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옷]대례복 &소례복

작성자根熙 김창호|작성시간10.03.31|조회수522 목록 댓글 0

         대례복 &소례복

 

대례복이란 원래 국가의 중대한 의식 때 입는 예복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음은 백과사전에서 발췌한 것이구요.

 

조선시대에는 오례(五禮:嘉禮 ·吉禮 ·賓禮 ·軍禮 ·凶禮)에 따라 제복(祭服) ·조복(朝服) ·공복(公服) ·상복(常服)을 착용했는데, 1895년 8월 10일 대례복 ·소례복 ·상복을 제정 반포한 뒤에는 대례 ·소례에 따라 대례복 ·소례복을 입었다.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대례복으로는 왕 ·왕세자의 면복(冕服)이 있었으며, 조신(朝臣)들은 조복 ·제복이 있었다. 또 왕비 ·왕세자빈에게는 적의(翟衣)가 있었고, 내명부(內命婦) ·외명부(外命婦)는 의식에 따른 예복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여러 차례의 의제개혁 때마다 조신의 대례복이 지정되었다. 즉 1894년 12월의 개혁 때 흑단령(黑團領), 즉 상복(常服)을 조신의 대례복으로 승격시켰다. 다음해 8월에는 문관의 복장을, 조복 ·제복은 예전대로 착용하고, 대례복은 흑단령 ·사모(紗帽) ·품대(品帶) ·화자(靴子)로 하여 동가(動駕) ·경절(慶節) ·문안(問安) ·예접(禮接) 때에 착용하며, 소례복은 진현(進見) 때 또는 대례 때에도 착용하도록 간소화했다.

97년 국호를 대한으로 고치고 황제 ·황후 등의 관복을 중국 명(明)나라와 동격으로 정했다. 1900년 4월에는 문관의 대례복을 구미식으로 정했다.


 

출처 : 두산대백과사전

                                                                                                                                                  

 

 적의란 것은 본문에도 나오듯이 왕비나 왕세자비가 입는 예복이었습니다.

 

적의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적의는 친애, 해로를 의미하는 적문(翟紋;꿩의 무늬)을 짜넣은 포(袍)다. 이 옷이 도입된 것은 고려 공민왕 18년(1370)에 명 태조 고황제가 왕의 면복(冕服)과 원유관복(遠遊冠服)을 내려 주었고, 효자황후가 왕비에게 관복을 내려 준 데서 비롯된다. 이 때 사여받은 왕비의 관복은 관(冠), 적의, 중단, 폐슬, 상, 대대, 패옥, 청석, 청말이었다. 조선시대 왕비를 비롯하여 왕세자비도 이것을 대례복으로 착용하였다. 영조 때 <국조속오례의보 (國朝續五禮儀補)>가 편찬되어 왕비의 예복을 정비하였다. 이 옷은 가례 등의 중요한 행사 때에 착용하였으므로 화려한 것이 특징이고, 여기에 딸리는 부속품이나 머리 장식물들이 복잡하다.

적의를 착용할 때는 머리에 각종 비녀와 금란대 (마리삭금댕기)로 장식한 대수(大首)를 장식하고, 속에는 중단을 착용하였으며, 겉에는 상(裳,전행웃치마), 대대, 후수, 폐슬, 패옥, 하피, 옥대 등으로 장식하고, 청석을 신는다.
적의는 영조 때에는 대홍단으로 지었으나 고종황제 이후에는 짙은 청색이었다. 적의는 앞면의 좌우가 서로 곧바로 내려가 여미어 지지 않는데 앞길이는 치마끝과 가지런하고, 뒤길이는 치마끝보다 한 자 남짓 길었다. 적의 앞뒤에 금실로 수놓은 오조원룡보를 붙이고 앞면의 보 아래에서 옷단에 이르기까지 수놓은 원적(圓翟)을 좌우 7개 씩 붙이고 좌우에 각각 한 굽씩 접어서 서로 이어진 것처럼 붙인다. 뒤 길에서도 옷단에 이르기까지 원적을 좌우 9개 씩 붙이는데, 옷단 가운데에 원적 1개를 더 붙여 연이은 것 같이 하였다. 좌우 소매 뒷면 부리에도 원적을 각각 9개 씩 수놓아 원적의 수는 모두 51개였다.

대대(大帶)는 겉은 대홍단이며, 안은 흰 색 비단이고, 둘레에 옥색 비단으로 가선(加線)을 둘렀다. 끈은 남색 실로 꼬아 만들었으며 끝 부분에 같은 색의 술을 달았다. 황후의 것은 안팎이 청.홍으로 되어 있었다.

후수(後綬)는 홍, 백, 표(옥색), 녹 4채의 굵은 색실로 조직을 짰다. 상단에 2개의 금환이 부착되어 있다. 황후는 황색을 더하여 5채를 썼다.

패옥은 2개를 양 옆에 늘어뜨린다. 홍, 백, 표, 녹의 4채(황후는 황색을 더하여 5채)로 짠 소수(小綬)가 하단에 달려 있다. 소수는 윗 부분에 금속고리 2개가 부착되어 있어 대(帶)에 걸게 되어 있다. 패옥은 형(珩) 1, 여기에 옥주를 꿴 3개의 줄에 의해 연결된 우(瑀)1, 거 1, 충아(衝牙) 1, 황(璜)이 있다. 형(珩)에서 연결된 두 개의 옥화(玉花) 밑에 옥적(玉滴) 2개가 달려 있다. 걸으면 옥적,황,충아 등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낸다.

폐슬(蔽膝)은 적의와 같은 색이고 적문(翟紋)을 황후는 3등분, 왕비는 2등분으로 나누어 소륜화(小輪花) 6송이를 배치하였다. 특히 적문은 좌우 쌍이 대칭이 되며 마주 향하고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홍색으로 연을 더하였는데 황후는 운룡문, 왕비는 운봉문이 정교하게 짜넣어져 있다.

하피는 목에 걸어 늘이는 장식물인데 검은 색 공단에 분홍색 안을 넣었다. 금실로 운하(雲霞) 28개, 적문(황후는 봉문(鳳紋)) 26개를 수놓았고, 둘레에 두 줄의 금선을 둘렀다.

옥대는 적의와 같은 색으로 겉을 싸고, 안쪽 뒷부분은 옥색 무늬비단이다. 정면의 금속대구에 붙인 옥판에 금선을 더하여 장식한 사이에 도금한 꽃 장식을 배치하였고 후면에 네모난 민옥(珉玉) 5개를 연속으로 부착하였다.

청석은 왕의 면복과 조복에, 또는 왕비의 법복에 착용했던 신발이다. 적의와 같은 재질로 만들었으며, 석의 뒤꿈치와 양쪽에 검은 색 고리를 달았고 여기에 끈을 꿰어 발등에 매도록 되어있다. 영조 때의 규정으로는 신발의 앞부분에 홍녹색 실로 꽃무늬 3개를 붙였는데,고종 이후 황후는 구슬 5개를 장식하였다.

출처 : 문화원형백과사전

                                                                                                                                                              

 

말씀드렸다시피 적의는 원래는 왕비의 법복이었으나 최근에는 일반인들의 예복의 한종류로 자리잡고 있는데요.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비용이 들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비싼만큼의 값어치는 합니다.

더 고급스럽고 더 고귀해보이거든요.

아무튼, 결혼한복을 맞출 때 꼭 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옷'을 고상하게 말하는 분들이 흔히 '의상'이라고 하시는데,

'의상(衣裳)'란 한자 말은 '저고리와 치마'란 뜻입니다.

'적의(翟衣)'란 '꿩 적(翟), 옷 의(衣)'란 말인데, 즉 '꿩을 수놓은 저고리'를 말합니다.

'결혼한복에도 들어 가는 건가요?'라고 물어 셨는데,

전통적으로 신부의 옷차림은 '녹의홍상'입니다.

즉 '녹색 저고리에 다홍색 치마' 차림이 신부의 옷입니다.

따라서 굳이 전통풍습을 따진다면 '적의'는 혼례용 한복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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