. 과연 그가 楚를 떠난지 5개월도 되지 않아 秦(진)은 楚를 쳐서 크게 깨뜨렸고,襄王은 陽城(양성)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후회한 襄王은 급히 신하를 보내 莊辛을 불러왔다.그리고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고 물었다.莊辛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토끼를 보고 사냥개를 불렀다면 아직 늦지 않다고 하더군요.또 도망친 양(亡羊)을 보고 외양간을 고쳐도(補牢) 아직 늦지 않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가 한 말은 襄王의 어리석음을 비꼰 것이다
[원문]莊辛去之趙. 留五月, 秦果擧 ,巫,上蔡,陳之地.襄王流 于城陽. 于是使人發騶, 徵莊辛于趙. 莊辛曰: "諾." 莊辛至, 襄王曰 "寡人不能用先生之言, 今事至于此, 爲之奈何?" 莊辛對曰: "臣聞鄙語曰 '見 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 臣聞昔湯, 武以百里昌, 桀 紂以天下亡. 今楚國雖小, 絶長續短, 猶以數千里, 豈特百里哉?
[예문] ▷ 시설관리공단은, 내년까지 종합방재센터를 만들고 오는 2009년까지 공기의 질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2006 KBS뉴스>
▷ 바다이야기에 대해 한말씀드리겠다.어제까지 정부와 여당이 몇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소는 이미 잃은 것 같지만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겠다. 국회가 외양간 고치는데 역할을 제대로 해야...<2006 열린우리당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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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양지탄 望洋之歎[바랄 망/바다 양/어조사 지/탄식할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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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 곧 남의 위대함에 감탄하면서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탄식
[출전]『莊子』 추수편 [내용]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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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지탄 亡羊之歎[잃을 망/양 양/어조사 지/탄식할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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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잃었으나 길이 많고 복잡하여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름을 한탄한다. 학문이란 그 범위가 넓고 복잡하여 얻는 것이 적음을 한탄한다. [동]多岐亡羊(다기망양) [출전]『列子』 [내용]양자의 이웃집에서 양 한 마리가 도망을 했다. 양의 주인이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양자에게 노복(奴僕) 청하여 양을 쫓아가려 하자, 양자가 물었다.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었는데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뒤쫓아가는고." 이웃집 사람이 대답하였다. "도망간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 얼마 뒤에, 그들이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서 양을 잃었다고 하였다. 양자가 양을 잃은 까닭을 묻자, "갈림길을 가면 또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소(多岐亡羊)."
양자는 그 말을 듣고는 묵묵히 앉아 입을 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웃는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이 기껏해야 양 한 마리를 잃은 일이요, 더구나 자기의 양도 아닌데,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제자인 맹손양(孟孫陽)은 스승의 고민을 알지 못하고 선배 제자인 심도자(心都子)에게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으니 심도자는 "단 한 마리의 양이라 할지라도, 갈림길에서 또 갈림길로 헤매어 들어가서 찾다가는 결국 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학문의 길은 어떻겠느냐? 목표를 잃고 무수한 학설들에 빠져 헤맨다면 아무리 노력한들 그 또한 무의미한 것 아니겠느냐." 하였다.
《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에도 양을 잃은 이야기가 있다. 남녀 종이 책을 읽고 주사위놀음을 하다가 양을 잃었다는 이야기로, 이 곳에서도 주위의 사물이나 현상에 휩쓸리다 보면 자기의 본분을 잊게 된다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망양지탄(亡羊之歎)이라고도 한다.
학문에는 지식의 집적과 이론의 분석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질없이 지엽말절을 꼬치꼬치 캐고 살피는 일에 빠져서 근본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풍자한 이야기이다.
[원문]心都子曰:"大道以多 亡羊, 學者以多方喪生. 學非本不同,非本不一, 而末異若是. 唯歸同反一, 爲亡得喪. 子長先生之門, 習先生之道, 而不達先生之 也, 哀哉!" |
■ 망운지정 望雲之情[바랄 망/구름 운/어조사 지/뜻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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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 [동]白雲孤飛(백운고비)
[출전]당서(唐書) [내용] : 唐나라「적 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참군(幷州法曹參軍)에 있을 때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 땅 별업(別業)에 계신데, 인걸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반복하여 돌아보면서 흰구름이 외롭게 나르는 먼 곳을 좌우 사람에게 일러 말하되“내 어버이가 저 구름이 나는 아래에 계신데, 멀리 바라만 보고 가서 뵙지 못하여 슬퍼함이 오래되었다.”하고 구름이 옮겨 간 뒤에 이에 산에서 내려왔다.
망운지정이란 이렇게 타향에서 자신도 신고를 겪지만 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자식의 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후일 그의 평판이 높다는 말을 들은 측천무후는 다시 그를 재상으로 등용하였고, 재상이 된 후 그는 장간지(張柬之)·요승(姚乘) 등을 추천하여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아 측천무후의 신임을 얻었다. 어느 날 측천무후가 상서랑(尙書郞)으로 합당한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서슴없이 아들 광사(光嗣)를 추천하는 등 일 처리에 사사로움이 없었다 한다.
[원]狄仁傑이 授幷州法曹參軍이어늘 其親은 在河陽別業이라 仁傑이 登太行山하여 反顧見白雲孤飛하고 謂左右曰“吾親이 舍其下로다 瞻璥이 久之니라”하고 雲移에 乃得去하니라. ** 狄(성 적) 授(줄 수) 舍(머무를 사) 瞻(볼 첨) 璥(슬플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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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자계치 亡子計齒[죽을 망/아들 자/헤아릴 계/이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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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식 나이 세기.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기다. 이미 그릇된 일은 생각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음 [예문] ▷ 변대치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으나 망자계치라 공릉 대사만 원망하고 있었다.<방수윤-천하대란> |
■ 망자재배 芒刺在背 [ 가끄라기 망/ 가시 자/ 있을 재/ 등질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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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를 등에 진다. 등 뒤에 자기가 꺼리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음
[출전]『한서(漢書)』 곽광전 [내용]한나라 선제가 보위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선제가 고조의 묘를 알현하기 위해 출발할 때, 그의 호위를 담당한 자는 대장군 곽광이었다. 곽광은 일찌기 무제의 유조를 받들어 대사마대장군으로서 소제를 도왔으며, 그 다음 창읍왕이 음란한 행실을 계속하자 그를 폐위시켜 중기의 정치실력자 선제를 임금의 자리에 세웠던 인물이다.
곽광의 권력이 하늘을 뚫을 정도였으므로 선제는 내심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곽광과 함께 가는 것이 마치 가시를 등에 진것과 같이 불편하였다. 이 당시 그의 표정은 마치 무엇엔가 위협을 받는 듯 불안해 하며 굳어 있었다. 그 후 거기장군 장안세가 곽광을 대신하여 선제를 모신 적이 있었는데, 이때는 편안하고도 조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망중한 忙中閑 [바쁠 망/가운 데 중/한가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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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가운데에서도 한가로운 때. [예문] ▷ 그는 망중한에 창탄을 즐기곤 하였다. 창탄 ▷ 병조 판서 이덕형은 망중한 신하지마는 일단 적괴의 입에서 이름이 나온 이상 안연히 벼슬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박종화, 임진왜란≫ ▷ 고경명이 망중한 백수 서생으로 의기를 짚어 국운을 회복하려 일어나니, 시골 선비와 백성들은 모두 다 의거에 감동이 되어….≪박종화, 임진왜란≫ ▷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취미는 낚시다. 평소 서울 근교 저수지에 가서 낚시 찌를 드리우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수를 읽는 게 그의 유일한 망중한이라고 한다. <2006 국민일보> |
■ 망진막급 望塵莫及 [바랄 망/ 티끌 진/ 말 막/ 미칠 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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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바라보고 미치지 못한다. 손에 넣지 못하는 것.
[출전]『남사(南史)』 [내용]남북조시대 때 송나라의 복양에 오경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양주의 태수로 부임된 왕의공은 그에게 자신의 일을 보좌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오경지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내심 기뻤으므로 서슴없이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훗날 왕의공이 업무상의 과실로 인해 처형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때 오경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을 보좌할 만한 능력이 없다며 관직을 버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오흥태수로 임명된 왕곤이 오경지에게 공조자리를 맡아달라고 했다. 오경지는 왕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지난번 왕의공 태수가 저를 존중해 주어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한 일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관직을 맡아달라고 하는 것은 물고기를 나무 위에서 기르고, 새를 물 속에서 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인사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왕곤이 황급히 그를 뒤 따라갔으나 흙먼지만 보일 뿐 따라갈 수가 없었다. . |
■ 매사마골 買死馬骨 [ 살 매/ 죽을 사/ 말 마/ 뼈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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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말의 뼈를 산다. 귀중한 것을 손에 넣게 위해 먼저 공을 들임. [동]先從自始(선종자시)/先施於隗(선시어외) /先從隗始(선종외시) :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千金買骨(천금매골) / 請自隗始(청자외시)
[내용]춘추전국시대에 어떤 나라의 왕이 천리마를 구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때 어떤 자가 나타나 천리마를 꼭 구해 오겠다고 했다. 왕은 그의 말을 믿고 천리마가 당도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과연 그자는 약속대로 천리마를 구해왔다. 그런데 그 천리마는 천리를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살아 있는 명마가 아니라 죽은 말이었다.
왕은 화를 내며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천리마가 오는 도중에 죽은 것이냐? 아니면 죽은 말을 사서 가져 온 것인지 사실대로 말해 봐라." "이미 죽은 말을 샀습니다. 그 가격은 오백 금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으나 영문이나 들어 보려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되물었다. "왜 죽은 말을 샀느냐?" "대왕, 천리마는 귀한 말이라 모두들 집에 숨겨 놓지 결코 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오백금에 샀다고 소문이 나 보십시오.
그것도 산 천리마가 아니라 죽은 천리마가 오백 금이라면 앞을 다투어 천리마를 갖고 올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천리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왕 앞에 줄을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소문이 전해지자 과연 천리마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났고, 왕은 천리마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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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점매석 買占賣惜 [살 매/가질 점/팔 매/아낄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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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쌓아두로 팔기는 꺼림 [예문] ▷ 대추·밤·감·배며, 석류·귤·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곱절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따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평에 이르렀다. 얼마안 가서 허생에게 배 값으로 과일을 팔앗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박지원, 『'허생전(許生傳)』' 中에서
▷ IMF한파로 일부에서 사재기가 성행하는 가운데 커피를 매점매석한 식품유통업자가 경찰에 고발됐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인천 남부경찰서가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서 커피대리점을 하는 이모씨를 커피 매점매석 혐의로 적발, 물가안정법 위반죄 적용여부를 문의해 옴에 따라 이씨에 대한 고발장을 경찰에 접수시켰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
■ 매처학자 梅妻鶴子[매화 매/아내 처/학 학/아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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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음. 풍아한 생활. [출전]『시화총귀(詩話總龜)』 [내용]송나라에 임포라는 자가 살았다. 임포는 평생 동안 장가도 들지 않고 고요한 가운데 고달픈 삶을 살아간 시인이다. 그는 영리를 구하지 않는 성격을 흠모하여 그의 시 또한 청고하면서 유정한 풍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시명으로 평가되는 것을 꺼려서 지은 시를 많이 버렸고 자신의 시가 후세에 전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기록하지도 않았다.임포는 서호 근처의 고산에서 은둔 생활을 했는데, 자주 호수에 조각배를 띄워 근처 절에 가서 노닐었으며, 동자는 학이 나는 것을 보고 객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임포는 아내와 자식이 없는 대신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에 수많은 매화나무를 심어 놓고 학을 기르며 즐겁게 살았다.그래서 사람들은 임포는 매화아내에 학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이후로 후세 사람들은 '매처학자'라는 말로써 풍류로운 생활을 한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
■ 맥구읍인 麥丘邑人 [ 보리 맥/ 언덕 구/ 고을 읍/사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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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구읍 의 사람. 곱고 덕스럽게 늙은 사람, 곧고 슬기로워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노인 [출전]『유향의 신서 』잡사
[내용]전한(前漢) 말 유향(劉向)이 지은 《신서(新序)》 잡사(雜事)편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맥구(麥丘)로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곱게 늙은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노인의 풍채에 반한 환공이 노인에게 나이를 물으니 여든세 살이라고 하였다. 감탄한 환공은 "그렇게 장수하시니 좋으시겠소. 당신의 장수로써 나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노인은 다음과 같이 축원하였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께서 대단한 장수를 누리게 하소서. 돈이나 옥은 천한 것이고, 사람은 귀한 것입니다." "좋은 말이오. 지극히 덕스러운 자는 외롭지 않소. 다시 한말씀 해주시구려."
환공과 노인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으로 하여금 배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현명한 자는 항상 곁에 간언하는 사람을 있게 합니다." "옳은 말이오. 지극히 덕스러운 자는 외롭지 않소. 한말씀만 더해 주시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이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환공은 이 말에 안색을 바꾸고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군주가 신하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소. 이는 앞의 두 말과는 다른 것이니 고치시오." 그러자 노인은 앉아 절을 하고는 일어나며 말하였다. "이 말은 앞의 두 말이 자란 것입니다. 자식이 애비에게 죄를 짓는 것은 주위의 친척 때문이고,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 것은 주위의 편벽된 신하 때문이니, 모두 오해를 풀어 사면해 줄 수 있습니다. 옛날 걸(桀)은 탕(湯)에게 죄를 지었고, 주(紂)는 무왕(武王)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군주가 신하에게 죄를 지은 것으로 오늘날까지 사면 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노인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와 예를 다하였다. 이와 같이 맥구읍인이란 곧고 슬기로워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노인을 가리킨다.<두산백과> |
■ 맥수지탄 麥秀之歎[보리 맥/이삭 수/어조사 지/탄식할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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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 고국의 멸망을 탄식하다. [동]亡國之歎(망국지탄). 亡國之恨(망국지한) : 나라가 망함을 탄식함.麥秀之歌(맥수지가)
[출전]『史記』〈宋微子世家〉.《『詩經』〈王風篇〉
[내용]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은 夏의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대표적인 인물로 술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己)라는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의 말은 무엇이나 들어주었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길렀다.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다"(酒池肉林주지육림) 고 하였다.
이러한 은나라 주왕에게도 훌륭한 세 명의 신하가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미자(微子)는 떠나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고 비간(比干)은 간하다가 죽었다"고 하며 은 나라에는 세 어진 이가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러나 주왕은 나라를 망치려고 어진 세 신하의 간절한 충언을 듣지 않았다. 미자는 주왕의 이복형으로 아무리 간해도 주왕이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을 하였다.
기자(箕子)는 주왕에게 간곡한 충고를 했으나 주왕이 들어주지 않자 목숨이나 부지하여 나라를 건지는 방법을 찾으려고 거짓으로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남의 집 종이 되어서 세상을 숨어살았다. 비간(比干)은 극간을 하다가 능지처참을 당하고 은나라는 결국 망하고 주나라가 세워지게 되었다.
국외로 망명했던 기자는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의 왕으로 봉해진다.그래서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중 옛 은나라의 도읍을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도읍은 흔적도 없어지고 황폐해진 궁궐 자리엔 보리와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난날의 감회에 젖어 맥수지가(麥秀之歌)를 지어 殷의 도읍은 간데 없고 궁궐터에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함을 탄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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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이삭은 쑥쑥 자라 있고[麥秀漸漸兮] 벼, 기장도 잘 자라네[米黍油油] 저 교활한 아이여, [彼狡童兮] 나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도다[不與我好兮]
** 諫(간할 간) 漸(점점 점) 黍(기장 서) 油(기름 유) 狡(교활할 교) |
[참고1]기자동래설--기자는 주왕의 횡포를 피하여 혹은 주나라 무왕이 조선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예의,밭갈이,누에치기,베짜기와 사회교화를 위한 팔조지굘를 가르쳤다고 하나 이는 후세사람들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임,왜냐하면 진나라의 학자인 두예가 그의 저서 <춘추석례>의 주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나라의 몽현에 있다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고조선을 세가지 단게로 나눔니다
1. 단군조선;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시기 신석기시대 씨족사회로 부족국가는 아니나 씨족의 무리가 단군신앙을 숭배햇지요 그러나 이시대의 기록은 아무것도 남아 잇지않읍니다 나는 그것으로 보아 아마 전설속에 나오는 배달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단군이 박달나무임금이란 뜻인데 배달이라는 뚯이 밝다에서 왓다고 합니다 배달을중국에서 한문으로 표기과정에서 박달나무 단자로 쓴것 같읍니다 그리고 배달국을 나라로 인정하기 싫어서 임금 군자를 붙인것 같읍니다
2.청동기시대[기자조선];
우리나라 학설은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12세기경에 시베리아로 부터 들어온것으로 되어잇으나 중국 춘추전국시대 기록에 의하면 중국 주나라가 기자를 왕으로 봉해 동쪽으로 갓다는 공자님 기록이 남아 잇읍니다 이시기부터 고조선은 실제 존재하는 역사시대가 되는겁니다 그러나 그당시 주나라는 황화강 상류의 국가엿읍니다 그러니 기자를 왕으로 봉해서 동쪽으로 같다는것은 고조선이 아니라 황화강 하류의[산동반도] 제나라를 이야기 하는것같읍니다 주나라는 우리나라 서해안을 국경선으로 접하지 못하고 춘우전국시대와서 우리나라와 국경선을 접합니다
3.평양조선;
고조선이 원래는 요동에 잇엇으나 기원전 5세기경에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와 크게 전쟁을 붙어 고조선이 이천여리의 땅을 잃고 패하게 됩니다 그결과로 고조선의 국경선이 만리장성에서 요하강서쪽의 땅을 잃게 되자 고조선은 요동에서 일부는 송화강 유역으로 가 부여를 세웟고 다른 일부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이때부터 고조선이 망할때까지 평양을 수도로 삼고 활약합니다
4.위만조선
고조선이 평양으로 옮겨와 체제를 정비하고 요동과 요서지역을 회복할때 중국에서는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가 패권을 다투자 전쟁을 피해 산동반도의 고조선 유민들이 배를 타고와 한강이남에 정착하며 진을 세웟고 북경주변의 고조선 유민[위만세력]들이 만리장성을 넘어 요서지역으로 들어오자 고조선의 왕은 철기문명을 위만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중국침략에 대비하고 송화강 유역에 부여와 한강이남의 진을 정벌하려 하자 위만이 쿠테타를 잃으켜 정권을 잡고 왕이 되엇읍니다 이시기를 위만 조선이라 부릅니다
5.한4군
위만조선이 부여와 진을 속국으로 삼고 한과 무역을 직접 못하게 막으면서 중게 무역으로 부를 쌓자 한무제는 군사를 잃으켜 위만 조선을 침략하고 평양조선을 점령하고 4개의 한라라의 군으로 편입해 버립니다 그군의 위치가 한반도 북서부에[평안도와 황해도 일부지역] 위치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부족국가들은 한사군과 전쟁을 통해 삼국으로 재편됩니다
[참고2] ▷ ≪황현 絶命詩≫中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비렸어라.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 길재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풀이> 오백년 도읍지(고려의 옛 서울)를 한 필의 말에 의지해 돌아보니 산천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당대의 훌륭한 인재들은 간 데 없구나. 아아, 태평세월을 지냈던 그 때가 꿈처럼 허무하기만 하구나. |
■ 맹귀우목 盲龜遇木[눈멀 맹/거북 귀/만날 우/나무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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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거북이가 다행히 물에 뜬 나무를 붙잡게 되었다. 불법을 만나기가 어려움.매우 힘든 행운. [유사어]千載一遇 천재일우 / 盲 者 正 門 맹자정문 : 장님이 문을 바로 찾아 들어간다는 뜻으로, 무능하고 우둔한 사람이 요행히 사리에 맞는 일을 함을 비유함.=盲者直門 맹자직문 [출전]열반경
[내용]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나기가 어렵고, 또 생명 중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눈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 뭍에 올라오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넓고 넓은 바다 속에 눈먼 거북이가 있다. 이 거북은 뭍에 올라갈 뜻을 품고 백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솟아 오른다. 그러나 그는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자기 외의 다른 물체와 만나지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한 눈먼 거북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구멍 뚫린 널빤지인데 이역시 아무런 약속 없이 그적 맹목적으로 출렁대는 물결에 맡겨 사해를 떠돌아 다니므로, 거북이 해상의 어느 시점에 떠 올랐을 때 마침 그와 만나진다는 것은 몇 천만 몇 억의 시공적 교차 중의 하나인 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다. 거북이 떠 올랐을 때 널빤지가 다른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다면 거북은 별 수 없이 다시 바다 밑으로 내려가 다시 1백년을 기다렸다가 다음 떠오를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마침 널빤지가 잠재해 있는 거북의 머리 위에 와 있다손 치더라도 그 또한 거북이 떠 오르기 전에는 역시 만나지지 못하게 된다.
[예문] ▷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문화재 강연회 장에서의 한 스님과의 운명적 만남, 이것은 나에게 '맹귀우목(盲龜遇木)'의 인연이었다. 사찰 답사를 통해 배웠던 절에서의 기본적인 예 절들이 다시 보이고 합장하는 두 손이 조용히 떨렸다<삶과 생명 나누기>에서 .
▷ 부처님께서는 불법 만나기 어려움을 ‘향수해 맹귀우목’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의 대우주관에 사주(四州)를 싸고 있는 넓고 넓은 향수해 바다에 오래 전부터 눈먼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넓 은바다를 헤엄쳐 다니다가 몸을 의지할 데가 없어 쉬지 목하고 있을 때 마침 그때 그 바다에 구멍 뚫린 나무조각 하나가 떠다니는데 아주 우연히 그 나무조각을 만나서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쏙 내밀고 의지해서 잠시 쉴 수 있다는 비유로 부처님의 법을 만나는 것이 아주 어렵고 중함을 말씀하셨습니다--99 신흥사 환영사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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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모삼천 孟母三遷[클 맹/어미 모/석 삼/옮길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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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 집을 옮긴 고사.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좋은 환경을 가려서 산다. [동]孟母三遷之敎, 三遷之敎 [유]근주자적(近朱者赤)·근묵자흑(近墨者黑), 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마중지봉麻中之蓬--환굥의 중요성
[출전]『列女傳』母儀傳(모의전) [내용]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그 때에 맹자 나이 어려 보고 듣는 것이 상여(喪輿)와 곡성(哭聲)이라 늘 그 흉내만 내므로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이 자식 기를 곳이 못 된다 하고 곧 저자 근처로 집을 옮겼더니 역시 맹자는 장사의 흉내를 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자식 기를 곳이 아니라 하고 다시 서당(書堂) 근처에 집을 정하니 맹자가 늘 글 읽는 흉내를 내므로 이곳이야말로 자식 기르기에 합당하다 하고 드디어 거기에 안거(安居)하였다.
[원]孟軻之母는 其舍가 近墓러니 孟子之少也에 嬉戱에 爲墓間之事하여 踊躍築埋어늘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라하고 乃居舍市하니 其嬉戱에 爲賈衒이어늘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라하고 乃徙舍學宮之傍하니 其嬉戱에 乃設俎豆하여 揖讓進退어늘 孟母曰 此眞可以居子矣로다하고 遂居之하니라. ** 軻(멍에 가) 嬉(놀 희) 戱(놀 희) 踊(뛸 용) 躍(뛸 약) 築(쌓을 축) 埋(묻을 매) 賈(장사 고) 衒(팔 현) 徙(옮길 사) 俎(제기 조) 揖(읍할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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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인할마 盲人할馬 [눈멀 맹/사람 인/애꾸눈 할/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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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이 애꾸눈 말을 타고 다님. 위험한 행동 [원] 盲人騎
馬 夜半臨深池
[출전]『世說新語』 [내용]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愷之)는 중국 회화사(繪畵史)에서도 두드러진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박학다재(博學多才)하여 당대의 문장가에다 대사마참군(大司馬參軍)을 지낸 장군이기도 했다. 성품도 소탈하여 우스갯소리로 주위를 웃기곤 했다. 그는 환현(桓玄) 은중감 (殷仲堪)같은 고관대작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곧잘 우수개판을 벌였다.
어느 날 은중감의 집에서 세 사람이 모여 우스갯소리를 나누다가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인가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기로 했다. 맨 먼저 환현이 입을 열었다. "창 끝으로 쌀을 일어 칼로 불을 때서 밥하기." 은중감이 뒤를 이었다. "백살 먹은 노인이 마른 나뭇가지 기어오르기." 마지막에 고개지가 입을 열었다. "우물의 용두레 위에 어린애 누워있기."
고개지가 입을 닫기가 무섭게 좌중에 날아든 소리가 있었다. "장님이 애꾸눈 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못가에 이르기"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소리의 주인공은 참군이라는 낮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나이였다. 그가 뱉은 한마디는 우스갯소리의 대가(大家) 세 사람의 '작품'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관 대작들이 놀고 있는데 함부로 끼어 든 것은 무엄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은중감은 공교롭게도 그때 한쪽 눈을 다친 상태여서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하게 되었지만 그 외람된 사나이를 어쩔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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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벽구년 面壁九年[마주할 면/벽 벽/아홉 구/해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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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 달마가 산중에서 구년간 벽을 대하고 앉아 수도하여 마침내 형태가 돌 속으로 들어갔다. 정성을 다하면 금석이라도 뚫을 수 있다.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그 근본을 찾으려는 것(觀心) [원]面壁九年始有此新悟 [유]山溜穿石(산류천석) :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다./사석위호(射石爲虎)/마부위침(磨斧爲針)/우공이산(愚公移山)/수적천석(水滴穿石)/우공이산愚公移山/중석몰촉(中石沒촉) [내용]《육조단경(六祖壇經)》《신승전(神僧傳)》 등 여러 불경에 보이는 달마(達磨) 대사의 행적에서 나온 말이다. 달마는 인도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포교를 위해 중국에 들어와 중국 선(禪)의 개조가 된 사람이다. 처음 남중국에 들어와 양(梁)의 무제를 만났을 때 무제가 물었다. “절대적인 진리의 궁극은 어떠한 것입니까?(如何是聖諦第一義)” “텅 비어서 성스러움도 없습니다(廓然無聖).” 그러자 무제는 다시 물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對朕者誰)” “알지 못합니다(不識).” 대답한 달마는 무제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북중국으로 갔다. 쓸데없는 의론과 형식을 따지는 무제에 실망했던 것이다.
위(魏)로 간 달마는 뤄양 근교의 숭산(嵩山)에 자리잡은 소림사(少林寺)에서 면벽 9년에 들어갔다. 이른바 마음이 본래 청정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관심(觀心)을 행한 것이다. 그는 그 후 도육(道育)과 혜가(慧可) 등 특출한 제자를 키웠는데, 면벽 관심에 관한 혜가와의 다음과 같은 내용은 중국 선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불도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요긴합니까?” ”오직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行)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어째서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거두어들인다 하십니까?” “마음이란 만법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 행을 다 갖추는 것이다.”
면벽 9년이란 곧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그 근본을 찾으려는 것이다. <두산백과>
[속담]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무쇠공이도 바늘 된다.
[참고] 인도 이름은 보디다르마요. 달마대사 또는 달마라 한다. 1500년전 남인도 왕세손 셋째왕자로 태어나 대승불교에 입문하고 중국으로 와서 선의 개조가 되고 정법을 전파하기 위해 중국 광동 , 광주를 거쳐 소림사에 이른다.
달마는 부처로부터 28대 조사이며 제2조가 되는 혜가를 만나 이입사행과 선의 정법을 전했다 한다. 6세기초 달마는 서역에서 화북으로 건너와 주로 낙양에서 활동했다.
숭산 소림사 천연토굴에서 9년간 옷한벌로 면벽수행을 하였다. 9년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정진하던 중에 자꾸 잠이 와서 속눈썹을 모두 뽑아서 버리고 눈꺼풀을 손톱으로 잘라서 버렸는데 그것이 차나무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달마는 중국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여 강을 건널 때 매화나누나 갈대를 꺾어 타고 건넜다고 한다 |
■ 면종복배 面從腹背 [얼굴 면/따를 종/배 복/등질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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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으로는 복종하는 체 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동]경이원지(敬而遠之)/勸上搖木권상요목: 나무 위에 오르라고 권하고는 오르자마자 아래서 흔들어 댐 /口蜜腹劍구밀복검 / 양봉음위陽奉陰違
[예문] ▷ 덕으로써 사람을 따르게 하지 않고 힘으로써 사람을 따르게 하면 자연히 면종복배하는 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 전하께선 면종복배하는 자가 적지 않음을 통촉하셔야 됩니다.≪서기원, 조선 백자 마리아 상≫ ▷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는 비서관들의 유형은 △정체성 부적격자 △능력 부족자 △사리사욕 추구자 등으로 나뉜다. 정체성 부적격자들은 김 대통령이나 수석비서관들의 개혁적인 정책방향에 실제로는 동조하지 않으면서 ‘면종복배’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인터넷한겨레> |
■ 명경지수 明鏡止水 [밝을,맑을 명/거울 경/그칠 지/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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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맑고 고요한 심경(心境)을 이르는 말. 맑은 거울은 그쳐 있는 물이다. 맑고 깨끗한 마음씨는 담겨 있는 물과 같다.
[동]雲心月性(운심월선) : 구름 같은 마음에 달 같은 성품이란 뜻으로 욕심없는 말과 깨끗한 마 음씨를 일컫는다. 平易淡白(평이담백) :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마음.
[출전]『莊子』, 德充符篇 [내용] 형벌로 다리가 잘린 왕태(王?)는 문하생(門下生)이 孔子의 문하생에 필적할 만큼 많았는데 상계(商季)가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겨 공자에게 물었다.“왕태는 자기 몸을 닦고 자신의 지혜로 마음의 본체를 깨달은 것 뿐이어서 자기를 위한 수행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닌데 어찌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까?”「공자왈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 삼는다. [원문]孔子曰 人은 莫鑑於流水하고 而鑑於止水라
[예문] ▷ 과연 제대로 이 도를 밝힌다면 마음의 근원이 빈 거울이나 명경지수처럼 맑고 깨끗해져 옳지 않은 말이 마음을 미혹하지 못하여 발해 나오는 감정이 모두 중정해질 것입니다.≪번역 인조실록≫
▷지금 그대의 눈에는 청초호가 더럽게 비치겠지만 과거의 청초호 맑은 청춘의 샘이었으며, 미래의 청초호는 명경지수가 될 것임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 다시 노래를 불러주오. 청초호의 옛 모습이 오롯이 복원되는 그 모습을...<2006 데일리안> |
■ 명모호치 明眸皓齒 [밝을 명/눈동자 모/흴 호/이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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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눈동자와 흰 이,아름다운 여인 [유] 경국지색 傾國之色 傾城之美(경성지미)/ 萬古絶色(만고절색)/ 絶世(代)美(佳)人(절세가인)/一顧傾城(일고경성) / 丹脣皓齒(단순호치)-붉은 입술 흰 이/明眸皓齒(명모호치)-맑은 눈동자와 흰 이/花容月態.(화용월태)-꽃같은 용모와 달빛같은 자태/雪膚花容(설부화용)-눈같이 흰 피부와 꽃같은 용모/羞花閉月(수화폐월)--꽃도 부끄러워하고 달도 숨을 만큼 아름다운 미인『장자』/ 國香(국향)/ 國色(국색)
[출전]두보의 詩 ≪애강두哀江頭≫ [내용]당나라 현종은 말년에 이르러 양귀비에게 넋을 빼앗겨 국정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이때 안록산은 755년에 20만 대군을 휘몰아 장안성으로 몰아쳐 이후 9년간 천하를 소동시켰다.두보(杜甫)는 안록산이 난을 일으킨 그 해에 44세였다.현종이 있는 곳으로 가다 반군에게 체포되어 장안으로 끌려갔다. 이때 그의 나이 45세였다.두보는 하급 관리였기 때문에 곧 풀려났다. 그는 도성이 반군에게 유린당하자 장안의 동쪽 곡강을 찾아갔다. 이곳은 왕후(王后)나 장상(將相)의 귀부인들이 평소 유람을 즐기던 명승지였다.그러다 보니 현종과 양귀비도 이곳 강두(江頭)에서 자연을 희롱하며 즐기곤 했다.두보는 그것을 슬퍼하며 시를 읊었다.
<‥‥장안성 남쪽의 소릉에 사는 나는 난(亂)을 만나 황폐해진 도성의 지난날을 생각하니 슬픔으로 통곡이 복받치는 것을 삼키며 울었다. 도성을 구비구비 돌아 흐르는 곡강(曲江) 언저리를 방황하면서‥‥. 옛날 한나라 소양전 중의 가장 으뜸 가는 조비연에게 비견됐던 양귀비는 천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천자를 따라 함께 모시고 있었다. 그 수레를 호위하며 나아가는 재인(才人) 여관(女官)은 허리에 활을 매었고, 타고 가는 백마의 입에 황금 자갈을 물리었다. 그 재인이 몸을 돌려 하늘을 향하여 구름 사이로 활을 쏘면, 한 개의 화살에 쌍으로 날던 새가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고운 눈과 흰 이(明眸皓齒)의 양귀비는 어디 있는가‥‥>
[원문]少陵野老呑聲哭 春日潛行曲江曲 江頭宮殿鎖千門 細柳新蒲爲誰綠 憶昔霓旌下南苑 苑中萬物第一人 同輦隨君侍君側 輦前才人帶弓箭 白馬嚼齧黃金勒 身向天仰射雲 一笑正墜雙飛翼 明眸皓齒今何在 血 遊魂歸不得 淸渭中流劍閣深 去住彼此無消息 人生有情淚沾臆 江草江花豈終極 黃昏胡騎塵滿城 |
■ 명실상부 名實相符 [이름 명/속,내용 실/서로 상/맞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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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 맞음. 알려진 것과 실제의 상황이나 능력에 차이가 없다. [반] 名實相反(명실상반)
[예문] ▷ 브라질은 명실상부한 축구 강국이다. ▷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 국왕이 명실상부하게 정치를 주도하는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 국민 여러분의 뜻을 명심해서 명실상부하게 선처를 하도록 성심성의 노력하겠습니다.≪이호철, 소시민≫ ▷ 호남 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는 전주는 명실상부하게 전라 감영이 자리 잡은 남도 제일의 요지이다.≪유현종, 들불≫ |
■ 명약관화 明若觀火 [밝을 명/같을 약/볼 관/불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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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 더 말할 나위없이 명백하다. [예문] ▷ 아직 보발을 받지 못했지만 정부가 또 원군을 내려 보낼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고, 잘못하면 청국이나 왜국에 청병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근심이었다.≪유현종, 들불≫ ▷ 만일 그 통에 유 선달 집도 상인들에게 인심을 잃고 토호질을 하는 양반이었다면 화를 입었을 것이 명약관화였다.≪이기영, 봄≫ ▷ 하지만 양측이 이미 `대화' 대신 `힘'을 선택한 이상, 선암사 사태의 말로(末路)가 이젠 명약관화(明若觀火)해졌다. 양측이 더이상 업보를 쌓는 일을 멈추고 부처님의 지혜를 빌어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2006 연합뉴스> |
■ 명재경각 命在頃刻 [목숨 명/있을 재/잠깐 경/시각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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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끊어질 지경.≒ 명재조석 命在朝夕 [예문] ▷ 소인 방자놈 문안이요. 대감마마 행차 후에 기체 안녕허옵시며, 서방님도 먼먼길을 노독이나 없이 오시니까?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 주오. 신관 사또 도임 후에 아씨를 잡아딀여 수청 아니 든다 허고, 성모삼치 중장의 명재경각이 되였으니,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 주오.” 어사또 기가 막혀,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방자야 우지 말어라. 천붕우출이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는 있는 법이니라. 우지를 말라면 우지 마라.” -판소리다섯마당≪춘향가≫
▷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 명재경각(命在頃刻) 불쌍하다 몹쓸 양반 이서방은 한번 가고 소식 끊어지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춘향가≫
▷ 몇 해 전에는 JAL기의 한 승객이 후지산으로 추락하는 명재경각의 순간에도 기록을 남겨서 해외 토픽이 되기도 했다.
▷ 그러나 오랜 뒤에 알았지만, 그 때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탕탕(蕩蕩)히 돌아 흐르는 물을 보면, 굼실거리고 으르렁거리는 물결에 몸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가 일면서 물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그 얼굴을 젖힌 것은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숫제 물을 피하여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사실 어느 겨늘에 그 잠깐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으랴! |
■ 명철보신 明哲保身 [밝을 명/밝을 철/지킬 보/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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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일을 잘 처리하고 요령있는 처신으로 몸을 보전함 [출전]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 [내용]주(周)나라 11대 선왕(宣王)은 당시 재상으로 있던 중산보(仲山甫)의 도움으로 선정을 베풀수 있었다. 뒷날 그는 중산보가 자기 곁을 떠남에 그 서운함을 다음의 시가로 찬양했다.(선왕의 명을 받고 제나라로 성을 쌓으러 갈 때, 길보가 전송하면서 중산보의 덕을 찬양한 것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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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엄한 어명을 받잡고 중산보는 잘도 해냈구나(肅肅王命 仲山甫將之) 나라의 잘잘못을 그는 소상하게 밝혔으며(邦國若否 仲山保明之) 밝고 어질게 처신하여 몸가짐에 그르침이 없었다(旣明且哲 以保其身) 아침 저녁으로 게으르지 않고 오직 임금하나만 섬겼노라(夙夜匪解 以事一人) |
명철보신은 기명(明) 차철(哲) 이보(保)기신(身)에서 나온 말로 임금이 중산보를 칭찬한 말이다. 여기에서 명이란 이치에 밝은 것이요, 철이란 사리에 분명함을 뜻한다. 또 보신이란 성급하게 시류에 휘말리지 않으며 매사에 법도를 지켜 온전하게 처신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 와서는 본래의 뜻과는 약간 변질되어 많은 지식인이 자기의 명철함을 이용, 대의명 분에 비중을 둔다기 보다는 개인적 입신영달을 쫓아 처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희화적 대명사 로 곧잘 쓰이기도 한다.--이응수 <고사산책>에서
[참고] ▷ '명철'은 『書經』에서, 은나라 무정(부왕인 소을에 이어 은의 국왕으로 즉위하여 망부(亡父)의 3년 상을 치 르고도 정치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 채 조용히 신하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의 성스러운 덕을 칭송하여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뭇사람들보다 앞서 아는 자는 명철하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그리고 '보신'은 나오고 물러남에 있어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것을 뜻하며 때로는 처세에 능한 사람을 가리킨다.
▷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이 殷의 기자(箕子)의 비(碑)에“기자의 묘비에 씀”이라는 글에서 기자의 덕망을 칭송하면서“그 명철을 보하라”라고 하였다. 기자는 은나라 주왕(紂王)의 그릇된 정치를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거짓 미친 체하여 몸을 보전하고 그의 도를 후세에 남긴 현인이다. 또한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은‘두우(杜佑) 치사(致仕)의 제(制)’라는 글에서“힘을 다하여 임금을 받들고 명철보신하며 진퇴종시(終始), 그 길을 잃지 않았다. 현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능히 이것을 겸하리오.”라고 두우를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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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수자천 毛遂自薦[터럭 모/이룰,마침내 수/스스로 자/천거할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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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자신을 추천함. [출전] <사마천>『사기』 [내용] 중국 고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조(趙)나라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왕족(王族)이었던 공자(公子) 평원군(平原君)은 어진 성품에 빈객(賓客)을 좋아해 당시 조(趙)나라의 재상(宰相)까지 맡으면서 수하(手下)에 수천 명의 식객(食客)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쪽의 강한 진(秦)나라가 동쪽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해 오고 있던 차에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까지 포위를 당하게 되자 조(趙)나라는 남쪽의 초(楚)나라와 합종책(合從策)으로 연합을 하기 위해 초(楚)나라로 사신을 보내게 되었는데, 바로 평원군이 그 협상의 사신(使臣)이 되어 출국하게 됩니다. 평원군은 함께 떠날 용기있고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물 20여명 뽑았습니다. 그런데 식객(食客)들 가운데 19명을 뽑고 한 명을 더 뽑기가 어려웠는데, 그 때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앞에 나서면서 자신을 데려가라고 자천(自薦)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평원군은 모수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어진 선비의 처세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보이기 마련인데, 자네는 나의 문하(門下)에 기거(寄居)한지가 삼 년이나 지났는데도 내가 아직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무슨 능력이 있는가?"하지만 모수(毛遂)는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저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주머니 속에 넣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일찍 주머니 속에 넣어 주셨다면 비단 송곳 끝만 보이겠습니까? 송곳 자루까지 모두 내보여드렸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호언장담(豪言壯談)하는 모수(毛遂)의 말을 믿고 평원군은 모수를 일행에 가담시켜 초(楚)나라로 들어갔고 부진한 협상 테이블에 과연 모수가 뛰어올라 초왕을 꾸짖으며 뛰어난 언변(言辯)으로 합종(合從)의 협상을 단판 짓고 혈맹(血盟)의 의식으로 서로 돌려가며 희생(犧牲)의 피를 함께 나누어 마시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평원군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다시는 선비의 관상을 보지 않겠다. 모 선생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모 선생의 무기는 단지 세치의 혀였지만, 그 힘은 정말 백만의 군사보다도 더 강한 것이구나." 그리고는 모수를 상객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문]毛遂曰: 三年於此矣.平原君曰: 夫賢士之處世也,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 左右未有所稱誦, 勝未有所聞, 是先生無所有也. 先生不能, 先生留. 毛遂曰: 臣乃今日請處囊中耳. 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平原君 竟與毛遂偕.十九人相與目笑之而未廢也
[참고] 囊中之錐 |
■ 모순 矛盾[창 모/방패 순] ▶ 플래쉬 보기(출처-즐거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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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함.
[동]二律背反(이율배반)自家撞着(자가당착)
[출전] 『韓非子』難勢篇
[내용] :「초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칼을 파는 사람이 있어 이것을 좋다고 자랑하며 말하기를,“이 방패는 굳고 단단하여 ?히 뚫을 수 없다.”하고, 또 그 창을 자랑하며 말하기를,“이 창의 날카로움은 어떤 물건이든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길“그러면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는다면 어찌되겠소?”하니, 그 사람이 능히 대답을 못 하더라.
[원문][楚人에 有?盾與矛者하여 譽之曰“吾盾之堅은 莫能陷也라”하고, 又譽其矛曰“吾矛之利는 於物에 無不陷也니라”或曰“以子之矛로 陷子之盾이면 如何오.”其人이 不能應也러라.]
초인 유육순여모자하여 예지왈 오순지견은 막능함야라하고 우예기모왈 오모지리는 어물에 무불함야라 하거늘 혹왈 이자지모로 함자지순이면 하여오 기인이 불능응야러라
[참고] 모순은 한비자가 요순이래의 덕치를 이상으로 하는 儒家를 비판한 것이다.곧, 창과 방패는 요와 순을 나타낸다.요임금 때에 순이 농부의 사움과 어부의 분쟁을 조절하고 陶器가 조악해지는 것을 막았다. 공자는 이러한 사실을 '성인의 감화'라고 기렸지만 한비자는 이 부분을 自家撞着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이 군주의 자리에 있어 덕치가 이루어졌다면 농부나 어부의 분쟁도 도기의 조악함도 이미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순이 어디에다 덕을 폈겠는가? 이것은 순을 현이라고 한다면 요의 덕치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요를 성인이라고 한다면 순의 덕화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때문에 두사람을 동시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박갑수(외)의 한문교과서>
[예문] ▷ 사회의 구조적 모순▷ ▷ 모순을 드러내다 ▷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다 ▷ 네 이야기는 모순이 있어 잘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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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경지환 木梗之患 [나무 목/인형 경/어조사 지/금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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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인형의 근심. 타향에서 객사하여 돌아옴.
[출전] 『사기색은(史記索隱)』
[내용] :「맹상군은 제나라 전영의 천한 첩이 낳은 아들이다. 전영은 5월 5일에 태어난 사내아이는 훗날 자기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미신을 믿고, 맹상군을 키우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맹상군의 어머니는 몰래 키웠으며, 장성하여 전영의 대를 잇게 되었다.
맹상군은 제후와 빈객들을 모두 불러들여 귀천의 구분 없이 후하게 대접했다. 이 때문에 그의 식객은 수천 명이나 되었으며, 그가 어질다는 소문은 각지로 퍼져 나갔다. 맹상군의 서쪽의 진나라 소왕을 만나기 위해 진나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빈객들이 백 번이나 간언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세상의 일로 나에게 간언하는 것은 전부 아는 일이다. 만일 영적인 세계의 일을 들어 나에게 간언을 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죽일 것이다." 알자가 들어와 말했다. "영적인 세계의 일을 주청하러 빈객이 찾아왔습니다."
맹상군은 말했다. "들여보내라." 빈객이 말했다. "신은 이곳으로 오면서 치수 위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마침 나무인형과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인형이 흙인형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흙인데 인형으로 만들어졌군요. 폭우가 쏟아져 내려 물이 불면,당신은 무너지는 것을 막느라 부서지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흙인형이 응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막다가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당신은 정원에 있던 복숭아나무인데 깎여 인형이 되었군요. 큰 비가 내려 물이 불면, 당신은 반드시 둥둥 떠내려 오면서 멈출 줄을 모를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사방이 요새로 막혀 있는 강한 나라인데다가 호랑이와 이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진나라로 들어가 나무인형의 화를 입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지 않았다. |
■ 목불식정 目不識丁[눈 목/아니 불/알 식/고무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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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정자도 알지 못한다. 쉬운 글자도 모르는 매우 무식한 사람.
[동]一字無識(일자무식) : 한 글자도 알지 못한다/魚魯不辨(어로불변) :‘魚’와‘魯’를 분별하지 못하다./目不之書(목불지서) : 눈으로 책을 알지 못하다. / 숙맥불변 菽麥不辨 [콩 숙/보리 맥/아니 불/분별할 변] ☞콩인지 보리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속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가갸 뒷자도 모른다.
[내용] : 唐나라 때 장홍정(張弘靖)이란 사람은 못나고 무식하며 행동 또한 오만불손(傲慢不遜)하였다. 그러나 부친인 장연상(張延賞)이 조정에 끼친 공적이 많아 그 덕분으로 그의 벼슬길은 매우 순탄하였다. 그가 노룡(盧龍)의 절도사(節度使)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부하들과 어려운 병영생활을 하려 않고 가마를 타고 즐기며 군사들을 괴롭히고 교만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부하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니 오히려「천하가 무사한데 무리들이 포와 활을 당기는 것은 丁자 하나를 아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꾸짖었다.
[원문]天下가 無事한대 而輩挽石弓은 不如識一丁字라
[예문] ▷ 언문을 안다고 나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사람들 뿐이었다.≪朴種和, 錦衫의 피≫
▷ 통감(統監) 셋째 권까지는 뱄더랍니다마는 이십여년을 이렇게 살아 오니 무에 남았겠습니까? 그저 목불식정(目不識丁)을 면하였을 따름이죠.
▷ 우리 이번에 같이 내려갑시다. 예산 없이 동경 유학할 공상도 말고 허는 일 없이 서울서 지내볼 생각도 다 집어 치우고 시골로 내려갑시다. 갑갑하고 고생은 되겠지만 농촌 밖에 우리의 일터도 없겠고 더구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촌여편네와 그네들의 자녀를 위해서 일생을 바칩시다.≪沈薰, 永遠의 微笑≫
▷ 양명(陽明)선생의 제자가 천하에 두루 퍼졌을 당시, 유독 심재(心齋) 왕간(王艮)이 가장 영령했다. 심재는 본래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로, 목불식정(目不識丁)의 무식꾼이었는데, 책 읽는 소리를 듣고 문득 스스로 깨우친 바가 있어, 강서(江西) 지방으로 가서 왕도당을 만나, 그와의 토론을 통해 자기가 깨우친 것의 실체를 알아보려 했다 ≪爲黃安二上人三首≫ |
■ 목불인견 目不忍見[눈 목/아니 불/참을 인/볼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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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딱하거나 참혹한 상황. [예문] ▷ 한국교회가 자기 교회 위주의 자립배경을 넘어서서 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 개척교회 전도운동과 해외선교를 깊 이 인식하게 되는 1970년대초, 당시 외항선원들이 상륙하는 항만 주변에 술집과 윤락가만이 즐비했으며, 그 타락상은 실로 목불인견이었다--<김종석 선교사 홈페이지>
▷ 한때 코스닥 열풍이 노도처럼 거세게 몰아치며 너도나도 텔, 통, 컴 주식이면 무조건 사는 묻지마 투자가 기승을 부린 적이 있다. 현재 그 결과는 ‘목불인견’ 그 자체다. --<일간스포츠>
▷ 그러나 MBC는 기어이 13일 오후 구본홍 MBC 보도본부장, 손천수 라온건설 회장,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등 주최·협찬사 대표들이 타이거 우즈와 라운딩을 함께 하는 모습을 무슨 대단한 화제인 것처럼 1시간 동안이나 편성하는 '목불인견'의 상황을 연출하기까지 했다.<2004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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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인석심 木人石心[나무 목/사람 인/돌 석/마음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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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굳어 어떠한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출전] 『진서(晋書)』 [내용]서진(西晋)때 사람인 하통은 학문이 깊고 다재다능한 데다 달변이어서 그가 살고 있는(강남)지방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주변사람들이 벼슬을 권했지만 세속적인 명리에 초연한 그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어느때 하통은 볼 일이 있어 수도인 낙양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태위(太尉)라는 벼슬을 하고 있는 가충(賈充)이 하통을 찾아왔다. 가충은 원래 위나라의 대신이었는데 서진 건국에 이바지한 공적 때문에 한창 위세를 떨치고있는 사람이었다. 하통의 소문을 듣고 있던 가충은 그를 수하에 둠으로써 자기의 위세를 드높일 속셈으로 하통을 찾은 것이었다. 가충은 온갖 감언이설로 회유했지만 하통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떠한 말로도 하통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안 가충은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그는 이끌고 온 많은 군사를 집합시켜 대오를 가지런히 하고는 하통에게 사열을 하도록 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이 많은 군대는 당신이 지휘하게 되오. 그러면 당신의 모습이 얼마나 위풍당당할 것인지를 상상해 보시오." 하통은 여전히 가충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요염한 무희들을 불러다가 하통의 앞에서 춤을 추고 교태를 부리게 했다.그리고 가충은 말했다. "어떻소.얼마나 아름다운 미인들이오.벼슬자리를 받아만 준다면 이들 미인은 모두 당신 것이 되오."
이런다고 유혹에 넘어갈 하통은 아니었다. 울화통이 터진 가충은 이렇게 말했다. "지위, 권세, 여색, 세 가지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놈은 세상에 없을 것이나 이 사람은 정말로 나무로 만든 사람이고 돌로 만든 마음(木人石心)이군." 가충은 관직을 권할 것을 포기하고, 하통은 회계로 돌아갔다. 그후의 일은 전해져 있지 않으나, 그 부동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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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탁 木鐸[나무 목/큰 방울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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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독경(讀經)이나 염불을 욀 때 사용하는 불구(佛具).세상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
[출전]『論語』
[내용]목탁(木鐸)이라면 누구나 사찰(寺刹)에서 사용하는 불구(佛具)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되기 수 천년 전부터 목탁(木鐸)을 사용했다.
옛날에는 달력이 귀했으므로 백성들이 절기(節氣)에 따른 농사일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통치자는 그때 그때 해야 할 일을 백성들에게 알렸는데 이때 사용했던 것이 목탁(木鐸)이다.
그 일을 맡은 관리는 매년 봄만 되면 커다란 방울을 치면서 시내(市內)를 돌아다녔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이 모여 들면 '봄이 왔으니 씨를 뿌려라'고 알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방울 속의 혀가 나무로 돼 있었으므로 목탁(木鐸)이라고 했다. 물론 쇠로 된 것도 목탁(木鐸)이라고 했는데 주로 군대내에서 명령을 하달할 때 사용하였다.
후(後)에 불교가 전래되고 절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목탁(木鐸)은 사찰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 역시 식사(食事)나 염불 시간 등 공지 사항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느 경우든 목탁(木鐸)은 어떤 사실을 널리 알리는데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후(後)에는 백성들을 교화(敎化), 인도하는 자(者)를 목탁(木鐸)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공자(孔子)였다.
공자가 노(魯)나라에서 벼슬을 그만 두고 자기의 이상을 실현시킬 나라를 찾기 위해 유세(遊說) 여행을 하고 있던 무렵이다. 한번은 위(衛)나라에 갔는데, 의(儀)라고 하는 국경을 지키는 관원이 찾아왔다. "군자께서 여기에 오시면 저는 어떤 분이라도 반드시 뵙습니다." 그가 공자를 뵙고 싶다고 청하므로 종자가 면회를 시켰다. 잠시 후 공자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관원이 나와 제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문(文)이 상실되는 것을 왜 걱정하시오.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하늘은 장차 당신들의 선생님을 도(道)를 전하는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참고]나무를 큰 방울 모양으로 깎아 그 중앙을 반쯤 자르고, 소리가 잘 울리도록 다시 그 속을 파서 비게 하여 조그마한 나무채로 두드리게 되어 있다. 본래는 수도승에 대하여 교훈을 주는 뜻에서 밤이고 낮이고 눈을 감는 일이 없는 물고기를 본뜬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그 같은 연유에서 목어(木魚)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몸통은 금속, 추(錘)는 나무로 된 커다란 요령(搖鈴)을 목탁이라고도 한다.
중국 노(魯)나라 때 문사(文事)나 또 새로운 법령을 발할 때에 목탁을 울려 사람을 모이게 한 데서, 사회의 주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계도한다는 뜻이 담겨졌다. 흔히 언론을 ‘사회의 목탁’이라고 하는 말이 이에서 비롯되었다.<두산백과> |
■ 목후이관 沐猴而冠[목욕할 목/ 원숭이 후/ 어조사 이/ 갓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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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한 원숭이가 갓을 씀. 사람 행세를 못함. 표면은 근사하게 꾸몄지만 속은 난폭하고 사려가 모자람 [출전]『史記』 [유] 虎而冠 [내용]홍문연(鴻門宴)을 통해 유방(劉邦)으로부터 진(秦)의 도읍 함양(咸陽 일명 關中)을 손에 넣은 항우(項羽)는 살인, 약탈, 방화를 자행해 민심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 점은 유방(劉邦)이 예견한 터였다.
항우(項羽)는 스스로 황폐하게 한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팽성(彭城)으로의 천도(遷都)를 결심했다. 함양이라면 천혜의 요새로 패업(覇業)의 땅이었다.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 (韓生)이 수 차례 간했지만 항우(項羽)는 화를 내면서 그를 멀리했다. 한생은 탄식하고 물러 나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운 꼴이군(沐후而冠)."
그런데 이말을 항우(項羽)가 듣고 말았다. 무식했던 그는 무슨 뜻인줄 몰라 진평 (陳平)에게 물었다. "폐하를 흉보는 말인데 세가지 뜻이 있지요.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못된다는 것, 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고 조바심을 낸다는 것,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 의관을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격분한 항우(項羽)는 그를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 삶아 죽이고 말았다. 죽을 때 한생(韓生)이 말했다. "두고 보아라. 유방(劉邦)이 너를 멸하리라. 역시 초(楚)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같아 관을 씌워도 소용이 없지." 결국 항우(項羽)는 함양(咸陽) 뿐만 아니라 천하(天下)를 몽땅 유방(劉邦) 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
■ 몽진 蒙塵[무릅쓸 몽/티끌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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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쓴다는 뜻으로 나라에 난리가 있어 임금이 나라 밖으로 도주함.
[예문] ▷ 왜적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왕은 북으로 몽진을 떠났다.
▷ 갑곶이라는 명칭은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을 당하여 강화도를 몽진 할 때 이곳이 대안과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이곳은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도 인조임금이 건넜던 사실이 있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에는 봉림대군이 수어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인양요(丙寅洋擾)때에는 격전을 치루었던 역사적 실전의 현장이기도 한곳이다--<김포스트리트>.
▷ 화석정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변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
고려 삼절로 추앙받는 야은 길재가 북녘을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랬던 곳이며, 율곡의 5대조부가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백성과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가는 선조의 몽진 길에 불 밝히기 위하여 불태워졌던 것을 그후 80여 년간 빈터만 남아 있다가 1673년(현종 14)에 이이의 증손인 이후지(李厚址)·이후방(李厚坊)이 복원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경기도 파주시 유림들이 다시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 건물의 정면에는 정치가 박정희가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이이가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다.<네이버백과> |
■묘항현령 猫項懸鈴 [고양이 묘/목 항/매달 현/방울 령] ▶플래쉬 보기(출처-즐거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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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실행하지 못할 일을 공연히 의논만 함 [동]猫頭懸鈴묘두현령
[내용]쥐들이 모여서 얘기하기를 "노적가리를 뚫고 쌀광 속에 깃들어 살면 살기가 윤택할 텐데 다만 두려운 것은 오직 고양이 뿐이로다." 라고 하니 어떤 한 마리 쥐가 말하기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아마도 소리를 듣고서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쥐들이 기뻐 날뛰면서 말하기를 "자네 말이 옳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라고 하였다. 어떤 큰 쥐가 천천히 말하였다."옳기는 옳으나 고양이 목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하니 쥐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원문] 群鼠 會話曰 "穿庾捿 生活可潤 但所 獨猫而已", 有一鼠 言曰, "猫項 若懸鈴子 庶得聞聲而遁死矣" 群鼠喜躍曰, "子言 是矣 吾何所 耶". 有大鼠 徐言曰,"是則是矣, 然 猫項 誰能爲我懸鈴耶", 群鼠 愕然 ≪고금소총古今笑叢≫
[예문] ▷ 고양이에게 괴롭힘을 당해 온 쥐들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합니다.제일 먼저 늙은 쥐가 말했습니다. "고양이가 오는 것을 누가 알려주면 좋을텐데."그러자 젊은 쥐가 나섰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도망칠 수 있을거에요!"그 때 대장쥐가 말했습니다. "좋은 의견이야, 그런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그 말을 들은 쥐들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싶지 않았으니까요.<이솝우화>
▷ 정치권이 개혁을 서둘렀고, 연금 파탄의 비상 사태를 막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좀 더 내고 좀 덜 받는 것을 감내하겠다는 거다. 물론 이번 개정안도 모두가 꺼리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2006 매일경제> |
■ 무골호인 無骨好人[없을 무/뼈 골/좋을 호/사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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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없이 좋은 사람. 지극히 순하고 남의 비위를 두루 맞추는 사람. [예문] ▷ 1931년에 결국,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회사가 파급시킨 광고 사진에서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해든 선드블롬의 예술적 재능 덕에, 산타클로스는 그때부터 인간적인 모습(보다 설득력 있고 훨씬 접근하기 쉬운), 불룩 나온 배, 호감이 가는 얼굴, 쾌활한 분위기와 무골호인 같은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거의 35년 동안이나 코카콜라사는 전 세계의 신문과 잡지에, 그 다음에는 텔레비전에 이러한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파급시켰다. 어린이들이 오늘날 산타클로스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은 아직도 이 모습이 강하게 젖어 있다--<프랑스 클럽 홈페이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단봉혼주의 제자에게 그아들이 피살되고 그의 신표인 '황말령'이 망가져서 무림인사로소 일대 치욕을 씻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 작룸이 끝날 때가지 이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소일의 마음 속에 안붕거가 무골호인으로 낙인이 찍혔는지는 알 수없으나, 어쟀든 작품에 있어서 앞뒤의 내용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할 밖에<무협백과>에서 |
■ 무궁무진 無窮無盡 [없을 무/다할 궁/없을 무/다할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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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고 다함이 없다.
[예문] ▷ 권주가 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萬年配)에 가득 부어 비나이다. 남산수(南山壽)를. 약산 동대(藥山東臺) 어즈러진 바위 꽃을 꺾어 주(籌)를 노며 무궁무진 먹사이다. 권군 종일 명정취(勸君終日酩酊醉) 하자. 주부도 유령분상토(酒不到劉伶墳上土)니 아니 취 (醉)코 무엇하리. 백년을 가사인인수(可使人人壽)라도 우락(憂樂)을 중분미백년(中分未百年)을 살았을 때 잘 놉시다.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려 니와 가련하다 우리 인생.
▷ 장진주사--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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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매여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울어에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곧 가면 누른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제 뉘한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위에 잿남이 휘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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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념무상 無念無想[없을 무/생각 념/없을 무/생각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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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상념(想念)이 없는 담담한 마음의 상태. [참고]--육조단경(불)에서 ▷ 무념(無念)--무념은 북종의 "기신론"에 의하여 이념(離念)을 주장했다는 "대승무생(無生)방편 문"의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다만 "기신론"에는 무념이란 말도 있다. 그 제1장 '현시정의顯示正義 에서 "중생이 착실하게 무념을 관찰할 때는 곧 부처님 나라로 가는 지혜로 본다" 하였고 또 "무념을 이룩할 때는 곧 마음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을 터득한다"고 했다. 남종 계열에서는 무념으로써 종지로 삼았고, 신회도 "단어"에서 진여는 무념의 본체이며, 그러므로 무념으로써 종지로 삼 는다.
무념이란 것은 견문각지(見聞覺知)를 갖추었다 해도 언제나 공적(空寂)하다"고 했다. 또 마명 (馬鳴)은 중생이 무념을 관찰하면 곧 부처님 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지금 설명하는 반야 바라밀은 생멸문(門)에서 단박 진여문에 들 수 있다. 더구나 앞으로 비추고 뒤로 비추고, 멀리 보고 가까이 보고 할 필요가 없다. "도무지 이런 마음이 필요 없다" 하여, 암암리에 북종의 선법(禪法)을 비판하고 있다. "신회어록"에서는 신회가 수행자에게 말하는 가운데서, "무엇이 무념인가 하면, 이른바 유무를 생각하지 않고, 선악을 생각하지 않고, 끝이 있고 없고를 생각하지 않고, 한계가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보리를 생각하지 않고, 보리로써 생각으로 삼지 않고, 열반을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생각으로 삼지 않는 것, 이로써 무념으로 본다"하였고, 또 "유무의 둘 다 던져버리고 중도 (中道)도 역시 없는 것이라야 이것이 곧 무념이다. 무념은 곧 일념(一念)이요, 일념은 곧 일체지(一切 知)요, 일체지는 곧 심심 반야바라밀이다. 바라밀은 곧 여래선(如來禪)이다"고 찬탄하고 있다. 이것은 무념을 종지로 하는 혜능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 무상(無想)--모든 사물은 그 사물을 발생시킨 관계 조건의 변화에 따라 변천 소멸하는 것이며, 곡두와 같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물체의 드러난 모습을 인식하면서도 거기 사로잡히지 않는 것. "금강반야경"에, "무릇 모든 모습은 모두가 허망하다. 만약 모든 모습은 모습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 때는 곧 여래를 볼 수 있다", 신회의 단어(壇語)에는 "일체 중생은 본디부터 무상이다. 지금 모습을 말하는 것은 모두가 망발된 마음이다. 마음이 무상이라면 이는 곧 부처님 마음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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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뢰한 無賴漢[없을 무/의지할 뢰/사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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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 ≒뇌자(賴子).
[예문] ▷ 사병들은 어느 틈에 온순하던 부하에서 폭도들이나 다름없는 일단의 광포한 무뢰한들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홍성원, 육이오≫
▷ 측면 2칸의 단층 맛배지붕의 목조와가이며 지수문을 갖추고 있다. 사당에는 김은호 화백이 그린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었는데 1979년 어떤 무뢰한(無賴漢)에 의해 없어졌으니 부끄러운 일이다<진주스트리트 진주성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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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릉도원 武陵桃源[굳셀 무/언덕 릉/복숭아 도/물줄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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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의 도원. 지상의 낙원으로 인간의 도원경(桃源境).
[동]桃源境(도원경). 桃花源(도화원) 仙境(선경) 別天地(별천지) 理想鄕(이상향)壺中天地(호중천지) : 호공(壺公)이란 사람이 항아리에서 살았는데 비장방(費長房)이 그 속을 보니 화려하고 술안주가 가득하였다는 이야기.
[출전]『桃花源記』--陶淵明 [내용] :「진나라 태원때 무릉 사람이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았는데 (하루는) 시내를 따라 (배를 저어) 가다가 길이 멀고 가까움을 잊었다가 문득 복사꽃이 핀 수풀을 만났다. 언덕을 끼고 수백보쯤의 넓이에 (온통 도화로) 한 그루의 잡목도 없으며 향기로운 풀은 곱고 아름다우며 떨어지는 꽃잎이 어지러이 날린다. 어부가 이를 매우 이상히 여겨 다시 앞으로 (배를 저어) 가서 그 끝까지 가보리라 하였더니 숲이 다하고 수원에서 문득 한 산을 얻으니, 산에는 작은 굴이 있어 마치 밝은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에 배에서 내려 굴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처음에는 매우 좁아 겨우 (한) 사람 정도 통과할 수 있더니, 다시 수십 보를 나아가니 갑자기 앞이 탁 뜨여 밝아지면서, 토지는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들이 있으며 전답의 (사이의) 길들은 사방으로 뻗어있고 닭과 개의 울음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며 그 가운데에서 가고 오며 농사짓는 남녀의 의복이 모두 외부 사람들의 모습 같고, 노인과 어린 아이들이 모두 편안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원문]晉太元中에 武陵人이 捕魚爲業하여 綠溪行에 忘路之遠近이라가 忽逢桃花林이라. 夾岸數百步에 中無雜樹하며 방초鮮美하고 落英이 ?紛이라. 漁人이 甚異之하여 復前行하며 欲窮其林하니 林盡水源에 便得一山하고 山有小口하여 戴?若有光이라. 便捨船從口入하니 初極狹하여 ?通人이러니 復行數十步하니 豁然開朗하여 土地平曠하고 屋舍儼然하며 有良田美池桑竹之屬하여 阡佰交通하고 鷄犬相聞하며 其中往來種作하는 男女衣着이 悉如外人하고 黃髮과 垂?가 竝怡然自樂이러라.
** 浦(잡을 포) 夾(낄 협) ?(어지러울 빈) 戴?(비슷할 방·불) ?(겨우 재) 豁(내뚫린골 활) 儼(엄전할 엄) 阡(밭뚝길 천) 悉(모두 실) ?(더벅머리 초) 怡(기쁠 이) 曠(넓을 광)
[예문] 武陵桃源이 있다 하여도 예듣고 못봤더니 붉은 노을 가득하니 이 진정 거기로다 이 몸이 또 어떠하뇨 武陵人인가 하노라 ---김득연 |
■ 무면도강 無面渡江 [없을 무/얼굴 면/건널 도/강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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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고 고향에 돌아갈 면목이 없다.
[동]何面目見之
[내용]《사기(史記)》의 〈항우열전(項羽列傳)〉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유방(劉邦)과 항우(項羽)는 천하의 패권을 놓고 서로 겨루게 되었다. 처음 항우의 우세로 전개되던 싸움은 장기화되면서 역전이 되었다. 해하(垓下)에서 펼친 운명을 건 한판 승부에서 패한 항우는 극한 상황으로 몰려 8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탈출을 시도하였는데, 동성에 이르자 겨우 28명의 기병만이 살아남았다. 이제 탈출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항우는 부하들을 보며 "나는 군대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기까지 70여 번의 싸움을 했지만 단 한번도 패한 일이 없었다.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은 하늘이 나를 멸망시킨 것이지 내가 싸움에 약한 때문은 아니다. 그 증거를 보여주겠다"라고 말하고는 큰소리를 치며 말을 달려 한(漢)나라 대군 속으로 들어가니 한나라의 장병들은 좌우로 흩어졌다.
항우는 적장 한 명의 목을 베는 용맹을 보였으나 대세를 어쩌지 못하고 동쪽으로 도망가 우장강[烏江]에 이르렀다. 우장강에서 배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정장(亭長)이 "'강동(江東)'이 좁다고는 하지만 땅이 사방 천리나 되며, 사람들은 수십 만이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곳도 왕노릇을 하기에 충분하니 제발 급히 강을 건너십시오. 한나라 군대가 들이닥치면 건널 수도 없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항우는 웃으면서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내 어찌 강을 건너가겠는가? 또한 나는 전에 강동의 8,000여 자제와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거니와, 지금은 한 사람도 돌아온 사람이 없다.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추대해 줄지라도 내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겠는가?[何面目見之]'"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여 31세의 한창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이 고사에서 '하면목견지'라는 말이 나왔으며,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갈 면목이 없다'는 뜻의 '무면도강(無面渡江)'과 뜻이 통하는 말이다.<네이버백과> |
■ 무병자구 無病自灸[없을 무/질병 병/스스로 자/뜸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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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없는데 스스로 뜸질을 한다. 불필요한 노력을 하여 정력을 낭비함
[속담]긁어 부스럼(을 만든다)
[출전]『장자(莊子』잡편 '도척' [내용]공자의 친구 유하계에게는 도척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도척은 천하의 큰 도적이었다. 그는 9천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를 마음대로 오가며 제후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포학한 짓을 자행하는가 하면, 남의 집에 구멍을 뚫어 문지도리를 떼어낸뒤 물건을 훔치고 남의 소와 말을 빼앗아가며 부녀자를 납치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이익을 탐하느라고 부모 형제를 돌보지 않고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면, 큰 나라에서는 성을 지키고 작은 나라는 농성하여 난을 피하는 형편이었다.
공자는 도척이 천하의 악당이 되어 잘못을 범하는 것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유하계의 수치로 생각하고 설득하러 찾아갔다. 그러나 도척은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칼자루를 만지며 공자를 꾸짖는 것이었다. 공자는 도척을 설득하는 말은 하지도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 문을 나왔다. 그는 수레에 올랐지만 고삐를 잡으려다 세 번이나 놓쳤고, 눈은 멍하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얼굴은 꺼진 잿빛 같았다.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에 기댄 채 고개를 떨구고 숨도 내쉬지 못할 정도였다.
공자가 노나라의 동문 밖에 이르렀을 때 마침 유하계를 만났다. 유하계가 말했다. "요즘 며칠 동안 뵐 수가 없었는데 거마의 행색으로 보아 혹 도척을 만나러 갔던 게 아닙니까?" 공자는 하늘을 우러르며 한숨을 짓고 대답했다. "그렇소." 유하계가 말했다. "도척은 아마 제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공자는 대답했다. "그렇소. 나는 말하자면 아프지도 않은데 스스로 뜸을 뜬 꼴이오. 부산하게 달려가서 호랑이의 머리를 건드리고 수염을 만지다가 하마터면 호랑이에게 먹힐 뻔했소." |
■ 무불간섭 無不干涉 [없을 무/아니 불/범할 간/건널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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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에 나서서 참견하지 않음이 없다. 자기와는 상관도 없는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참견하지 말라.
[속담]남의 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他人之宴에 曰梨曰枾라. 言不在其位 勿言其事) [예문]검찰의 관내 파출소 무기고 순찰 행위에 격분, 이를 검찰권을 확대해석한 월권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이런 검찰의 행위에 대해 "언젠가는 무불간섭 (無不干涉).무소불위 (無所不爲).무소불능 (無所不能).무불통지 (無不通知) 의 조직으로 비난받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망치일보>에서 |
■ 무산지몽 巫山之夢 [무당 무/뫼 산/어조사 지/꿈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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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巫山)의 꿈. 남녀간의 밀회(密會)나 정교(情交)
[동] 조운모우(朝雲暮雨). 천침석(薦枕席). [유] 무산지운(巫山之雲). 무산지우(巫山之雨).
[출전]『文選 』宋玉 高唐賦 [내용]전국 시대, 초나라 양왕(襄王)의 선왕(先王)이 어느 날 고당관(高唐館)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잤다. 그러자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고운 목소리 로 말했다.
"소첩(小妾)은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전하께오서 고당에 납시었는 말씀을 듣자옵고 침석(枕席:잠자리)을 받들고자 왔나이다." 왕은 기꺼이 그 여인과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나누었다. 이윽고 그 여인은 이별을 고했다. "소첩은 앞으로도 무산 남쪽의 한 봉우리에 살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 머물러 있을 것이옵니다."
여인이 홀연히 사라지자 왕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튿날 아침, 왕이 무산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높은 봉우리에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운묘(朝雲廟)라고 이름지었다.
[원문]昔者楚襄王與宋玉 游於雲夢之臺 望高唐之觀 其上獨有雲氣 兮直上 忽兮改容 須臾之間 變化無窮 王問玉曰 此何氣也 玉對曰 所謂朝雲者也 王曰 何謂朝雲 玉曰 昔者先王嘗游高唐 怠而晝寢 夢見一婦人 曰 妾巫山之女也 爲高唐之客 聞君游高唐 願薦枕席 王因幸之 去而辭曰 妾在巫山之陽 高丘之 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旦朝視之如言 故爲立廟號曰朝雲 |
■ 무소부지 無所不知[없을 무/바 소/아니 불/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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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 매우 박학다식(博學多識)함. [동]無不通知 [참고]무소부지 無所不至 : 이르지 아니한 데가 없음.= 無所不爲 [예문]석재 서병오 선생님은 학자로 벼슬을 버리고 지,당,송,명,청 시대의 명첩을 두루방임하고 해,행,초에서 전,예에 이르는 각체를 닦고 사군자 문인화 기명절지와 수묵산수에도 능해서 무소부지한 대가였고 그의 문하에서 학습으로 닦은 죽농 서동균 선생남 또한 발휘하셨다. 같은 향리에서 영향을 얻어서 기명절지에도 관심있게 그리게 되었다. |
■ 무용지물 無用之物[없을 무/쓸 용/어조사 지/만물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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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부췌附贅, 군더더기 [예문] ▷ 빈둥빈둥 놀면서 밥만 축내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무용지물이야.
▷ 교인들에게 낭패를 당한 김 군수로서는 큰맘 먹고 수리한 감옥이 자칫 무용지물이 될 판인지라 꿩 대신 닭이라고 교인 대신 만만한 적객 몇을 골라 집어넣을 꾀를 낼 만도 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 무위도식 無爲徒食 [없을 무/할 위/다만 도/먹을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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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유식(遊食) [예문] ▷ 무위도식을 일삼다 ▷ 남편이란 자는 아내가 벌어 오는 돈으로 무위도식이나 하며 지낸다. ▷ 그 직장을 그만둔 뒤로 그는 무위도식하며 세월을 보냈다. ▷ 나는 운수(雲水)를 벗 삼아 팔도강산을 헤매다가 나이만 먹어 한이 많네만, 자네는 지금 무위도식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혈기를 그대로 썩이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야.≪유주현, 대한 제국≫
▷ 소하는 중국 전한조(前漢朝)의 고조(高祖)유방(劉邦)의 재상. 한신(韓信)·장량(張良)·조참(曹參)등과 함께 고조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의 한 사람이다. 진(秦)나라의 하급관리로 있으면서 일찍이 한고조 유방이 무위도식할 때부터 접촉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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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위이치 無爲而治 [없을 무/할 위/말이을 이/다스릴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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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 없이 다스려 짐,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다스려 짐을 [동]무위지치(無爲之治) [출전]『논어(論語) 』 위령공편(衛靈公篇)
[내용]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잘 다스렸던 사람은 아마도 요임금일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을 했던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공자의 이 말은 순임금이 도덕적 모범이 되어 사람들이 저절로 따르게 되어 요즘처럼 다스리기 위한 각종 법제를 정하여 규제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이 말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말한 도가(道家)의 말과는 차이가 있다.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인간의 모든 행위(임금이 다스리는 행위)를 부정하고 오로지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유가의 무위이치(無爲而治)는 백성을 다스린다는 기본 전제하에 도덕적 완성인이 군주가 되면 다스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저절로 다스려 진다는 의미이다. [원문]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
■ 무위이화 無爲而化 [없을 무/할 위/말이을 이/화할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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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공들이지 않아도 스스로 변화하여 잘 이루어짐. 성인의 덕이 크면 클수록 백성들이 스스로 따라나서 잘 감화됨.
[출전]『老子 』
[내용]천하에는 행해서는 안 된다고 정해진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은 가난해 진다. 백성들에게 편리한 문명의 도구가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나라는 혼란해진다.
인간은 지혜나 기술이 향상되면 될수록 괴상한 것들이 나타나고 법률이 정밀해지면 해질수록 죄인은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말한다.
"내가 하는 것이 없으면 백성은 스스로 和하고, 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백성은 스스로 바르게 된다. 내가 일 없이 있으면 백성은 저절로 잘 살게 되고, 내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은 저절로 소박해진다."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또 노자(老子)는 말한다.
"'도(道)'는 언제나 무위(無爲)이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일체를 하고 있다. (道常無爲而 無不爲)"고.
老子의 말은 계속된다.
"후왕(侯王)이 만약 능히 이 '도(道)'를 잘 지키면 만물은 자연히 화(化)하려 한다.(侯王若 能守之萬物將自化)"고. |
■ 무장공자 無腸公子 [없을 무/창자 장/공변될,존칭 공/아들,존칭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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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력이나 기개가 없는 사람을 비웃어 하는 말. 게의 별칭.
[참고]게는 한자어로 "횡행공자" 또는 "무장공자" 라고도 불리며, 해조문(도자기의 게발자국 같은 무늬), 해행문자(옆으로 쓰는 글씨) 같은 것으로 우리 주변에 그 자취를 보이며, "게눈 감추듯 한다" "게 잡아 물에 넣는다", "게 거품 문다" 같은 말로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예문] ▷ 이 때 제일석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물을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한다. 내용은 [반포의 효(反哺之孝)]를 예로 들면서 인간을 비난한다. 그리고 제이석의 여우가 등단하여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듯한 간사한 목소리로[호가호위(狐假虎威)]를 들면서 인간의 간사함을 성토한다. 제삼석의 개구리는 [정와어해(井蛙語海)]의 예를 들어 분수를 지킬 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인간을, 제사석의 벌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예를 들어 인간의 이중성을, 제오석의 게는 [무장공자(無腸公子)]의 예로써 외세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비난한다--『금수회의록』
▷<윤우당作>--구한말 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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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 가득 차가운 비 내려 물가에 온통 가을인데 제 땅 얻어 종횡으로 마음껏 다니누나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을 모른다네 | |
■ 무지몽매 無知蒙昧 [없을 무/알 지/어릴 몽/어두울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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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없이 어리석음. [예문] ▷ 아기가 너무 약하고 아기 엄마는 너무 무지몽매해 아기가 제대로 자랄 것 같지가 않아 걱정스럽다. 무지몽매하다 ▷ 무지몽매한 인민들을 영원히 노예로 묶어 두고자 날조해 낸 거짓말….≪최명희, 혼불≫ 날조하다 ▷ 그날 그 극장의 관중들은 소학생도 아니요, 무지몽매한 촌사람들도 아니다.≪김소운, 일본의 두 얼굴≫ 촌사람 ▷ 그것을 글자 그대로 맹신함은 인간이 무지몽매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일 때에 한한 일일 것이다.≪유치환, 나는 고독하지 않다≫ 맹신하다 |
■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없을 무/어찌 하/있을 유/어조사 지/고향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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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그 무엇도 있지 않은 곳으로 풀이되며 장자가 말하는 이상향을 뜻함 [출전]『장자 』 [내용]이 말은 장자 소요유, 지북유, 응제왕편에 나오는 말이다.응제왕편에 보면 천근이 은양에서 노닐며 요수가에 이르렀을 때 무명인(無名人)을 만나 이렇게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고자 합니다" 무명인이 말하였다."가거라. 너는 비천한 사람이다. 어찌 그런 불쾌한 질문을 하느냐? 나는 장차 조물주와 더불어 벗이 되어 세상이 싫어지면 저 하늘을 나는 새를 타고 육극의 밖으로 나아가 무하유지향에 노닐면서 광야에 머물고자 한다. 너는 어찌 천하를 다스리는 일로써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가?"
[원문]소요유(逍遙遊) 지북유(知北遊) 응제왕(應帝王) 天根遊於殷陽, 至蓼水之上 適遭無名人而問焉 曰 請問爲天下 無名氏曰 去 汝鄙人也 何問之不豫也 予方將與造物者爲人 厭 則又乘夫莽 之鳥 以出六極之外 而 遊無何有之鄕 以處壙垠之野 汝又何 以治天下感予之心爲 |
■ 묵묵부답 默默不答 [말없을 묵/대답할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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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 [예문] ▷ 뒤실 어른은 허리춤에서 뽑아낸 곰방대에 쌈지 담배를 비벼 넣으면서도 두꺼운 입술을 꾹 다문 채 묵묵부답이다.≪김춘복, 쌈짓골≫ ▷ 법을 잘 아는 정치인의 묵비권 행사는 아무래도 떳떳하지 못했다. 보통사람도 명예훼손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권리 이전에 사회적 책임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발언과 폭로에 대해선 더욱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한겨레> |
■ 묵자비염 墨子悲染 [먹 묵/존칭 자/슬플 비/물들일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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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가 물들이는 것을 슬퍼한다는 말로, 사람들은 평소의 습관에 따라 그 성품과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는 뜻.
[동]묵자읍사 墨子泣絲 묵비사염 墨悲絲染 [출전]『묵자(墨子)』소염(所染)편
[내용]에 나오는 말이다. 묵자읍사(墨子泣絲)라고도 한다. 어느 날 묵자는 실을 물들이는 사람을 보고 탄식하여 말하였다.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란색,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란색이 되는구나. 이렇게 물감에 따라 실의 색깔도 변하여 매번 다른 색깔을 만드니 물들이는 일이란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나 나라도 이와 같아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며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옛날 순(舜)임금은 어진 신하 허유(許由)와 백양(伯陽)의 착함에 물들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렸고, 우(禹)임금은 고요(皐燿)와 백익(伯益)의 가르침, 은(殷)의 탕왕(湯王)은 이윤(伊尹)과 중훼(仲迂)의 가르침, 주(周)의 무왕(武王)은 태공망(太公望)과 주공단(周公旦)의 가르침에 물들어 천하의 제왕이 되었으며 그 공명이 천지를 뒤덮었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이 천하에서 인의를 행한 임금을 꼽으라면 반드시 이들을 들어 말한다.
그러나 하(夏)의 걸왕(桀王)은 간신 추치(推琇)의 사악함에 물들어 폭군이 되었고, 은나라의 주왕(紂王)은 숭후(崇候), 오래(惡來)의 사악함, 주나라 여왕(勵王)은 괵공 장보(長父)와 영이종(榮夷終)의 사악함, 유왕(幽王)은 부공이(傅公夷)와 채공곡(蔡公穀)의 사악함에 물들어 음탕하고 잔학무도한 짓을 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잃고 자기 목숨마저 끊는 치욕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천하에 불의를 행하여 가장 악명 높은 임금을 꼽으라면 반드시 이들을 들어 말한다. 평소에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계속되면 습관화하여 생각과 태도가 길들여지는 것이므로 나쁜 습관이 들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이다.
[원문]子墨子見染絲者 而歎曰 染於蒼則蒼 染於黃則黃 所入者變 其色亦變 五入必而已則 其五色矣 故染不可不愼也 非獨染絲然也 國亦有染. |
■ 묵적지수 墨翟之守[墨守][먹 묵/꿩 적/어조사 지/지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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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히 성을 지킴.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굳이 지킴. 묵자가 성을 지키는데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너무 완고하여 변통할 줄 모르거나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준]墨守묵수 [유]守柱待兎수주대토 / 미생지신尾生之信 / 膠柱鼓瑟교주고슬 / 墨城之守묵성지수 / 刻舟求劍각주구검 [출전]『묵자』 공수편 [내용]묵적이란 이가 제나라에 있을 때 초나라가 공수반이 개발한 신무기인 사다리를 사용하여 송나라를 공격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묵자는 곧 초나라로 가 '공수반'을 만나 전쟁을 만류했다.송나라는 좁은 땅에 인구가 많은데, 땅이 넓은 초나라가 굳이 침략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통렬히 공수반을 공박하고 초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부강한 나라가 빈곤한 나라를 치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있으면서 이웃집의 하나밖에 없는 헌 옷을 훔치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논지로 초왕을 설득한 것이다. 이에 묵자는 모의(模擬)로 성(城)을 만들어 공수반과 일종의 전쟁게임을 했는데, 공수반은 열 가지 책략으로 성을 공격했으나 묵자는 끄떡도 안하고 아홉번이나 물리쳤다. 결국 초왕은 묵자에게 송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원문]公輸盤九設攻城之機變. 子墨子九距之. 公輸盤之攻械盡.子墨子之守 有餘
[참고]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일이다. 楚(초)의 荊王(형왕)이 公輸般(공수반)이 만든 특수 사다리를 사용하여 宋(송)을 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기계는 전문적으로 城(성)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였다. 墨子는 즉시 荊王을 만나 만류했다. 그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열렬한 反戰論者(반전론자)였다.
‘전쟁이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에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비웃음만 사게 되지요. 제가 보기에 楚가 宋을 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荊王은 宋을 치지는 않았지만 墨子의 말은 믿지 않았다. 그러자 墨子가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城을 지킬테니 公輸般으로 하여금 치도록 해 보십시요.’ 과연 公輸般이 아홉번이나 공략했지만 끝내 墨子가 지키는 城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번에는 公輸般이 城을 지키도록 했는데 墨子는 아홉번이나 함락시켰다. 荊王은 그제서야 公輸般의 사다리가 缺點(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墨子가 城을 지킨 고사는 일약 유명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墨子가 城을 굳게 지킨 것을 ‘墨守’라고 했는데 전통이나 我執(아집), 또는 偏見(편견)에 사로잡혀 조금도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도 墨守라고 했다. 일종의 固守(고수), 死守(사수)인 셈이다. --<문화가 흐르는 한자>
[예문] ▷ 새로운 민족 문화의 창조가 단순한 과거의 묵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외래문화의 모방도 아닐 것이다. ▷ 자기 의견만을 묵수하다 ▷ 구습을 묵수하다. |
■ 문경지교 刎頸之交 [목벨 문/목 경/어조사 지/사길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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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동]管鮑之交(관포지교) : 齊(제)나라 재상 管仲과 鮑叔牙의 사귐. 매우 친한 사이의 사귐. /金蘭之交(금란지교) : 쇠를 끊을 만큼 견고하고 향기로운 난초와 같은 우정. /芝蘭之交(지란지교) : 지초와 난초의 사귐. 맑고도 고상한 사귐. /竹馬故友(죽마고우) :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친구.
[출전]『史記』 廉頗藺相如傳)
[내용] : 전국시대 趙의 혜문왕(惠文王) 때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무현(武賢)의 식객에 불과했던 인상여를 경대부(卿大夫)에 임명하자 염파는 불만이 대단하였다. 그래서 인상여를 만나면 망신을 주리라 생각하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니 부하들이“왜 그렇게 염장군을 두려워 합니까?”라고 물으니 인상여가“秦나라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염파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염파가 옷을 벗어 살을 드러내고 곤장을 지고 인상여의 집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기를“비천한 사람이 장군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인상여와 염파가 문경지우가 되었다.
[참고]부형청죄 負荊請罪 :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정중하게 남에게 사죄하는 뜻
[원문]廉頗가 肉袒負荊하고 至門하여 謝罪曰 鄙賤之人이 不知將軍寬之如此라. 卒相與驩이 爲刎頸之友하다.( ** 藺(고풀 린) 廉(청렴할 렴) 頗(치우칠 파) 袒(웃통벗을 단) 荊(곤장 형) 謝(사례할 사) 鄙(더러울 비) 寬(너그러울 관) 驩(기뻐할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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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과식비 文過飾非[꾸밀 문/허물 과/꾸밀 식/아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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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꾸민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 아니라 도리어 외면하고 도리어 잘난 체함. |
■ 문방사우 文房四友[글월 문/방 방/넉 사/벗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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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의 네가지 벗. 종이, 붓, 벼루, 먹.(紙筆墨硯)=문방사보(文房四寶) ·문방사후(文房四侯)
[내용]문방이란 문한을 다루는 곳 즉 ,문사들의 방이란 뜻이다. 문방에 없어서는 안 될 종이, 붓, 먹, 벼루를 문방의 사우라 하며 혹은 문방사후, 사보라고도 한다. 문방사후란 것은 사우를 의인화시켜 각각 벼슬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문인의 서재를 문방이라 하고 수업의 장으로 존중해왔으며 문방구를 애완 하는 역사는 한·위·진으로 더듬어 올라갈 수 있으나, 남당의 이욱이 만들게 한 이정규묵·남당관연··오백현의 붓은 남당4보라 부르고 문방구 역사의 기초를 이루었다.
송대에 이르러 이런 문방구 애완의 풍조가 더욱 고조되고, 종류도 연적·필세·도장 등 45종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승려이며 화가인 담징이 이미 610년일본에 건너가 채색종이·먹의 제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어 문방의 역사를 말해준다.
붓: 짐승의 털을 추려서 모아 원추형으로 만들어 죽관(竹管) 또는 목축(木軸)에 고정시킨 것으로 호(毫)의 끝을 봉(鋒), 호의 끝부분 반을 전호(前毫), 그 필두(筆頭)까지의 짧은 털은 부호(副毫)라 한다. 털로 된 모필 이외에도 죽필(竹筆)·고필(藁筆)·갈필(葛筆) 등 특수한 것이 있다.
호는 주로 토끼털(紫毫라고도 함), 양털을 비롯하여 이리·너구리·사슴·족제비·말·고양이·노루등의 털과 쥐수염·닭털·태발(胎髮) 등으로도 붓을 맨다. 털이 부드러운 붓을 유호필(柔毫筆), 탄력이 큰 털로 맨 붓을 강호필(剛毫筆)이라 하고 유호에 강호심(剛毫)을 박은 것을 겸호필(兼毫筆)이라 한다. 또 털의 길이가 긴 것을 장봉(長鋒), 짧은 것을 단봉(短鋒), 보통의 것을 중봉(中鋒)이라 한다. 토끼털은 중추(仲秋) 무렵의 것을 상질로 치고, 사슴털은 여름 것을 취한다. 필관은 대개 대나무를 쓰지만 나무·골각·보옥·금은·도자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먹:먹[墨]의 시초는 중국의 한대(漢代) 초라는 정설이 있다. 붓은 진대(秦代)의 몽염(蒙恬)이, 종이는 한대의 채륜(蔡倫)이 발명하였다고 하나, 먹의 발명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붓을 쓰기 시작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발명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먹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자를 골편(骨片)이나 금석(金石)에 새겼다. 이를 갑골시대(甲骨時代)·금석시대라 한다. 그 후 인지(人智)와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문자의 사용범위가 넓어지고, 갑골문이나 금석문만으로는 기록하기가 어려워지자 대나무 조각이나 나뭇조각 또는 천 등에 문자를 쓰게 되었다. 이때를 죽간시대(竹簡時代)라 한다. 당시 죽간에 쓰던 것은 붓이 아닌 죽정(竹挺)이란 것으로 옻[漆]을 묻혀 썼다. 그래서 그 문자의 획이 마치 올챙이 모양과 같다 하여 죽첩과두문자(竹牒??文字)라고 하였다. 공자나 맹자가 쓴 글씨도 모두 이 죽간칠서(竹簡漆書)였다.
견백(絹帛)이란 천(명주)은 종이보다 다소 먼저 발명되었다. 죽간시대에 이미 명주에 글씨를 썼으며, 이 글씨는 붉은 단서(丹書:붉은 광석이나 돌가루를 반죽하여 그것을 붓에 묻혀 쓴 글씨) 아니면 검은 묵서(墨書)였다. 이때 묵서의 원료는 자연산 석날(石靭)이라는 일종의 광물이었다. 석날이란 오늘날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黑鉛)의 일종인 듯하며, 거기에 옻을 섞어서 썼던 모양이다. 그 후 문화가 발달됨에 따라 점차 그을음, 즉 연매(煙煤)를 옻 대신 썼다. 이어서 아교풀과 섞어 쓰게 되면서 드디어 제묵(製墨)의 단계로 옮겨지게 되었다.
전한(前漢)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은 먹은 만들지 못한 듯, 당시에 쓰였던 얇고 편편한 벼루와 마묵구(磨墨具)가 낙랑채협총(樂浪彩瑩塚), 그 밖의 한대(漢代)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25∼220년 후한(後漢)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오늘과 같은 먹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종이의 발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처음에는 송연묵(松煙墨)을 생산하였고, 유연묵(油煙墨)을 사용하게 된 것은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에 이르러서다. 당시 남당(南唐)의 후주(後主)가 먹의 사용을 장려하여 이정규(李廷珪)와 같은 유명한 묵공(墨工)이 나왔고, 그 후 송(宋)·원(元)·명(明)·청(淸) 등으로 이어져 오면서 많은 묵공이 배출되고 일품(逸品)이 생산되었다.
한국의 제묵 연혁을 살펴보면, 고대부터 먹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위만·낙랑시대에 중국의 것을 본받은 것이 사실인 듯하며, 신라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정품(精品)의 먹이 생산되었다. 신라의 양가(楊家)·무가(武家)의 먹은 모두 송연묵으로서 그 품격(品格)이나 질이 매우 좋았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조선묵(朝鮮墨)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일본에서도 먹은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그들이 먹을 처음으로 만든 것은 고구려의 담징(曇徵)이 제지법과 제묵법을 610년에 전해준 데서 비롯되었다. 일본인 자신들도 이 사실을 시인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신라의 먹을 수입하여 매우 소중히 여겼다 한다.
종이:짐승의 가죽을 부드럽게 하여 만든 양피지(羊皮紙:parchment), 대나무나 나무를 얇게 깎아서 만든 것과 같은 것들은 모양과 용도가 같아도 종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제2의 종이'나 '제3의 종이'라고 하는 레이온·합성섬유 등을 원료로 하여 종이 모양으로 만든 것들도, 종이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종이관계 국제회의에서 여러 차례 논의한 바, 그것들을 종이의 범주 안에 넣어 취급은 하지만 종이의 정의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식물의 섬유를 원료로 한 것'으로 결정하였다.
종이는 크게 한지(韓紙)와 양지(洋紙)로 나누며, 한지는 수록지(手질紙)와 기계지(機械紙)로, 양지는 종이(좁은 뜻의)와 판지(板紙)로 다시 나눈다.양지의 주된 원료는 목재펄프이며, 한지는 닥·삼·마 등의 인피섬유(靭皮纖維)를 원료로 하여 사람의 힘으로 제조되었으나, 근래에 와서 목재펄프를 섞어서 기계를 사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양지와 한지의 구별은 점차 애매하게 되어 가며, 제품의 외관으로 구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양지의 종이는 섬유를 단층으로 조성하여 만들며, 판지는 지층을 여러 겹을 조성하여 물을 머금은 상태에서 압착함으로써 섬유가 서로 엉겨 붙도록 하여 만든다. 그러나 종이의 두꺼운 것과 판지를 외관상으로 정확하게 구별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종이의 두께는 g/㎡로 표시하는데, 이는 1×1m짜리를 저울에 달았을 때의 결과값을 말하며, 거래 단위는 관례상 t(M/T)을 사용한다.
벼루:간다는 뜻에서 '硏'자를 동의자로 쓴다. 대개는 돌로 만들지만 와연(瓦硯), 도연(陶硯)도 있고 옥·유리·비취·수정 등 보석류라든가 금·은·동·철·목(木)·죽(竹) 등으로도 만든다. 형태는 직사각형·사각형·원형·타원형·풍자(風字)형 등이 있다. 물론 다른 의장(意匠)으로 만들어진 것도 더러 있다. 먹을 가는 부분을 연당(硯堂), 또는 묵도(墨道)라 하고 갈려진 먹물, 즉, 묵즙이 모이도록 된 오목한 곳을 연지(硯池), 또는 연홍(硯泓), 연해(硯海)라 한다.벼루가 구비하여야 할 첫째 조건으로는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한다.
연당의 표면에는 숫돌과 같은 꺼끌꺼끌한 미세한 봉망(鋒芒)이 있어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마찰시킴으로써 먹물이 생긴다. 따라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한다. 봉망이 약하면 먹이 잘 갈리지 않고 반대로 강하기만 하면 잘 갈리기는 하나 먹빛이 좋지 않다. 그래서 벼루는 실용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재질의 것을 첫째 요건으로 하지만 구석기시대부터 중국인의 돌에 대한 강한 애착은 벼룻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다만 먹을 가는 도구라는 차원을 넘어 돌의 빛깔이라든가 무늬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나아가 연면(硯面)을 고도의 미적 의장으로 조각 장식하여 문방사우의 하나로서 감상의 대상으로 소중히 여겨왔다. <네이버백과>
[참고] 歲寒三友[세한삼우]--松,竹,梅[소나무,대나무,매화] 北窓三友[북창삼우]--거문고,술,시 |
■ 문외한 門外漢[문 문/바깥 외/사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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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거나 관계가 없는 사람. [예문] ▷ 문외한 눈에는 똑같은 것 같아도 전문가들 보기엔 천양지차가 있지.≪윤흥길, 제식 훈련 변천 약사≫ ▷ 조직 검사를 해 보자는 것이다. 그 방면에 문외한인 나는 조직 검사가 어떤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었다.≪법정, 무소유≫
▷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문제를 나 같은 문외한은 감히 언급할 수조차 없다.≪한비야-지도밖으로 행군하라≫
▷ 우리들 가운데 누구와도 관계가 없는 사람이, 그리고 (따지자면 말입니다만,) 우리 가족에겐 문외한인 사람이 그런 시기에 어떻게 해서 그 자리에 끼게 되었는지 제가 얼마나 궁금해하는가를요.≪제인 오스틴-오만과 편견≫ |
■ 문일지십 聞一知十[들을 문/한 일/알 지/열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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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안다. 매우 총명함. [반] 得一忘十(득일망십)
[출전]『論語』 公治長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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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전성시 門前成市[문 문/앞 전/이룰 성/장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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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시장이 이루어진다. 권세가나 부자집 문앞은 방문객들로 붐빈다.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집 문 앞이 시장을 이루다시피 함. [동]門前若市(문전약시) : 문 앞이 시장과 같다./ 門庭若市(문정약시) : 집안의 뜰이 시장과 같다./ [반]門前雀羅(문전작라) : 문 앞이 새 그물을 칠 정도로 한적하다.
[출전]『漢書』 孫寶傳,鄭崇傳 [내용1] : 漢나라 애제(哀帝)는 약관(弱冠)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외척이 정권을 쥐고 있어 꼭두각시에 불과하였지만 그에게는 정숭(鄭崇)이라는 어진 신하가 있었다. 처음엔 정숭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외척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지자 귀찮아 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그 틈에 간신들이 기회를 잡고 그를 모함하니,「임금이 정숭을 꾸짖기를 그대의 집은 시장과 같다고 하니 어찌하여 짐(朕)과의 관계를 금하여 끊으려 하는가? 하니 정숭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의 집은 시장과 같으나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上責崇曰 君門如市이라하니 何以欲禁切主上이리오하니 崇對曰 臣門如市이나 臣心如水이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말을 믿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결국 옥사하고 말았다.
[내용2]전국시대, 제(齊)에 추기(鄒忌)라는 호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추기는 거울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미남자로 유명한 서공(徐公)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과 어느 쪽이 미남자인가?" 아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틀림없이 당신 쪽이 더 잘 생겼습니다." 아내의 말은 신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 추기는 첩에게도 꼭같이 물었다. 첩은, "물론 당신이 더 잘 생겼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친구가 찾아왔기에 추기는 친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추기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온 그 친구가 대답했다. "서공 따위는 자네에게 미치지 못하네. 정말이네!" 친구의 칭찬의 말에도 추기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서공이 추기의 집을 방문했다. 추기는 서공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고, 또 뚫어지도록 서공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내 쪽이 떨어진다." 서공이 돌아간 후에, 추기는 자신과 서공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려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자신이 서공보다 못생겼다고 생각되었다.
그 날 밤, 그는 생각했다. "왜 모두 내가 더 잘생겼다고 말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추기는 깨달았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첩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친구는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였다."라고. 자신이 이 지경이라면, 왕은 더 많은 아부의 소리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추기는 위왕(威王)을 알현하여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칭찬하는 말보다, 비판하고 충고하는 말이야말로 들을 가치가 있다고 진언했다.
위왕은 그 말을 옳게 여기어 즉시 공포했다. "관리와 백성을 막론하고, 나에게 직간(直諫)하는 자에게는 상등(上等)의, 상서(上書)하여 간하는 자에게는 중등(中等)의, 마을에서 비판하는 자에게는 하등(下等)의 상을 준다." 예상대로, 왕에게 간언하려고 온 자가 줄을 이었기 때문에, 왕궁의 뜰은 저자처럼 사람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물론, 상서도 쇄도하였고, 마을에서도 왕을 비판하는 소리로 떠들썩하게 되었다. 왕은 그들의 비판을 받아들여서 정치를 개혁해 갔다.
수 개월이 지났다. 비판자는 두드러지게 줄어들었고, 1년 후에는 비판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비판의 씨앗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위왕은 이런 노력으로 제나라의 힘을 강하게 하였다. 주위의 여러나라들이 모 두 제나라를 존경하여 사자를 파견했다. 역사가는 이것을 논평하여 말했다. "위왕은 군사를 사용하지 않고 승리를 얻었다."
[원문]上責崇曰 君門如市人 何以欲禁切主上 崇對曰 臣門如市 臣心如水 願得考覆
[예문] ▷ 당장 소문이 인근 마을에 쫙 퍼져 일부러 구경 오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강남과 판교신도시를 잇는 시흥동 일대의 땅은 가격을 묻지 않고 사겠다는 사람들로 부동산마다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2006 이코노믹리뷰>
▷ 동교동계 중진의 집을 찾았던 한 여권 인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청와대 밖의 권부(權府)답게 예상대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지만, 정작 놀란 것은 거기서 만난 한 정치인 때문이었다.<2006 경향신문> |
■ 문전작라 門前雀羅 [문 문/앞 전/참새 작/벌일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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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권세를 잃거나 빈천(貧賤)해지면 문 앞 (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말. [원]門外可設雀羅 [반]門前成市
[출전]『史記』〈汲鄭列傳〉/ 백거이(白居易)의〈寓意詩〉 [내용]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 (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면직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 (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 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 게 덧붙여 쓰고 있다.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 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 할 나위도 없다.또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 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死一生 卽知交情(일사일생 즉지교정)]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貧一富 卽知交態(일빈일부 즉지교태)]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 [一貴一賤 卽見交情(일귀일천 즉현교정)] |
■ 물아일체 物我一體 [사물 물/나 아/한 일/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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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물(外物)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됨. [유]渾然一體
[예문] ▷ 적어도 아침 산책을 나섰을 때에만은 나는 생활에서 오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깡그리 벗어나서 차라리 한 그루의 나무요, 한 마리의 산새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기원은, 어느날 아침에 시냇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한 여인으로 해서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정비석의 ‘색지풍경’에서> |
■ 물외한인 物外閑人[만물 물/바깥 외/한가할 한/사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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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지내는 사람. [유]遊遊自適(유유자적)
[예문] ▷ 조선의 선비들에게 있어 소요는 물외한인(物外閑人)으로써 은일을 즐기며 지락에 이르는 한 방법으로써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도가적 사상이나 행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을 뿐, 국시(國是)로는 한 번도 장려되거나 강조되지는 못하였다
▷ 사안이 기생이나 데리고 청담이나 해 가면서 세상을 잊은 듯 산수 간에 헤맬 때 그는 한 개 물외한인이지, 누가 뒷날에 백성들을 도탄 속에서 구해 내고 쓰러지려는 나라를 구원해 낼 큰 재상이 될 줄 알았겠소?≪박종화, 금삼의 피≫
[참고]〈예장소요도〉는 소경인물산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보통의 산수화와 다른 점이라면 화면 속의 인물이 대자연의 한 부분으로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의 자연 풍경과 적절한 비례치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볼 때는 일단 산수를 그린 풍경화로 인식되지만, 세부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물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러나 인물에 모아졌던 시선은 곧이어 다시 전체 풍경으로 옮아 가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산수 자연과 인물이 상호 교섭 관계에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주변의 나무나 산 등 경물들은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는 작은 규모의 그림이지만, 나머지 여백 대부분이 안개로 처리되어 있음으로 해서 유현(悠玄)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그윽한 산수 풍경 속에 신선처럼 소요(逍遙)를 즐기고 있는 한 선비의 모습이 무척 한가롭게 보인다. - -<디지털 한국학>에서 |
■ 미망인 未亡人[아닐 미/죽을 망/사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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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고 홀로 사는 여인. [유]一夫終身(일부종신) : 남편이 죽은 뒤에도 개가(改嫁)하지 않고 수절하며 일생을 마치다./ 出天烈女(출천열녀) : 하늘이 낸 열녀. 절개가 굳은 여인을 이른다./ 柏舟之操(백주지조) : 잣나무로 만든 배의 지조. 남편을 잃은 아내가 끝까지 정절을 지킴.
[출전]『春秋左氏傳』莊公 28年條 [내용] 春秋시대 魯나라 성공(成公)이 재위 중 노의 백희(伯姬)가 송공(宋公)에게 출가하게 되자 계문자(季文子)라는 사람이 백희를 따라 송에 갔다. 계문자는 후행(後行)으로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으므로 성공은 위로의 연회를 베풀었다. 그 연회석상에서 계문자는 詩經을 인용하여 성공과 송공을 칭송한 후, 송의 땅은 좋은 곳이니 출가한 희(姬)는 틀림없이 잘살 것이라고 노래하였다. 이를 듣고 있던 희의 모친 목강(穆姜)은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이번에 퍽이나 큰 신세를 끼쳤습니다. 당신은 선군(先君)때부터 충성을 다하였고, 이 미망인인 나에게까지 진력하여 주셔서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역시 시경의 녹의(綠衣)의 종장(終章)에 만족의 정을 의탁하여 노래를 부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원문]先君以是舞也 習戎備也. 今令尹不尋▒仇 而於未亡人之側 不亦異乎
[예문] ▷ 직업도 직업이려니와 애틋한 어린 미망인에 대한 같은 여자로서의 동정과 조상이리라.≪채만식, 탁류≫ ▷ 사가의 법도와 범절이 무서워 상부(喪夫)한 미망인이 울지 못하듯 그녀도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한무숙, 만남≫ |
■ 미봉책 彌縫策[꿰맬 미/꿰맬 봉/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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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매어 깁는 계책. 임시로 꾸며 대어 눈가림만 하는 일시적인 대책. [동]臨時方便(임시방편) /姑息策(고식책)/하석상대(下石上臺) /고식지계(姑息之計) /고육지책(苦肉之策) 임시방편(臨時方便)/동족방뇨(凍足放尿 [속담]눈가리고 아웅
[예문] ▷ 한국의 금융당국은 앞서 지적한 제도적 한계를 개선하기는커녕 자신들이 설정한 미봉책인 담보인정비율(LTV, Loan to Value Ratio)과 부분적인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 to Income)규제 조차 제대로 규율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2006 연합뉴스>
▷ 언론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미봉책에 머물고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노동부와 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또 한번의 미봉책에 그치는 시정조치나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간호사 인력충원과 모성보호, 병원 인사노무관리시스템 점검과 환자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와 근본대책을 수립해야한다<2006 뉴시스>
[원문] 曼伯爲右拒 祭仲足爲左拒 原繁高渠彌以中軍奉公 爲魚麗之陳 先偏後伍 伍承彌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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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지신 尾生之信[꼬리 미/날 생/어조사 지/믿을 신]▶ 플래쉬 보기(출처-즐거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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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신의. 우직(愚直)하게 약속만을 굳게 지킴./어리석고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抱柱不放, 抱柱之信 [유]膠柱鼓瑟교주고슬 /墨城之守묵성지수/刻舟求劍각주구검 /守柱待兎수주대토
[출전]『史記』, 蘇秦傳.『莊子』,盜 篇 [내용] : 노(魯)나라에 미고(尾高)라는 이가 있었다. 미고는 벼슬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나라의 풍습에 따라 이름자 대신 '생(生)'을 넣어 미생이라 불렀다.그는 일단 남과 약속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는 그 시간에 나타나질 않았다.‘조금 더 조금 더’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 소나기가 쏟아져 큰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그러나 미생은‘이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니 이 자리를 떠날 수는 없다.’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교각(橋脚)을 붙잡고 버텼으나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았다(사기)
[참고1]장자는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소인(小人)과 군자(君子)에 대하여 <장자>盜蹠篇에서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 .... 소인은 재물을 따르고, 군자는 이름을 따르는 것이다. 그 정(情)을 변하고 그 성(性)을 바꾸는 까닭(對象= 곧 이름과 이익)은 다르지만 그 할 일(本性을 따름)을 버리고 그 하지 않을 일(外物을 따름)을 따르는 데 있어서는 곧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옛말에도 소인이 되지 말라.(이익을 탐하지 말라) 그래서 본성으로 돌아가 너의 하늘(자연)을 따르라. 군자가 되지 말라.(이름을 구하지 말라) 그래서 하늘의 이치를 따르라.
小人殉財,君子殉名. 其所以變其情,易其性,則異矣.,乃至於棄其所爲而殉其所不爲,則一也.?? 故曰,无爲小人,反殉而天.,无爲君子,從天之理.
.... 비간(比干)은 심장을 찢기었고, 오자서(伍子胥)는 눈알이 도려내졌으니, 이것은 충(忠) 때문에 일어난 재화(災禍)이다. 직궁(直躬=그의 아버지가 염소를 훔쳤을 때에 증인을 섰다가 죽었음))은 부친의 도둑질을 증언하고, 미생(尾生)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신(信) 때문에 생긴 우환이다(直躬證父, 尾生溺死, 信之患也).
포자(鮑子)가 선 채 말라 죽고 신자(申子)가 이유를 말하지 않고 죽은 것은 청렴(淸廉)으로 인한 해(害)이다. 공자가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하고 광자(匡子)가 평생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것은 인의(仁義) 때문에 생긴 과실(過失)이다. 이런 일은 옛 세상이 전한 것으로 뒤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 된 자가 자기의 말이 옳다고 고집하고, 행동은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이러한 재앙과 우환을 겪게 된 것이다."比干剖心,子胥抉眼,忠之禍也.,直躬證父,尾生溺死,信之患也.,鮑子立乾,申子自埋廉之害也.,孔子不見母,匡子不見父,義之失也. 此上世之所傳,下世之所語,以爲士者正其言,必其行,故服其殃,利其患也.
장자는 도척의 입을 통해서 미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이런 자는 책형(?形 - 기둥에 결박하여 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된 개, 물에 쓸린 돼지, 깨어진 사발을 한 손에 들고 걸식하는 거지와 같으며 사소한 명목에 끌려 진짜 귀중힌 목숨을 소홀히 하는 자이며 참다운 삶의 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놈이니라.”하고, 그 어리석음을 규탄하면서 이는 신의에 얽매인 데서 오는 비극이라 하였다.
[참고2]전국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燕나라 소왕을 說破할 때 <신의이는 사람의 본보기>로 미생을 예로 들었다. <史記> 蘇秦列傳
[원문]尾生與女子期于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梁柱而死.无異於책犬流豕操瓢而乞者,皆離名輕死,不念本養壽命者也.'''''尾生溺死,信之患也<사기>
蘇秦曰 : "孝如曾參, 義不離其親一宿於外,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事弱 燕之危王哉? 廉如伯夷, 義不爲孤竹君之嗣, 不肯爲武王臣,不受封侯而餓死首陽山下. 有廉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行進取於<齊>哉? 信如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有信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 齊之彊兵哉? 臣所謂以忠信得罪於上者也."<장자> |
■ 미증유 未曾有[아닐 미/일찍이 증/있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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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 [동]전대미문(前代未聞)/파천황(破天荒) :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이루어 놓은 일/파벽(破僻) /광고(曠古).
[예문] ▷ 부처님께서는 수장자에 대하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수장자에게는 여덟가지 미증유(未曾有)의 법이 있느니라.수장자는 욕심이 적고, 믿음이 굳건하고, 양심의 부끄러움을 알고, 남에게 미안함을 알며, 선행을 부지런히 하고, 항상 법을 깊이 생각하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지혜가 밝으니라. ---'중아함경 제9.수장자경:<1-484하>
▷ 한국영화 사상 미증유의 흥행을 기록했던 '투캅스'시리즈 세번째. 기본골격은 전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주인공을 남녀 커플로 바꾸면서 갈등의 계기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 북핵사태 이후 한반도에 미증유의 새로운 정세가 엄습하고 있는데 통치권자는 도대체 무얼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군사적 대립이 격화 되면 가장 큰 피해지역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이러한 특수당사자로서 발언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대사와 미국무성, 국방성 고위관료들이 전례없는 내정간섭성 발언과 압력을 행사하는데도 못들은척 일언반구도 없다. <2006 세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